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두 대통령을 잃었습니다 - 『영란』공선옥
시간이 지나도 2009년을 떠올리면 그 ‘사건’이 떠올리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적인 사건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를 규정짓기도 하죠.
201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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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사회를 맡은 문학에디션 <뿔>의 편집장은 이날의 자리를 ‘영란’에 대한 열렬한 지지가 있었기에 성사된 자리라고 말했다. 곧이어 자리한 작가는 ‘영란’이란 존재를 알고 온 많은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지난 6월부터 연재가 시작된
『영란』.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베를린에 있었다고 했다. “메일로 원고를 보내면 바로 웹에 게재되는 것이 신기했어요. 부러 쓰지 않으려고 했고, 호흡을 맞추고자 노력했습니다. 한번은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담당자에게 메일을 잔뜩 받은 기억도 있어요(웃음).”
편집자는 먼저 작가에게
『영란』을 쓰게 된 배경과 ‘영란’이란 인물의 탄생 배경 또한 물었다. 작가의 대답은 짧게 끝나지 않았다.
“2009년도로 시간 설정을 했어요. 개인사가 어찌되었건, 전직 두 대통령의 죽음이 있던 해이죠.
시간이 지나도 2009년을 떠올리면 그 ‘사건’이 떠올리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적인 사건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를 규정짓기도 하죠.
황망하게 떠난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단 몇 줄만 들어가긴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란’이 산 시대가 그런 시대였음을 암시하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한다는 것. 어떻게 삶의 근거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영화 <그랑블루>를 보면, 해저에서 지상으로 올라갈 때, 왜 올라가야하는지 이유를 찾는다는 인물처럼 말이죠. ‘영란’과 같이 이 시대에 많은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진보, 개혁 인물에게도 어떤 면죄부를 주고 싶었어요.”
“영란에게 슬픔의 여러 양상 중 두 가지 상황을 부여해서 살아가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영란의 ‘영’은 방울 ‘영’이에요. 아직 상처받지 않은 젊은 여자를 ‘영란’이라 하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 소설이 반어법적인 소설 제목들이 많죠(웃음).
여관과 식당이 주 무대로 나옵니다. 생존의 조건을 잠자리와 먹는 것에 두고 싶었어요. 실제로 목포에 가니, 영란거리가 있더군요(웃음). 여러 가지가 맞아 떨어졌어요. 지금까지 썼던 소설 중에 가장 따뜻한 거 같아요. 통속이라는 것이 참 따뜻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 통속이란 좋은 의미로서의 통속입니다. 어떤 밑바닥의 이야기라는 점. 통속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목포’를 공간으로 삼은 것은 같은 맥락이라 하겠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변이 이어졌다. “진생이 모란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 지 묻는 장면이에요. 모란은 짜장면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또 하나는 서강빈이 「서른 즈음에」를 부르는 장면이에요. 김광석이 부른 「서른 즈음에」외에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죠. 심지어 이박사 버전도 있더라고요(청중 웃음).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목포에 가서 「서른 즈음에」를 부르는 가수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일을 소설로 옮겨놓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오게 된 장면이죠.”
인자 마음을 훔치려 드는 도둑은 하당 신도시의 물레방아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태숙을 버리고 떠난 가수, 서강빈이었다.
서강빈이 노래했다. 그 언젠가 밤늦은 밤, 태숙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와 노래 부르는 그를 훔쳐봤던 그날처럼.
또다씨 멀어져 가네애이 내뿜은 담배 연기처어러엄…….
처음 그 노래를 부른 김광석과는 전혀 다른 버전으로. 그러나 물레방아 카페의 분위기와는 기가 막히게 잘 맞는 목소리로. 서강빈을 바라보는 인자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우, 저 짙은 쏘울, 그냥 미쳐불겄다.”
어두운 구석 자리에 앉아 서강빈을 바라보던 인자가 내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태숙이, 듣고 있기가 참을 수 없다며 뛰쳐 나갔던 바로 그 노래를 인자는 좋아 죽겠다고 가슴을 쓸어안는다. 그런데, 노래를 마친 서강빈이 무대를 내려오더니, 인자와 내가 있는 구석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인자 몸이 달팽이처럼 오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p.204~205)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목포에서 현장 취재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목포에 집이 있었다는 작가는 소설 속 ‘수옥’이란 인물이 작가 자신의 유년 시절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말했다. “터미널에서 삐끼노릇을 하기도 했어요. 행동이나 말을 조금 불쌍하게 하면 많이 이득을 보기도 했어요. 직접 가서 보니 지금은 그런 ‘캐릭터’가 없더라고요(웃음).”
