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 “이 소설은 나의 총화이자 결론”
한창훈 “이 소설은 나의 총화이자 결론” 우리는 어디서 왔지? 우리는 어디로 가지?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의문 같은 것들이 있었죠. 특히 사람들은 사라지니까요. 죽어버리면 말이에요. 그 빈 데를 어린 왕자가 찾아온 거예요. 2018.12.13
네가 이별을 떠날 때 한창훈 소설가 총화 결론
한창훈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한창훈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다섯 편의 연작 소설에는 보편적인 진리나 인간이 가져야 하는 중요한 덕목을 테마로 담아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도 이야기 군데군데 녹아있다. 2016.08.25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북토크 한창훈 소설
성공한 사랑 판별법
성공한 사랑 판별법 나의 헌신, 나의 희생, 나의 양보, 나의 기다림, 나의 이타심, 이것만이 성공한 사랑을 만드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2016.05.26
나는 여기가 좋다 윤용인 홍합 성공 한창훈 사랑
51점이면 100점, 진심보다 태도
51점이면 100점, 진심보다 태도 시크가 밥 먹여 주나? 부디, 모두가 쿨병에서 제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2015.06.05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쿨병 진심 태도
[글쓰기 특집] 한창훈 “작가가 되고 싶다면, 비문학적인 것에도 관심”
[글쓰기 특집] 한창훈 “작가가 되고 싶다면, 비문학적인 것에도 관심” 남쪽 바다 먼 섬에서 태어난 소설가 한창훈은 고향에서 얻은 언어와 정서로 글을 쓰고 책을 낸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는 2009년에 펴낸 『한창훈의 향연』 개정판이다. 주제에 맞게 일곱 편의 글을 새로 썼다. 2015.06.01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독서 걷기
 한창훈이 건넨 ‘깊고 푸른 바다’
한창훈이 건넨 ‘깊고 푸른 바다’ 지난 9월 13일과 14일, 양일간에 걸친 거문도 문학기행. ‘한창훈 애독자’임을 자처하는 독자들과 함께 거문도 여행을 떠났다 2014.09.29
거문도 작가와만남 내 술상 위에 자산어보 한창훈
폭력의 본질을 꿰뚫다 - 한창훈  『꽃의 나라』
폭력의 본질을 꿰뚫다 - 한창훈 『꽃의 나라』 경계가 없고 수평선은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새들도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노래하는데… 사람만이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2011.10.26
꽃의나라 한창훈
“욕망의 주체가 사라진 시대… GNP가 2만 불이면 뭐합니까?” - 한창훈 『꽃의 나라』
“욕망의 주체가 사라진 시대… GNP가 2만 불이면 뭐합니까?” - 한창훈 『꽃의 나라』 ‘바다와 섬의 작가’로 대표되는 한창훈의 신작 장편『꽃의 나라』가 출간되었다. 이번 장편은 인터넷 독자 커뮤니티 문학동네에서 열렬한 호응 속에 일일연재(원제:남쪽 역으로 가다)되었으며, 전작『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이후 팔 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2011.10.11
꽃의 나라 한창훈
자살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면, 너무 슬프잖아요
자살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면, 너무 슬프잖아요 현재 한국 사회는 살기 힘든가? 그렇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국 사회가 다른 시공간에 존재했던 혹은 존재할 사회보다 살기 힘든가? 이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2,500년 전에도 고타마 싯다르타는 삶이란 고통이라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어디 쉽겠는가. 더구나 자살할 수 있을 만큼 자의식 강한 생명체가 살기란 아메바의 분신술과는 차원이 다를 터. 인간이 느끼는 고통은 다른 동물의 감정보다 더 복잡하고 심오하다. 2011.09.02
한창훈 자살 혹성탈출 표백
‘독보적인 맛! 쇠고기보다 맛있어!’  -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한창훈
‘독보적인 맛! 쇠고기보다 맛있어!’ -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한창훈 여수와 제주도 중간지점에 솟아 있는 섬 거문도.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내륙 사람들에게 섬 풍경과 바다의 맛을 퍼트리는 이가 한창훈 작가다. 2010.10.28
바다 한창훈
[여수]여수, 그곳에서는 - 한창훈
[여수]여수, 그곳에서는 - 한창훈 섬은 몇 뼘의 밭이랑과 수십 채의 집이 영토의 전부였으나 여수항은 끝을 알 수 없는 골목이 연이어 있었고 골목 하나당 수백 채의 집이 달라붙어 있었다. 2008.11.03
한창훈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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