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무할 땐 헌법을 읽는 것이 좋다
독자들이 헌법을 어렵고 메마른 텍스트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헌법을 ‘나의 외연’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와 성찰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평온하게 귀가해 침대에 누울 수 있었던 것은 ‘헌법’이라는 든든한 방패 덕분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곳에서 살고 이사할 수 있는 자유, 꿈꾸는 직업을 마음껏 선택할 권리, 친구나 연인과 나누는 사적인 대화와 일상을 남에게 공개하지 않을 프라이버시까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헌법으로 보호되고 규정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법학자이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이효원 저자는 헌법이야말로 인간 삶의 투명한 거울이라고 말하며, 살면서 한번쯤은 헌법을 읽을 것을 강력히 권한다. 헌법을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을 처음 읽어보는 독자들이 많을 듯합니다. 법학도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헌법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헌법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지켜야 할 핵심가치를 요약해놓은 규범입니다. 대한민국이 어떠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축약해 놓은 규범이자 다양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지닌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만든 기반이지요. 때문에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옳은 걸까?’,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와 같은 질문이 떠오를 때 내 행동의 최소한의 가치판단과 방향 설정의 지표가 되어줍니다.
또한 헌법은 대한민국 최고법으로서 우리의 일상을 든든히 지키고 있습니다. 일상의 편안함에 젖어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이 정도의 편안한 삶과 안전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것은 헌법이라는 크고 튼튼한 울타리 덕분입니다. 독자들이 헌법을 어렵고 메마른 텍스트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헌법을 ‘나의 외연’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와 성찰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헌법을 읽을수록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는 뜻일까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헌법적 가치를 일상으로 접하며 살아갑니다. 법을 제대로 공부한 적 없고, 헌법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지요. 부모님이 헌법의 보호 아래 가정을 꾸려 ‘나’라는 존재가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며 정규교육을 받고, 어른이 되어 원하는 직업을 얻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재산을 쌓아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집을 구해 이사를 하는 등 우리 삶의 전반적인 과정이 헌법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헌법 제2장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다루는데, 이는 삶의 주기와 어느 정도 맞물립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과 국가는 불가분의 상관관계를 맺으며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국민 없는 국가가 없듯이 국가 없는 개인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개인이 자신이 속한 국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또 다른 자기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살다 보면 왜 사는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허무할 때가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헌법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았다고 하셨습니다.
법대 공부를 마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 검사 생활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검사를 지원했습니다. 검사가 되면 한 달에 몇백 건의 사건을 맡아 처리하게 되는데, 대부분 어둡고 처절한 삶, 범죄, 갈등 구조 등을 다루게 되지요. 이때 일하면서 ‘사람이란 그 자체로는 참 믿을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타인은 당연히 믿을 수 없고, 나 자신조차 믿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이때 사람에 대한 연민과 허무한 마음이 많이 들었고 결국 대한민국의 근간인 헌법을 더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3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즉, 나라의 기초가 되는 최고법인 헌법을 더 공부함으로써 타인과 공동체, 나라 등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실존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헌법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다시 세운 것처럼 여러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 130개조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항은 무엇인가요?
헌법 제10조입니다. 헌법 전체를 이끌어가는 조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합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로 시작하지요. 이것을 “우리는 서로를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해야 한다”라고 받아들이면 세상을 사는 게 조금 편안해집니다. 이해하기 힘든 타인도 받아들여집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행복추구권’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다른 조항에서는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표현하는 데 반해 여기서는 ‘행복권’이 아닌 ‘행복을 추구할 권리’만 보장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원하는 행복의 모습은 모두 다르기에, 저마다 자기가 추구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국가공동체를 만들어주고 행복을 스스로 찾게 하는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행복이라는 이상향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것, 살면서 추구만 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헌법 조항을 설명한 뒤 관련된 단상을 써놓은 부분에서 에세이스트의 면모를 보았습니다. 평소 글쓰기를 즐겨하시나요?
제가 글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독서가 읽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쓰기로 비로소 시작되고, 말하기와 듣기를 통해 일단락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교수를 직업으로 하다 보니 책을 읽고 난 뒤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는데요.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서 제가 읽은 책에서 밑줄 친 부분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즉, 독서라는 것이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여 깨닫고 자신의 몸으로 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 생각거리를 글로 써서 작은 일기처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책에는 이와 같이 평소 헌법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단상(斷想)이 들어 있습니다.
헌법 제66조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를 설명하면서 외모와 인상을 이야기한 부분을 미소 지으며 읽었습니다. 교수님의 인상이 무척 좋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권의 실질적인 수반입니다. 즉, 대외적으로는 국가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국가의 최고책임자로서 정부의 수반이 됩니다. 대통령은 외국에 국가를 대표하므로 대통령의 행위는 대한민국의 행위로 간주되지요. 그런데 이처럼 헌법적 설명에만 치중해서 헌법을 보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점에 착안해, 타인에게 나를 처음 드러내는 통로인 ‘얼굴’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지에 대한 성찰을 곁들인다면 헌법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조항에 우리가 어떤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단상을 덧붙였습니다. 누구나 잘생겼다는 칭찬을 들으면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타인을 인식할 때 ‘이미지’로 인식하기 쉽다는 점과 외모 평가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에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을 떠올리면 잘생긴 것보다 좋은 인상이 더욱 중요합니다. 제가 평범한 외모와 인상을 가졌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웃음). 다시 말해 생김새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인상은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지요. 결국 헌법 제66조는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헌법적 의미를 깨닫게 하고, 동시에 우리가 어떤 ‘얼굴’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고유한 법을 지니고 태어나고 매 순간 변화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갑니다. 헌법이 개정과 부칙을 통해 역사적 현재를 바꾸며 새로운 과거를 창조해야 하듯이, 우리도 어제와 똑같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헌법을 공부하며 국가와 사회를 넘어 ‘나’를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헌법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까지 사랑하게 되었지요. 우리 헌법은 개개인의 삶을 바꿔줄 힘이 충분히 있습니다. 살면서 한번은 꼭 헌법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1시간이면 모두 읽을 수 있고,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읽더라도 2시간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헌법은 주권자인 내가 스스로에게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렇게 헌법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다시 세우고 내일로 나아갈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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