작가는 소설의 비밀을 한 가지 더 소개했다. 소설 속에 등장한 ‘벚꽃’이란 시에 대한 사연이었다. 이 시는 다름 아닌 작가의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시라고 한다. “본인 몰래 전제해서 실었어요(웃음). 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저작권을 주장하면 저작권료를 주어야 겠죠(청중 웃음).”
벚꽃같이 짧은 1년
눈을 뜨면 1년이 지나네
내 어찌할 바 모른다네
모두에 미안한 마음이 괜히 든다고
봄에 피는 벚꽃 같은 한 해여
(p. 128)
독자들은 ‘완규’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특히 영란과 맺어주지 않은 이유를 물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중매노릇을 제가 하는군요(웃음). 『영란』에서 가장 짝짓기를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이 책이 짝을 지어주기 위해 만든 책은 아니죠. 완규와 연결이 되면 너무 빨리 끝나기도 하고요.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주고 뭔가를 돌보는 것이 나를 살게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영역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이 견고해져야 덜 삭막해질 거 같아요.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되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완규와 영란의 관계는 설명이 될 것 같아요.”
“예전엔 거의 모든 집에 마당이 있었죠. 마당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요즘은 빌라, 원룸이라 마당이 없어요. 지금은 서민주택 중 마당 있는 집이 보기 드물죠. 부유층에만 허용되는 게 마당이 되었어요. 마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연인 거 같아요. 가난한 사람들이 황량한 마음을 가꾸는 역할을 마당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격리되고 사라집니다. 특히 우리 도시에서는 한 뼘 땅이라도 건물을 올려야 한다는 게 서글퍼요.”
작가는 ‘영란’을 마당 있는 집에서 살게 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영란’에게 언제나 따뜻함을 바라는 마음으로. “제 손으로 꽃 한 송이 심어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간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그런데, 애완견 키우는 마음은 많더라고요(웃음). 식물을 키우는 마음 대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뭔가를 키우는 마음은 계속되는 거죠.”
『영란』은 잔잔한 소설이기도 하지만 위트와 재치가 곳곳에 숨어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소스는 어떻게 얻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줄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글을 읽고 나서 그려지는 느낌을 중요시 했죠.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나 이미지를 기억합니다. 풍경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그런 거 같아요. 똑바로 바라보려는 시각과 몽롱하게 보는 시각이 공존합니다. 소설도 스산하면서도 따뜻하게 번지는 수채화의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이 안개 낀 어딘가에서 걸어오더군요. 누군가는 희미하게 보였다, 사라지기도 했죠.”
목포 시가지와 유달산 등지 등 소설의 주 무대가 된 공간이 궁금하다는 한 독자의 질문에 작가는 화이트보드에 직접 지도를 그렸다. “초등학교 이후, 이렇게 크게 그림을 그려보는 건 처음이네요(웃음).” 작가는 ‘여관’과 ‘식당’을 그렸고 ‘모란통닭집’도 표시했다. 그렇게 약 십여 분간 그려진 지도에는 『영란』의 거의 모든 공간이 들어있었다. 소설에 실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는 편집자의 말에 독자들은 일제히 웃었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동료 작가들과 이 자리에 참석한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 책을 계기로 작가들이 우리 도시에 대한 소설을 썼으면 좋겠어요. 도시는 쓰다가 버리는 곳이 아니니까요. 특히, 구도시가 다시 번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독자분들께서 책을 많이 구입해주시는 게 도움이 되겠죠?”
모란이 어려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 진생이 모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것뿐이었다. 아코디언 건반을 누르는 진생의 눈에 눈물이 어리고 있음을 정섭은 알았다. 정섭의 가슴도 찢어지고 있었다. 딸을 달래기 위해 손끝이 닳아져라 낡은 안기를 연주하는 늙은 아비가 정섭을 울렸다. 모란이 울고 정섭이 울었다. 늙은 진생이 울고 낡은 아코디언이 울었다. 나그네 설움, 울고 넘는 박달재,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 울었다.
