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삶은 최악” - 박민규 북콘서트
소설가 박민규는 독자들에게 선물 꾸러미를 선사하듯 단편집을 ‘더블 앨범’으로 엮어 냈다. 단순히 여러 개의 단편을 두 권의 책에 묶은 것 이상의 의미가, 추억이, 향수가 박민규의 『더블』에 묻어난다.
201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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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앨범> 즉, 두 장의 LP 같은 느낌으로 이 책을 묶고 싶었다. 책은 실제 LP 사이즈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정말 펼쳐서 책을 꺼내는 패키지 등으로 발전했다가 여러 현실의 벽에 좌초, 책은 결국 <冊>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다시는, 아마도 이와 같은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블 아트 북,p.2)
소설가 박민규는 독자들에게 선물 꾸러미를 선사하듯 단편집을 ‘더블 앨범’으로 엮어 냈다. 단순히 여러 개의 단편을 두 권의 책에 묶은 것 이상의 의미가, 추억이, 향수가 박민규의 『더블』에 묻어난다. 복면을 쓴 작가의 얼굴, 그리고 그와 같은 디자인의 그림으로 꾸며진 컨셉 표지며, 두 권을 담고 있는 박스 케이스하며, 무엇보다 “무수했던 더블 자켓의 아트웍 속에” (더블 아트 북,p.2) 결코 빠지지 않았던 속지까지 들어있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LP 시대는 판이 커서 펼치면 새롭고 근사한 기분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이런 책 하나 주고 싶었다.” 지난 해 12월, 상상마당에서 열린 ‘북콘서트’ 무대에서 박민규는 『더블』의 소회를 덤덤히 말했다.
비록 LP 시대의 더블 감동을 직접 체감해본 적은 없지만, LP 아닌 CD 음반이라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더블 앨범을 만나는 일은 감격스럽고 기쁜 일이다. 양이 질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믿음직한 아티스트의 작품이라면 다다익선 아닌가. 그의 성실한 태도와 왕성한 창작욕을 담보하는 ‘더블앨범’은 예나 지금이나, 아티스트에게나 팬들에게나 특별한 이벤트임은 분명하다.
“사람은 결국 누구나 마이너리티다.”
주인공 박민규 작가를 만나기 전에, 오프닝 무대를 연 것은 ‘카스텔라 밴드’였다. 박민규 작가의 팬카페에서 결성된 박민규 오마주 밴드라고 그들은 소개했다. “결성을 할 때 각자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괴로움을 느끼거나, 집을 압류당해 쫒겨났거나, 군 제대하고 가평에서 접시 닦기 일을 하던, 그러니까 박민규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네 사람이 불현듯 “인생이 이게 뭐냐” 싶어 모이게 됐단다. ‘우리까지 이러면 꼴찌는 누가하라고.’라는 컨셉을 안전장치 삼아 “제멋대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
귀청을 때리는 과격한 소리를 내던 보컬이 기타를 들고 장렬히 쓰러지는 퍼포먼스로 ‘카스텔라 밴드’의 무대를 얼떨떨하게 감상하고 난 후에, 박민규 소설가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빨간 코트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박민규 작가. “안녕하세요.” 중후한 목소리에 객석은 큰 박수소리로 화답했다.
그는 ‘카스텔라 밴드’를 두고, “굉장히 행복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목표가 먼 미래에 힘없고 초라한 노인이 되는 것이다.(좌중 웃음) 고마운 친구들에게 ‘카스텔라 밴드’의 오마주 작가로 활동하고 싶다.”며 이 밴드를 많이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음악 평론가 성기완이 누차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박민규 작가는 짧고 묵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마치, 단문체인 자신의 문장처럼 말이다. 객석의 독자들은 이내 그런 화법에 익숙해졌지만, 사회자는 답답한 듯 재차 그의 대답에 대해 언급했다.
이를테면, “이런 까칠한 면이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은데, 평소 독자의 입장은 어떻게 배려하는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에 박민규 작가는 화들짝 놀라며 “이 모습이 결코 까칠한 게 아니”라고 부연했다.
“내 생활이 그렇다. 지금 작업실을 구해서 혼자 읽고 쓰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루 종일 대화를 할 일이 없다. 와이프와 통화 한 두 번 외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갑자기 이런 자리에 오면 굉장히 서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나는 굉장히 즐거운데, 이런 질문에 ‘어, 무슨 말을 해야 되지’ 생각하다 보니까 말이 늦어진다. 부끄러워하거나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정말 괜찮다.”
