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오지에서 선생님으로 변신한 한지민 -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 한지민
알라원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선생으로 배우 한지민, 드라마 작가 노희경을 비롯 모두 아홉 명의 서포터즈들이 다녀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지민은 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했고 대학 시절부터 조용히 봉사활동을 해 왔고, 3년 동안 한국 JTS 홍보대사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200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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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알라원은 해발 2900미터가 넘는 까땅락산 협곡에 위치한 오지 마을이다. 40여 가구의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이곳 사람들 중에 글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들은 화전에 고구마를 심고, 그것을 주식 삼아 산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궁벽한 마을이지만 이곳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가난하고 오지에 산다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없다고 그들이 불행하다고 단정 짓는 건 가진 자의 오만이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열심히 일하며 만족하며 살고 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마을에는 더 큰 세상을 꿈꾸게 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다는 것이다. 이곳 아이들에게는 별다른 꿈이 없었고, 바깥세상에 대한 궁금증도 없었다. 자신의 부모처럼 이곳에서 사는 것 말고는 다른 미래가 없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한국 JTS가 이곳에 학교를 지었지만 너무나 궁벽진 곳이라 아무도 아이들을 가르치러 오지 않았다. 어쩌다 오게 된 선생님은 이곳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금방 산을 내려갔다. 학교는 지었지만 선생이 없고, 선생이 없으니 학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랫동안 학교는 목마르게 선생과 학생을 기다렸다.
알라원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선생으로 배우 한지민, 드라마 작가 노희경을 비롯 모두 아홉 명의 서포터즈들이 다녀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지민은 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했고 대학 시절부터 조용히 봉사활동을 해 왔고, 3년 동안 한국 JTS 홍보대사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4박 5일의 짧지만 아름다운 필리핀 봉사 활동 여정을 담은 책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를 낸 한지민을 만났다.
어떤 계기로 알라원에 가게 되었어요?
같이 JTS에서 활동하시는 노희경 선생님이 어느 날 “지민아, 필리핀에 학교 지으러 가자!”라고 해서 시작되었어요. (웃음) 노희경 선생님도 같이 가셔서 선생 노릇을 했는데 체력이 약하신 분이라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알라원에 다녀온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요?
벌써 석 달 정도 흘렀네요. 내려와서 들었는데 선생님이 알라원에 오기로 했대요. 정말 기뻤어요. 같이 봉사활동을 한 필리핀 친구와 메일로 연락을 하는데 다들 건강하게 잘 있대요. 가서 만났던 모든 아이들이 다 보고 싶은데, 특히 몸이 아팠던 아이가 더 눈에 아른거려요.
지(한지민의 애칭) 선생님 보고 싶다는 말은 안 한대요?
그런 얘기는 없더라고요.(웃음)
알라원의 아이들은 대부분 문맹인가요?
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중에서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어요. 영어도 안 쓰고, 필리핀어를 사용해요. 영어를 안 쓰니까 오히려 소통에 대한 부담이 덜하더군요. (웃음) 간단한 인사말은 한글로 발음을 수첩에 적어서 이야기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 인상은 어땠어요? 뭔가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 보이고 그랬나요?
저는 체육이나 미술, 음악을 가르쳤는데, 처음에 알라원 아이들을 만났을 때 멍해 보였어요. 이 아이들에게 열정이 있을까? 뭐가 배우려는 의지가 있을까? 이대로도 행복한 아이들에게 억지로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건 내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선물로 리코더를 줬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마을에서 리코더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그걸 듣고 마음이 뭉클했어요. 이 아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선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멍해 보인 거였어요. 작은 관심에도 아이들은 부쩍 공부할 의욕을 가졌어요. 맨 처음 아이들에게 ‘꿈’에 대해 그려보라고 하니까 모두들 집만 그렸어요. 이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모르니까. 나중에 헤어질 때가 되니까 아이들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의사가 되고 싶어요.’ 하면서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더군요. 교육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교육에 대한 생각도 굉장히 달라졌을 것 같아요. 우리는 교육을 굉장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그렇지 않은 세상이 아직 지구상에 많다는 걸 보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절실함과 소중함을 덜 느끼는 것 같아요.
