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배에다 실은 물건이 모두 썩고 말 것이다.
해야 할 때에 하지 않으면 자기의 책임을 다할 수가 없다.
- 반경盤庚의 가르침, 『서경』 중에서
청나라가 막 생기면서, 조선은 두 호란을 겪었다. 첫 번째는 형제의 예를 맺는 것으로 끝났지만, 9년 후 청은 다시 한 번 군신의 예를 요구하며 조선으로 짓쳐들어온다.
9년 동안 인조는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었다. 옳음을 외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 법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응전이라는 이름으로 산성에 웅크려 숨어 있던 조선의 군주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맬 뿐이었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로 나아가 청 태종에게 고개를 숙인다.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이다.
친명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반청에 대한 보복은 무섭게 돌아왔다. 왕자들을 비롯, 여러 사람이 인질로 청에 끌려갔다.
그 시대, 중국은 실로 세계의 중심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과 명이라는 거대한 두 개의 흐름이 교차하고 있었다. 인조의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그곳에 서 있었다. 한낱 오랑캐라 여겨 무시했던 청은 무력으로 명을 전복시켰다. 힘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님을 두 왕자는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둘이 추구했던 바는 달랐지만 그럼에도, 두 왕자가 추구했던 것은 결국 변화였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소현세자는 개방을 말했다. 몇 세기 전, 한반도는 주자학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닫아 걸어놓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개방을 말하던 소현세자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다. 9년 동안의 타국 생활을 버텨냈던 세자는 조선에 돌아온 지 일년도 채 안 되어 죽었다. 급서였다. 세자의 사인은 무엇이었을까. 독살이었을까? 돌아가 확인할 수 없으니 알 길은 없다. 다만, 그를 죽인 것은 조선이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봉림대군은 북벌을 말했다. 청 인구의 대부분인 피지배층은 한족이었고, 지배층은 소수 만주족이었다. 아무리 위세가 등등해도 신생국이었다. 북벌은 가능성이 있었다. 만주족의 총 인구는 당시 조선 인구보다 적었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친명을 주장하고 의리를 외쳤던 사대부들이 이번에도 웅크렸다. 그들은 소국으로 대국을 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대부를 대표하던 송시열, 조선과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 그러했다. 기해독대에서 승부수를 던졌던 효종 역시 얼마 후 급서한다. 40세, 장년의 나이였다.
거대한 흐름들의 맥을 정확히 짚어 그에 따라 변화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변화를 추구했던 두 명의 군주는 죽었다. 시대는 변한다. 명이 무너지고, 청이 들어섰다. 반정 이후 인조는, 조선은 무엇을 했는가. 효종과 북벌. 안타까움이 세월만큼 길고 깊지만, 이루지 못한 효종의 꿈은 더 유별나게 안타깝다.
역사를 조망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렌즈를 사용한다. 지배와 피지배 관계라는 렌즈로 역사를 들여다본 사람도 있었고, 유목과 정착의 렌즈로 역사를 들여다본 사람도 있었다. 설명과 이해, 분석을 위해서. 많은 것을 위해 역사를 되돌아보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현재를 위해서다. 묻혀져버린 기억을 닦아 오늘을 맑게 보기 위해, 우리는 과거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조선 왕 독살사건』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하나의 틀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까지. 조선 왕 4명 중 1명꼴로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다. 어째서 그들은 그 어디보다 높던 용상에서,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독살당했던 것일까. 그들은 무언가를 바꾸거나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죽였고, 자신 또한 죽었다.
변화와 정체. 진보와 보수. 바꾸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둘은 언제나 대립해왔다. 역사가 기억하는 수많은 개혁들, 정변들, 쿠데타들. 대립은 그 극단에 이르러 어떤 방법으로든 폭발했다. 왕들의 암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조선 1,000년래 가장 큰 사건으로 꼽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안타까움의 순간은 그 외에도 수없이 많다. 왜 우리는 한 발자국씩 늦었는가. 왜 앞을 내다보고 전진하는 대신 뒤를 돌아보며 잃을 것들에 ?해 걱정해야 했는가.
아끼고 지켜 후대에 남길 것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전을 가로막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 역사의 안타까움은 진전의 시도들이 번번이 발목을 잡혔던 데 있지 않던가.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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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맘
2007.11.17
뽕뽕이★
2007.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