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구리 너구리, 구리 구리 개구리” 뜻으로 묶인 언어를 리듬으로 해방
우리말의 소리와 음악성을 최대로 살린 독특한 형식의 ‘말놀이 동시’는 아이들과 교사들의 큰 호응 속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말놀이 동시집이 출간되었다. 2010년 1월 12일, 세종 벨라지오에서 출간 및 완간 기념으로 최승호 시인의 기자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글ㆍ사진 김수영
201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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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가 다섯 권으로 완간되었다. 뜻 중심이었던 기존 동시의 틀을 깨고, 우리말의 소리와 음악성을 최대로 살린 독특한 형식의 ‘말놀이 동시’는 아이들과 교사들의 큰 호응 속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글은 소리글자다. 최승호 시인은 이런 한글의 음악성을 살려, 노래처럼 흘러가는 말놀이다.

도롱뇽 노래를 만들었어요/ 도레미파솔라시도 / 들어보세요 // 도롱뇽 / 레롱뇽 / 미롱뇽 / 파롱뇽 / 솔롱뇽 / 라롱뇽 / 시롱뇽 / 도롱뇽

엉뚱하다 뚱딴지 / 얼렁뚱땅 뚱딴지 / 두더지야 뚱딴지 먹자 / 엉, 뚱하다 뚱딴지 / 울퉁불퉁 뚱딴지 / 땅강아지야 뚱딴지 먹자 / 엉, 뚱하다 뚱딴지


총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동시집은 모음 편, 동물 편, 자음 편, 비유 편, 리듬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음 편과 자음 편은 자음과 모음 순서대로 엮어 우리말이 만들어진 원리와 자모의 순서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동물 편은 나무늘보, 이구아나, 끄떡새우, 비단길앞잡이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물들을 소재로 한 재치 있는 표현으로 채워져 있다. 비유 편은 ‘~같은, ~처럼, ~은’과 같이 직유, 은유를 사용하여 동물과 사물의 각 공통점을 찾아내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리듬 편은 우리말의 리듬 편을 강조해 쓴 말놀이로, 리듬과 언어에 대한 감각, 상상력을 키워준다.

2010년 1월 12일, 세종 벨라지오에서 말놀이 동시집 5권 출간 및 완간 기념으로 최승호 시인의 기자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동시집 완간 기념 간담회에서, 동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최승호 시인


동시집을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는?

사북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교과 내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곳에서 아이들과 두 가지 일을 했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게 한 일과 일 년에 네 번, 아이들에게 동시를 짓게 해서 그것을 책으로 문집으로 만든 일이다. 그렇게 일 년에 네 번 출판기념회 열어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르고 연극도 하고, 아이들과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색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고, 음악 잘하려면 소리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문학을 잘하려면, 특히 시를 잘 쓰려면 언어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어의 감각을 길러주는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일을 하고 싶었다.

우리말 가운데서 ‘햇빛, 햇살, 햇볕’ 같이 뜻은 같지만, 시를 쓸 때는 완전히 다른 물감인 단어들이 있다. 햇빛은 찌르는 낱말이고, 창이나 화살, 칼 같은 말이다. 너울거리는 나비는 햇살 속으로 날아가야 한다. 물무늬가 어울거리는 것도 햇살과 관련된 말이다. 햇살이 곡선의 언어라면, 햇볕은 면적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차이를 가르쳐줄 수 있는 텍스트는 없다는 거다.

우리글은 뜻글자가 아니라 소리글자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한글을 가지고 운문시를 쓸 수 있는가 실험을 해보고 싶어서, 두운, 각운을 맞춰 써 보기도 했다. 이런 형태의 운문시집을 다섯 권이나 낸 것은 외람되지만, 이것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기존 한국 동시의 울타리를 깨고, 동시의 영역을 개척 및 확대해보고 싶은 바람이 이 작업의 계기가 되었다.


다른 시집에 비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 독자들이 호응한 것 같은가? 앞서 낸 시집에 피드백이 있었을 텐데, 어떤 피드백이 왔는지 소개해 달라.

딸이 지금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데, 내가 쓴 시를 출판사에 넘기기 전에 아이한테 보여준다. 아이가 모르는 말이 있거나 어려워하는 시는 뺀다. 평소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때도 보통 두 배로 넘긴다. 비룡소 출판사는 어린이 전문 출판사여서, 편집자들의 감각을 신뢰한다. 이렇게 딸과 편집자들이 걸러낸 시에 ?이들이 많이 웃을 수 있도록 화가가 그림을 재미있게 그렸다.

