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판 살인의 추억 - 〈콜드 케이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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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곳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가장 자주 뽑히는 도시가 샌디에이고라고 합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샌디에이고뿐 아니라, 궂은 날씨의 북동부 해안이나 허고헌날 허리케인 피해를 입는 남부 해안 또는 폭설과 트위스터의 중부보다는 가끔 지진이 일어나서 탈이지, 따뜻하고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남 캘리포니아에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미국 문화계에서 즐겨 이야기 무대로 삼는 곳 1위는 단연코 뉴욕입니다. 여섯 친구들이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 나가는 〈프렌즈〉, 유쾌한 게이 친구 이야기 〈윌 앤 그레이스〉와 같은 시트콤이 있고, 배경이 뉴욕인 장점을 아직까지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CSI 뉴욕〉, 뉴욕이 배경이 아니라면 그 존재 자체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뉴욕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섹스 앤 더 시티〉등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두엇 이상만 모이면 사람 사는 이야기가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는가 싶지만,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특정한 도시나 지방을 내세우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특정한 역사와 문화, 인종 등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아주 다르지는 않지만, 어딘가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나 아우라를 표현해 내는 것입니다. 마음먹고 통계를 내 보겠다 했던 적은 없지만, 뉴욕 다음으로 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시는 LA, 마이애미, 워싱턴, 시카고, 시애틀 등일 것입니다. 〈웨스트 윙〉이나 〈E-Ring〉에서처럼 백악관, 펜타곤 등의 특정한 장소가 그 곳에 있기 때문에 배경으로 낙점될 수밖에 없는 도시 워싱턴을 제외하면, 사소한 이야기 디테일보다는 액션을 강조하는 드라마 〈24〉가 LA를 배경으로 하고, 〈CSI 마이애미〉나 〈닙턱〉 같은 화려한 볼거리를 자주 제공하는 드라마가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하고, 범죄율이 높은 탓에 사건 사고도 다양하게 일어나는지 병원 드라마 〈ER〉의 배경이 시카고인 이유는 지역적 특색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건국하면서부터 법적으로 자치제를 유지해 왔다는 점도 있고, 또 기본적으로 이민자 국가이다 보니,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다양하게 “지역색”을 강하게 띠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전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지역색을 눈여겨보는 것도 꽤 재미를 줄 수 있을 듯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범죄사건을 다루는 〈콜드 케이스〉는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합니다. 필라델피아판 〈살인의 추억〉이라고나 할까요. 지금은 뉴욕이나 보스턴, 워싱턴 등 메트로폴리스화한 인근 거대 도시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옛 명성이 약간 바랬지만, 한때 미국 최대를 구가하던 도시가 필라델피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독립혁명 선언서를 발표한 곳이고, 워싱턴 D. C 전에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는 법과 정의의 상징 같은 도시입니다. 영화 〈필라델피아〉는 필라델피아를 무대로 삼아서 게이 변호사이자 에이즈 환자가 받는 차별을 좀더 첨예하게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미제 사건을 뜻하는 “콜드 케이스”는 실현되지 않은 법과 정의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지요.

강력계에 소속된 릴리 러시는 현재 진행 중인 살인사건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어느날 우연한 계기에 미제사건 담당 부서인 콜드 케이스를 맡게 되고, 수완과 능력을 바탕 삼아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미제사건 해결 전문형사로 거듭납니다. 기이하고 요상하고 뜻 모를 불가사의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워싱턴 FBI 건물에 있는 팍스 멀더를 찾듯, 미제사건에 대한 새로운 단서가 발견됐을 때는 필라델피아 강력반의 릴리 러시를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녀는 선배 형사들에 뒤이어 두 번째로 꺼내든 칼을 허무하게 칼집에 도로 꽂아넣는 일이 결코 없이 능수능란하게 미제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오래된지라 때로는 과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을 능력 있는 형사답게 치밀한 추리력과 관찰로 풀어서 수십 년 혹은 백년 이상 된 사건의 억울한 영혼들에게 안식처를 찾아줍니다. 거친 색조의 플래시백이나 시간을 오버랩 시키면서 과거와 현재의 인물을 교차시키는 기법은 〈CSI〉나 〈Without A Trace〉 등의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 특유의 기법임을 차치하더라도, 사건이 해결되는 말미에 원혼처럼 떠도는 희생자들의 영상이 러시 형사의 곁을 스쳐가면서 그때마다 흐르는 주옥같거나 또는 고색창연한 올드 팝들은 〈콜드 케이스〉의 멜랑꼴리한 성격을 규정하면서 시청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미국에서 세 번째 시즌이 방영되고 있는 2005년 현재 〈콜드 케이스〉의 시청률은 거의 항상 상위 10위권에 포진될 정도로 그 반응이 열렬합니다.

