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의 항구성
200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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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사실 책의 제목과 살짝 위반됩니다. 바로 얼굴의 일관성이지요. 이 책에 등장하는 위페르는 주근깨가 얼굴에 가득한 무표정한 십대 소녀일 때나, 얼굴에 메이크업을 짙게 한 냉담한 중년 여인일 때나, 언제나 변함없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헤어스타일이 바뀌고 스타일이 달라지고 주름이 생겨도 이자벨 위페르라는 코어 자체는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이죠. 사실 스타란 그래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항구적인 아이콘으로 남을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추고 있어야죠. 이런 건 보톡스를 맞아 억지로 되찾은 피부의 팽팽함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 우리나라 배우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지금 활동하는 우리나라 여자 배우들 중 이런 항구성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흠... 김지미는 어떤가요? 꽤 나이가 들어 은퇴하기 전까지 김지미는 스타로서 일관된 이미지와 힘을 유지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성우 목소리가 배우 자신의 목소리로 바뀌어서 팬들이 심한 당혹감을 느끼긴 했지만요. 지금은 40줄에 접어든 이미숙도 비슷한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미숙의 경우는 위페르와는 달리 기존의 이미지를 지키는 대신 나이가 들면서 성숙함이 득이 된 쪽이지만요. 뭐, 그런 것도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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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웬만큼 나이를 먹은 여자배우들에게 아줌마 역은 피할 수 없는 함정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줌마는 근사한 연기 도전 대상이긴 합니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것은 캐릭터가 아닌 틀입니다. 그것도 다양성을 제한하는 하나의 틀이지요. 젊을 때는 나름대로 개성을 인정받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하나의 좁은 틀에 밀려들어가는 거죠. 텔레비전을 보다보면 이런 전형성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극을 하는 것밖엔 없습니다. 어이가 없죠? 세상은 세월이 흐르며 더 나아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한국 영화계나 텔레비전 세계에서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여자 배우가 의미 있는 비중의 역을 맡을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의 경우는 영화보다 조금 낫긴 한데, 그 역들의 폭도 극도로 제한되어 있죠.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줌마 아니면 죽음을 달라’입니다. 주연을 맡기 위해서는 일단 아줌마가 되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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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세상이 바뀔지 모르겠군요. 지금 임수정이나 문근영 같은 한국의 젊은 배우들이 마주하고 있는 세계는 그들의 선배들이 경험한 세계와는 다릅니다. 고소영이나 장진영, 이영애와 같은 30대 배우들이 경험하고 있는 세계도 이전과 다르고요. 운이 좋다면 그들이 앞으로 맡을 역할들의 폭은 더 넓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세상이 먼저 바뀌어야 하겠죠.
55개의 댓글
필자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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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dy
2019.07.25
아이들에게 조금더 따뜻하게 말해주고싶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쉽지않네요
좋은 이야기 듣고싶습니다.
memyi
2019.07.25
리키네
2019.07.25
작가님의 팬인 세딸들에게 이수작가님의 감성을 직접 전달 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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