4박 5일 동안의 일 중에 가장 보람이 있었던 건 어떤 일이었어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부모님이 바뀐 게 제일 기억이 남아요. 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려면 부모님이 교육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알라원 사람들은 대부분 ‘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몰랐어요. JTS 사람들이 부모님들을 모아두고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가르쳐야 합니다. 이 아이가 얼마나 큰 재능과 가능성을 가졌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렇게 설득을 해도 부모님들은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그런데 학교가 지어지고, 이번에 우리가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신 거죠. 교실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부모들이 창문 가에 죽 서서 구경했어요. 부모님들에게 ‘이 아이는 뭘 잘하고 앞으로 뭘 시키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씀드리고 부모님 보는 앞에서 아이들 칭찬도 많이 했어요.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남몰래 눈물을 닦는 부모님도 계셨어요.
4박 5일 동안 혹시 속상하고 마음 아픈 일은 없었어요?
전혀 없었어요. 4박 5일 동안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여기서 후원금을 내고 모금 운동을 돕는 일을 하면서 우리가 도와주는 사람들은 굉장히 불쌍하게 느껴져서 더 많이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거기 가서 사람들을 보니까 불쌍하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어요. ‘도대체 내가 왜 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내가 그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내가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여긴 게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 사람들은 고구마만 먹고 살아도 너무 행복해하며 감사하며 살아요. 아이들도 티없이 웃어요. 그들 삶에 굉장히 만족하면서 사는 알라원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어요. 우리가 삶에서 ‘꼭 필요해.’라고 말하는 많은 것들을 알라원 사람들은 가지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너무 행복한데 왜 많은 것을 가진 나는 불행할까, 그런 생각도 해보고요.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을 읽고 독자들이 나눔에 대해서도,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책 속에 아이들 사진들이 너무 티없이 밝았어요.
정말 아이들이 착해요. 뭔가를 나눠주면 우리들은 남보다 더 많이 받았나 더 좋은 걸 받았나 비교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알라원 아이들은 비교를 몰라요. 자기가 받은 것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해요.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 너무 일찍 물들고, 욕심에 너무 지배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아이들 중에서 과연 얼만큼 알라원 아이들만큼 진심으로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요? 저는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들었어요.
누구에게 그런 말 들을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별다른 것 없이 그때그때 제가 나눌 수 있는 걸 나누고 참여한 것뿐이라서요. 누가 ‘한지민 봉사활동 열심히 한대.’ 그러면 많이 부끄러워요. 정말 그런 말 들으실 분들이 너무 많아서요.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많은 것을 나누고 봉사하시는 분들이요.
연예인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잖아요.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저는 진심은 통한다고 믿어요. 제 의도를 곡해하시는 분이 있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제 봉사활동을 비판적으로 보시는 분들 때문에 남을 돕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요. 대학교 때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갔는데, 저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일을 하고 싶었는데 교수님이 따로 저를 불러서 아이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주라는 거에요. ‘연예인이라고 특별 대접하시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따로 나오는 게 너무 싫고 부담스럽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교수님이 ‘여기 아이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네가 만나서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 그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거다.’ 그때 ‘연예인이란 이런 힘을 가진 직업이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말에 호소력이 있는 거죠. 연예인이 봉사활동을 하면 훨씬 더 언론에 주목을 받고 그 일이 널리 알려질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요. 물론, 말과 행동이 대중들을 감동시키고 호소력을 가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살아야 하겠지요. 저는 그냥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삶과 연기 모두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식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세상에서 제일 필요한 게 사회복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선택권이 없이 태어나잖아요. 누구는 가난하게 태어나고 누구는 부유하게 태어나고. 또 누구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다양한 사람들과 우리는 함께 살아가요.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서로서로 나누는 게 필요해요. 그게 사회복지죠. 예전에는 돈 많은 사람이 많이 기부를 하면 기아나 가난 같은 문제가 없어질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좀 달라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필요한 돈이나 물건을 주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건 가장 일차적인 봉사의 방식이죠. 봉사의 가장 좋은 방식이 자기가 가진 재능을 사회와 함께 나누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필리핀 알라원 봉사활동과 4박 5일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는 각각 가진 재능을 기부해서 이루어졌어요. 돈을 대신 여러 기부자분들, 직접 가서 아이들의 선생님 노릇을 한 봉사자들, 책에 실린 사진을 찍어 준 김희원 선생님, 책을 내 주신 북로그컴퍼니 사장님까지 각자 가진 것들을 조금씩 나누었어요. 이번 책은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한지민의 이름을 빌려 나온 셈이지요. 제가 앞장서서 할 일이 있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속하고 싶어요.
연기자 한지민이 지금 가장 고민하는 건 뭔가요?
