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27. 김상봉의 『도덕교육의 파시즘』(길, 2005)을 읽다.
언론이나 사회 각계 인사들의 입을 통해 걸핏하면 들을 수 있는 한탄 가운데 하나가 ‘날이면 날마다 청소년의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타령이다. 그런데 김상봉 교수의 최근작 『도덕교육의 파시즘』(길, 2005)은, 지금 이대로라면 차라리 “도덕 교과 폐지 운동을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시급한 과제이며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도 “양심적인 일”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모두 아는 사실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 중엔 ‘철학’이 없다. ‘국민윤리’가 철학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런 반성 없이 사용하고 있어서 그렇지, 국민윤리란 윤리학을 포함하고 있는 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생경한 용어이다. 국민윤리를 국가 공동체 속에서 구성원들의 가치?규범에 관련된 내용이라고 말하면 억지 해명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미 그것은 윤리가 갖는 보편 법칙을 거세하고 왜곡한 ‘이중 언어’에 해당한다.
윤리나 도덕은 그 보편적 성질 때문에 자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이때 공동체는 가족일 수도 있고 학교일 수도 있고 국가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인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이라는 족쇄에 포박된 작금의 윤리 교과서가 가장 중요한 헌신의 대상으로 가르치는 공동체는 오로지 국가와 민족이다. 이런 국민윤리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것이 어떤 전쟁이든 국가 이익과 민족 번영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것이다. 또 무수한 나를 희생해서 기업을 살리고, 사회를 안정시키고,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게 옳은 것이다.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도덕 교육이 자유로운 개인 주체를 바탕으로 인류라는 보편 범주를 윤리의 터전으로 삼기보다는, 국가나 민족을 윤리의 주춧돌로 삼게 된 것은 식민지 교육의 잔재이다. 일제의 교육 핵심은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무장된 황국 신민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그런 교육 목표 속에서 식민지 조선인은 자유의지와 내면의 입법 능력을 상실한 노예 도덕을 습득했고, 불행하게도 이런 사정은 해방이 되고 나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나를 죽이고, 국가를 받든다’는 노예의 도덕으로 학습된 독재자들이었다.
우리나라 도덕 교육의 윤리적 왜곡이 시작된 단초는 일제의 국가주의 교육관에 있지만, 근본 원인을 캐고 들어가면 국가와 도덕 사이의 근대적 갈등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근대 사회는 인간을 침해할 수 없는 양심과 도덕의 주체로 설정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국민국가의 구성원으로 존재할 것을 요구하는 근대 세계에서 국가는 자신의 일반 의지에 국가의 구성원이 참여할 것을 강제한다. 때문에 개인과 국가는 도덕의 문제에서 첨예하게 부딪치게 된다. 이때 공교육의 주체인 국가는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국가가 국민들에게 가르칠 도덕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결정하고 하달한다.
현재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윤리 교사 자격증은 철학과 졸업생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까닭은 박정희에 이어 또 한 번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이 오랜 군부 정권을 정당화해 줄 이데올로기 장치를 강화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보편과 자유의 학문인 철학보다는 좀더 정치적인 새로운 학문(!)을 창출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국민윤리학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학문으로, 1979년부터 동국대와 경북대에 있던 국민윤리교육학과가 1981년 서울대학교에 번듯이 입성하게 되었다. 이 책에 대한 윤리교육학과 교수들의 반박과 비난이 상당하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제대로 된 도덕 교육을 위해서는, 아직도 본래의 이름을 존속하고 있는 서울대학교의 국민윤리교육학과는 물론이고 명칭을 바꾼 각 대학의 윤리교육학과가 철학과로 폐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국의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사 연구가 학문일 수 있는가” “내가 하는 학문이 인류?인간이 부재한 것이 아닌가”(윤해동, 『식민지의 회색지대』, 역사비평사, 2003)라고 회의했던 어느 한국사 전공자의 고민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절충적이고 과도기적인 단계로, 중학교 ‘윤리’ 과목은 국민윤리과가 계속해서 맡고, 고등학교는 ‘윤리’를 없애는 대신 ‘철학’ 과목을 새로 만들어 철학과에게 맡기는 것을 감히 제안해 본다.
사족: 강요의 몫도 크지만, 도덕이 불의 앞에서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괴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그것이 타율적인 강요가 아니라 내면적이고 자율적인 강제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국가 공동체를 위한 헌신만을 강요하고 개인에게 자신을 위한 관심과 배려를 허락하지 않음은 물론, 인류 보편을 위한 윤리적 판단을 중지할 때, 도덕은 결국 이 책의 제목처럼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적 도구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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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