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미우미우 하이힐 있는 여자야
집이야 다 쓰러져가는 협동주택에 살건 말건, 노인들이 눈이 오면 다칠까봐 밖에 나다니지도 않는, 봅슬레이를 해도 될 만한 아찔한경사로의 산동네에 살건 말건 사서 한 번 신어보지도 못한 미우미우 하이힐을 갖고 있다는 건 이상하게 힘이 되었다.
글ㆍ사진 김현진
201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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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보통 직장 생활 2~3년차 정도가 되면 루이비통 스피디백 하나씩은 산다고 한다. 남자들은 차를 사는 것 같다. 그 백이 뭐 꼭 그렇게 예쁘다든가 그래서가 아니라 뭐 하나 할부로 질러놔야 직장 다닐 맛도 나고 직장에 억지로 좀 매어두는 고삐 같은 의미도 있고 뭐 그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내 경우에는 술 마시다가 잃어버릴 염려가 있는 고가품은 절대로 사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럴 여유도 없었다. 천팔백만원도 안 되는 알량한 연봉을 받으면서 루이비통이라니, 루이비통 매장에 사는 바퀴벌레가 웃을 일이었다.

나의 입을 것을 해결해준 것은 수년 동안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였고, 그나마 기분 좀 낼 때면 동대문 도매상가에 가는 정도였다. 그러니 브랜드 제품이라고는 온 옷장을 들었다 털어도 없고 그나마 옛날 남자친구가 뭐라나 하는 크리스털 브랜드 귀걸이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정말 거지같이 헤어지고 난 다음, 야 이 망할 자식아 평생 그러고 폼 재고 살아라, 하면서 랜디 존슨 같은 기세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어딘가 타지 않는 쓰레기 노릇이나 잘 하고 있겠지, 어쨌거나.

바로 그때가, 문제의 미우미우 하이힐이 내 손에 들어온 때였다. 명품을 구입한 가격보다 훨씬 싸게 파는 블로거 분이 계셔서 그 사이트에 간혹 들어가서 눈요기만 하곤 했었다. 아무리 싸게 팔아도 명품은 명품이니만큼 최소 몇 십만원 대였기 때문에 눈물의 떨이라고 해도 그림의 떡이고 그냥 모니터가 뚫어져라 구경만 했다. 명품이란 게 이렇게 생겼구나 흐음 그렇군, 하고 신기한 마음뿐이었는데 어느 날 딱 십만원짜리 상품이 나온 거였다. 프라다의 세컨드 브랜드인 미우미우의 심플한 검정색 샌들이었는데, 사이즈도 맞았고 가격도 그만하면 이름값 낼만 하고, 그냥 술 네 번 덜 먹으면 되지, 하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당장 입금하고 물건을 받았다.

두근두근 기대에 차서 받아보니 사실 그 샌들은 내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최소 오십만원은 줘야 하는 크리스찬 루부탱 같은 건 10센티 굽이라도 편하다는데 정말일까. 아마 평생 알 일 없겠지. 지금 당장 내 손 안에 있는 미우미우 하이힐 앞에서 편하고 말고 따위는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민망한 고백이지만 그게 나에게 어울리느냐 마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갖고 싶었던 이유는, 그 구두 한 켤레가 그렇게 소중했던 이유는, “나 이래봬도 집에 가면 미우미우 하이힐 하나 있다” 뭐 이런 게 중요했던 것이다.