사회자와 박민규 작가의 짧은 인터뷰는 계속되었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원동력이 그런 단절된 시간인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다. 나는 36살에 작가가 됐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늘 시간이 부족하다. 가능한 시간을 아끼려고 하고 있다.”
늘 비주류 주인공이 등장한다. 비주류나 마이너리티인 인물들에게 좀 더 애정을 느끼는 까닭은 뭔가?
“마이너리티에 대한 나름의 규정이 있었는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마이너라는 개념 자체가 바뀐 것 같다. 확산되었다고 할까. 예전에는 패자, 빈자를 두고 그렇게 불렀는데, 요즘은 인간 자체가 결국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불행을 안고 있고, 불쌍한 존재인거다. 모두에게 인간이라는 마이너리티를 차차 극복해가는 과제가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많이 위로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그런 소설을 쓸 것 같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대단한 일은 못한다. 나는 ‘발효’라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썩는 걸 막지는 못하지만, 곁에서 발효라도 되게끔 돕고 싶다. 작가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당신에게 주는 글이다.”
이날의 ‘북콘서트’ 무대에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초대됐다. 말로는 지난해 전통가요를 재즈로 재해석해낸 음반 '동백아가씨’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말로와 박민규의 인연은 꽤 깊다. 지난 해 열린 박민규의 북콘서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기사보러가기)때에도 말로가 축하 무대를 장식했다. “내가 원래 팬이어서, 집에 박민규 컬렉션도 만들어 놨다.(웃음) 이전까지는 발이 땅에 붙어있는 기분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발이 둥둥 뜬 기분이 든다. 세계가 확장된 느낌이랄까.”
이 말에 박민규 작가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말로 씨를 알게 된 건, 오래 전 잡지사에서 일할 때다. 그때 말로 씨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사진도 찍고, 처음 무대에 선 걸 봤다. 말로씨 키가 165정도라면, 마치 해발 165센티의 활화산을 보는 듯 했다. 그 느낌에 매료됐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도 ‘북콘서트’ 할 때마다 모시고 싶다.”
이어 말로의 ‘신라의 달밤’을 들을 수 있었다. 말로의 짙은 감성 물씬한 목소리가 이내 홀을 가득 채운다. 그녀의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가 되어 울려 퍼진다. 어쿠스틱 베이스, 키보드, 드럼, 그리고 말로의 소리가 ‘신라의 달밤’을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전달했다. 꿈결 같은 소리가 멎고, 다시 박민규와 말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박민규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 혹은 쓰고 난 후에, 그것을 선물할 누군가를 떠올린다고 했다. ‘속지’라고 표현한 ‘Double Art Book’에는 각 단편소설이 누구를 위한 선물인지 밝혀두었다.
이를테면, 「누런 강 배 한척」은 작고하신 아버지를 위해, 「낮잠」은 어머니를 위해, 「끝까지 이럴래」는 구글의 창시자 래리 페이지와 서지 브린을 위해, 「크로만, 운」은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킹을 위해 쓰인 글이다. “왜? 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뭐? 라고 나는 답할 것이다.”(Double Art Book, p.12)
“선정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미안함 때문에 드리기도 하고, 그 분의 굉장한 작품을 보고 드리기도 하고, 이 사람과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물하기도 하고. 그렇게 다 드린다.” 그 중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라는 작품은 평소 가까이 지낸다는 소설가 천명관에게 선물한 소설이다.
“원래 영화배우 존 굿맨에게 주기 위해 쓴 글인데 글을 쓴 바로 직후, 작업실에 놀러온 천명관 형이 <바톤 핑크>야말로 마치 내 인생을 얘기한 듯한 영화였어! 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하튼 보다 큰 재능을 가진 작가와 같은 시대를, 함께 써나간다는 일은 무척이나 행복하고 다행한 일이라 나는 믿고 있다.(Double Art Book, p.31)” 이 글을 읽은 “천명관 형에게 처음, 유일하게 감사인사를 받았다”고도 덧붙였다.
“우리 모두가 한 편의 이야기다.”
