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성공, 신개념 의학수사 드라마 -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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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병원에 자주 갈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가게 되면 의사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명쾌한 답을 얻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만나는 의사마다 의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하거나 연구를 게을리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어제는 못 고쳤던 병을 오늘은 속속 고쳐내고 있지만, 이제까지 인간이 인간의 몸에 대해 알아낸 것은 우리가 광막한 우주에서 알아낸 부분만큼 미약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플 때면 병원을 찾지 않을 수 없고, 병을 고치겠다는 희망을 품으며, 어떤 병은 현재로서는 고칠 수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20년 전에야 못 고쳤다지만, 지금쯤은 방법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억지를 부려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몸이 하루가 다르게 점점 절실함을 더해가며 전해 주는 메시지이지요. 그렇다고 웰빙 바람에 온몸과 마음을 내맡기다 보면, 자칫하면 심기증 환자의 대열에 끼기가 십상입니다. 어디서는 이게 좋다고 하고, 어디서는 그건 나쁘고 저게 좋다고 하고, 나쁜 것은 너무 많고, 좋은 걸 골라먹고 실천하려면 품이 들고 해서, 심지가 그다지 굳건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정신만 사나워져서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러다가는 결국 플라시보 효과를 믿자, 몸에 좀 나쁘면 어때, 맛있는 걸 맘 편하고 즐겁게 먹으면 결국 몸에도 좋지 않을까,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하지 않으면 어떠랴 마음만 편하면 만병이 절로 낫는 거지,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게 되는 겁니다. 몸이 아주 건강하여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다면 복 중에 복이겠지만, 과유불급하지는 말자는 건전한 결론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애써 다잡은 마음에 잠시나마 찬물을 끼얹은 드라마가 NBC에서 2004년 가을 신개념 의학수사 드라마를 표방하고 나온 작품인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Medical Investigation〉입니다.

희귀하나 많은 사람 사이에 창궐할 가능성이 있는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의학수사대가 사건 해결에 나선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었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질병은, 인류의 의학 수준을 과장하여 바라보지 않고 한껏 냉정함을 유지한다고 해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메디컬’도 ‘메디컬’이지만, 뒤에 붙은 ‘인베스티게이션’이라는 단어 때문에, 질병의 발생이 인간이 저지른 범죄나 테러와 연관되는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빗나간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드라마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식으로 허망하게 병에 걸려 죽어갈 수 있는지를 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직업이 변호사인 주인공들의 연애 이야기, 직업이 의사인 주인공들의 연애 이야기, 주인공들의 직업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것이 이야기의 전개에는 아무런 노릇도 못하는 드라마는 연애 이야기가 재미있을 경우에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ER〉이나 〈그레이 아나토미〉가 재미있는 이유는 번잡하고 긴장감 넘치는 병원 풍경과 전문인으로서 의사의 모습을 그리는 가운데, 군데군데 적절하게 드라마를 버무려 넣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에서 수사의 대상이 인간이나 인간이 벌인 행위가 아니라, 질병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주 낯선 느낌마저 듭니다. 드라마에서 드라마를 찾아보기가 힘들고, 있다고 해도 소재에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까요.