집이야 다 쓰러져가는 협동주택에 살건 말건, 노인들이 눈이 오면 다칠까봐 밖에 나다니지도 않는, 봅슬레이를 해도 될 만한 아찔한경사로의 산동네에 살건 말건 사서 한 번 신어보지도 못한 미우미우 하이힐을 갖고 있다는 건 이상하게 힘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어쩌고저쩌고 욕하다가도 이럴 때면 어디 숨어버리거나 창피해서 콱 죽어버리고 싶지만. 어쩌겠는가, c’est tout(쎄뚜), 그게 다였다. 김밥천국에서 끼니를 때우건 말건, 썩은 고기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 하이에나처럼 슈퍼 식품 코너의 유통기한 지나서 싸게 파는 음식을 노리고 있건 말건 나 미우미우 하이힐 있는 여자야, 하는 쓸데없이 으쓱한 기분은, 그 처량한 허영심은, 오늘도 과장한테 깨지는 하루를,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귀찮아 죽을 것 같은 지루한 회사 회식에서 숙련된 솜씨로 삼겹살을 자르는 365일 중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는 불가사의한 위안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뭐 그런 걸 다시 가질 기회도 없을 게 뻔했기 때문에, 신을 일이 있건 없건 나한테 안 어울리건 말건 나는 죽을 때까지 그 까만 구두를 안 놓을 예정이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구두와 이별했다. 그 이별의 장소는 가산동의 기륭전자 옛 사옥 앞이었다. 무슨 귀신에라도 들린 듯이 동조단식을 한다고 죽도록 굶은 다음에, 굶는 것 말고 여기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매우 신자유주의적 투쟁을 개시한 때였다. 즉, 현금빵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고 입금 투쟁에 돌입했던 것이다. 내 물건 팔아대는 데는 한계가 있어 염치 불구하고 바자회에 사용하도록 뭐든지 좀 보내주십사 인터넷을 통해 애걸복걸했다. 그때 받은 각종 택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애틋해서 눈물이 난다. 사람이 따뜻하지 않다고 누가 말했나. 그 택배 하나하나마다 사무치게 고맙고 일일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가난뱅이 된장녀답게 워낙 옷하고 신발을 좋아하다보니 집에 쌓인 것들이 꽤 많았는데, 독한 마음먹고 그것들을 내다 팔았다. 워낙 산 가격이 얼마 안 되는 것들이라 가격을 붙여봤자 오천원, 끽해야 칠천원 하니 너무 빈티 난다 싶어 마음을 먹고 또 먹고 일백 번 고쳐먹어 바로 그 문제의 미우미우 하이힐까지 들고 나왔다. 그날따라 유독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어 가산 디지털단지로 향하며 제발 팔리지 마라, 팔리지 마라 하며 몇 번이나 조마조마했다. 그 초라한 바자회 매대에서는 그래도 제법 고가인 삼만원을 붙여 놨더니 이천원 삼천원 하는 다른 녀석들에 비해 너무 비싸 보였는지 다행히 아무도 살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좀스럽기 짝이 없는 마음보를 한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이게 투쟁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냐며 죄책감에 빠졌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구두는 내 마지막 보루 같은 거였다.

하지만 웬걸, 운명은 내 알량한 허영에 가차없는 칼날을 들이밀었다. 그날 일과를 마친 칼라TV팀이 내쪽으로 다가왔다. 미인으로 이름난 우리의 이명선 리포터가 그 미모에 못지않은 상큼한 목소리로 오늘도 수고하시네요, 하고 비눗방울 같은 미소를 날리더니 하필이면 내가 구차하게 다른 물건 뒤에 슬그머니 숨겨놓은 문제의 하이힐을 쏙 꺼내들고 어머 이거 너무 이쁘다! 하며 해맑게 웃었다. 나도 웃었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고 이명선 리포터가 문제의 하이힐을 신었다. 사이즈도 디자인도 마치 그녀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꼭 맞았다. 물건도 제 임자가 있는 법인데 임자였다. 구차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부끄럽게도 가슴이 철렁했다.

