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에서 더 빛나는 동갑내기 뮤지션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큰형에게 중고기타를 선물 받았다. 시골에서 자라는 소년에게 기타는 유일한 놀이친구가 되었다.
201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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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있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청년은 오디션을 거쳐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의 세 번째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게 된다. 청년과 밴드는 데뷔 앨범을 녹음하여 발표했고, 그 밴드 부활의
기획상품과 같은 가수들이 전단지마냥 무수히 나타났다 사라지고, 진중한 음악인들은 소수의 지지에 의지하며 창작활동을 해나가는 대중음악계에서 그들이 20년을 버티며 살아남아 폭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안치환은 사회의식과 대중적 감성을 겸비한 뛰어난 앨범을 꾸준히 만들어온 싱어송라이터이기 때문이고, 이승철은 변덕스러운 대중과 조류에 적응할 줄 아는 예민한 촉수와 끼를 지닌 가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해에 태어난 이들은 공히 음악 활동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라이브를 중심 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다.
“내 나이에 맞는 내용을, 삶의 깊이를 가지고 노래하고 싶다.”
2005년 7월, 서정민갑과의 인터뷰에서 안치환은 이렇게 말했다. 뭐가 그리 대수로운 말이겠는가 싶을 수도 있지만 자기 나이에 맞는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건 사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타깃이 될 수요자의 나이와 감성에 맞춰주거나,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스무 살 무렵의 상태로 남아 있는 이들도 허다한 이 땅에서 안치환은 고민하는 음악인들 중 하나였다.
경계를 허무는 음악인, 안치환
울膈터와 함께했던 대학교를 졸업한 후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노래패 새벽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음반 작업과 공연을 할 때 안치환은 현장에 선 청년민중가수였다. 그가 참여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 2>(1989)는 주옥같은 곡들이 한꺼번에 수록된 역사적인 명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음악 자체를 꿈꾸는 젊은이기도 했다. 솔로 활동을 시작하고 조동익 등의 도움으로 작업한 3집
「수풀을 헤치며」와 「당당하게」, 그리고 U2 풍의 「시인과 소년」에서 록 음악을 시도했다. 진보적인 음악인들의 록 어법이 후진적이었던 것과 달리 조동익과 함께 동시대적인 감각을 성취했다. 유연한 노래들에서도 개인과 시대에 대한 진중한 시선을 유지했고, 대중을 의식한 「내가 만일」까지 적중했다. 특히 「그대만을 위한 노래」는 절창이라 할 만하다. 그 결과, 안치환은 운동권 가수에서 의식 있는 대중음악인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비로소 민중가수를 넘어 포크/록 뮤지션으로 거듭났다. 이를 통해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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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안치환은 특정 범주 안에만 두기에는 아까운 포크싱어이자 로커이다. 동시에 안치환은 손병휘처럼 민중을 생각하는 포크싱어이고, 연영석이 그러하듯 저항적인 로커이다. 또한 오랜 세월 자신의 영역을 다져온 안치환을 대중과 거리가 있는 운동권 출신 민중가수, 또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로만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안치환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부 유순해진 노래들이나 일부 서구적 작법 때문에 안치환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았으나, 그에게 대중과 민중은 다르지 않았고, 삶과 노래는 따로 있지 않았다.
안치환과 자유의 공연장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건 이처럼 생각과 삶이 담긴 음악들 때문이다. 김남주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자유」와 노찾사의 명곡 「광야에서」와 같은 비장한 곡들에서부터 「내가 만일」과 「귀뚜라미」, 그리고 「물 속 반딧불이 정원」과 「소금 인형」처럼 사랑을 아는 이들의 유리막대처럼 여린 가슴을 건드리는 노래들까지 울려 퍼지는 안치환의 콘서트에선 관객들의 환호성과 손뼉이 뒤따르곤 한다. 록 밴드의 힘이 가득한 「수풀을 헤치며」와 관객 모두가 함께 부르게 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 이르면 안치환과 자유의 진가는 더욱 드러난다. 관객과 함께 무거운 옷을 훌훌 털고 자유인들로 하나 되는 공간을 이루는 것이 그들의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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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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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지금의 신촌, 홍대처럼 젊은 록 뮤지션들이 활동하던 이태원과 종로에서 음악 생활을 시작한 갓 스물의 이승철. 그는 김태원의 밴드 부활을 떠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와 함께 솔로 가수로 성공했고, 어느덧 전국을 돌며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 중견가수가 되었다. 하지만 과거를 환기시켜주는 추억의 가수만은 아니다. 2004년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중요한 상들을 받았고, 무엇보다 음악성으로 대중음악을 평가하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도 ‘올해의 남자가수’ 부문의 수상자가 되면서 그 공로와 역할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승철이 초기에 부른 대부분의 곡들은 이미 부활의 앨범에 실려 사랑을 받은 곡들이었다. 「희야」가 그렇고, 「슬픈 사슴」과 「비와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회상」이 그러하며, 김태원의 걸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회상 3」도 「마지막 콘서트」로 불려졌다. 모두 부활의 곡들이다. 대부분의 곡들을 작곡가에게 맡겨 만들고 부르는 이승철은 과거의 가요 리메이크 대열에도 동참하여 「샴푸의 요정」,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난 행복해」 등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곡들을 선별하여 다시 부르곤 했다.
물론 이승철은 공연에서 「희야」와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등을 보다 빠른 8비트의 흥겨운 록 넘버로 바꿔 부르면서 열광을 이끌어낸다. 리메이크한 곡들을 원곡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작은 연못」이나 「한계령」 등은 이승철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영훈과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리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은 이승철의 몸과 손끝을 타고 예쁘고 감미롭게 다시 태어난다. 이 모두 이승철이 일반 가요 팬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노래들을,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분위기로 불러주는 가수임을 말해준다.
타고난 가수이자 20년 동안 큰 무대를 섭렵해온 선수이기에 그의 공연은 햇살을 듬뿍 받아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화려하다. 요리책을 내고 체력 관리와 사람 관리에도 꼼꼼한 사람이라선지 무대 연출에도 세심하고, 관객들을 선동하는 힘도 크다. 그 자체로 하나의 라이브 앨범이고 DVD인 셈이다. 체면 같은 건 미리 사물함에 잘 포개어두고 입장해야 하는 콘서트라고나 할까. 이승철은 라이브 가수인 것이다.
말라버린 잎 몇 개를 힘겹게 매달고, 때론 주인 잃은 연까지 걸치고 선 겨울나무들의 거리를 오갈 때 간혹 여름의 해바라기와 토마토를 상상해본다. 안치환이 혁명의 땅 러시아를 상징하지만 포근하게 햇빛을 머금은 노란 해바라기와 같다면, 이승철은 농염하게 익어 붉고 화려한 토마토이다. 무대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때론 비장하게, 때론 절절하게 노래하는 안치환과 노련하고 화려한 이승철의 공연은 그들의 노래만큼이나 분명 서로 다르다. 하지만 관객이 되어 어린아이마냥 손뼉을 치다가 찬 거리를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쯤, 괜히 철없고 아프기도 했던 과거마저 사랑스러워지는 안식을 주는 건 비슷하지 않을까. 감상적인 사람이라면 겨울 거리에 늘어선 벗은 나무들마저 자기인 양 느껴질 테고….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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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나도원
음악 웹진 《100 beat》 편집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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