[인문신간] 현생 인류는 식인종의 후예인가?
많은 학설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인간이 네안데르탈인을 죽였다는 가설이다. 작가도 이 가설을 받아들이며, 소설 속에 녹아낸다. 즉, 인간은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여 타자를 죽이려는 본성이 있고 이 본성이 문명 단위로 커지면 제노사이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글 : 드미트리
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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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현생 인류는 지구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많은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하거나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다른 종을 제치고 인간을 유일한 정복자로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성’이라는 안전한 답을 택하는 사람도 있지만, 혹자는 ‘잔인함’이야말로 인류 문명을 성공으로 이끈 힘이라 말한다. 소설  『제노사이드』가 담는 문제의식도 마찬가지다.

 

제노사이드, 제목이 내뿜는 강렬함

 

아프리카 대륙 중앙에 위치한 콩고에서 현생 인류와는 지능 면에서 차원이 다른 신인류가 발견된다. 그의 이름은 누스. 누스가 인류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미국 대통령은 누스를 살해하도록 지시한다. 누스를 죽이기 위해 투입된 용병인 예거는 피그미 족과 조우한 뒤, 자신의 임무를 버리고 누스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누스를 구출하려는 계획이 약학 대학원생인 고가 겐토를 중심으로 실행된다. 위의 내용이 『제노사이드』 대강의 줄거리다.
 
‘제노사이드(genocide)’는 우리말로 하자면, ‘민족 학살’ 정도의 의미다. 제목과 달리 이 책에서 민족 학살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누스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전투 장면에서 희생자가 나올 뿐이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굳이 제노사이드라는 말을 제목으로 사용했을까? 단어가 내뿜는 강렬한 인상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저자가 소설로 그리고 싶었던 주제가 ‘제노사이드’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5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책에는 작가의 세계관이 집약되어 있다. 많은 작가가 인류 문명의 의미를 소설로 표현하고자 시도한다. 『제노사이드』도 바로 인류 문명의 존재론을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이를 위해 두 가지 장치를 사용한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뛰어넘는 탄탄함

 

첫째, 공간이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대한 한국 언론의 냉대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콩고는 지난 수십 년간 내전으로 수백 만 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제노사이드였던 르완다 내전의 후속편 격으로 진행된 콩고 내전은 국내외 지정학적 요인으로 복잡하게 전개되었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소설은 현생 인류보다 지능적으로 훨씬 뛰어난 누스가 제노사이드가 자행된 곳에서 태어났다고 설정함으로써 독자에게 ‘전쟁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둘째, 인물이다. 미국 대통령인 번즈는 자국 이해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은 제거하려고 한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번즈의 모습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전쟁으로 몰고 간 부시 미국 전대통령을 연상하게 한다. 콩고가 제노사이드가 벌어진 공간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면, 번즈라는 인물은 제노사이드를 인격화하여 상징적으로 그려낸 셈이다. 이외에도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마련한 장치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상하게 할 만큼 탄탄하다.

 

문명의 본질을 꿰뚫는 진지함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신인류가 탄생하고, 이를 위협으로 느낀 미국이 군사적인 행동을 감행한다? 얼핏 들었을 때, 황당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인류의 진화 과정을 보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한때 유럽과 아시아를 누렸던 네안데르탈인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고, 현생 인류보다 뇌도 컸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멸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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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내셔널 지오그라피에서 재구성한 네안데르탈인)

 

많은 학설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인간이 네안데르탈인을 죽였다는 가설이다. 작가도 이 가설을 받아들이며, 소설 속에 녹아낸다. 즉, 인간은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여 타자를 죽이려는 본성이 있고 이 본성이 문명 단위로 커지면 제노사이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화려한 액션 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소설이면서도, 그 속에는 진지한 철학적 성찰을 담았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약리학, 역사학, 인류학적 다양한 지식은 이 책을 읽는 독자를 위해 마련된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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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저/김수영 역 | 황금가지

『13계단』의 다카노 가즈아키가 6년 만에 내놓은 최신작이다. ‘인류보다 진화한 새로운 생물’의 출현에서 비롯한 인류 종말의 위협과 이를 둘러싼 음모를 추리 스릴러와 SF 기법을 통해 풀어나간 작품으로서, 한국 유학생의 활약과 한국의 ‘정’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소개 등 한국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특히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그릇된 사고를 비판적 시각으로 그려내어 일본에서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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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2012.07.22

현생 인류 이전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을 현인류가 죽였다는 설에 왠지 믿음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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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7.18

신인류의 제노사이드 성향을 누그러뜨릴 비장의 무기로 한국인의 정(情)을 시사한 저자의 안목에 탄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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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낭만푸우

2012.07.12

황금가지에서 올해 나온 책 중 『개의 힘』과 『제노사이드』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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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저/<김수영> 역

출판사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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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예스블로거. http://blog.yes24.com/lugali에 틈틈이 리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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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

1964년 도쿄 출생. 어린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지망하여 독립영화를 제작하고는 하였으며, 고등학교 시절 2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대학 재수 시절 완성한 각본이 일본 영화 제작자 연맹에서 주관하는 기도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인연으로 영화감독 오카모토 기하치의 문하에 들어갔다. 1984년부터 영화와 텔레비전 촬영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고, 1989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 시티 컬리지에서 영화 연출과 촬영, 편집을 공부했다. 1991년 귀국한 뒤에는 영화 및 텔레비전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2001년 『13계단』으로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란포상 심사위원이었던 미야베 미유키는 “도저히 신인 작가라고 믿을 수 없다. 주도면밀한 구성과 탄탄하고 이지적인 문장에 읽을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며 극찬했다. 이후 단편집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가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때는 직접 각본을 담당했으며, 그중 한 에피소드인「3시간 후 나는 죽는다」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2011년 출간된 대작 『제노사이드』로 야마다 후타로상과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랭킹 1위와 일본 전역의 서점 직원이 직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을 선정하는 ‘일본 서점 대상’에서 2위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2022년, 『제노사이드』 이후 11년 만에 출간한 장편 소설 『건널목의 유령』으로 이듬해 제169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