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주 저 | 마티
책장에 아직 펴보지도 못한 책이 가득한데 왜 계속 책을 사는 걸까. 끝까지 다 읽지도 못했는데 나는 왜 장바구니에 책을 계속 담고 있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 보니 내 장바구니에는 총 1,083,320원어치의 책이 담겨 있다. 그마저도 몇 권은 품절되어 다행이다. (?) 읽어야 할 책은 한 장을 못 넘기며 끙끙대고, 우연히 (딴짓하다) 들춰본 책은 앉은 자리에서 읽어버리고, 이제는 무슨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지 제대로 가늠도 못하면서 왜 계속 읽을거리를 찾아다니는 건지 궁금하다. 『계속 읽기』는 어쩌면 이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문학을 선택한 이유는 세계의 본질이 애매함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것들에 이름을 붙여보려고,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부분들을 어떻게든 형언해 보려고 하는 시도는 문학이 하는 일들 중 하나다."(12쪽)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답을 낼 수 없는 아리송한 이 세계를 어떻게든 이해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책을 담고, 읽을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참슬 에디터)
김혜순 저 | 문학과지성사
죽음을 떠올릴 만큼 아름다운 책이다. 검고 붉은 책을 쓰다듬는 동안 버석한 한 글자 단어들이 마른 껍질처럼 툭툭툭 떨어진다. 피, 불, 재, 뼈, 잠, 빛…제본이 뼈처럼 드러난 책등으로 1막의 먹색 종이가 2막의 잿빛을 거쳐 3막의 백색 종이로 바뀐다. 언뜻 마지막 불씨가 꺼지는 죽음의 과정을 거꾸로 펼쳐 보이는 것처럼. 아니다, 이것이 여자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남성 신화의 주인공들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련과 역경을 헤쳐내서 성공한다. 그러나 여성 신화는 꼭 되살아남의 시퀀스를 준비한다. (중략) 여성 신화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죽음의 엄마」, 592쪽) 죽음은 끝이 아니나 죽음은 필연이니, 죽음 뒤에 죽음 뒤에 죽음, 이렇게 세 번의 죽음을 한 권으로 엮고 나서 김혜순 시인은 말한다. “죽음의 분만으로 나는 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605쪽) (박소미 에디터)
토리 피터스 저/이진 역 | 비채
지금 소개하기에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사실 호들갑을 참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막 하반기에 접어들었지만, 감히 올해의 가장 웃기고 생생하고 놀랍고 정교하고 흥미로운 소설을 꼽자면 단연코 『디트렌지션, 베이비』일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소설은 정말 재밌다. 제목 그대로 ‘디트렌지션’과 ‘베이비’를 두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어쩌면 그 사이 쉼표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트랜스젠더 리즈와 트렌스젠더였으나 디트렌지션을 하게 된 에임스, 시스젠더 카트리나, 이렇게 세 사람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아이를 중심으로 서로에게 깊숙이 얽히게 되는 이야기이므로. 제임스였던-에이미였던-에임스가 섹스 중에 겪는 해리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섹스로부터의 해리가 에임스의 변곡점들에 압정처럼 꽂혀 있는 내밀한 코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토리 피터스의 맵고 찰진 입담에 뇌가 한동안 얼얼하다. (박소미 에디터)
하승민, 김희재, 강성봉, 김유원, 서수진 저 외 15명 | 한겨레출판
강화길, 박서련, 윤고은, 최진영 등 작가들을 발굴한 한겨레문학상이 30주년을 맞았다. 『서른 번의 힌트』는 역대 수상 작가 20인의 당선작을 모티프로 쓴 단편 소설 앤솔로지이다. 문학 독자들에게는 각자의 뚜렷한 개성으로 한국 문단을 알록달록하게 채우고 있는 작가들의 초기 작품을 다시 떠올리는 재미를,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각 소설에서 뻗어나간 새로운 이야기를 경험하는 기쁨을 줄 것이다. 한국 문학의 매력을 경험하고 싶은 입문 독자들에게는 각 단편을 시작으로 역으로 작가들의 수상작을 찾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야구팬인 나는, 홈런을 맞고도 가장 좋았던 커브를 던졌다며 씨익 웃던 리틀야구단 여자 투수 기현의 미래가 궁금해져(「힌트」) 『불펜의 시간』을 다시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참슬 에디터)
아침달 편집부와 친구들 저 | 아침달
시원한 실내에서 창문을 통해 보면 눈이 시린 햇빛도 흔들리는 나뭇잎에 부딪히는 빗방울도 아름다울 따름이지만 밖을 나서면 지옥 선행 체험인가 싶을 정도로 녹아내리는 계절, 애증의 여름이 왔다. 표지만 봐도 청량한 기분이 드는 『여름어 사전』은 여름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아끼는 157가지 단어를 그러모은 책이다. 목차를 훑어보며 이 단어들이 여름과 어떤 관계를 맺고, 글쓴이에게는 어떤 추억을 남겨 주었는지 추측해 보는 재미가 있다. 여름의 단어를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이 뜨겁고 눅눅한 계절을 왜 사랑하는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분명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칠 땐 '여름하다'라는 낭만적인 형용사로 기억될 이날들을 몹시 그리워하게 될 것을. 유독 여름을 사랑하는 (희한한) 친구들에게 이 책을 깜짝 선물하고, 파스스 터지는 시원한 웃음을 보고 싶다. (이참슬 에디터)
오가와 사야카 저/지비원 역 | 갈라파고스
한번 보면 지나치기도 힘들고 잊기도 힘든 제목이다. 홍콩 느와르 영화의 어둡고 끈적한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책은, 놀랍게도 인류학 도서다. 인류학자인 오가와 사카야는 현대의 해적판 비즈니스를 연구하기 위해 홍콩 침사추이의 명물인 청킹맨션으로 필드워크를 떠난다. 맨션 곳곳에 "어려운 일이 있거든 카라마를 찾아라"는 말이 떠돈다. 얼마 뒤 사카야는 청킹맨션의 보스, 미스터 카라마를 만나 빠르게 청킹맨션의 세계에 스며든다. 사카야는 카라마를 통해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으면서도 어떻게 서로를 돕고 사업망을 구축하며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한다. 자본주의로는 해석되지 않는, 자본주의로부터 탈주하는 세계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와의 병렬독서도 즐거울 것이다. (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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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읽기
출판사 | 마티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디트랜지션, 베이비
출판사 | 비채
서른 번의 힌트
출판사 | 한겨레출판
여름어 사전
출판사 | 아침달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출판사 | 갈라파고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출판사 | 다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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