박민규 작가의 말에 귀를 쫑긋 새우고, 공중파 방송국 방청객 못지않은(!) 뜨거운 반응을 보여준 객석에서도 질문을 받았다. 몇몇 독자들은, 박민규 작가의 소설 덕분에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어려운 순간에 용기를 얻었는지 고백하기도 했다. 박민규 작가는 부끄러워했지만, 한자 한자 힘을 주어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쓰겠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내 삶 역시 작가님 소설 인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벌써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잘살고 싶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가 이 면적 위에, 이만한 인구를 가지고 경제 10위 권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놀랍다. 지구본 돌리면서 보면 우리가 이 정도로 살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우리보다 순위? 위의 나라는 수백 년의 역사, 드넓은 땅과 자원이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는 조건을 보자면 경제 순위 70위~80위여도 이상할 게 없는 나라다.
현재 기성세대들, 나이든 인간들은 평생 각오만 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전쟁에 기아에 쫓겨 ‘더 잘살아야지’ 각오를 하고…… 각오만 하고…… 죽을 때까지 각오만 할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들마저 각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각성을 해야 한다.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각성을 해야 한다.”
최근 멕시코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어땠는지 들려달라.
“멕시코가 위험하다던데, 그쪽 사람들은 내가 전쟁 때문에 한국에서 피난을 온 줄 알더라.(좌중 웃음) 태양이 신의 선물 같았다.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여유가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루차리브레(프로레슬링) 경기를 직접 본 일이었다. 거기서 복면도 많이 사고, 망토도 많이 샀다.
힌트를 주자면, 멕시코에는 젊은 남자들이 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 멕시코 젊은 여자들이 가장 선망하는 남성이 동양남자다. 멕시코 남자들은 책임감이 전혀 없다고 한다. 동양 남자들은 (멕시코 남자들에 비해) 덜 가부장적이고, 이혼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매우 환영을 받고 있다.”
박민규 작가에게 성공과 행복의 의미가 궁금하다.
“성공한 인간들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여러분들도 알잖나. 초등학생 애들한테도 쥐 소리를 듣고 하잖나. 물론 세상에는 그렇게 남들을 이끌어가는 자리에 앉아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굉장히 힘든 운명이다. 다만 그것이 승리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패배가 아니라는 거다. 그들이 과연 뭘 이긴 건가? 과연 뭘 패한 걸까? 우리는 같이 살아가잖나.
내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 자체가 그런 거다. 사실, 이제껏 매체에 나가서 찍은 사진들, 고글 쓰고 이런 것들 내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건 일종의 코스프레다. 회사를 다니며 다른 사람을 많이 지켜봤다. 유명세 때문에 망가지고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는 남의 시선을 차단하고 싶었다. 최악의 인생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가 츄리닝을 입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며 사는 삶을 보호하고 싶다. 그럴 때 누가 ‘박민규 선생님 아니세요.’ 라고 묻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다.”
각오하지 말고, 각성하자는 말이 인상적이다. 구체적으로 각성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우리가 갖고 있는 걸 생각해보자는 거다. 내려갈 곳도 많고, 버릴 것도 많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뭔가 갖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너무 자발적으로 오버 히팅하고 있다. 삶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드라이브다. 이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중에 작가를 부러워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작가라고 본다. 힘든 세상 속에서도 결혼을 하고, 연애하고, 아이를 키우고, 자라나는 아이도 한 편의 이야기인 셈이다. 모두가 한편의 이야기다. 모두가 그 위에 행복한 삶을 써나가길 바란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LP 시대는 판이 커서 펼치면 새롭고 근사한 기분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이런 책 하나 주고 싶었다.” 지난 해 12월, 상상마당에서 열린 ‘북콘서트’ 무대에서 박민규는 『더블』의 소회를 덤덤히 말했다.
비록 LP 시대의 더블 감동을 직접 체감해본 적은 없지만, LP 아닌 CD 음반이라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더블 앨범을 만나는 일은 감격스럽고 기쁜 일이다. 양이 질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믿음직한 아티스트의 작품이라면 다다익선 아닌가. 그의 성실한 태도와 왕성한 창작욕을 담보하는 ‘더블앨범’은 예나 지금이나, 아티스트에게나 팬들에게나 특별한 이벤트임은 분명하다.
“사람은 결국 누구나 마이너리티다.”
주인공 박민규 작가를 만나기 전에, 오프닝 무대를 연 것은 ‘카스텔라 밴드’였다. 박민규 작가의 팬카페에서 결성된 박민규 오마주 밴드라고 그들은 소개했다. “결성을 할 때 각자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괴로움을 느끼거나, 집을 압류당해 쫒겨났거나, 군 제대하고 가평에서 접시 닦기 일을 하던, 그러니까 박민규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네 사람이 불현듯 “인생이 이게 뭐냐” 싶어 모이게 됐단다. ‘우리까지 이러면 꼴찌는 누가하라고.’라는 컨셉을 안전장치 삼아 “제멋대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
귀청을 때리는 과격한 소리를 내던 보컬이 기타를 들고 장렬히 쓰러지는 퍼포먼스로 ‘카스텔라 밴드’의 무대를 얼떨떨하게 감상하고 난 후에, 박민규 소설가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빨간 코트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박민규 작가. “안녕하세요.” 중후한 목소리에 객석은 큰 박수소리로 화답했다.
