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희 칼럼] 돌의 맛을 보듯, 곰팡이
윤경희의 곰팡이를 만나다 ② : 몰로이의 돌멩이 빨기, 베케트의 글쓰기.
글 : 윤경희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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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의 『몰로이』(1951)에는 누구든 한 번 읽으면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몰로이는 바닷가에 머무르던 무렵 돌멩이를 빠는 습관을 들인다. 아마 산책하다 주운 몽돌이었으리라. 먼저, 돌멩이 열여섯 개를 외투와 바지 양쪽 주머니에 네 개씩 나눠 담는다. 다음으로,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 빤다. 그러는 동안,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바지 왼쪽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외투 왼쪽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바지 왼쪽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빨던 돌멩이를 입에서 꺼내 외투 왼쪽 주머니에 넣는다. 이로써 입, 외투, 바지를 옮겨 다니는 돌멩이의 여정 한 바퀴가 완수된다. 외투와 바지의 양쪽 주머니에는 돌멩이 빨기를 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돌멩이가 네 개씩 들어 있다. 이제 두 번째 돌멩이 차례다. 다시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 빨면서,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바지 왼쪽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외투 왼쪽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바지 왼쪽 주머니에 넣고, 입에서 돌멩이를 꺼내 외투 왼쪽 주머니에 넣는다. 이렇게 열여섯 번 되풀이하면 모든 돌멩이가 한 번씩 빨리며 주머니들에 옮겨 다니다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서 아무 돌멩이나 무작위로 꺼내 입에 넣는다면 돌멩이 열여섯 개를 공평하게 한 번씩 빠는 게 아니라 몇몇 돌멩이를 여러 번 빨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저 상상만 하는 독자에게 생겨난 의구심을 당사자인 몰로이가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모든 돌에 한 번씩 빨릴 기회를 주기 위해, 입과 주머니에 돌멩이를 분배하고 순환시키는 방식에 대해, 몰로이는 고심과 실험을 거듭한다. 그리고 마침내 해결책을 찾는다. 먼저,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 여섯 개,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다섯 개, 바지 왼쪽 주머니에 다섯 개의 돌멩이를 담고, 외투 왼쪽 주머니는 비워둔다. 그런 다음,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서 돌멩이를 하나씩 꺼내 빨면서 외투 왼쪽 주머니에 넣는다. 여섯 개를 다 빨면 외투 오른쪽 주머니가 텅 비게 된다. 그러면 바지 오른쪽 주머니의 돌멩이 다섯 개를 외투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고, 바지 왼쪽 주머니의 돌멩이 다섯 개를 바지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고, 외투 왼쪽 주머니의 돌멩이 여섯 개를 바지 왼쪽 주머니로 옮겨서, 외투 왼쪽 주머니를 다시 비운다. 그런 다음, 외투 오른쪽 주머니의 돌멩이 다섯 개를 하나씩 빨아 외투 왼쪽 주머니에 넣는다. 다시 빈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 바지 오른쪽 주머니의 돌멩이 다섯 개를 옮기고, 바지 왼쪽 주머니의 돌멩이 여섯 개를 바지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고, 외투 왼쪽 주머니의 돌멩이 다섯 개를 바지 왼쪽 주머니로 옮기고, 다시 빈 외투 왼쪽 주머니에 외투 오른쪽 주머니의 돌멩이 다섯 개를 빨아 담는다. 자, 이로써 돌멩이 열여섯 개를 한 번씩 빨 수 있게 되었다, 주머니마다 분배된 돌멩이의 수는 비록 균등하지 않지만.

 