저는 우연히 배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사회에 나오게 되었고, 처음엔 제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춰지는 게 무섭기까지 했어요. 굉장히 움츠러들었을 때도 있었고……. 저는 뭐든 철저히 준비한 후에 하는 걸 좋아하는 소심한 사람이라 그런 마음이 더 했던 것 같아요. 송혜교 씨의 아역으로 출연한 <올인>으로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았을 때는 어디론가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어요. 두 번째 작품에서 바로 주연을 맡았는데, 내 그릇보다 더 큰 일을 한다는 생각이 많아 들어서 항상 자신이 없었어요. 화면에 나오는 나 자신의 연기를 보고 싶지 않았을 정도로. 연기는 욕심은 많았지만 실력이 따라주지 않아 괴로웠어요.
연기하는 재미는 언제 느끼게 되었어요?
단막극을 하면서 연기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또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연기에 임하면서 더 편하게 연기를 했어요. 고 장진영 씨가 주연한 <청연>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대장금>도 작은 역할이었어요. 사람들은 ‘왜 주인공을 하다가 조연을 해?’ 그렇게 걱정하셨지만 저는 훨씬 즐거웠어요. 이영애 선배나 고 장진영 씨, 수많은 연기자 선배들님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어요. 그러면서 ‘나도 저렇게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겼던 것 같아요. 또, 선배들이 연기 테크닉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에서 제일 연기하는 게 즐거웠던 역할을 어떤 작품이었나요? 그리고 배우로 한 단계 더 성장하게 한 작품은 어떤 것이고요.
모든 작품이 저에게 다 의미가 있는데, <경성스캔들>의 조마자 역할을 제일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배우로 한 단계 더 성장하게 했던 작품은 <부활>이었고요.
최근에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서 탈북자 역할을 굉장히 잘 소화하셨는데요. 연기 칭찬도 많이 받으셨고요.
이상하게 <카인과 아벨>이 끝난 후에는 공허함이 컸어요. <카인과 아벨>을 하기 전에까지 저는 휴식 기간도 별로 가지지 않고 계속 드라마에 출연했거든요. 연기라는 건 부딪치고 깨져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급적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카인과 아벨>의 ‘영지’라는 역할의 시놉시스를 받을 때부터 ‘아, 내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많이 했지만 그들이 어떤 것을 느끼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거든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연기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언어적인 부분도 벽이고 준비할 시간도 많이 부족했고요. 그런데 내가 이 역을 해낸다면 연기자로서 또 하나의 벽을 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했어요. 그리고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이상하게 공허한 거에요. 이전에는 한 드라마가 끝나면 신이 나서 ‘다음 드라마를 또 도전해야지!’ 했는데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이젠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 작품 하면서 성장하고 느는 제 모습을 보는 게 좋았고, 새로운 역에 도전하는 것도 신났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단계가 지난 것 같아요. 한 역에 모든 것을 다 소진해 버리는 게 어떤 건지도 알 것 같고,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배우가 지니는 책임감의 무게도 실감이 나고, 또 열심히 한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좋은 연기에 대한 욕심도 있고요. 여러 가지로 복잡한 느낌이었어요. 드라마를 찍는 건 힘든 작업이에요.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현장에서 대본 받고 며칠 밤을 새워서 찍고 움츠러들었을 때도 있었고……. 저는 그런데 이런 것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모르는 거잖아요. 화면에 배우가 피곤해 보이면 ‘밤새서 촬영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예전에는 그런 부분을 핑계로 댔던 것 같아요. 시간에 쫓겨가면서 찍은 예전 드라마들을 보면 드라마의 인물이 아니라 ‘한지민’을 연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요.
드라마를 찍는 상황이 워낙 열악하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텐데요.
대부분 연기자들이 다 비슷한 상황에서 연기를 해요. 부족한 연기를 보면 무엇보다 나 자신이 부끄럽고 괴로워요. 아마 연기자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어요. 차기작을 고르는데 이번처럼 많이 생각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한지민의 차기작은 이준기와 함께 출연하는 <수상한 히어로즈>(가제)다.) 차기작 감독님이 여자 감독님이세요. 그분이 제가 연기에 대해 가진 고민을 다 들어주시면서 너무 좋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셔서 큰 힘을 얻었어요. 지금은 한 단계 더 성숙한 연기자가 되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이에요.
