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흘린 눈물의 의미 -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200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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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가,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터뜨렸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일을 떠올릴 때마다 이 문장을 생각해, 조건 반사처럼. 내 생각엔, 깊은 슬픔에는 언제나 약간의 해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나 싶네.” (본문 중에서)
그는 모범생이었다. 성적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었다. 학급위원이나 반장을 도맡아 했으며, 늘 규율과 양심을 따랐다. ‘특별히 핸섬한 것은 아니지만 사뭇 청결한 느낌의 깔끔한 얼굴’로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요컨대 그는 학창 시절 누구의 기억에나 한 명쯤 있을 법한, 그런 타입의 남학생이었다.
화자인 ‘나’는 소설가다. ‘바닐라’ 같은 그 남자와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러나 당시 좌충우돌 젊음의 에너지를 분출하던 ‘나’는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1년이나 같은 반에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두 사람은 우연히 루카라는 중부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마주친다. 그 남자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이미 중년이 된 그들은 반가워하며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와인을 따르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간 끝에, 그가 마침내 ‘그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옛날부터 내가 정말 따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어.”라는 말로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자신을 둘러싼 틀에 맞추어 살아왔고, 그래서 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었노라고. 그러나 ‘순탄한 인생’ 덕분에 그는 삶의 목표와 의미를 상실한다. 모든 것을 잘했지만, 정작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어정쩡한 기분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후지사와 요시코. 교내에서 손꼽히는 미인에다 성적도 좋았고, 운동도 잘했으며, 당연히 리더십도 갖추고 있어서 학급회의에서는 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말을 했다. 그와 후지사와 요시코는 소위 ‘정신적인 쌍둥이’였다.
우리들은(이라 함은 나와 내가 사귀고 있었던 불완전한 친구들을 말한다.) 아무도 그들을 놀리지 않았다. 화제에 올리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에게는 우리들의 상상력이 파고들 여지가 손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은 당연한 무엇으로서 거기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스터 클린과 미스 클린. 치약광고 같은 것이다. (본문 중에서)
두 사람 다 인기가 많았지만 친구가 없었다. 그에 대해 하루키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마도 불완전한 보통 인간은 자기와 비슷한 정도의 불완전한 인간을 친구로 삼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래서 그들은 늘 고독했고, 언제나 긴장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그 때문일 것이다.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연인이 되었다. 늘 함께 공부를 하고, 틈만 나면 이야기를 나눴으며, 방과 후엔 서로를 기다렸다가 나란히 같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둘 사이의 관계에서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육체적인 일체감’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프러포즈를 했을 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있지, 너, 그건 무리야. 나는 너랑 결혼할 수 없어. 나는 나보다 몇 살 위인 사람이랑 결혼할 거고, 너는 몇 살 아래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게 세상의 보통 흐름이라고. (중략) 너는 아직 세상이란 것을 잘 몰라. 우리가 대학을 나와 곧장 결혼한다 해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우리는 지금처럼 살 수는 없을 거야. 물론 나는 너를 좋아해. 하지만 그것과 이것과는 별개야.”
그녀의 미소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했고, ‘세상에 길든 인간이 손아래 미숙한 인간의 정론을 들을 때’ 같은 여유가 묻어났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을 알 것 같으면서도 납득할 수 없었고, 자신을 둘러싼 벽을 무너뜨릴 수 없음이 무력하고 서글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둘의 만남은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허감은 메워지지 않았다.
정열이라는 것은, 어떤 시기에는 그 자체의 내재적인 힘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이즈음에서 손을 쓰지 않으면, 우리의 관계도 언젠가는 궁지에 몰려, 그 정열마저 질식하여 소멸해버릴지도 모른다. (본문 중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지만, 예전과 같은 대답만 돌아온다. 그 이상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내내 울었다. 그녀는 어딘가 모르게 위태로워보였고, 슬퍼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그는 도쿄에서 새로운 애인을 만들었고, 한동안 동거를 했다. 그러나 더 이상 후지사와 요시코와 사귀었을 때 같은 ‘미묘한 마음의 떨림’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이미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것은 ‘이미 봉인된 일’이었고, 어느 누구도 그 봉인을 뜯을 수 없는 것이었다. 팔짱을 끼고 문간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영원히 이별을 고한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는 바닥까지 텅 비어 버린 느낌을 받는다.