몰로이의 돌멩이 빨기는 요약문만 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문단 나눔 없이 십수 페이지에 걸쳐 끈질기게 되풀이되는 시행착오와, 단순한 듯하면서도 골머리 아픈 덧셈, 뺄셈, 나눗셈과, 훨씬 복잡한 집합과 수열 계산과, 마침내 찾은 해결책과 성공의 희열을 몰로이와 함께 수행하고 맛보아야 한다. 그리고 몰로이가 말하지 않은, 나로서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독자의 입과 내장에 남아 흐를, 이상한 정동의 맛을 느껴야 한다. 돌멩이의 다공질 표면에 스며들어 있다 빨려 나올, 해초와 소금과 미세한 어패류 잔해가 섞였을, 침 냄새가 묻을, 어이없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몸부림과 비명으로, 온몸의 구멍으로 다시 토해내고 싶은 슬픔의 맛. 부디 직접 읽어보기를. 김경의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몰로이의 돌멩이 빨기를 무어라 규정해야 할까. 마치 소명이자 과제인 양 집요하게 정성 들여 수행하지만 허무할 만큼 무목적적이며 비생산적이고, 장난과 놀이라 하기에는 억지로 마취시킨 고통과 강박적인 근심이 서려 있지 않은가. 놀이와 과제가 합류하는 어느 영역에서, 아마, 일종의 보드게임으로 간주하는 편이 가장 합당할 것 같다. 돌멩이 빨기 게임에서 게임판은 몰로이의 신체와 의복이고 말은 돌멩이이다. 이 게임의 규칙은 열여섯 개의 말이 게임판의 다섯 장소에 순서대로 빠짐없이 한 번씩 들어갔다 나와서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플레이어는 말을 눈으로 분간해 고를 수 없고 무작위로 뽑아야 한다. 몰로이의 주머니는 캡슐토이, 알사탕, 가챠 따위가 뒤섞인 슬롯머신 같은 것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말의 순서를 정할 수 없다. 플레이어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을 고안하고, 실행하고, 성공한다. 바닷가에서 돌멩이를 빠는 몰로이는 결국 게임의 현장, 기계, 도구, 창안자, 실행자, 그 모든 것, 게임 그 자체, 게임의 체현이다.

 

나는 몰로이의 돌멩이 빨기 대목을 열일곱 사람과 낭독한 적이 있다. 한 사람씩, 몇 문장씩, 돌아가며. 우리 중 몇몇은 키득거렸고, 몇몇은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몇몇은 진지했는데, 대체로 눈을 빛내며 재미있어했다. 여러 해가 지나 그중 한두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그때 그 몰로이의 돌멩이 빨기 낭독 시간을 아직 기억하고 있으며 가끔 생각난다고. 우리 중 몇몇은 왜 이 짓을, 몰로이의 돌멩이 빨기를, 베케트의 글쓰기를, 그것을 같이 읽기를 여전히 기억하는가. 이처럼 허무한 것에 어떤 힘이 있길래 잊지 못하는가. 


몰로이의 돌멩이 빨기에는 무엇보다 수학적 아름다움이 있다. 몰로이는 바닷가의 무한과 돌멩이의 무작위로부터, 엄정한 질서와 체계, 오류 없는 기계 작동의 원리, 거의 음악적인 마디와 박자의 감각을 추출한다. 주머니에서 돌멩이 열여섯 개를 꺼내 돌아가며 빠는 몰로이는 저글링 오토마톤 같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래서, 심지어 귀엽기도 하다. 다들 알지 않나, 바닷가에서 콩돌, 몽돌, 조약돌, 동글동글하고 보드라운 돌멩이 고르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중요한 일인지, 이처럼 무가치한 짓에 우리는 얼마나 순진무구한 심혈을 기울이게 되는지. 먹을 수 없는 불결한 것을 입에 넣고 빨 때, 금기를 어기는 배덕의 쾌락은 물론, 삼킬 수 없다는 현실에서 비롯되는 처절한 절망감까지도.


몰로이의 돌멩이 빨기를 읽으며, 되새기며, 나는 성스러울 만큼 순진무구한 골몰에 무한히 상승하는 경외심을 느끼다가도, 이처럼 더럽고 멍청하게 시간을 죽이는 짓이라니, 바닥 모르게 추락하는 비애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라,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나.

 

지난 글에서 나는 곰팡이와의 만남을 복기하려 한다고 했다. 한 달쯤 지난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니, 곰팡이와의 만남을 상기하는 것은 바둑의 복기보다는 몰로이의 돌멩이 빨기에 더욱 가까웠다. 더러움과 어리석음과 슬픔에서 헤어날 길 없이 그것과 한 몸이 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곰팡이는 내게 게임 말이 아니었으니, 돌멩이처럼 죽은 것이 아니라 무한히 살아 증식하는 것이었으니, 나는 여기서 어떤 아름다움을 추출할 수 있을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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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이

<사뮈엘 베케트> 저/<김경의> 역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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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문학평론가. 비교문학 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산문집 『그림자와 새벽』과 『분더카머』를 쓰고, 앤 카슨의 『녹스』를 비롯하여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여러 권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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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한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