연기를 할 때 ‘아 정말 좋다!’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나요?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이 찾아와요. 연기가 뭔지 아직 잘 모르지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단막극을 찍을 때였는데 진짜로 속이 후련하게 운 적이 있었어요. 그 전에는 슬픈 생각을 해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때는 그 인물의 슬픔이 느껴져서, 그 인물로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그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게 그런 진심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도 ‘아, 참 예쁘게 우는구나.’ 할 때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인물의 슬픔이 가슴으로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연기자가 진짜 슬프지 않으면 보는 이도 진짜 슬플 수 없는 거지요. 그 뒤로도 아주 가끔이지만 주인공과 함께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행복할 때가 있었어요. 앞으로 그런 순간을 더 오래, 더 많이 느끼기 위해서 지금 많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어요. 연기는 항상 배워야 하고, 계속 앞으로 나가고 나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연기가 끝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저는 끝이 없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좋은 것 같아요.
연기자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연기 참 잘한다.’ ‘인간도 괜찮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알라원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선생으로 배우 한지민, 드라마 작가 노희경을 비롯 모두 아홉 명의 서포터즈들이 다녀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지민은 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했고 대학 시절부터 조용히 봉사활동을 해 왔고, 3년 동안 한국 JTS 홍보대사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4박 5일의 짧지만 아름다운 필리핀 봉사 활동 여정을 담은 책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를 낸 한지민을 만났다.
어떤 계기로 알라원에 가게 되었어요?
같이 JTS에서 활동하시는 노희경 선생님이 어느 날 “지민아, 필리핀에 학교 지으러 가자!”라고 해서 시작되었어요. (웃음) 노희경 선생님도 같이 가셔서 선생 노릇을 했는데 체력이 약하신 분이라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알라원에 다녀온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요?
벌써 석 달 정도 흘렀네요. 내려와서 들었는데 선생님이 알라원에 오기로 했대요. 정말 기뻤어요. 같이 봉사활동을 한 필리핀 친구와 메일로 연락을 하는데 다들 건강하게 잘 있대요. 가서 만났던 모든 아이들이 다 보고 싶은데, 특히 몸이 아팠던 아이가 더 눈에 아른거려요.
지(한지민의 애칭) 선생님 보고 싶다는 말은 안 한대요?
그런 얘기는 없더라고요.(웃음)
알라원의 아이들은 대부분 문맹인가요?
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중에서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어요. 영어도 안 쓰고, 필리핀어를 사용해요. 영어를 안 쓰니까 오히려 소통에 대한 부담이 덜하더군요. (웃음) 간단한 인사말은 한글로 발음을 수첩에 적어서 이야기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 인상은 어땠어요? 뭔가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 보이고 그랬나요?
저는 체육이나 미술, 음악을 가르쳤는데, 처음에 알라원 아이들을 만났을 때 멍해 보였어요. 이 아이들에게 열정이 있을까? 뭐가 배우려는 의지가 있을까? 이대로도 행복한 아이들에게 억지로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건 내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선물로 리코더를 줬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마을에서 리코더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그걸 듣고 마음이 뭉클했어요. 이 아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선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멍해 보인 거였어요. 작은 관심에도 아이들은 부쩍 공부할 의욕을 가졌어요. 맨 처음 아이들에게 ‘꿈’에 대해 그려보라고 하니까 모두들 집만 그렸어요. 이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모르니까. 나중에 헤어질 때가 되니까 아이들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의사가 되고 싶어요.’ 하면서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더군요. 교육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교육에 대한 생각도 굉장히 달라졌을 것 같아요. 우리는 교육을 굉장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그렇지 않은 세상이 아직 지구상에 많다는 걸 보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절실함과 소중함을 덜 느끼는 것 같아요.
4박 5일 동안의 일 중에 가장 보람이 있었던 건 어떤 일이었어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부모님이 바뀐 게 제일 기억이 남아요. 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려면 부모님이 교육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알라원 사람들은 대부분 ‘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몰랐어요. JTS 사람들이 부모님들을 모아두고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가르쳐야 합니다. 이 아이가 얼마나 큰 재능과 가능성을 가졌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렇게 설득을 해도 부모님들은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그런데 학교가 지어지고, 이번에 우리가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신 거죠. 교실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부모들이 창문 가에 죽 서서 구경했어요. 부모님들에게 ‘이 아이는 뭘 잘하고 앞으로 뭘 시키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씀드리고 부모님 보는 앞에서 아이들 칭찬도 많이 했어요.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남몰래 눈물을 닦는 부모님도 계셨어요.
4박 5일 동안 혹시 속상하고 마음 아픈 일은 없었어요?