그는 ‘카스텔라 밴드’를 두고, “굉장히 행복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목표가 먼 미래에 힘없고 초라한 노인이 되는 것이다.(좌중 웃음) 고마운 친구들에게 ‘카스텔라 밴드’의 오마주 작가로 활동하고 싶다.”며 이 밴드를 많이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음악 평론가 성기완이 누차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박민규 작가는 짧고 묵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마치, 단문체인 자신의 문장처럼 말이다. 객석의 독자들은 이내 그런 화법에 익숙해졌지만, 사회자는 답답한 듯 재차 그의 대답에 대해 언급했다.
이를테면, “이런 까칠한 면이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은데, 평소 독자의 입장은 어떻게 배려하는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에 박민규 작가는 화들짝 놀라며 “이 모습이 결코 까칠한 게 아니”라고 부연했다.
“내 생활이 그렇다. 지금 작업실을 구해서 혼자 읽고 쓰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루 종일 대화를 할 일이 없다. 와이프와 통화 한 두 번 외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갑자기 이런 자리에 오면 굉장히 서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나는 굉장히 즐거운데, 이런 질문에 ‘어, 무슨 말을 해야 되지’ 생각하다 보니까 말이 늦어진다. 부끄러워하거나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정말 괜찮다.”
사회자와 박민규 작가의 짧은 인터뷰는 계속되었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원동력이 그런 단절된 시간인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다. 나는 36살에 작가가 됐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늘 시간이 부족하다. 가능한 시간을 아끼려고 하고 있다.”
늘 비주류 주인공이 등장한다. 비주류나 마이너리티인 인물들에게 좀 더 애정을 느끼는 까닭은 뭔가?
“마이너리티에 대한 나름의 규정이 있었는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마이너라는 개념 자체가 바뀐 것 같다. 확산되었다고 할까. 예전에는 패자, 빈자를 두고 그렇게 불렀는데, 요즘은 인간 자체가 결국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불행을 안고 있고, 불쌍한 존재인거다. 모두에게 인간이라는 마이너리티를 차차 극복해가는 과제가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많이 위로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그런 소설을 쓸 것 같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대단한 일은 못한다. 나는 ‘발효’라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썩는 걸 막지는 못하지만, 곁에서 발효라도 되게끔 돕고 싶다. 작가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당신에게 주는 글이다.”
이날의 ‘북콘서트’ 무대에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초대됐다. 말로는 지난해 전통가요를 재즈로 재해석해낸 음반 '동백아가씨’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말로와 박민규의 인연은 꽤 깊다. 지난 해 열린 박민규의 북콘서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기사보러가기)때에도 말로가 축하 무대를 장식했다. “내가 원래 팬이어서, 집에 박민규 컬렉션도 만들어 놨다.(웃음) 이전까지는 발이 땅에 붙어있는 기분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발이 둥둥 뜬 기분이 든다. 세계가 확장된 느낌이랄까.”
이어 말로의 ‘신라의 달밤’을 들을 수 있었다. 말로의 짙은 감성 물씬한 목소리가 이내 홀을 가득 채운다. 그녀의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가 되어 울려 퍼진다. 어쿠스틱 베이스, 키보드, 드럼, 그리고 말로의 소리가 ‘신라의 달밤’을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전달했다. 꿈결 같은 소리가 멎고, 다시 박민규와 말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박민규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 혹은 쓰고 난 후에, 그것을 선물할 누군가를 떠올린다고 했다. ‘속지’라고 표현한 ‘Double Art Book’에는 각 단편소설이 누구를 위한 선물인지 밝혀두었다.
이를테면, 「누런 강 배 한척」은 작고하신 아버지를 위해, 「낮잠」은 어머니를 위해, 「끝까지 이럴래」는 구글의 창시자 래리 페이지와 서지 브린을 위해, 「크로만, 운」은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킹을 위해 쓰인 글이다. “왜? 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뭐? 라고 나는 답할 것이다.”(Double Art Book, p.12)
“선정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미안함 때문에 드리기도 하고, 그 분의 굉장한 작품을 보고 드리기도 하고, 이 사람과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물하기도 하고. 그렇게 다 드린다.” 그 중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라는 작품은 평소 가까이 지낸다는 소설가 천명관에게 선물한 소설이다.