아코디언 소리가 잦아질 무렵, 모란 부스스 부은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진생이 연주를 딱 멈추고 묻는다.
“악아, 뭣 묵고 잡냐?”
모란의 몸짓이 말하는 음식이 무엇임을 금방 알아낸 진생이 활짝 웃는다.
“짜장면?”
진생이 웃고 모란이 웃는데 어쩌자고 정섭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칠 줄 모르는가. 이제 정섭의 눈물 감추기는 영영 글러버린 일이 된 것 같았다. (p.221~222)
“2009년도로 시간 설정을 했어요. 개인사가 어찌되었건, 전직 두 대통령의 죽음이 있던 해이죠.
시간이 지나도 2009년을 떠올리면 그 ‘사건’이 떠올리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적인 사건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를 규정짓기도 하죠.
황망하게 떠난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단 몇 줄만 들어가긴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란’이 산 시대가 그런 시대였음을 암시하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한다는 것. 어떻게 삶의 근거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영화 <그랑블루>를 보면, 해저에서 지상으로 올라갈 때, 왜 올라가야하는지 이유를 찾는다는 인물처럼 말이죠. ‘영란’과 같이 이 시대에 많은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진보, 개혁 인물에게도 어떤 면죄부를 주고 싶었어요.”
“영란에게 슬픔의 여러 양상 중 두 가지 상황을 부여해서 살아가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영란의 ‘영’은 방울 ‘영’이에요. 아직 상처받지 않은 젊은 여자를 ‘영란’이라 하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 소설이 반어법적인 소설 제목들이 많죠(웃음).
여관과 식당이 주 무대로 나옵니다. 생존의 조건을 잠자리와 먹는 것에 두고 싶었어요. 실제로 목포에 가니, 영란거리가 있더군요(웃음). 여러 가지가 맞아 떨어졌어요. 지금까지 썼던 소설 중에 가장 따뜻한 거 같아요. 통속이라는 것이 참 따뜻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 통속이란 좋은 의미로서의 통속입니다. 어떤 밑바닥의 이야기라는 점. 통속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목포’를 공간으로 삼은 것은 같은 맥락이라 하겠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변이 이어졌다. “진생이 모란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 지 묻는 장면이에요. 모란은 짜장면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또 하나는 서강빈이 「서른 즈음에」를 부르는 장면이에요. 김광석이 부른 「서른 즈음에」외에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죠. 심지어 이박사 버전도 있더라고요(청중 웃음).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목포에 가서 「서른 즈음에」를 부르는 가수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일을 소설로 옮겨놓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오게 된 장면이죠.”
인자 마음을 훔치려 드는 도둑은 하당 신도시의 물레방아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태숙을 버리고 떠난 가수, 서강빈이었다.
서강빈이 노래했다. 그 언젠가 밤늦은 밤, 태숙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와 노래 부르는 그를 훔쳐봤던 그날처럼.
또다씨 멀어져 가네애이 내뿜은 담배 연기처어러엄…….
처음 그 노래를 부른 김광석과는 전혀 다른 버전으로. 그러나 물레방아 카페의 분위기와는 기가 막히게 잘 맞는 목소리로. 서강빈을 바라보는 인자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우, 저 짙은 쏘울, 그냥 미쳐불겄다.”
어두운 구석 자리에 앉아 서강빈을 바라보던 인자가 내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태숙이, 듣고 있기가 참을 수 없다며 뛰쳐 나갔던 바로 그 노래를 인자는 좋아 죽겠다고 가슴을 쓸어안는다. 그런데, 노래를 마친 서강빈이 무대를 내려오더니, 인자와 내가 있는 구석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인자 몸이 달팽이처럼 오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p.204~205)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목포에서 현장 취재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목포에 집이 있었다는 작가는 소설 속 ‘수옥’이란 인물이 작가 자신의 유년 시절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말했다. “터미널에서 삐끼노릇을 하기도 했어요. 행동이나 말을 조금 불쌍하게 하면 많이 이득을 보기도 했어요. 직접 가서 보니 지금은 그런 ‘캐릭터’가 없더라고요(웃음).”
작가는 소설의 비밀을 한 가지 더 소개했다. 소설 속에 등장한 ‘벚꽃’이란 시에 대한 사연이었다. 이 시는 다름 아닌 작가의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시라고 한다. “본인 몰래 전제해서 실었어요(웃음). 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저작권을 주장하면 저작권료를 주어야 겠죠(청중 웃음).”
