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햇빛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풍경 - 알베르 카뮈의 「아이러니」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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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살아가잖아.”
-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중에서

#1. 홀로 남겨진 노인
저녁 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영화관에 갈 채비를 하고 있다. 한 노인만 빼고. 그녀는 반신불수로 거동이 불편하다. 활동하기를 좋아하고 활달한 성품이었던 그녀는 이제 방구석에 틀어박혀 무위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외출 준비를 마친 가족들이 왁자지껄 떠나가자 이윽고 노인은 빈집에 홀로 남겨진다. 두려움과 고독 속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2.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
떠들썩한 어느 술집. 젊은이들 앞에서 한 노인이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주고 있다. 청년들의 얼굴에는 지루한 빛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래서 노인은 더 필사적이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혼자 남게 된 노인이 터벅터벅 귀갓길에 오른다. 집에서는 그의 늙은 아내가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리다 지쳐 먼저 잠이 들었을 것이다. 달이 유난히 밝은 밤이다.

#3.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
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남매를 길렀다. 이제는 손자들까지 제법 대가족을 이루게 된 집에서 그녀는 늘 여왕처럼 당당하고 때론 뻔뻔하게 군림해왔다. 그런데 수시로 엄살과 꾀병, 과장된 연기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부각시키던 할머니가 어느 날 진짜로 숨을 거둔다. 손자는 장례식장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전혀 슬프지 않았는데도.

여기 코트 깃을 세운 채 담배를 살짝 비껴 물고 있는 남자의 흑백사진이 있다. 우수에 찬 깊은 눈빛과 창백한 피부, 샤프한 얼굴은 어쩐지 젊은 시절의 제임스 딘을 연상시킨다. 알베르 카뮈. 「아이러니」는 그가 22세 때 처녀 출판한 에세이집 『안과 겉』에 수록된 작품이다. 알제리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카뮈는 두 살 때 아버지가 전사하면서 쭉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어쩌면 그의 얼굴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결핍의 분위기는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유년기를 아름답게 회상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작열하는 태양, 그 아름다운 햇볕 덕분에 자신은 원한이란 감정을 품지 않을 수 있었다고. 빈곤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동시에 일종의 즐거움과 자유를 느끼고 있었노라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 재판을 내기 위하여 『안과 겉』을 다시 읽어보노라니, 어떤 페이지들 앞에서는 그 서투른 솜씨에도 불구하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래, 바로 그거야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 즉, 그 노파, 말없는 어머니, 가난, 이탈리아의 올리브 나무 위로 쏟아지는 햇빛, 고독하지만 충만한 사랑, 내 눈으로 볼 때 진실을 증언해주고 있다고 믿어지는 모든 것 말이다.
- 서문 중에서

「아이러니」에는 세 명의 노인이 등장한다. 객관적 시점 속에서 타자화된 그들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 놓여 있는 별개의 인물이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닮아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병든 노파의 딸은 불 꺼진 창문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어머닌 혼자 계실 때면 늘 불을 끄세요. 어둠 속에 있기를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러나 어둠 속에는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리고 있는 노인이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을 향해 자신의 모험담을 떠들썩하게 늘어놓고 있는 두 번째 에피소드 속 노인은 또 어떠한가. 지독한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있다. 거짓과 과장으로 행복을 가장하면서.

하기는 갈 데도 없다. 영영 늙어버린 그였다. 사람들은 미래의 노년 위에다 인생을 쌓아 올린다. 이렇게 돌이킬 길 없는 상태에 몰려 있는 그 노년기에다 사람들은 한가로움을 부여하고자 하지만, 그 한가로움으로 노인들은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만다.
- 본문 중에서

세 번째 에피소드의 노인은 “사랑이란 요구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엄격하고 가차 없는 태도로 일관하며 살아온 그 유별난 노인은 바로 카뮈의 할머니였다. 장례식 날, 소년 카뮈는 남들처럼 눈물을 흘렸지만, ‘울면서도 고인 앞에서 솔직하지 않은 가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유난히 햇살이 아름다운 어느 초겨울의 풍경이었다.

