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문의 새해 첫날 자 특별기획대담에 등장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헛된 희망은 품지 말라는 투로 말한다. “우리는 정상적인 경기 하강 국면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위기라는 점에서 앞으로 20~30년 안에 안정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가 사라지고 다른 종류의 세계 체제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 월러스틴은 다소 느긋해 보인다. 그가 “지난 30년간 썼던 글들에서 수차례 설명한 얘기”여서일까. ‘거 봐라, 내 말이 맞지.’라는 투다. 사실 나는 우리의 앞날에 대한 월러스틴의 ‘참담한’ 예측을 10여 년 전에 접한 바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미래학 분야의 주요한 업적”이라 일컬은 『자유주의 이후』(강문구 옮김, 당대, 1996)에서 말이다.
내게 월러스틴의 『자유주의 이후(After Liberalism)』는 몹시 충격적이었다. 당혹스러웠고 놀라웠으며 섬뜩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 책을 계기로 우리나라 신문과 잡지에 곧잘 등장하는 월러스틴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다. 그의 섬뜩한 ‘예언’을 맛만 본다. 제2장 「평화, 안정, 그리고 정통성-1990~2025/2050년」에서 두 대목을 따온다.
“1990년에서 2025/2050년에 이르는 시기는 평화와 안정, 그리고 정통성에 관한 한 가장 짧은 시기가 될 가능성이아주 높다. 세계 체제의 헤게모니 세력으로서 미국의 쇠퇴가 그 부분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더 큰 견지에서 볼 때 그것은 세계 체제로서의 세계 체제의 위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1997년 무렵만 해도 와 닿지 않았던 월러스틴의 전망은 결과적으로 놀라운 정확성을 보여준다. 그것도 시기적으로 15년 가까이 이르게 전 세계적인 위기가 밀어닥치고 있으니 말이다. 하긴 1990년대 우리가 처한 꽤 ‘정상적인’ 상황도 여의찮았다.
“전 세계적으로 실직률은 높고 이윤율은 낮다. 심각한 재정 불안정이 존재하는데 이는 단기 파동에 대한 금융시장의 첨예하고 또 근거 있는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회적 불안정의 증대는 그럴듯한 단기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따라서 안정감을 재창출하지 못하는 정부의 정치적 무능력을 반영한다. 국내의 희생양과 국가 간의 인근궁핍화(beggaring-thy-neighbor), 이 양자는 통상의 조정책이 즉각적인 진통제의 역할을 별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더욱더 큰 유혹이 된다.”
경제 분석가이자 기업 활동 컨설턴트인 김재인의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다운』(서해문집, 2008)은 미국 발 세계 경제의 위기가 가시화하기 직전, 그것의 임박한 국면과 엄청난 위험성을 드러낸 역저(力著)다. 나는 약간 뒤늦었지만, 이 책을 내가 뽑은 2008년 올해의 책 국내서 부문에 추가한다.
“이 책은 곧 닥쳐올 미래, 아니 현재에 대한 솔직하고 객관적이며 아픈 지적이다.” 머리말의 자평은 이 책을 함축한다. 김재인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렇게 선언한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풍요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지구의 풍요 또한 끝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말을 맞이하지 않으시려면 빈곤을 준비하십시오. 빈곤이 싫다면 종말을 맞이하십시오.”
김재인은 21세기 초반을 강타한 세계 경제 위기의 징후로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꼽는다. 달러는 2차 대전 이후 기축통화(국제 거래의 거래 수단) 기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방만해지면서 미국은 정부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달러를 마구 찍는다. “현재 미국 정부의 누적 적자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자그마치 9조 달러에 이른다.”
달러의 가치 하락은 모든 교역 상품의 가격을 상승시켜 세계 각국의 물가를 오르게 한다. 또한 그것은 미국 경제의 침체로 이어진다. 미국은 이제 달러화의 지속적 공급을 통해서만, 서비스 산업에 의존해서만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달러화의 꾸준한 공급은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다. 그나마 기댈 언덕인 서비스 산업의 활성화마저 소비가 위축된다면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서비스 산업의 침체는 궁극적으로 미국에 소비재를 공급하는 수많은 개발도상국에 타격을 입힐 것이고, 이는 또다시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 미국 달러 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세계 금융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달러 보유액이 크면서 미국과의 교역 규모가 큰 나라들의 고민이다.”
여기서 살짝 김재인은 눈길을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로 돌린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제조업이 경제 성장 또는 국민들의 경제적 소득에 훨씬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다.”
서비스 산업이라 하면 “식당을 비롯한, 말 그대로 굴뚝 없는 자영업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서비스 산업은 금융, 보험, 지적 재산권, 법률, 교육, 의약품 특허, 영화와 음악을 포함한 문화 산업, 외식 산업, 커피 등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대부분이 포함된다.”