그 쌔끈한 미우미우 하이힐은, 내가 단 하나 가지고 있던 브랜드 제품은, 내 허영의 척추는 그렇게 이명선 리포터의 손에 들려 상큼하게 떠나갔고 나는 어딘가 혼이 나간 애처럼 돼서 국철을 타고 돌아왔다. 그날따라 국철은 왜 그렇게 흔들리던지, 국철이 흔들흔들할 때마다 나도 같이 얼이 빠진 듯 흔들흔들거렸다. 저한테 어울리지도 않는 구두에 상표 좀 붙었다고 끝끝내 그거 붙잡고 있던 내가 부끄럽고,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아치워놓고 이왕 팔았으면 시원하게 마음 비워야 그만이지 그 구두 손에서 놨다고 이렇게 좌절하는 나도 부끄럽고, 부끄러워 죽겠으면서도 어딘가 서글퍼 눈물까지 찔끔 나서 이놈의 계집애가 주책스럽게 너 미쳤냐고 스스로를 야단치는 동안 다시 서러워서 또 눈물이 나고 또 한심하고 국철은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자꾸 흔들흔들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랬다.

국철에서 흔들흔들 하며 돌아오던 그날 미우미우고 마놀로 블라닉이고 구찌고 크리스찬 루부탱이고 흥, 하고 콧방귀 뀌면서 머리나 긁적거릴 수 있게 됐으니 그건 기륭전자분회가 시켜준 귀한 공부다. 그 예쁜 구두를 사간 사람이 구두보다 훨씬 더 예쁘고 훨씬 더 귀하고 한없이 용감한 이명선 리포터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마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걸 사갔다면 나는 구두를 붙잡고 질질 끌려가는 한이 있어도 내놓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나마 사랑했다, 안녕 미우미우, 안녕 허영심, 안녕 배니티 페어.


 

뜨겁게 안녕 글 김현진 | 다산책방

『뜨겁게 안녕』은 이제 막 서른 이후의 삶에 접어든 저자가 써내려간 ‘서울살이’의 회고록이자 비망록이다. 여기에는 저자의 개인적 삶이 가장 뜨겁게, 그리고 가장 리얼하게 담겨 있지만,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소외된 거리와 시대의 풍경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철거촌과 비개발지역, 서울의 소외된 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온 삶은 비속하고 하찮고 시시하고 애절한 기억들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정겹고 그립고 끝도 없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그 기억의 순간을 새겨놓은 곳들이 재개발의 삽질에 밀려 죄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뜨겁게 안녕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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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e78

2013.06.05

미우미우와 허영 언발란스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단어 같네요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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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jmcp25

2012.03.12

큰 맘 먹고 산 브랜드 미우미우 하이힐을 아까워서 신지도 못하고 있다가 바자회에 내놓고 팔려간 하이힐 때문에 슬퍼하는 모습이 약간 불쌍하기도 하고 어떤 심정인지 이해가 되는것 같아요. 여성이라면 가끔은 멋을 내고 싶고 유명한 브랜드의 옷과 구두를 신고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남성보다 더 명품을 좋아하고 선호하게 되는것 같아요. 명품을 하나 가지고 있으면 회사 생활하면서 웬지 위로가 된다는 내용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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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12

미우미우 하이힐보다 더멋지고 튼튼한 두다리가 있잖아요. 하이힐을 신은 세상은 또박또박 걷다가 발이 부어올라서 확 주저 앉고 싶어지지만 맨발은 어디는 멀리 갈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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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스스로를 도시빈민이라 부르는 그녀는 대구 출생에 목회자인 부친의 모든 희망에 어긋나게 성장하였고 기어코 말 안 듣다가 고등학교를 두 달 만에 퇴학에 준하는 자퇴를 감행하였다.

냉소와 분노와 우울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을 몸 속에 장착한 그녀가 숨 막히는 고등학교를 용감히 박차고 나온 '불량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지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그녀는 단편영화 <셧 앤 시 Shut And See>(97년) 감독, 웹진 <네가넷>(97년)의 최연소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의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다. 그래서 한 시사주간지는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인물로 내세웠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자퇴생이라는 사실이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텔레비전의 관심도 남달랐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직시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꾸준히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