질병 자체가 수사 대상이고, 그러다 보니 디테일한 드라마를 살리기 어렵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발병이 아무리 극악하더라도 인간이 저지른 짓에 원인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미국 국립보건원의 최고 엘리트 의학연구원들조차 매번 원인마저 찾지 못하고 쩔쩔매고,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의 생명 앞에서 무력해 하는 그들을 보면 시청자들도 함께 따라서 무력해지고 맙니다. 세상에 그러한 질병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사람이 정말로 그런 식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은 미국 방영 당시 파일럿 방영분이 금요일 10시 프라임 시간대에서 시청률 상위권을 차지하며 선전했지만, 1시즌으로 마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두 달 남짓 늦게 시리즈 프리미어를 시작했으며, 같은 희귀병을 다룬 〈하우스〉의 거센 공세에 밀려, 시간대가 다름에도 빨리 막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전에 화산폭발을 다룬 〈볼케이노〉〈단테스 피크〉, 혜성충돌을 그린 〈아마겟돈〉〈딥 임팩트〉가 각각 같은 시기에 개봉되었을 때,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 더 뛰어났던 〈볼케이노〉와 〈아마겟돈〉이 압승을 거두고, 나머지 두 영화는 참패를 면하지 못했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은 〈하우스〉의 압도적인 공세라는 복병 외에도 태생적인 한계를 끼고 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시즌을 이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의학수사적 소재인 강도 높은 희귀병과 어이없는 사건 발생 원인을 만들어 내는 데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할리우드 쇼 비즈니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뿐이다”라는 작금의 선언에도, 매번 에볼라급 바이러스의 출현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소재를 신선한 각도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 제작진을 궁지로 몰아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이 드라마를 보고서, 역설적으로 예의 그 건전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심기증이 없던 사람의 마음마저도 흔들 듯한 절망의 에피소드 속에서, 10억 명 중 하나가 걸릴 법한 병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밝은 마음으로 즐거운 일을 하며 살아가자고 자신을 다잡게 되는 것입니다. 2004년 가을 시즌에 〈ER〉의 뒤를 잇는 메디컬 드라마의 골격을 갖추면서, 동시에 경쟁 네트워크에서 말 그대로 양산해 내고 있는 각종 수사물 드라마에 신선한 경종을 울리겠다던 NBC의 출사표는 채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렇게 사그라지고 말았답니다. 의학과 관련한 사건, 사고를 다룬다는 소재는 새로웠지만, 소재의 신선함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당연히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였기에 아쉬움이 남는 퇴장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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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 조지 클루니 등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5년 05월
에미상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부문을 수상한 E.R.은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에 비평가들의 갈채를 받기도 한 보기드문 TV시리즈이다. <쥬라기 공원>, <트위스터>, <코마>등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과 기획을 통해 탄생한 이 작품은 시카고의 한 병원 응급실의 젊은 의사들에 초점을 맞춘 본격 메디컬 드라마이다.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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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leygh

2006.04.07

이거 울산 방송에서 자체 방송으로 방송한 적 있는데.. 한 두어회 보다가 치워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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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myj

2006.04.07

거시기..의학수사드라마,라는 말엔 그냥 끌려버리네요...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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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군

2006.04.05

band of brothers의 Lynn "Buck" compton으로 나왔다고 하는데...근데..도무지 기억이 안 나네요. band of brothers 본지가 꽤 오래된지라.. 정확하게 기억나는 캐스팅은... 프렌즈의 로스가 사이코 중위로 나온것만... ㅎ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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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실

홍익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어렸을 때의 꿈은 건축가였지만,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본 후부터는 무언가 집요하게 조사하고 탐구하며 결실을 맺는 직업, 예컨대 평전 작가 같은 것에 대한 갈망이 생겼고, 그 소망은 가슴 한켠에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를 참 좋아해서 한때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겠다고 캠코더를 메고 다녔던 적도 있었다. 한국과 미국 보스턴에 머물며 10여 년간 출판기획과 취재를 하면서 대중 문화 자유기고가와 영미권 도서 번역가로 활동해왔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에 대해서 그녀만큼 깊이 있으면서 재미있게 쓰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국 드라마 평론가이기도 하다.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일본의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 골프채는 잡아본 적도 없지만 18홀 라운딩을 함께 하고픈 사람을 한 명 고르라면 단연코 메이저리그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즈다. 향후 배워보고 싶은 것으로는 "브라더 미싱으로 예쁜 원피스 만들기" "매킨토시로 그림 그리기" "나이스한 강아지 그루밍 기술" 등이 있으며,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으로는 "야구장의 몇 만 관중 앞에서 시구하기" "험머 타고 북미 대륙횡단하기" "플레이 스테이션 위닝 일레븐 게임에서 오버헤드킥 성공시키기" 등이 있다. 국내 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 야구 마니아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 팬이다. 특히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좋아해서, 그의 플레이를 보려고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전 시즌을 관전하기도 했다. 직접 쓴 책으로는 『미드 100배 즐기기 시즌 1』, 『위트 상식사전 프라임』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야구 교과서』, 『첼시』, 『리버풀』, 『유쾌한 깨달음』, 『자연과학 상식사전』, 『디자인이 만든 세상』, 『하버드가 지배한다』, 『마이 히어로』,『훈육의 심리학』, 『나 누주드, 열 살 이혼녀』, 『마테크』, 『그 여자의 살인법』, 『냉동 인간』, 『수비의 기술』, 『외지인의 죽음』 『매춘부의 죽음』, 『대식가의 죽음』, 『잔소리꾼의 죽음』, 『돌런갱어 시리즈』(전5권), 『몸을 긋는 소녀』, 『언더베리의 마녀들』, 『뼈 모으는 소녀』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