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재를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삶을 통한 경험으로부터 얻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 속에서 얻게 된 감정과 감각과 사유, 즉 직접경험은 내 속 어딘가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자극해서 일깨워주는 것이 간접경험인데요. 비율로 치면 30퍼센트의 직접경험에 70퍼센트의 간접경험이라고 할까요. 간접경험? 물론 독서입니다.
최근에 김엄지 작가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어요. 제가 절대 쓸 수 없는 소설이에요. 어떤 점에서 그러냐 하면, 제가 이전의 장편소설에서도 그런 말을 쓴 적이 있는데, 인과관계를 잇고 의미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무거워져요. 그런데 김엄지 작가는 그런 거 없이 저지른다고 할까, 내지른다고 할까, 그런 게 굉장히 가볍기도 하고. 가벼우면서 정확한 가격이거든요. 그래서 저처럼 뭔가 많이 거느리고 많은 디테일과 논리를 거느리고 소설을 써야 되는 것보다 그냥 돌을 탁 던지는 이런 작품을 보면 너무 정확하게 가격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본인은 나는 정확한 이야기 싫어 이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맞는 사람은 읽는 사람은 너무 정확한 부위를 가격당하는 기분이에요.
이우일 글,그림
유쾌한 만화가 이우일이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 실로 뜬 검은 모자, 소주병, 프로레슬링 장난감에서 월남국수 포와 딸이 그린 영화 그림, 카프카의 표정, 아라키의 사진집 등 55가지. 옥수수빵파랑은 그가 좋아하는 푸른색의 이름이자 표지의 색깔이기도 하다. 그림은 당연하지만 글까지 이렇게 재미있다니, 만화가가 글과 그림의 작가임을 알 것 같다.
서경식 저/김석희 역
20세기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이란 부제가 붙은 미술 에세이집. 지은이 서경식은 재일 일본인 2세로, 유학생 간첩사건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군사정권에서 고문 끝에 사형선고를 받아 20년 가까이 복역했던 서승과 서준식의 동생이다. 가족에게 닥친 엄청난 비극을 견디다 못해 부모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질문한다. 예술이 고통 속의 인간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청춘은 악몽과도 같은 이 현실을 과연 어떻게 통과해가야 하는가. 고통으로부터 길어올린 그의 문장은 아프고 절박하여 아름답다.
이우환 저
이우환은 화가로서도 거장이지만 평론가로 일본 화단을 이끌었으며 일본 교과서에도 실린 산문가이다. 그의 절제된 작품만큼 글 또한 군더더기 없이 단아하지만 그 안의 사유는 예술가답게 자유롭고 삶에 대한 애정에 차 있다. 나는 산문을 잘 쓰지 못해 산문 청탁을 피하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할 때는 먼저 이우환의 문장을 읽는 것으로 그 준비를 한다.
강운구 저
사진작가 강운구의 글을 읽다보면 한국어로도 참 품위 있는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사유가 깊으면 말은 짧아지고 쉬워지는 대신 여운이 오래 간다. 그의 시선이 가닿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삶의 풍광 속에 세상살이의 간난과 모순, 남루함, 그리고 지혜로운 자의 담담한 수긍이 있다.
은희경 “독서는 삶을 통한 간접경험” 소설가 은희경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