〈콜드 케이스〉는 최근 미국 드라마, 특히 수사 드라마의 추세와는 달리, 특이하게도 원톱 체제를 표방합니다. 아름답고 귀여운 금발의 미녀 형사가 형사 콜롬보 역할을 하는 셈인데요. 강한 여성 캐릭터를 원톱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미국에서는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모험 요소가 큰 시도가 아닌가 합니다. 금발의 미녀가 주인공이 되려면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맥 라이언처럼 너무 너무 앙증맞고 귀여운 매력으로 승부해도 될까 말까한 것이 미국의 시청률 지상주의입니다. 하지만 〈콜드 케이스〉에서의 금발 미녀 릴리 러시(캐서린 모리스)는 글래머러스한 선정성도 없을 뿐더러, 금발의 미녀답게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서 톡톡 튀고 향기로운 사랑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약간 차갑고 이지적인 이미지에, 아직 다 풀어놓지는 않았지만, 험난했던 과거를 지닌 모습으로 조금은 어둡게 등장합니다.

분명히 모험수를 둔 설정이기는 하지만, 원톱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미국에서 방영될 때마다 시청률 자체는 전혀 아쉬울 게 없지만 이 드라마에는 몇 가지 부족한 점이 눈에 띕니다. 〈CSI〉나 〈Without A Trace〉 같은 이른바 특급 드라마가 갖춘 요소, 즉 성격이 확실한 캐릭터, 캐릭터간의 유기적인 연관성이나 탄탄한 시나리오, 극적인 요소를 잘 버무려 이야기의 재미와 감동을 배가시키는 면이 어느 시점에서 약간씩 좌절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노총각 아저씨의 전형 같지만 카리스마를 풀풀 풍기는 〈CSI〉의 길버트 그리섬 반장이나 사생활에서 늘 말썽을 피우지만 정감이 가는 〈Without A Trace〉의 잭 반장 같은 캐릭터가 지닌 매력을 릴리 러시 역에도 씌워주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 자체로 콜드 케이스로 남아 있는 그녀의 학대 받은 어린 시절도 제대로 풀어내야 하는 실타래로 남아 있고요.

냉정한 여형사 주변에 있는 동료형사들의 캐릭터들도 존재감이 약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주인공인 릴리 러시보다 비중이 약할 수밖에 없지만, 주요 인물인 스틸먼 반장의 아버지상이나 러시의 파트너 스코티 베일런스 형사의 철없음이 어중간한 선까지 밀어붙여지다 꺾이기보다는 좀더 선명하게 드러나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동료형사들인 윌 제프리스와 닉 베라 콤비는 코믹한 요소를 가미해서 강력한 개그 콤비를 형성, 드라마에 유머감각을 불어넣으면 어떨까, 드라마를 보면서 요모조모 생각해 보고 있답니다. 또 유니폼 조직을 그린 이야기에서 기대하게 되는 동료애도 가슴을 울리며 전개되었으면 하는 희망도 갖게 됩니다. 〈콜드 케이스〉는 현행 사건을 다루는 다른 수사 드라마들에 비해 소재의 신선함을 갖추고 있지만, 소재가 신선한 만큼 사건과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콜드 케이스〉는 조금 더딘 감은 있지만, 천천히 틀을 잡아나가며 기대를 멈추지 않게 하는 드라마입니다. 빠를수록 좋지만, 늦더라도 억울한 사연이 해결되고 법과 정의가 실현되는 장면은 언제나 통쾌한 감동을 안겨주니까요.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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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kingmage

