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요
청송에서 영덕으로 넘어가는 길은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은 비경 중의 하나다. 안동에서 영양 수비를 지나 후포로 이어지는 길이 낙엽이 푹푹 쌓인 가을 길을 걷는 느낌이라면, 이 길은 마치 긴 겨울이 끝나고 개나리 진달래가 가득 피어난 들길을 걷는 느낌이다. 모두가 감탄하는 이 아름다운 산길에는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
2008.03.25
청송에서 영덕으로 넘어가는 길은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은 비경 중의 하나다. 안동에서 영양 수비를 지나 후포로 이어지는 길이 낙엽이 푹푹 쌓인 가을 길을 걷는 느낌이라면, 이 길은 마치 긴 겨울이 끝나고 개나리 진달래가 가득 피어난 들길을 걷는 느낌이다. 모두가 감탄하는 이 아름다운 산길에는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
지난 8월 말에 지영 씨는 친구들과 함께 뒤늦은 휴가를 떠났다. 지영 씨는 병원에 이웃한 태화동 산 몇 번지로 시작하는 허름한 집에서 가족과 오순도순 살았다. 노동일을 하는 지영 씨 아버지는 마치 1980년대 농민을 주제로 한 민중 판화의 주인공 같았다. 저렇게 부실한 몸으로 벽돌이나 한 장 제대로 나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체력이 약했고, 어머니는 오래된 호흡기 질환에 내내 시달리고 있었다. 때문에 두 분은 늘 열심히 일했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그 집 식구들은 대하면 대할수록 참 고운 사람들이었다. 지영 씨는 그런 환경에서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년생인 오빠를 위해 스스로 대학을 포기했다. 고3 때부터 간호학원을 다니면서 간호조무사 자격을 땄고, 지난 몇 년 동안 참 열심히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지영 씨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대학에 진학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그런 지영 씨네 가족이 참 보기 좋았다. 그분들이 사는 방식은 많은 것을 손에 움켜쥐고도 늘 부족해하는 우리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각자 자기 길을 헤쳐나가는 아이들과,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지영 씨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직장생활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휴가를 얻은 것이다. 그동안은 알뜰하게 사느라 휴가 한번 제대로 간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모처럼 설레는 꿈을 안고 친구들과 함께 동해안으로 떠났다.
그런데 그 한적하고 고운 산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다른 친구들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지영 씨는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된 지영 씨는 대구의 대학병원으로 재이송되었고, 그곳에서 2주 동안이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다. 지영 씨의 후두부를 지나는 정맥이 파열되어 뇌출혈이 일어났고, 수술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2주가 지난 어느 날 다행스럽게도 가늘게 의식을 회복했다.
중환자실에서 잠깐 의식을 회복한 지영 씨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마자 힘들게 겨우 꺼낸 말은 “엄마 아빠, 미안해요.” 하는 한마디였다. 그렇게 잠시 깨어난 지영 씨는 그날 저녁에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다시 3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영 씨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영 씨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다. 대학병원으로부터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들은 지영 씨 부모님은 아는 의사가 있다면 누구라도 붙들고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어디 용한 의사나 다른 병원은 없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천번 만번 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아는 의사라곤 내가 유일했다. 그분은 대학병원에서 복사해온 판독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지영 씨는 이미 시신경까지 손상을 입은 상태였고, 뇌 전체가 거의 출혈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시점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기적도 있다는 말로 위로해줄 수밖에.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그분의 검은 얼굴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까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희망이 없다는 사실에 아저씨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잠시 후 그 순박한 아저씨가 구부정한 허리를 굽히면서 일어서시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의사의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웠다.
아저씨가 진료실에서 나간 뒤 지영 씨가 잠시 회복되었을 때 흩어진 정신을 모아 겨우 했다는 말, 그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지영 씨는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을까?
그 순간에도 어려운 형편에 감당해야 할 비싼 병원비를 걱정했던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자기의 운명을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서 그 흩어져버린 의식을 애써 끌어모아 슬픔에 잠길 부모님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그것을 마지막 인사로 지영 씨는 짧지만, 꽃처럼 아름다웠던 생을 지난주에 마감했다.
지영 씨,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리고 잘 가요.
※ 운영자가 알립니다.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8월 말에 지영 씨는 친구들과 함께 뒤늦은 휴가를 떠났다. 지영 씨는 병원에 이웃한 태화동 산 몇 번지로 시작하는 허름한 집에서 가족과 오순도순 살았다. 노동일을 하는 지영 씨 아버지는 마치 1980년대 농민을 주제로 한 민중 판화의 주인공 같았다. 저렇게 부실한 몸으로 벽돌이나 한 장 제대로 나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체력이 약했고, 어머니는 오래된 호흡기 질환에 내내 시달리고 있었다. 때문에 두 분은 늘 열심히 일했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그 집 식구들은 대하면 대할수록 참 고운 사람들이었다. 지영 씨는 그런 환경에서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년생인 오빠를 위해 스스로 대학을 포기했다. 고3 때부터 간호학원을 다니면서 간호조무사 자격을 땄고, 지난 몇 년 동안 참 열심히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지영 씨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대학에 진학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그런 지영 씨네 가족이 참 보기 좋았다. 그분들이 사는 방식은 많은 것을 손에 움켜쥐고도 늘 부족해하는 우리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각자 자기 길을 헤쳐나가는 아이들과,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지영 씨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직장생활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휴가를 얻은 것이다. 그동안은 알뜰하게 사느라 휴가 한번 제대로 간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모처럼 설레는 꿈을 안고 친구들과 함께 동해안으로 떠났다.
그런데 그 한적하고 고운 산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다른 친구들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지영 씨는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된 지영 씨는 대구의 대학병원으로 재이송되었고, 그곳에서 2주 동안이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다. 지영 씨의 후두부를 지나는 정맥이 파열되어 뇌출혈이 일어났고, 수술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2주가 지난 어느 날 다행스럽게도 가늘게 의식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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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지영 씨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다. 대학병원으로부터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들은 지영 씨 부모님은 아는 의사가 있다면 누구라도 붙들고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어디 용한 의사나 다른 병원은 없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천번 만번 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아는 의사라곤 내가 유일했다. 그분은 대학병원에서 복사해온 판독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지영 씨는 이미 시신경까지 손상을 입은 상태였고, 뇌 전체가 거의 출혈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시점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기적도 있다는 말로 위로해줄 수밖에.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그분의 검은 얼굴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까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희망이 없다는 사실에 아저씨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잠시 후 그 순박한 아저씨가 구부정한 허리를 굽히면서 일어서시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의사의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웠다.
아저씨가 진료실에서 나간 뒤 지영 씨가 잠시 회복되었을 때 흩어진 정신을 모아 겨우 했다는 말, 그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지영 씨는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을까?
그 순간에도 어려운 형편에 감당해야 할 비싼 병원비를 걱정했던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자기의 운명을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서 그 흩어져버린 의식을 애써 끌어모아 슬픔에 잠길 부모님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그것을 마지막 인사로 지영 씨는 짧지만, 꽃처럼 아름다웠던 생을 지난주에 마감했다.
지영 씨,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리고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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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가 알립니다.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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