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웅들, 그리고 현재의 영웅들 - 산타나, 유니소닉, 존 메이어
가계 재정 상태야 어찌됐든, 음악적으로는 참 풍요로운 요즘입니다. 이번에는 특히 거장들의 복귀작이 강세였는데요. 어느덧 36집을 발표한 기타리스트, 산타나도 그 주인공들 중 하나였습니다. 새로운 레이블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타영웅의 신보를 소개합니다.
글ㆍ사진 이즘
201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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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재정 상태야 어찌됐든, 음악적으로는 참 풍요로운 요즘입니다. 이번에는 특히 거장들의 복귀작이 강세였는데요. 어느덧 36집을 발표한 기타리스트, 산타나도 그 주인공들 중 하나였습니다. 새로운 레이블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타영웅의 신보를 소개합니다. 헬로윈의 핵심멤버였던 미하엘 키스케와 카이 한센이 다시 만나 결성한 그룹 유니소닉의 앨범과 현재 블루스와 록 신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존 메이어의 앨범도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산타나(Santana) < Shape Shifter >


< Supernatural >의 성공 이후 그의 활동은 경직되어 있었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후의 < Shaman >도, < All That I Am >도 모두 제2의, 제3의 < Supernatural >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형식에 콘셉트만 달리했던 트리뷰트 앨범 < Guitar Heaven >에서는 본질을 훼손한다는 말까지 들으며 록 팬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거장의 수난이었다.



[ Supernatural ]
[ Shaman ]
[ All That I Am ]
[ Guitar Heaven ]
[ Abraxas ]



이번에는 다르다. 산타나 사운드의 1기를 < Abraxas >, 2기를 < Supernatural >이라 단순화시킨다면, 이것은 아마도 산타나 제3의 전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 Supernatural >때부터 몸담았던 아리스타(Arista)를 떠나 새로운 레이블인 스타페이스(Starfaith)에 새 둥지를 튼 것이 주효했다. 대규모 참여진과 함께 음반을 녹음한다는 것이 이미 낡은 방식이 되었다는 것을 그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첫곡 「Shape shifter」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신보는 이전의 커리어와는 달리 ‘흥’의 지분이 상당부분 낮아졌다. 전처럼 라틴 사운드로 무조건적인 흥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춤을 위한 음악에서 온전히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무게중심이 바뀐 모양새랄까. 그를 도와주는 다른 목소리들도 없다. 때문에 오랜만에 그의 앨범에서 기타소리만을 발견해내는 기쁨을 누릴 수가 있다.

신명이 증발한 자리에 남은 건 무드(mood)다. 독자적인 그만의 기타 톤 때문에도, 한 번 듣고도 산타나임을 알 정도로 패턴화 되어있던 그의 연주법 때문에도 아니다. 영적이고 주술적인 그만의 분위기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주창했던 아우라(Aura)의 개념을 대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번 앨범에서는 특히 그 분위기가 도드라진다. 이것은 누가 따라한다고 될 성질의 음악이 ‘절대로’ 아니다.

이런 앨범을 앞에 두고는 곡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기가 무척이나 망설여진다.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공통된 무드 하나가 앨범을 관통하기에, 곡 단위보다는 앨범 단위의 감상을 추천하고 싶은 것이다. 관념적인 대상에 구체적인 수사를 곁들인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긴 하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석양이 지는 주황빛 하늘을 보며 감상에 잠겨야 할’ 그런 느낌이랄까. (오그라들었다면, 사과한다.) 뭐 어쨌든.

어느덧 36집이다. 사실 그 물리적 시간만으로 존경을 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빤하게 자신을 세월로만 재단하도록 그냥 두지는 않았다. < Shape Shifter >는 수십 년 간 그가 발전시켜온 그만의 고유색의 결정체다. 아무도 모방하지 못할,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주술적 세계가 < Shape Shifter >에는 담겨있다. 새천년 이후 보여준 그의 행보 중 단연 발군의 작품이다. 앨범이 가지는 아우라는 오롯이 그만의 몫이다.

글 / 여인협(lunarianih@naver.com)


유니소닉(Unisonic) < Unisonic >


생각보다 조용하긴 했지만 이것은 분명 ‘사건’이었다. 유러피안 헤비메탈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헬로윈(Helloween), 그 중에서도 전성기 시절의 핵심 멤버였던 미하엘 키스케와 카이 한센이 다시 뭉쳤다는 사실은 과거에 추억을 갖고 있는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 했으니 말이다. 비록 영미권에서야 홀대받고 있기는 하지만, 아시아권에서만큼은 각별한 입지를 굳히고 있는 게 이 신의 뮤지션들 아닌가.

우려도 물론 있었다. 모두가 키퍼(Keeper) 시리즈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와중에 각자 변화를 거쳐 온 지금 이들의 음악이 과연 통할까라는 것이었다. 감마 레이(Gamma Ray)를 끌어오던 카이 한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미하엘 키스케는 스피디한 메탈에서 한 발짝 비켜서있기까지 하지 않았나. 게다가 솔로 커리어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왔으니, 이것이 추억마저 앗아가는 프로젝트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 Unisonic >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손색이 없는 앨범이다. 타이틀인 「Unisonic」을 들어보라. 언제 부진했냐는 듯 옛날의 목소리를 그대로 쭉쭉 뽑아 올리는 키스케의 보컬과 카이 한센의 친화력 있는 리프 메이킹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결정적으로 여전히 유럽 특유의 서정미를 간직하고 있다. 멜로디 위주의 음악에 즉각 반응하는 동양권 리스너들을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는 성격의 음악이라고나 할까.