이런 맥락으로 봤을 때, 그가 파악하는 한미무역협정에서 미국의 노림수는 우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미국이 한미FTA에서 노리는 것은 간단하다. 제조업은 주고 서비스업과 농업은 받는다! 점잖게 말해서 ‘주고’ ‘받는다’고 하지 실제로는 탈취에 가깝다.” 어째서?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법적, 제도적, 문화적 장치가 수도 없이 강제되고 있”어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자의 정의 또한 명쾌하다. “신자유주의는 이른바 선진국, 즉 경제적 힘과 군사적 힘을 두루 갖추었으되 국내적인 경제 발전 동력은 바닥을 드러낸 국가들이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세계 경제 시스템을 자기네 입맛에 맞춰 고안해낸, 야만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스템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자유주의는 곧 붕괴되고 말 것이라고” 단언한다.
김재인은 세계 경제의 앞날뿐 아니라 우리 삶의 질 역시 몹시 나빠지리라 내다본다. “필자는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증시가 2007년과 같은 지점에는 영원히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증권 시세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 풍요가 2007년을 정점으로 더 이상의 풍요는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저자의 민영화 비판과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지지한다. “무차별적인 민영화의 부작용은 고용의 불안이다.” 전체 근로자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보다 정규직과의 심한 임금 격차에 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는 그는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임금, 동일한 근무 환경을 제공한다면 비정규직도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무엇보다 그의 통렬한 현실 인식에 공감한다. “일본의 극우파는 우리 사회 내에서 암약하고 있는 수많은 친일 후손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책이 왜 이른바 유력 일간 신문들의 2008년 올해의 책 선정에서 배제됐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다수의 극우파-대다수의 우파-소수의 중도파-극소수의 좌파로 이루어져 있다. 필자의 구분에 의하면 좌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과 극우파들은 대한민국에 너무나 많은 빨갱이 좌익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거가 희박한 그러한 논리는 무시할 만하다.”
그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분명 정치적으로 수준이 높지도 않고, 분명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만한 학습도 되어 있지 않다.” “우리 사회야말로 가진 자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어느 곳에 가도 ‘가진 자’로 인정받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교육열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간판에 대한 열정”이다.
소득에 견줘 지나친 에너지 소비에 대한 몰인식, 영어 공용화론의 허구성, 엘리트 체육의 과잉과 국가대표 선수 합숙 훈련의 유별남, 부동산 거품에 넋이 나간 상태, 독도 문제를 보는 독자적 시각 등도 유의미하지만, 재계가 운영하는 어느 경제신문이 펼친 ‘기초질서가 국가 경쟁력’이라는 캠페인에 대한 반박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근본적으로 권력과 금력을 소유한 자들이, 그 힘이 국민들이 소유한 힘과 똑같은 크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기초 질서, 아니 기본 질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저자가 긍정하는 ‘논술 교육’의 내실에 대해서만은 몹시 회의적이다. 한편 그들이 “아이들이 똑똑해진다는, 다시 말하면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는 이유로 그 교육을 약화시키려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권력과 금력을 소유한 자들’은 자신들의 돈과 힘을 흠집 내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진 않을 것이기에.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풍요를 지속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분배를 통한 내수 기반 확충에 있다.” 이와 아울러 김재인은 자원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힘을 자원 확보에 쏟아야 한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의 『내려가는 연습』(위즈덤하우스, 2008)은 다소 아쉽다. 상승을 위한 하강을 전제로 하여 그렇겠지만, 다가올 험난한 상황에 대한 실감이 떨어진다. ‘경제빙하기’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리기에는 좀 미흡하다.
“시대착오적이며 앞뒤가 맞지 않는 발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을 쓰지 말자거나 취업 준비생과 경쟁이 치열한 분야의 종사자는 베스트셀러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의 조상들은 지구상 생물의 90퍼센트 이상이 멸종하는 와중에도 의연하게 살아남아 오늘의 문명을 일구어냈다. 우리는 살아남는 데 있어서는 지구상 최고의 생명체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문장이다. 인간이 의연하게 살아남았다기보다는 “호모사피엔스는 중생대 말기와 신생대 초기에 발생한 생물의 대량 멸종으로 인해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자연의 재앙, 인간』, 226쪽)는 게 더 적절하다. 인간의 생존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한국인만큼 자존심 강한 사람들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 역시 근거가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올라올 때는 구경꾼이었지만 내려가는 우리는 관찰자다.” “‘진통’이 ‘전통’을 만들어낸다.” “‘반전’은 ‘반문’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절호의 찬스다.” 같은 유비대조(類比對照)와, 겁(劫)과 인연에 얽힌 『범망경(梵網經)』의 설명이 책을 버텨준다.
최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