아주 짤막한 이야기들인데 읽다 보면 작가가 말하려는 바가 뭔지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기분이 든다. 삶과 죽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에 숨겨진 실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삶의 진실. 이와 관련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있다.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사랑의 추억(Sous Le Sable)>(2000).

영화 <사랑의 추억>(2000)

중년 부부인 ‘장’과 ‘마리’는 한적한 해변으로 여름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마리가 일광욕을 하고 있는 동안 잠시 수영을 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뜬 남편 장이 사라진다. 갑작스런 남편의 실종. 구조대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수색을 벌여봤지만, 남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 홀로 남겨진 마리는 여전히 남편이 곁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장이 쓰던 서재에는 여기저기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 의자에는 막 벗어놓은 것처럼 웃옷이 걸쳐 있고, 책상 위에는 쓰다 만 만년필이 그대로 놓여 있다. 재떨이에는 피우다 만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집안에서 마리는 계속 남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교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경찰로부터 남편으로 추정되는 시체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버나드의 말처럼, 시간은 방울져 떨어진다. 영혼의 지붕 위에 맺혀있던 시간의 방울들이 떨어진다. 내 마음에 맺힌 시간의 방울들도 떨어진다. 지난주에 면도하려고 서 있을 때에도 떨어지고 있었다. 손에 면도날을 쥐고 선 채로 난 갑자기 깨달았다. 이건 단지 습관적인 행동이라는 걸. 방울이 맺히게 하는 거란 걸. 그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쁘게 면도를 계속 했다. “면도하자. 면도하자. 면도하자.” 하면서 면도를 계속했다. 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 버지니아 울프, 『파도』 중에서(영화 장면에서 재인용)

이 영화의 매력은 예측불가능성에 있다. 익숙한 관성을 거부하며 이야기는 계속 잔잔한 가운데 파격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남편의 흔적이 남아있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 마리가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발견하는 장면이 그렇다. 계약을 결정한 그녀는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란다. 창밖에는 묘지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도 예사롭지가 않다. 남편이 사라진 바닷가에서 오열하던 마리의 흐릿한 시선에 문득 한 남자의 뒷모습이 들어온다. 남편과 흡사한 모습. 갑자기 마리는 그 남자를 향해 달려간다. 저 멀리 보이는 남자와 점점 작아지는 마리의 뒷모습이 롱테이크로 펼쳐진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는 그 남자를 스쳐 지나 계속 달려간다.

이 영화는 나에게 커다란 물음표를 남겼다. 눈을 떠보니 낯선 공간에 와 있어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들어와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 같은, 뭐 그런 식의 이상한 기분이랄까. 뭔가 석연치 않고 모호한 느낌. 「아이러니」를 읽고 났을 때의 느낌도 비슷했다. 꼭 이 영화의 뒷맛처럼 복잡하고 난해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런 느낌을 왠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함께 들었다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
(Albert Camus, 1913 ~ 1960)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인생이 명확하게 정리됐다고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한 부분이, 때로는 여러 군데가 헝클어지고 뒤죽박죽 뭉쳐 있는 상태로, 어찌어찌 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가고 그렇게 저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으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나이를 먹어 버렸다. 동시에 나는 늘 믿고 있었다. 언젠가는 내 삶의 구석구석에 대강 뭉쳐서 쑤셔 놓은 양말처럼 미뤄두고 있던 수많은 계획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그런 막연한 느낌만으로 벌써 10여 년이 흘러가 버렸다. 여전히 내 인생은 풀리지 않은 숙제와 수많은 고민과 지연되고 있는 다종다양한 계획들로 가득 차있다. 문득 두려워진다. 이 상태가 영원히 정리되지 않은 채, 언젠가 죽음을 맞게 되는 건 아닐까? 과연 모든 미해결 과제들이 흡족하게 정리되는 날이 오긴 오는 걸까?

