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신> 시사회를 다녀오고 든 생각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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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분홍신> 시사회에 갔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악명 높은 실랑이도 목격했죠. 몇 개월 동안 열심히 영화를 만들어 첫 공개를 하는 자리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감독이나 배우들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나중에 몇몇 기사들도 읽고 보다 가까운 곳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솔직히 어느 쪽을 두둔할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기자라는 사람이 불꺼진 영화관에서 노트북을 켜서는 안 된다는 걸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그걸 제지한답시고 평론가 양반이라는 사람이 택한 대응도 참... 그래서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둘 중 어느 한 사람만 상식적으로 굴었어도 이런 소동은 없었어요.

<분홍신> 시사회에서 예의 없는 사람들은 그네들 둘 뿐만은 아니었어요. 예를 들어 제 근처에 앉았던 어떤 남자도 무례함의 수준이 상식의 정도를 넘어섰더군요. 배우들과 감독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앉아서 “쟤, 실제로 보니 글래머도 아니지?” 따위의 소리를 지껄이지 않나. 극적인 장면에 키들키들 소리 내며 분위기를 깨지 않나. 결국 참지 못한 옆 사람이 주의를 주자 간신히 조용해지더군요.

  이게 나름대로 정선된 관객들이 모였어야 마땅한 언론 시사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물론 이런 데 오는 사람들의 에티켓 수준이 일반 관객들보다 특별히 높다고 믿을 근거는 없어요. 정말로 그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 높다고 해도 꼭 그들만 시사회를 찾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참 한심하지 않습니까? 이런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거예요.

  여기서 대한민국 국민 일반의 무례함으로 주제로 돌리는 건 쉬운 일입니다. 전 나름대로의 설명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도 가지고 있어요. 전 노인네들이 강화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예절 교육이야 말로 이런 무례함의 진짜 원흉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상하의 규율을 중요시하는 예전의 예절 논리에 생각 없이 충실하다보면 각 사회 구성원의 평등한 관계와 공공의 안락을 중요시하는 현대식 공중도덕의 논리에 둔해질 수밖에 없다구요. 진짜로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인네들의 규칙을 암송만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 규칙의 논리를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갖추고 있어야 해요.

  그러나 그건 오늘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 오늘 조금 더 현실적이 되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자, 여기 저의 욕구가 있습니다. 좋은 영화를 시설 좋은 극장 안에서 예절 바르고 영화를 잘 이해하는 관객들과 만족스러운 교류를 나누며 감상하고 싶다는 것이죠. 과연 이건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는 걸까요?

  일단 영화는 제가 고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도 어느 정도 운이 따르는 일이긴 합니다. 그래도 일 때문에 영화들을 보다보니, 점점 기대치가 정확해졌습니다. 극장은? 멀쩡하게 새로 지은 건물이면서 기초적인 화면비도 제대로 못 지키는 대한극장처럼 괴상한 곳도 있지만 썩 좋은 곳들도 몇 군데 있습니다. 이곳저곳 꾸준히 돌아다니며 극장 정보들을 얻는다면 보고나서 ‘당했다!’라고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저 같이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느라 극장을 고를 수 없는 경우에도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면 최악의 사태 정도는 막을 수 있습니다. 와이드스크린 영화의 시사회라면 대한극장이나 서울극장 2관, 중앙극장1관과 같은 곳은 일단 피하는 식이죠.

  하지만 세 번째는 대책이 없습니다. 전용극장이나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소위 예술 영화인 경우, 어느 정도 선정은 가능합니다. 그런 경우 정말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오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감상의 대상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데이트 코스의 일부이기도 하고 시간 죽이기용 수단이기도 하고, 잠자리이기도 하죠. <우주전쟁> 같은 영화를 보면서 모든 관객들이 조용한 정신적 교류를 나누길 바랄 수는 없어요. 물론 원래부터 그렇게까지 높지 않은 그네들의 예절 수준이 영화관에 들어온다고 바뀔 거라고 믿을 수도 없는 겁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습니다. 기계들은 빨리 진화하지만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죠. 이 경우도 변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기계들을 믿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홈시어터가 발전한 속도를 보세요. 아직은 진짜 극장의 포만감은 주지 못하지만 지금의 기기들도 썩 쓸 만합니다. 적어도 잘만 시스템을 관리한다면 음향은 시시한 시내 극장보다 나은 경우가 많죠. 극장 순수주의자들은 관객들의 교류나 필름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예의 없는 관객들과 같이 보는 것보다는 혼자 보는 것이 낫고 디지털 매체가 필름의 질을 따라잡는 날도 곧 올 겁니다. 언젠가 관객들이 영화관이냐, 집이냐를 두고 가볍게 선택할 날이 오겠지요. 전 그 날이 제발 빨리 왔으면 합니다.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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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ukkumi

2005.11.07

10분 거리의 가까운 영화관을 두고 버스타고 30분거리의 시내의 영화관을 이용해야하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나게 하여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그렇습니다. 저희 집에서 10분거리에 영화관이 생겼습니다. 시설이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그럭저럭 참고 봐줄만한 시설이지요. 그런데 참을 수 없는 고통은 관객들때문이었습니다. 온 가족의 나들이 시간이라는 일요일 오전이라는 시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온전히 저의 결정적 실수 였다고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 씁쓸합니다. 15세 이상관람가라는 15세 딱지에도 불구하고 온 동네 꼬맹이들이 다 모인 영화관에서는 2시간가까운 러닝타임에 지루해하는 아이들의 앙탈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고 인간이기에 영화에 몰입하겠다는 결심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이 언제나갈까에 귀가 솔깃해져 영화를 보고나왔는지 그 가족들의 나들이 현장을 포착하고 나왔는지 알수가 없을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정작 그 아이들의 앙탈은 귀여운 애교수준이었고 영화상영 중간에 멀쩡히 서서 돌아다니시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무대뽀정신에 감탄을 금치못했으니까요. 영화는 2시간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 2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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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之我...또 다른 나

2005.08.01

듀나님의 글을 재미나게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분들이 듀나님이 표현한 <노인네>를 두고 표현수위를 논하고 있습니다. 글의 문맥상 <노인네>라는 표현은 예절의 본질보다는 행동과 표현수단으로서의 예절을 강요하는, 정작 중요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가 아닌 껍데기만 고집하는 부류를 꼬집는 비판적 어휘라고 짐작되어집니다.

그러나 듀나님이 지적하셨듯이 공공예절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공예절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탄하시면서 듀나님마저 부적절한 표현를 사용하여 전체글의 일체감을 흐트리고 있습니다. 실수인가요?

그리고 <노인네>라는 말은 사전적 해석이 아닌 <나이 많은 어르신네>를 비꼬는 말로 쓰이는 비속어입니다. 이는 <여편네>가 <남편네>의 반대말이고, byzun님이 언급하셨듯이 다수를 지칭하는 접미사로 쓰이는 여러 말 중에 한 가지입니다만, 역시 비속어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네들의 생각은 왜 그런지 되새겨보는 것이 아닌 문제 자체를 외면하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래선 예절이 어떻구 아무리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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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dler

2005.07.25

노인네란 그냥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진 구세대를 뜻하는 말이라고 받아들여지는대요?딱히 노인비하를 하는거란 생각도 안들고...왜들 그렇게 과민반응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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