전혀 없었어요. 4박 5일 동안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여기서 후원금을 내고 모금 운동을 돕는 일을 하면서 우리가 도와주는 사람들은 굉장히 불쌍하게 느껴져서 더 많이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거기 가서 사람들을 보니까 불쌍하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어요. ‘도대체 내가 왜 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내가 그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내가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여긴 게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 사람들은 고구마만 먹고 살아도 너무 행복해하며 감사하며 살아요. 아이들도 티없이 웃어요. 그들 삶에 굉장히 만족하면서 사는 알라원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어요. 우리가 삶에서 ‘꼭 필요해.’라고 말하는 많은 것들을 알라원 사람들은 가지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너무 행복한데 왜 많은 것을 가진 나는 불행할까, 그런 생각도 해보고요.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을 읽고 독자들이 나눔에 대해서도,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책 속에 아이들 사진들이 너무 티없이 밝았어요.
정말 아이들이 착해요. 뭔가를 나눠주면 우리들은 남보다 더 많이 받았나 더 좋은 걸 받았나 비교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알라원 아이들은 비교를 몰라요. 자기가 받은 것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해요.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 너무 일찍 물들고, 욕심에 너무 지배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아이들 중에서 과연 얼만큼 알라원 아이들만큼 진심으로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요? 저는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들었어요.
누구에게 그런 말 들을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별다른 것 없이 그때그때 제가 나눌 수 있는 걸 나누고 참여한 것뿐이라서요. 누가 ‘한지민 봉사활동 열심히 한대.’ 그러면 많이 부끄러워요. 정말 그런 말 들으실 분들이 너무 많아서요.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많은 것을 나누고 봉사하시는 분들이요.
연예인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잖아요.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저는 진심은 통한다고 믿어요. 제 의도를 곡해하시는 분이 있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제 봉사활동을 비판적으로 보시는 분들 때문에 남을 돕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요. 대학교 때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갔는데, 저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일을 하고 싶었는데 교수님이 따로 저를 불러서 아이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주라는 거에요. ‘연예인이라고 특별 대접하시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따로 나오는 게 너무 싫고 부담스럽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교수님이 ‘여기 아이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네가 만나서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 그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거다.’ 그때 ‘연예인이란 이런 힘을 가진 직업이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말에 호소력이 있는 거죠. 연예인이 봉사활동을 하면 훨씬 더 언론에 주목을 받고 그 일이 널리 알려질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요. 물론, 말과 행동이 대중들을 감동시키고 호소력을 가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살아야 하겠지요. 저는 그냥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삶과 연기 모두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식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세상에서 제일 필요한 게 사회복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선택권이 없이 태어나잖아요. 누구는 가난하게 태어나고 누구는 부유하게 태어나고. 또 누구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다양한 사람들과 우리는 함께 살아가요.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서로서로 나누는 게 필요해요. 그게 사회복지죠. 예전에는 돈 많은 사람이 많이 기부를 하면 기아나 가난 같은 문제가 없어질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좀 달라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필요한 돈이나 물건을 주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건 가장 일차적인 봉사의 방식이죠. 봉사의 가장 좋은 방식이 자기가 가진 재능을 사회와 함께 나누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필리핀 알라원 봉사활동과 4박 5일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는 각각 가진 재능을 기부해서 이루어졌어요. 돈을 대신 여러 기부자분들, 직접 가서 아이들의 선생님 노릇을 한 봉사자들, 책에 실린 사진을 찍어 준 김희원 선생님, 책을 내 주신 북로그컴퍼니 사장님까지 각자 가진 것들을 조금씩 나누었어요. 이번 책은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한지민의 이름을 빌려 나온 셈이지요. 제가 앞장서서 할 일이 있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속하고 싶어요.
연기자 한지민이 지금 가장 고민하는 건 뭔가요?
저는 우연히 배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사회에 나오게 되었고, 처음엔 제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춰지는 게 무섭기까지 했어요. 굉장히 움츠러들었을 때도 있었고……. 저는 뭐든 철저히 준비한 후에 하는 걸 좋아하는 소심한 사람이라 그런 마음이 더 했던 것 같아요. 송혜교 씨의 아역으로 출연한 <올인>으로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았을 때는 어디론가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어요. 두 번째 작품에서 바로 주연을 맡았는데, 내 그릇보다 더 큰 일을 한다는 생각이 많아 들어서 항상 자신이 없었어요. 화면에 나오는 나 자신의 연기를 보고 싶지 않았을 정도로. 연기는 욕심은 많았지만 실력이 따라주지 않아 괴로웠어요.
연기하는 재미는 언제 느끼게 되었어요?