벚꽃같이 짧은 1년
눈을 뜨면 1년이 지나네
내 어찌할 바 모른다네
모두에 미안한 마음이 괜히 든다고
봄에 피는 벚꽃 같은 한 해여
(p. 128)
독자들은 ‘완규’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특히 영란과 맺어주지 않은 이유를 물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중매노릇을 제가 하는군요(웃음). 『영란』에서 가장 짝짓기를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이 책이 짝을 지어주기 위해 만든 책은 아니죠. 완규와 연결이 되면 너무 빨리 끝나기도 하고요.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주고 뭔가를 돌보는 것이 나를 살게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영역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이 견고해져야 덜 삭막해질 거 같아요.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되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완규와 영란의 관계는 설명이 될 것 같아요.”
“예전엔 거의 모든 집에 마당이 있었죠. 마당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요즘은 빌라, 원룸이라 마당이 없어요. 지금은 서민주택 중 마당 있는 집이 보기 드물죠. 부유층에만 허용되는 게 마당이 되었어요. 마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연인 거 같아요. 가난한 사람들이 황량한 마음을 가꾸는 역할을 마당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격리되고 사라집니다. 특히 우리 도시에서는 한 뼘 땅이라도 건물을 올려야 한다는 게 서글퍼요.”
작가는 ‘영란’을 마당 있는 집에서 살게 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영란’에게 언제나 따뜻함을 바라는 마음으로. “제 손으로 꽃 한 송이 심어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간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그런데, 애완견 키우는 마음은 많더라고요(웃음). 식물을 키우는 마음 대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뭔가를 키우는 마음은 계속되는 거죠.”
『영란』은 잔잔한 소설이기도 하지만 위트와 재치가 곳곳에 숨어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소스는 어떻게 얻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줄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글을 읽고 나서 그려지는 느낌을 중요시 했죠.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나 이미지를 기억합니다. 풍경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그런 거 같아요. 똑바로 바라보려는 시각과 몽롱하게 보는 시각이 공존합니다. 소설도 스산하면서도 따뜻하게 번지는 수채화의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이 안개 낀 어딘가에서 걸어오더군요. 누군가는 희미하게 보였다, 사라지기도 했죠.”
목포 시가지와 유달산 등지 등 소설의 주 무대가 된 공간이 궁금하다는 한 독자의 질문에 작가는 화이트보드에 직접 지도를 그렸다. “초등학교 이후, 이렇게 크게 그림을 그려보는 건 처음이네요(웃음).” 작가는 ‘여관’과 ‘식당’을 그렸고 ‘모란통닭집’도 표시했다. 그렇게 약 십여 분간 그려진 지도에는 『영란』의 거의 모든 공간이 들어있었다. 소설에 실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는 편집자의 말에 독자들은 일제히 웃었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동료 작가들과 이 자리에 참석한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 책을 계기로 작가들이 우리 도시에 대한 소설을 썼으면 좋겠어요. 도시는 쓰다가 버리는 곳이 아니니까요. 특히, 구도시가 다시 번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독자분들께서 책을 많이 구입해주시는 게 도움이 되겠죠?”
모란이 어려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 진생이 모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것뿐이었다. 아코디언 건반을 누르는 진생의 눈에 눈물이 어리고 있음을 정섭은 알았다. 정섭의 가슴도 찢어지고 있었다. 딸을 달래기 위해 손끝이 닳아져라 낡은 안기를 연주하는 늙은 아비가 정섭을 울렸다. 모란이 울고 정섭이 울었다. 늙은 진생이 울고 낡은 아코디언이 울었다. 나그네 설움, 울고 넘는 박달재,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 울었다.
아코디언 소리가 잦아질 무렵, 모란 부스스 부은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진생이 연주를 딱 멈추고 묻는다.
“악아, 뭣 묵고 잡냐?”
모란의 몸짓이 말하는 음식이 무엇임을 금방 알아낸 진생이 활짝 웃는다.
“짜장면?”
진생이 웃고 모란이 웃는데 어쩌자고 정섭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칠 줄 모르는가. 이제 정섭의 눈물 감추기는 영영 글러버린 일이 된 것 같았다. (p.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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