2006.04.15

콜드케이스는 증언에 의해서 찾아나간다는 설정이 조금 실망스러울수도 있지만, 그래도 에피소드마다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죠. 특히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듯한 화면구성도 볼만하죠. CSI로 잃었던 인간에 대한 가슴따뜻한 마음을 다시 되찾을수 있는 이야기죠. 그렇다고 CSI가 그런 마음이 없다는 말은 아니구요..ㅡ.ㅡ; 그리고 각 등장인물들의 어두운 과거들도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재미있어집니다. 콜드케이스 어째튼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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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ra22

2006.01.10

예전에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콜드케이스에는 인간이 있다구요. 그만큼 차가운 CSI류와는 차별되는 따스한 인간적인 면모가 강조되는 드라마죠. CSI류는 철저히 증거에 의존해 범인을 잡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콜드케이스는 피해자의 아픔과 그 주변인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범죄자의 죄책감과 고통을 동시에 보여주죠. 잔잔한 음악과 더불어 몇십년간 죄책감에 시달려 왔던 살인범이 체포되고 억울한 피해자의 웃는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을 보면 정말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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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yoco7

2005.12.30

저도 케이블에서 몇번봤는데, CSI이나(뉴욕은빼고) 의학드라마의 광팬인 저로서는 좀 뭔가 식상한 드라마 같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게, 사건만 있고 사람사이의 관계와 인물의 성격표현이 덜된 드라마 같아서 좀 실망스러웠죠. 특히 말하셨듯이 원톱이다 보니 늘 혼자 나와서 주변 동료들 도움도 그다지 많이 받지않고 사건을 해결하다보니 마치 예전의 제시카의 추리극장니나 맥가이버 같은 사건해결이 주가되는 뭔가 보고나면 잔재되는 느낌이 없는 드라마였기 때문에 마치 별별 다르지 않게 넘쳐나고 있는 사건수사 드라마의 재탕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사건수사 드라마가 매너리즘에 빠져 나온 결과같이 보이는.. ^^:
개인적으론 이드라마 보다는 클로져 같은 좀 색다른 수사물이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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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실

홍익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어렸을 때의 꿈은 건축가였지만,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본 후부터는 무언가 집요하게 조사하고 탐구하며 결실을 맺는 직업, 예컨대 평전 작가 같은 것에 대한 갈망이 생겼고, 그 소망은 가슴 한켠에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를 참 좋아해서 한때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겠다고 캠코더를 메고 다녔던 적도 있었다. 한국과 미국 보스턴에 머물며 10여 년간 출판기획과 취재를 하면서 대중 문화 자유기고가와 영미권 도서 번역가로 활동해왔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에 대해서 그녀만큼 깊이 있으면서 재미있게 쓰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국 드라마 평론가이기도 하다.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일본의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 골프채는 잡아본 적도 없지만 18홀 라운딩을 함께 하고픈 사람을 한 명 고르라면 단연코 메이저리그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즈다. 향후 배워보고 싶은 것으로는 "브라더 미싱으로 예쁜 원피스 만들기" "매킨토시로 그림 그리기" "나이스한 강아지 그루밍 기술" 등이 있으며,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으로는 "야구장의 몇 만 관중 앞에서 시구하기" "험머 타고 북미 대륙횡단하기" "플레이 스테이션 위닝 일레븐 게임에서 오버헤드킥 성공시키기" 등이 있다. 국내 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 야구 마니아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 팬이다. 특히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좋아해서, 그의 플레이를 보려고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전 시즌을 관전하기도 했다. 직접 쓴 책으로는 『미드 100배 즐기기 시즌 1』, 『위트 상식사전 프라임』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야구 교과서』, 『첼시』, 『리버풀』, 『유쾌한 깨달음』, 『자연과학 상식사전』, 『디자인이 만든 세상』, 『하버드가 지배한다』, 『마이 히어로』,『훈육의 심리학』, 『나 누주드, 열 살 이혼녀』, 『마테크』, 『그 여자의 살인법』, 『냉동 인간』, 『수비의 기술』, 『외지인의 죽음』 『매춘부의 죽음』, 『대식가의 죽음』, 『잔소리꾼의 죽음』, 『돌런갱어 시리즈』(전5권), 『몸을 긋는 소녀』, 『언더베리의 마녀들』, 『뼈 모으는 소녀』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