단막극을 하면서 연기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또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연기에 임하면서 더 편하게 연기를 했어요. 고 장진영 씨가 주연한 <청연>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대장금>도 작은 역할이었어요. 사람들은 ‘왜 주인공을 하다가 조연을 해?’ 그렇게 걱정하셨지만 저는 훨씬 즐거웠어요. 이영애 선배나 고 장진영 씨, 수많은 연기자 선배들님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어요. 그러면서 ‘나도 저렇게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겼던 것 같아요. 또, 선배들이 연기 테크닉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에서 제일 연기하는 게 즐거웠던 역할을 어떤 작품이었나요? 그리고 배우로 한 단계 더 성장하게 한 작품은 어떤 것이고요.
모든 작품이 저에게 다 의미가 있는데, <경성스캔들>의 조마자 역할을 제일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배우로 한 단계 더 성장하게 했던 작품은 <부활>이었고요.
최근에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서 탈북자 역할을 굉장히 잘 소화하셨는데요. 연기 칭찬도 많이 받으셨고요.
이상하게 <카인과 아벨>이 끝난 후에는 공허함이 컸어요. <카인과 아벨>을 하기 전에까지 저는 휴식 기간도 별로 가지지 않고 계속 드라마에 출연했거든요. 연기라는 건 부딪치고 깨져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급적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카인과 아벨>의 ‘영지’라는 역할의 시놉시스를 받을 때부터 ‘아, 내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많이 했지만 그들이 어떤 것을 느끼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거든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연기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언어적인 부분도 벽이고 준비할 시간도 많이 부족했고요. 그런데 내가 이 역을 해낸다면 연기자로서 또 하나의 벽을 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했어요. 그리고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이상하게 공허한 거에요. 이전에는 한 드라마가 끝나면 신이 나서 ‘다음 드라마를 또 도전해야지!’ 했는데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이젠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 작품 하면서 성장하고 느는 제 모습을 보는 게 좋았고, 새로운 역에 도전하는 것도 신났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단계가 지난 것 같아요. 한 역에 모든 것을 다 소진해 버리는 게 어떤 건지도 알 것 같고,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배우가 지니는 책임감의 무게도 실감이 나고, 또 열심히 한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좋은 연기에 대한 욕심도 있고요. 여러 가지로 복잡한 느낌이었어요. 드라마를 찍는 건 힘든 작업이에요.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현장에서 대본 받고 며칠 밤을 새워서 찍고 움츠러들었을 때도 있었고……. 저는 그런데 이런 것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모르는 거잖아요. 화면에 배우가 피곤해 보이면 ‘밤새서 촬영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예전에는 그런 부분을 핑계로 댔던 것 같아요. 시간에 쫓겨가면서 찍은 예전 드라마들을 보면 드라마의 인물이 아니라 ‘한지민’을 연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요.
드라마를 찍는 상황이 워낙 열악하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텐데요.
대부분 연기자들이 다 비슷한 상황에서 연기를 해요. 부족한 연기를 보면 무엇보다 나 자신이 부끄럽고 괴로워요. 아마 연기자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어요. 차기작을 고르는데 이번처럼 많이 생각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한지민의 차기작은 이준기와 함께 출연하는 <수상한 히어로즈>(가제)다.) 차기작 감독님이 여자 감독님이세요. 그분이 제가 연기에 대해 가진 고민을 다 들어주시면서 너무 좋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셔서 큰 힘을 얻었어요. 지금은 한 단계 더 성숙한 연기자가 되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이에요.
연기를 할 때 ‘아 정말 좋다!’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나요?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이 찾아와요. 연기가 뭔지 아직 잘 모르지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단막극을 찍을 때였는데 진짜로 속이 후련하게 운 적이 있었어요. 그 전에는 슬픈 생각을 해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때는 그 인물의 슬픔이 느껴져서, 그 인물로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그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게 그런 진심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도 ‘아, 참 예쁘게 우는구나.’ 할 때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인물의 슬픔이 가슴으로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연기자가 진짜 슬프지 않으면 보는 이도 진짜 슬플 수 없는 거지요. 그 뒤로도 아주 가끔이지만 주인공과 함께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행복할 때가 있었어요. 앞으로 그런 순간을 더 오래, 더 많이 느끼기 위해서 지금 많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어요. 연기는 항상 배워야 하고, 계속 앞으로 나가고 나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연기가 끝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저는 끝이 없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좋은 것 같아요.
연기자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연기 참 잘한다.’ ‘인간도 괜찮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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