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서재 | 예스24 채널예스

저에게 책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친구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나 치과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와 같이, 달리 눈 둘 곳이 없을 때 저를 즐겁게 해주는 친구죠. 그래서 외출할 때 꼭 확인하는 물건 중 하나가 책입니다.

그림책 작업을 할 때는 의식적으로 책을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책 속 언어들이 이미지로 떠올라 작업을 자꾸 방해하는 것 같아서요. 그 대신, 작업을 끝내고 나면 한 달 정도 몰아서 책만 읽는 편입니다. 그때 독서가 가장 즐겁게 느껴집니다. 작업하느라 내가 가진 것들을 쏟아내고 비워진 부분을 책이 다시 채워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져요.

항상 갖고 있는 관심사는 ‘유한성’이에요. 사람은 물론이고 물건들까지도 유한한 존재잖아요. 그 존재들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요. 제 눈을 끄는 이미지들이 순간순간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생각하고 관찰해요. ‘이 찰나가 왜 재미있지?’ 하면서요. ‘유한성’은 넓은 의미이기 때문에 앞으로 읽을 책도 모두 그 범주 안에 있어요. 모든 책이 시간을 관찰한 기록이니까요.

작년 11월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를 낸 데 이어, 올해 4월 『아빠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를 출간했어요. 이 두 권의 책으로,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항상 너를 생각하고 영원히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단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엄마 아빠는 같이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늘 아이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믿음을 전하고 싶었고요. 또 이 책을 매개로 아이와 부모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으면 해요.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항상 요구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사랑과 관심을 늘 의심하죠. 그 의심을 줄여주는 일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데,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그림책 작가이기도 하고 그림책을 좋아하는 독자이기도 해서, 그림책 몇 권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들입니다.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어른 독자들과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분들께 더 추천하고 싶은 책들을 모아봤습니다.

김영진 ( ~ )

국내작가 : 유아/어린이 작가

최신작 : 산타 할아버지 질문 있어..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 잠실에서 자랐습니다. 올림픽 공원이 아직 산동네이던 시절, 잠실국민학교를 다녔지요. 그림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김영진 그림책」 시리즈와 『이상한 분실물 보관소』, 『엄마를 구출하라!』, 『싸움을 멈춰라!..

리디아의 정원

사라 스튜어트 글/데이비드 스몰 그림/이복희 역

재미있는 이야기와 잘 계획된 그림이 만났을 때 만들어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이야기는 시골 소녀인 리디아가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오게 된 후, 주변 사람들과 도시를 작게나마 변화시킨다는 내용입니다. 언뜻 보면 상투적인 내용 같지만, 아름다운 편지글과 섬세한 그림이 아주 잘 어우러져 신선한 울림을 전합니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저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내가 함께 있을게

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김경연 역

죽음이라는 주제를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낸 그림책입니다. 오리가 ‘죽음’이라는 친구를 만납니다. 죽음과 같이 생활해가면서 오리는 죽음이 자기 곁에서 오래전부터 같이 지낸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앞표지에서 시작해 뒤표지에 이르기까지, 한 장면도 허투루 다루지 않은 작가의 깊은 연륜이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도착

숀 탠 저

숀 탠은 중국계 호주 이민자 2세로, 작품에 자신의 정체성을 꾸준히 담아온 작가입니다. 특히 『도착』은 떠남과 정착의 과정을 그려낸 것으로, 모든 이민자와 망명객과 난민들에게 바치는 그림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방대한 이야기를 글 한 줄 없이 오로지 그림만으로 담아낸 작가의 치밀함이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염소 시즈카

다시마 세이조 저/고향옥 역

‘시즈카’라는 염소가 작가의 집에 오고 엄마 염소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일본 그림책 작가 다시마 세이조가 실제 겪은 일을 그림일기 형식으로 만든 책입니다. 작가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애정과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냈습니다.

야쿠바와 사자 1

티에리 드되 글,그림/염미희 역

『아쿠바와 사자』는 1-용기 편이 출간되고 12년 뒤 2-신뢰 편이 출간된, 재미있는 이력이 있는 그림책입니다. 1-용기 편에서는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서 전사가 될 소년을 가려내는 축제가 열립니다. 소년은 전사가 되기 위해 모두에게 용기를 보여야 합니다. ‘용기’의 의미를 대담한 필치로 그려냈어요. 12년 뒤 작가는 전작과 같은 배경, 같은 인물을 가지고 용기와는 또 다른 ‘신뢰’ 의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두 권의 연작 그림책을 처음 보고 나서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