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책은 독자에게 온전히 활자로만 다가갑니다. 때문에 우리는 늘 책이 묘사하는 풍경이나 사건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이야기를 따라가죠. 그렇게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순간 저만의 이미지가 생성되면서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 저는 엄청난 짜릿함을 느낍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홀로 납량특집을 즐기듯 밤마다 추리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최근엔 미국추리소설가협회 창립 70주년 기념 소설집 『뉴욕 미스터리』를 읽고 있습니다. 17명의 추리소설 거장들이 각각 뉴욕을 대표하는 하나의 장소를 골라 그곳을 배경으로 한 섬뜩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몇 달 전 뉴욕을 꼼꼼하게 여행한 터라 개인적으로 더욱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마치 모든 사건의 목격자가 된 것처럼 말이죠.
얼마 전 어머니와 다녀온 중남미 여행의 에피소드를 엮어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를 출간했습니다. 엄마 시리즈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죠. 저는 500일간 세계를 여행함과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삶과 역사를 여행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도 길 위에서 웃고 노래하고 행복해하는, 그런 ‘여행자’일 수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찰스 M. 슐츠 글,그림/신소희 역
여러분이 흔히 알고 계시는 '스누피' 만화죠. 꼬마들이 잔뜩 등장하는 4컷 만화이지만 저는 철학서라고 분류하고 싶습니다. 머리맡에 도저히 다 읽지 못한 철학서가 쌓여 있다면 슐츠가 50년 동안 써 내려간 이 만화를 펼쳐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는 철학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윤대녕 저
책의 첫 문단, 검은 안경을 낀 묘령의 여인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어질 내용이 궁금해 발을 동동 구르며 읽었던 책입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잘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 현대 소설 중 가장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1년 뒤, 저는 장미 창(노트르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을 보러 파리로 떠났습니다.
황현산 저
문학계 원로이신 황현산 선생님의 놀라운 필력에 감탄을 거듭했던 책입니다. 깊은 울림이 있는 뼈 있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내시는데, 심지어 굉장히 평범한 것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선생님의 산문집이 언제 또 나올지 몰라 아끼고 아껴가며 읽은 책입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장 자끄 상뻬 그림/유혜자 역
교과서만 보던 고등학생에게 처음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준 책입니다. 주인공 꼬마와 함께 기행을 일삼는 좀머씨를 관찰하고, 상황을 그려보며 타인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꼼꼼하게 생각하게 만들어준 소설입니다. 제 인생의 친구와도 같은 책이라 지금도 종종 여행 배낭에 챙겨 넣는 책입니다.
감독: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다니엘 데이 루이스, 폴 다노
무엇보다 배우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폭발적인 연기력이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광기가 넘치는 그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진이 빠질 정도죠. 영혼마저 팔아 넘긴 인간의 잔혹함을 그린 영화로, 배우의 열연뿐 아니라 영화의 전반적인 내러티브와 이미지 또한 강렬해 쉽게 잊히지 않는 영화입니다.
항상 처연한 블랙코미디를 만드는 코언 형제의 영화는 다 좋아합니다. <시리어스 맨>은 한 남자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재앙에 관한 영화인데 신파에 가까운 비극을 해학이 넘치는 희극으로 치환하는 코언 형제의 놀라운 연출력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I Am Love (아이 엠 러브) (한글무자막)(Blu-ray) (2010)
Tilda Swinton,Flavio Parenti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귀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고요한 정적으로 시작된 영화는 일분일초가 지날수록 엄청난 열기를 내뿜으며 요동치기 시작하다가 종반에 다다르면 불꽃처럼 타오르며 산화합니다. 맹렬한 음악과 함께 격랑이 휘몰아치는 마지막 10여 분은 제 인생의 엔딩 장면입니다. 사랑에 대한 찬양과 생에 대한 경탄이 울려 퍼지는 매력적인 드라마죠.
태원준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순간” 여행작가 태원준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