“원래 영화배우 존 굿맨에게 주기 위해 쓴 글인데 글을 쓴 바로 직후, 작업실에 놀러온 천명관 형이 <바톤 핑크>야말로 마치 내 인생을 얘기한 듯한 영화였어! 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하튼 보다 큰 재능을 가진 작가와 같은 시대를, 함께 써나간다는 일은 무척이나 행복하고 다행한 일이라 나는 믿고 있다.(Double Art Book, p.31)” 이 글을 읽은 “천명관 형에게 처음, 유일하게 감사인사를 받았다”고도 덧붙였다.
“우리 모두가 한 편의 이야기다.”
박민규 작가의 말에 귀를 쫑긋 새우고, 공중파 방송국 방청객 못지않은(!) 뜨거운 반응을 보여준 객석에서도 질문을 받았다. 몇몇 독자들은, 박민규 작가의 소설 덕분에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어려운 순간에 용기를 얻었는지 고백하기도 했다. 박민규 작가는 부끄러워했지만, 한자 한자 힘을 주어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쓰겠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내 삶 역시 작가님 소설 인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벌써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잘살고 싶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가 이 면적 위에, 이만한 인구를 가지고 경제 10위 권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놀랍다. 지구본 돌리면서 보면 우리가 이 정도로 살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우리보다 순위? 위의 나라는 수백 년의 역사, 드넓은 땅과 자원이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는 조건을 보자면 경제 순위 70위~80위여도 이상할 게 없는 나라다.
현재 기성세대들, 나이든 인간들은 평생 각오만 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전쟁에 기아에 쫓겨 ‘더 잘살아야지’ 각오를 하고…… 각오만 하고…… 죽을 때까지 각오만 할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들마저 각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각성을 해야 한다.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각성을 해야 한다.”
최근 멕시코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어땠는지 들려달라.
“멕시코가 위험하다던데, 그쪽 사람들은 내가 전쟁 때문에 한국에서 피난을 온 줄 알더라.(좌중 웃음) 태양이 신의 선물 같았다.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여유가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루차리브레(프로레슬링) 경기를 직접 본 일이었다. 거기서 복면도 많이 사고, 망토도 많이 샀다.
힌트를 주자면, 멕시코에는 젊은 남자들이 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 멕시코 젊은 여자들이 가장 선망하는 남성이 동양남자다. 멕시코 남자들은 책임감이 전혀 없다고 한다. 동양 남자들은 (멕시코 남자들에 비해) 덜 가부장적이고, 이혼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매우 환영을 받고 있다.”
박민규 작가에게 성공과 행복의 의미가 궁금하다.
“성공한 인간들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여러분들도 알잖나. 초등학생 애들한테도 쥐 소리를 듣고 하잖나. 물론 세상에는 그렇게 남들을 이끌어가는 자리에 앉아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굉장히 힘든 운명이다. 다만 그것이 승리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패배가 아니라는 거다. 그들이 과연 뭘 이긴 건가? 과연 뭘 패한 걸까? 우리는 같이 살아가잖나.
내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 자체가 그런 거다. 사실, 이제껏 매체에 나가서 찍은 사진들, 고글 쓰고 이런 것들 내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건 일종의 코스프레다. 회사를 다니며 다른 사람을 많이 지켜봤다. 유명세 때문에 망가지고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는 남의 시선을 차단하고 싶었다. 최악의 인생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가 츄리닝을 입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며 사는 삶을 보호하고 싶다. 그럴 때 누가 ‘박민규 선생님 아니세요.’ 라고 묻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다.”
각오하지 말고, 각성하자는 말이 인상적이다. 구체적으로 각성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우리가 갖고 있는 걸 생각해보자는 거다. 내려갈 곳도 많고, 버릴 것도 많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뭔가 갖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너무 자발적으로 오버 히팅하고 있다. 삶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드라이브다. 이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중에 작가를 부러워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작가라고 본다. 힘든 세상 속에서도 결혼을 하고, 연애하고, 아이를 키우고, 자라나는 아이도 한 편의 이야기인 셈이다. 모두가 한편의 이야기다. 모두가 그 위에 행복한 삶을 써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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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