카뮈는 노벨상을 수상하고 오랫동안 기획해왔던 대작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면서 한창 세간의 기대를 모으던 어느 날,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향년 47세. 갑자기 궁금해진다. 삶에 대한 그의 열정, 그동안 작품에 쏟아왔던 엄청난 에너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수많은 계획들은 그 순간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카뮈가 22세의 나이에 이 글을 썼다는 사실 또한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주인공은 모두 노인들이 아닌가. 젊은 나이에 인생의 진실, 세상의 이면을 모두 알아버린 카뮈야말로 가장 아이러니한 사람이 아닐까.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죽을 걸 알면서도 살아가는 것처럼. 어느 날 촉망받던 천재 작가의 갑작스런 죽음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 모든 의문과 모순투성이의 삶을 우리는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치를 따져봐야 해답 따위는 결코 나오지 않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니까. 그런 게 인생이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묘한 느낌이 든다. 왠지 슬프지만, 완전히 비극적이지만도 않은, 그렇지만 딱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런 느낌. 끝까지 아이러니하다고나 할까. 카뮈는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고 썼다. 이 책의 타이틀처럼, 우리들 삶의 안과 겉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그 아찔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어안이 벙벙한 채로, 뭐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왠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기막힌 진실. 영화 구경을 가느라고 내버려둔 여자, 아무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어진 노인, 아무런 속죄도 되지 못하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이 세상 가득한 저 모든 빛. 이 모든 것을 다 함께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세 가지 운명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그러나 각자에게는 저마다인 죽음. 하여간, 그렇기는 해도 역시 태양은 우리의 뼈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 본문 중에서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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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17

카뮈의 대표작으로 칭하는 이방인보다 안과 겉이 더 대단한 작품이죠. 태양빛에 양면성을 절망과 희망의 양극성으로 말해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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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라수나비

2009.03.04

으으으....카뮈.... 읽어야지..생각만해놓던...이렇게 심히 공감가는 글을 읽어보니 당장 서점에 달려가 읽고싶어지네요... 정말 잘 읽었어요.....(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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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2sm

2009.03.02

카뮈의 산문 중 가장 좋아하는 <안과 겉>을 피디님 칼럼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저도 저 부분을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것 같아요. 아, 삶의 아이러니를 가장 따뜻하게, 때론 가장 대놓고 노출했던 카뮈에 대한 저의 감정도 애매모호한 것 같아요. 물론 그의 글은 언제나 워너비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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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겉

<알베르 카뮈> 저/<김화영> 역

파도

<버지니어 울프> 저/<박희진> 역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 저/<김화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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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실존주의 문학의 정수라 평가받는 『이방인』에는 살인 동기를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이가 등장한다. 그는 삶과 현실에서 소외된 철저한 이방인으로,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한편으로는 그 죽음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인간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부조리에 대한 추론을 시작으로 철학적 자살, 부조리한 인간, 철학과 소설, 키릴로프 등 철학적 에세이를 엮은 『시지프의 신화』는 권위에 도전하였다는 벌로 큰 돌을 산 정상에 올리는 행위를 무한정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의 죄를 모티브로 하여 일상생활과 예술작품에서 드러나는 부조리한 측면을 명쾌하게 분석한 철학 에세이다. 1947년 출간된 『페스트』는 그 해의 비평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작품에서 페스트는 모든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 즉 감옥 속의 인간을 상징한다. 카뮈는 주인공인 의사 리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모순에 찬 삶 평온한 삶 위에 덮친 모순과 허망, 즉 부조리 속에서 그 상황을 직시하고, 낙관적 기대 없이 묵묵히 그 허망과 맞서서 대결하는 인간상을 그렸다. 이런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알베르 카뮈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책은 『반항하는 인간』이라고 한다. 카뮈의 철학적·윤리적·정치적 성찰을 담은 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반항하는 인간』은 『시지프의 신화』와 함께 카뮈의 대표적인 시론(試論)이다. 1951년 출간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들끓게 했던 이 책에서 카뮈는, 폭력과 테러를 역사적·철학적·정치적 맥락에서 살피며,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성찰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