“옛날, 아주 어렸을 적에 한 동화를 읽은 일이 있었어.”
그는 먼 쪽 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떤 줄거리였는지는 다 잊어버렸는데, 마지막 구절만큼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지. 왜냐하면 그렇게 이상하게 끝나는 동화는 처음 읽어봤기 때문이야. 그 동화는 이런 식으로 끝이 나.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터뜨렸습니다.’라고. 동화의 끝치고는 좀 이상하다 싶지 않나?” (본문 중에서)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이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헤어진 첫사랑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흔하다. 당장 떠오르는 영화만 해도 <초원의 빛> 같은 고전부터, <시네마 천국> <비포 선셋>에 이르기까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닳고 닳은 러브 스토리가 사뭇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매번 감정의 폭과 밀도와 질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어려운 문제다. 한때 깊이 사랑했다가 헤어진 연인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났을 때, 가장 ‘적절한 반응’이란 과연 무엇일까. 재회의 기쁨? 열정의 부활? 뭐, 그럴 수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차가운 외면? 담담한 인사? 희미한 미소? 아마 그럴지도. 하지만 그게 다일까.
긴 이별 후에 다시 만난 연인들의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미 어찌해 볼 수 없는 시간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은 아프다. 그래서 슬프다. 다시, 그녀의 눈물을 떠올린다. 결혼해 달라는 그의 애원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후지사와 요시코는 울고 또 울었다. 내내 울었다. 그때 그녀가 흘린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기, 그녀의 눈물과 오버랩되는 한 장면이 있다.
그가 부산에 간 날이면 나는 외롭고 쓸쓸해서 이불 속에서 몰래 숨을 죽여 흐느끼곤 했다. 아무리 시장 바닥에 인간들이 악머구리 끓듯 하면 뭐하나. 그가 없는 서울은 빈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남은 남녀는 절대로 헤어져서는 안 된다. 하루만 더 그 무의미, 그 공허감을 견디라 해도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루하루 절박하고도 열정적으로 그를 기다렸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 중에서)
연하의 그 남자는 멋쟁이였다. 잘생긴 얼굴에 기분이 내키면 멋들어지게 시를 암송했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레코드판을 걸어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었으며, 추운 겨울날 영화관에서 손가락장갑을 뒤집어 애인의 언 발을 녹여주는 센스를 가진 남자였다. 그렇게, 소설 『그 남자네 집』의 두 남녀 주인공은 세상사람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큼 열렬하고 로맨틱한 연애를 한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암울한 시기였지만, 여자는 ‘그해 겨울은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겨울이었다.’라고 회상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다.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휴전이 되고 집에서 결혼을 재촉했다. 나는 선을 보고 조건도 보고 마땅한 남자를 만나 약혼을 하고 청첩장을 찍었다. 마치 학교를 졸업하고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하는 것처럼 나에게 그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 남자에게는 청첩장을 건네면서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나서 별안간 격렬하게 흐느껴 울었다. (중략) 그러나 그건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 중에서)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개인의 가치관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기질적인 것이면서 사회적인 것이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녀의 속물근성과 보수적인 태도와 솔직하지 못한 마음과 용기 없음을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의 눈물이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그리움인 것이다. 보석처럼 빛나던 시절에 대한 애틋한 감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만큼의 쓸쓸함.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폭소를 터뜨렸다는 말이 울음을 터뜨렸다는 말보다 더 슬프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결국 그녀의 눈물은, 하루키의 말처럼 서로 이질적인 가치관들이 손에 잡힐 듯 명백히 공존했던 시대에 바치는 찬란하도록 슬픈 오마주가 아니었을까.
“지금 같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나도 나름대로 나이를 먹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당시에는 꿈에도 그런 생각은 못했어. 그때 나는 형편없는 어린애였던 거야. 인간들 저마다에 미세한 마음의 떨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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