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짜릿한 청춘 연애물 - 『미유키』
글: 채널예스
200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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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 만화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미유키』『일곱빛깔 무지개』가 완결됐다. 완결편인『미유키』 12권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미유키』를 보았을 때는 마지막까지 보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만화가게에는 중간 정도까지밖에 없었다. 기억나기로 그때는 제목도 참 황당한 『크로스 로드』라는 해적판으로 나왔었다. 예전에 본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제목에는 ‘H1’ ‘크로스 로드’ 같은 이상한 것이 끼어 있었다. 해적판이었고, 주인공의 이름도 한국어였다. 이제는 ‘터치’라는 제목을 찾은 『H1』은, 근작인『H2』의 전편이라는 의미에서 따온 제목이었다. 황당하기도 해라.『H2』의 H는 히로와 히데오의 이름 첫 자 알파벳에서 따온 것이다.『터치』『H2』는 고교 야구와 연애물이라는 것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주인공인 타츠야를 영어로 표기했을 때 첫 자는 T다. 죽은 동생의 이름은 카즈야고.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가 늘 그렇듯, 인물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캐릭터가 비슷비슷하기는 하다. 그래도『터치』라는 엄연한 제목을 내팽개치고 ‘H1’이라고 한 것은 해도 너무했다.

‘미유키’라는 제목을 버리고, 크로스 로드를 붙인 것은 그럴 만도 하다. 극중 일본 이름도 ‘금다래’ ‘설다래’로 바꾸는 판에, 미유키를 제목으로 쓰기에는 난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 듯한 크로스 로드란 제목을 달았고, 한동안 나는 『크로스 로드』가『미유키』란 것도 모르고 있었다. 투니버스에서『미유키』를 방영할 때, 아, 예전에 본 만환데, 하고 무릎을 치는 정도였다.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작인『미유키』는 이상하게도 스포츠가 끼어들지 않은 순수 연애만화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보면서 서로 소년만화니, 소녀만화니 우길 수 있는 영역에 서 있는 독특한 청춘물이다. 사랑이 중심이지만, 그걸 담아내는 방식으로 주로 스포츠가 쓰인다. 그러면서 일상의 평범한 상황에서, 별 것 아닌 단어에서 포착하는 여운과 소용돌이가 일품이다.

하지만『미유키』에는 스포츠가 없다. 그냥 청춘 연애물이다. 주변 인물 중에도 크게 스포츠에 열광하는 인간은 없다. 마지막에야 등장하는 어릴 적 친구가 축구를 하고, 동생 미유키에게 청혼을 하기는 하지만……. 하여튼『미유키』는 오로지 연애만 파고든다.『미유키』는 두 미유키를 사랑하는 소년 마사토의 이야기다. 하나는 동급생 미유키, 그리고 또 하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재혼으로 동생이 된 미유키다. 동생 미유키는 6년이나 헤어져 살다가 돌아왔고, 마사토와 단 둘이 ‘가정’ 생활을 시작한다. 설마 동생에게 연정을 품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미유키』는 그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서 반복되었던 바로 그 남매의 사랑 이야기다. 그 애절하지만 단순한 이야기로『미유키』는 무려 12권을 끌어간다.

늘 엇비슷한 이야기이지만,『미유키』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마사토가 그냥 평범한 소년이라는 점이다. 아니 평범 정도가 아니라 공부나 운동도 잘 못하고, 길 가다가 부딪치거나 넘어지기도 잘하는 어리숙한 소년이다. 하지만 마음은 착하고, 무엇보다 헌신적이다.『H2』의 주인공은 야구를 잘 하고,『러프』의 주인공은 수영을 잘한다. 신작『카츠』에서도 권투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터치』의 타츠야는 뭐 하나 잘 하는 것 없었던 마사토 같은 소년이었지만, 동생인 카즈야가 죽은 후 그의 소원을 대신 이루어주기 위해 마운드에 선다. 그리고 갑자기 정상에 오른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그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H2』의 2루수 야나기가 말하듯, 꿈을 주는 사람들은 선택받은 녀석들인 것이다.