이는 그러나, 딱 예상할 수 있던 그만큼이라는 말로도 치환이 가능할 것이다. 분명 예전의 모습을 환기시키고는 있지만 기대 이상의 무엇, 혹은 예상 밖의 새로움을 들려주지는 못하고 있다. 심지어 「Never too late」, 「Never change me」와 같은 곡에서는 전성기의 히트 넘버 「Future world」의 잔향을 지울 수가 없다. ‘새로운 밴드’ 유니소닉의 앨범이 아닌 ‘과거의 밴드’ 헬로윈의 앨범을 듣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세월이 역량을 비껴가긴 했지만, 예전에 비해 큰 변화 역시 없다는 점에서 발전이라는 의미보다는 과거의 추억을 자극하기에 더 좋은 음반으로 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전환시켜보자. 그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이 신에 남아있는 영웅들이 없는 이상, 어제의 용사들이 늙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앨범의 존재가치는 분명하다. ‘단지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라는 말은 이럴 때에 필요한 말이 아닐까.

글 / 여인협(lunarianih@naver.com)


존 메이어(John Mayer) < Born And Raised >


전 세계 ‘소녀들의 대통령’이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잘난 남자’ 존 메이어의 앨범 리스트는 음악의 녹(綠)을 먹고 있는 사람이라면 챙겨야할 ‘필수 음악’이 되었다. 그 목록 5번째가 되는 새 작품집은 변화와 자아에 집중하는 모습을 내비친다. 이 새천년의 기타 영웅은 몸을 낮춰 더 깊고, 낮은 곳을 향한다. 블루스, 컨트리, 블루그래스, 포크라는 미국 음악의 루츠(roots) 즉 근원에 대한 경배. 이번 테마의 이름은 ‘나고 자람’이다.

앨범의 지원군으로 비틀즈, 롤링 스톤즈, 밥 딜런, 비비 킹, 에릭 클랩튼의 앨범 작업을 도왔던 콧대 높으신 연주의 대가들이 그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런 천군만마 이상의 전력 충원이 곧 존 메이어의 비범함을 반증한다. 그들의 조력에 힘입은 새로운 작품은 한마디로 ‘송라이팅에 물이 올랐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늘 그렇듯, 그의 선택은 정공법이다. 정직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음악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는 모습이다.

닐 영의 발자취를 찾고자 서부로 향한다는 가사 내용의 첫 곡 「Queen of California」의 싱그러운 아르페지오의 울림은 ‘캘리포니아의 여왕’ 조니 미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앨범에서 발현하고자 하는 옛 기운을 온전히 간직한 주요 트랙이다. 이어지는 「The age of worry」는 곡의 몸집을 부풀려 웅장한 옛 서부의 정취를 상기시켜낸다. 억지스럽게 찍어내는 방식이 아닌, 어느 방향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표현해낸다.

선 공개한 「Shadow days」에서는 곡 전체를 지배하는 풍성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컨트리 맛을 가져다주는 은은한 페달 스틸의 선율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있다. 어려운 코드 워크의 전개나 기술적으로도 복잡한 움직임은 배제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런 ‘무드 메이킹’은 「Something like Olivia」에서도 이어진다. 반복되는 탱글탱글한 기타 톤의 조율은 존 메이어가 다면(多面)의 기타리스트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트랙이다. 솔로 연주로 들어가는 블루지한 ‘기타의 색’은 곡의 매력을 증대시킨다.

앨범과 동명의 곡 「Born and raised」는 감미로운 보컬과 하모니카 연주는 목가적 분위기를 풍겨낸다. 포크 록의 아이콘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쉬(Crosby, Stills And Nash)의 데이비드 크로스비(David Crosby)와 그레이험 내쉬(Graham Nash)를 코러스로 초대했다. ‘크로스비, 메이어 앤 내쉬’의 결성이라는 탄성이 나올법한 완벽한 보컬 콤비네이션을 들려준다. 아름다운 러브 송 「Love is a verb」의 나긋하고 간지러운 속삭임은 연인의 로맨스를 위한 선물이자, 기타 키드들의 새로운 커버 곡 라이브러리에 추가될 연가(戀歌)다.

미국색(色)을 담아낸 작품은 성숙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비친다. 중점은 순수하게 우려낸 멜로디와 가사다. 과거 < Room For Squares >에서는 새 시대의 송라이터의 출현을 알렸고, < Try! John Mayer Trio Live In Concert >에서 기타 테크닉과 기교를 만방에 확인시켰다. 높은 위치를 경험했고 그것도 모두가 자신의 힘으로 이뤄낸 것들이지만 그는 언제나 그대로 있다. 그에게 주어지는 찬사의 바탕에는 이런 올곧고 고전적이며 우아한 행보가 작동하는 것 아닐까.



[ TRY!:
John Mayer Trio Live In Concert ]
[ Where The Light Is:
John Mayer Live In Los Angeles ]
[ Room For Squares ]
[ Heavier Things ]
[ Continuum ]



이 시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칭송 받고 있지만 존 메이어는 신보로 ‘젊은 거장’이라는 이름을 향해 조용한 한걸음을 때고 있다. 음악을 대하는 그의 스피릿은 영롱하고 순수하다. 작품을 낼 때마다 조금 더 자신을 알아가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얼마나 더 깊게,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는지를 자문하는 듯하다. 미지의 영역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탐험가와 같다. ‘낡은 소리’를 간직한 한 장의 레코드와 함께 존 메이어는 이 나이에 여기까지 왔다.

글 / 신현태 (rockershin@gmail.com)

#산타나 #유니소닉 #헬로윈 #존 메이어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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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5.30

산타나가 조금 나이가 있는 연령층에서 인지도와 인기가 높은 편이라면 존 메이어는 주로 젊은층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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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