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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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미국에서는 영화 리뷰의 표절과 관련된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24살의 젊은 극우 보수파인 벤 도미닉(Ben Domenech)이라는 필자에게 ‘레드 스테이트’라는 블로그를 열어준 적이 있었는데, 그만 이 사람이 표절논란에 빠지고 만 것이죠. 학교 다닐 때 썼던 영화 리뷰들이 몽땅 표절이었답니다. 결국 이야기는 자질문제로 흘러갔고 도미닉은 3일 만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용된 예를 보니 어이가 없더군요. 그렇게 써놓고도 들통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더 한심한 건 제가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표절은 저에게 공포의 대상입니다. 남들이 제 글을 무단으로 가져와 쓰는 건 상관없어요.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한글 인터넷에서 그 분야에 대해 쓸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소스라는 것에 우쭐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될 수 있는 한 소란 따위는 일으키지 않으려 해요. 어차피 제 글을 표절하는 사람들 중 상업적인 용도로 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도 다음엔 출처를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글 앞뒤에 따옴표를 한 쌍 달아주고 뒤에 DJUNA라고 제 아이디만 써주셔도 됩니다. 어렵지 않죠?

진짜 골칫거리는 제가 표절을 할 때입니다. 이게 정말 무서운 거죠. 전 늘 제가 표절범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네, 전 안 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의심도 사지 않으려고 해요. SF를 쓸 때는 그 때문에 일일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책들의 제목을 뒤에 밝히기까지 하죠.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남들이 쓴 리뷰는 될 수 있는 한 잘 읽지 않으려고도 하고요. 제가 쓴 글과 비슷한 표현을 발견했을 때는 일부러 그 글을 가져와 출처를 밝힌 인용을 하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색지대는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전 동성애와 관련된 어느 영화 글을 쓸 때 토니 레인즈의 <씨네21> 글에서 가져온 표현 하나를 그대로 쓴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건 표절이었어요. 어이가 없는 건, 그 글이나 표현이 꽤 유명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슈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읽었던 거고 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따라서 그게 제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발각되지 않고 넘어갈 가능성은 처음부터 전무했지요. 나중에 전 그 토론과 관련된 한 사람과 이메일 대화를 한 적 있었는데, 그 사람은 당연히 레인즈의 인용으로 알더군요. 그렇다면 저도 그 글을 썼을 때 인용을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왜 전 따옴표를 달 생각을 안 했던 걸까요? 모르겠어요. 옛날 일이라 기억하기도 어려워요.

글들이 수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잘 팔리는 영화 하나를 전 세계에 배급했다고 치죠. 순식간에 수만 개의 리뷰가 영화 한 편에 몰립니다. 그 영화가 2시간 안팎의 시간 동안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했겠어요? 그 영화를 보는 시선이 다양해 봐야 얼마나 다양하겠어요? 여기서부터 리뷰는 일종의 경쟁이 됩니다. 편하게 쓰기 쉽고 맛깔스러운 표현이 모두가 보는 앞에 걸려 있습니다.

문제는 누가 그걸 먼저 차지해서 그럴싸하게 다듬어 내놓느냐죠. 이건 순발력의 문제이지, 독창성이나 사색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러다 시간차가 생기고 표현들이 겹치면 표절처럼 보일 수도 있죠. 한 번도 읽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거의 완벽하게 표절한 것처럼 보이는 글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건 제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어요. 제가 <콘스탄트 가드너>를 썩 좋게 보았고 그 영화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리뷰를 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나중에야 제가 영화를 보면서 찾아낸 논거들과 표현들이 몽땅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걸 알았던 거죠. 참 맥빠지는 일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표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세상에 글쟁이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죠. 특히 이런 식의 영화 리뷰의 경우는요. 하긴 이 인터넷 세상엔 아무나 게시판을 열고 타자 몇 줄 치면 가능한 게 영화 리뷰잖아요. 차량정체가 생기고 비슷한 영역이 계속 반복되어 점령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벤 도미닉의 경우는? 전 아까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쩌다가 경계가 불분명한 회색지대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었어요. 도미닉이 한 짓을 보면 이 친구는 아주 상습범입니다. 정말 그렇게 써놓고 들통이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모를 일입니다. 정말 모를 일이에요.

2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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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atsu

2019.07.18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디자인 일을 하고있지만 일러스트를 좋아해서 꾸준히 일러스트를 깨작깨작그리는데 혼자하다보니 완성하는게 쉽지않더라고요.
최근에 한달동안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중 찍은 좋은 사진들과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고있었는데 좋은기회가 될 것 같아서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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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ato

2019.07.18

저에게 소중한 하나뿐인 조카가 생겼습니다.
자주 보지 못해서 더 애틋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사진은 누구라도 찍어줄 수 있지만 어릴 적 모습과 추억이 담긴 그림책이라면 지한이에게 소장각인 단 한권의 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 더 커서 선물해주면 저에게도 지안이에게도 너무나 행복한 큰 추억이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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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디

2019.07.17

중학교 독서회에 참여하고있는중인데..작년에 책 표지 만들기에 참여했는데 참 좋았습니다.
2인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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