그러나 마사토는 진짜 평범한 소년이다. 그런 소년이 최고의 소녀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도대체 마사토의 미덕이 무엇이기에? 진정한 악인이 없다는 것은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진정한 동화다. 악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주인공에게는……. 마사토는 헌신적일 뿐 아니라, 결코 질투하지 않는다. 잘 생기고, 일본 최고의 축구 스타인 사와다 유이치에게조차 질투심을 갖지 않는다.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사와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되고 싶지만, 될 수 없음을 알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냥 순수하게 부럽고, 그래서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역시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작 중에서 주인공이 응원단장을 하는 만화가 있다. 그 소년은 말한다. 누군가 힘을 내도록 도와주어서, 그가 꿈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고. 그래서 그는 열심히 응원을 하고, 진정으로 행복해한다. 마사토 역시 그런 소년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에 찬탄하고, 위대한 것을 존경한다. 그리고 열심히 박수를 친다. 아마 두 소녀가 보았던 것도 마사토의 그런 순수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그런 마사토를 두 소녀가 사랑하고, 마사토는 동급생 미유키와 연애를 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 미유키와 있을 때는, 언제나 저 미유키를 생각하게 된다. 『미유키』는 정말 잔잔하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를 그저 충실하게 따라가며 일상적인 사건들을 변주할 뿐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게 또 그의 특기다. 어떻게 보면 아다치의 만화는 모두가 동일한 것을 변주한 작품이다. 심지어 사랑의 형식이나 삼각관계까지도 거의 비슷하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다치의 만화는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우리의 삶이란 것 늘 비슷하고, 다른 사람들과 닮아 있기 때문에. 아다치는 그 비슷한 것들 사이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잡아낸다. 단편집『숏 프로그램』에 실려 있는 만화들을 보면,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다.

『일곱빛깔 무지개』『미소라』가 재미없다고 흔히 비판받는 이유도 그것이다.『일곱빛깔 무지개』『미소라』는 아다치 특유의 일상을 그린 만화가 아니라, 황당한 농담으로 마구 어디론가 헤엄쳐가는 만화다. 목적도 없고, 이유도 없다. 나는 그 농담도 즐겁지만, 그걸 강요할 생각은 없다. 아다치의 진심이 청춘 연애물에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청춘 연애물은 언제나 짜릿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미유키』를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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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1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터치 1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러프 rough 1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미소라 1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숏 프로그램 2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일곱빛깔 무지개 1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MIYUKI 미유키 1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KATSU! 카츠 1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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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츠루

1951년 군마 현 이세자키 시에서 태어나 군마현립 마에바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디럭스 소년 선데이에 게재한 「사라진 폭음」으로 데뷔, 부드럽고 귀여운 그림체로 주간 소녀코믹, 챠오, 프티 코믹 등 소녀지에도 작품을 발표하여 많은 인기를 누렸다. 『명탐정 코난』의 작가 아오야마 고쇼와 『이누야샤』의 작가 다카하시 루미코 등과 함께 [주간 소년 선데이]의 주력작가로 꼽힌다. 러브코미디와 스포츠의 매력이 적절히 혼합된 작품을 많이 그리고 있으며, 『터치』 『미유키』 『H2』 등 다수의 히트작을 배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화 된 작품도 많다. 일본 전통 화술 예술 라쿠고를 매우 좋아하여 소년시절부터 라쿠고 전집을 애독하고 타테카와 단시, 코콘테이 신쇼 등 수많은 라쿠고가를 좋아한다. 또한 [의리 없는 전쟁], [대부] 등의 야쿠자 영화와 [빅 컨츄리] 등의 서부극, [고질라] 등의 괴수영화, 시대극, 빌리 와일더 작품, [남자는 괴로워], [북쪽 나라에서] 등을 더없이 사랑한다. 반대로 러브스토리는 잘 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프로야구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대단한 팬으로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는 다른 구단에도 많이 있다. 좋아하는 것은 ‘쇼와의 찻집’과 ‘서서 먹는 메밀국수’. 약점은 ‘미소녀’와 ‘검게 빛나는 G(바퀴벌레)’. 싫어하는 것은 ‘눈치 없는 짓’과 ‘프로야구팀 G’. ‘일본의 사계와 계절감’을 매우 중시한다. 사생활에서는 소년시절부터 고양이와 인연이 있었고, 개를 키운 적은 없다. 애묘 두 마리가 20년을 넘는 천수를 다한 후에는 반쯤 길에서 사는 검은 고양이를 지켜보는 나날. 담당 편집자였던 이치하라는 아다치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진짜 우에스기 타츠야가 여기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인생에서는 ‘인연과 운’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 현재의 좌우명은 【죽을 때까지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