강연을 하면 아이와 부모들이 같이 온다.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나와서 5권을 노래처럼 읽으며, 랩하고 춤추면서 논다. 그 전에 동시들은 너무 의미에 치중해서, 소리를 억압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다. 나는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리가 중요하다고 봤다. 어른들은 「도롱뇽」 같은 시를 읽으면, ‘이게 무슨 뜻이야.’라고 생각하니까 어렵지, 아이들은 소리 내는 것 자체를 재미있어 한다. 이렇게 의미에서 해방되는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 편은 조금 교육적이고, 어렵지 않나 싶다. 어린아이들이 대상일 때는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12만 명의 아이들이 말놀이를 읽은 셈인데, 내가 빔 프로젝터로 동시를 띄워 놓으면, 아이들이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웃는다. 역시 웃음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웃음을 더 많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말 맛을 알려 주어, 언어의 미식가로 만들어야 한다.”

아이에게 언어교육을 하려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딸에게 언어를 가르칠 때 카드를 사용했다. 비둘기, 냉이, 까치 등 카드를 만들어 보여주고 읽게 하고 넘기고 반복했다. 여기에는 음악성이 없다. 아이들을 언어의 미식가로 만들어야 한다. 언어의 맛을 알게 하고, 멋도 알게 해야 한다. 모딜리아니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 그를 주로 화랑으로 데리고 다녔다. 모딜리아니는 화랑에서 그림을 보고 색을 보고, 선을 봤을 거다. 그렇게 예술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려면 그림의 의미보다 색채감을 접해야 한다. 마티스, 샤갈, 피카소의 작품 등으로 일급의 색 감각을 느껴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과서에 좋은 작품이 실려야 한다. 어떤 게 좋은 작품인지를 일깨워주고 안목을 길러주면, 그렇게 그릴 수 있다. 좋은 음악, 그림, 문학작품을 어린아이에게 음미할 수 있도록 줘야 한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보다는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부모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의 교육은 획일화되어 있다. 아이들이 경마장 트랙을 달리는 말 같기도 하다. 그 트랙을 지워줘야 한다.


동시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는지, 다른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동시집은 다섯 권으로 완간이다. 올해 시집을 내야 한다. 한동안은 시 작업을 할 생각이다. 말놀이 작업은 이것으로 끝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동시집이 이렇게 읽혔으면, 혹은 이렇게 읽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

말놀이 동시는 소리 내서 읽어야 한다. 읽다 보면 리듬 감각이 생긴다. 말놀이 동시에서 뜻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난센스, 의미 없는 말이 많다. 이걸 부모님들이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색채교육, 소리교육 같은 것이다. 이 말놀이 동시를 통해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뜻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이 말놀이 동시집을 읽고 아이들이 직접 말놀이를 창작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좋겠다. 그 아이가 커서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의 아이에게 ‘내가 일 학년 때 읽던 말놀이 동시집’이라면서 보여줄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추억이 될 거다.
#최승호 #너구리 #개구리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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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2.07

말놀이 동시집 어린이들이 많이 읽어서 바른말 고운말 연습을 많이 해야겠죠. 어른들도 소리내어 읽어서 소리 글자인 한글의 아름다움을 깨달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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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3na

2010.04.17

리듬감이 있는 동시집이네요. 시만 쓰시는 줄 알았는데 놀랐습니다.
구입해서 읽어야겠어요. 시심은 동심에도 가 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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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스톤

2010.04.01

저는 애들이 다 커버려서 이런 책이 좀 더 빨리 나왔더라면 좋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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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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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교육대를 졸업하고 사북 등 강원도의 벽지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77년 「비발디」로 [현대시학] 지의 추천을 받고 시단에 데뷔해 1982년 「대설주의보」 등으로 제6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1982년에 오늘의 작가상, 1985년에 김수영문학상, 1990년에 이산문학상, 2000년에는 대산문학상, 2003년에는 미당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등단한 이래 지난 이십 년 동안 열 권이 넘는 시집을 꾸준히 펴낸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현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시를 강의하고 있다.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눈사람 자살 사건』 등의 시집을 비롯해 어린이를 위한 ‘말놀이 동시집’ ‘최승호와 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 시리즈가 있다.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는 말과 말의 우연한 결합에서 오는 엉뚱한 결말과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언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열어 주는 작품으로 어린이 동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시선집 『얼음의 자서전』이 아르헨티나, 독일,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다. 어린이를 위한 작업으로 『말놀이 동시집』 5권, 방시혁과 협업한 『말놀이 동요집』 2권이 있다. 시 『마지막 눈사람』이 최우정 작곡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