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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재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박진영 칼럼 – 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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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항상 그래왔듯 혼자가 아니라 함께 연대하며 서로를 돌보고 싸울 것이다. 새와 바다와 지구와 사람과 고향과 마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마음에 다시 새기고 내일은 조금 나은 세상이기를 바라며 잠을 청해본다. (2024.07.11)


재난의 시대, 사회적 연대를 고민하는
박진영 연구자의 에세이.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만큼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내가 사는 전주의 7월 9일(화) 일 강수량을 찾아보니 79.4mm라고 한다. 1년 동안 올 비가 며칠 새 내렸다는 대구 지역엔 177mm가 내렸다. 밤사이 더 많은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보고 있는데 호우주의보 발령 문자가 온다. 몇 년 전부터 여름이 가까워지면 이틀에 한 번꼴로 폭염이나 폭우를 예보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매년 역사상 가장 더울 것이라고, 기록적인 비가 쏟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한다. 최근 몇 년 새 폭우로 인한 사고를 연달아 목격하면서, 이렇게 비가 쏟아질 때면 혹시 무슨 사고가 있지는 않았을지 걱정하며 뉴스 창을 새로고침하고 들여다보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이런 나의 습관과 걱정도 기후우울의 한 증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기후위기와 생태위기가 심화되며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불안 나아가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증상은 기후불안, 기후우울, 생태불안, 생태우울 등의 용어로 불리고 있다. 로르 누알라는 『지구 걱정에 잠 못 드는 이들에게』에서 생태불안을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서 비롯된 불안감. 현재 진행 중이거나 다가올 환경 재난에 대한 만성적 두려움”으로, 생태우울을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서 비롯된 우울감. 불면증과 섭식장애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라고 정의했다. 나 말고도 주변에 생태불안이나 우울을 호소하는 친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루가 멀다고 멸종한 동식물, 이상 기후 현상으로 인한 재난의 소식이 들려오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가 당면한 거대한 재난뿐 아니라 국내에 산적한 여전히 진행 중인, 새롭게 벌어지는 재난에 대한 소식을 보고 들으며 오늘도 나는 한국 사회와 지구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을 염려한다.

올 상반기 기후위기에서부터 개발, 환경재난까지 아직도 진행 중인 한국 사회의 여러 재난을 톺아보았다. 연재 중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 6월 13일,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 4차 공판이 열렸다. 이날 환경단체 측 국제 조류 전문가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조류학자 나일 무어스 박사는 신공항 부지인 수라갯벌의 가치, 조류 충돌의 위험성에 관해 증언했다. 6월 27일에는 또 한 분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사망했다. 이날 대법원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원고 5명 중 3명에게 300만 원~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다음날인 6월 28일 일본 도쿄전력은 오염수 7차 해양 방류를 개시했다(어느새 7차다). 이번 방류 규모는 총 7,800t으로 7월 16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같은 날 대구고등법원은 영풍 석포제련소가 경상북도를 상대로 낸 조업정지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2019년 환경부는 폐수 배출 등을 이유로 행정처분을 내렸고, 경상북도도 2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기각되면 석포제련소는 2달 동안 조업을 정지해야 한다.

재난의 시대, 나는 여전히 쉽게 슬프고 화나고 무기력해지지만, 그럼에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기로 다짐한다. 연재에서 다룬 사례들은 각기 다른 재난이지만 공통의 답을 안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곳에서 들리는 말이지만, 그 답은 연대와 돌봄이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알리고, 목소리를 모으고, 성명서로 사진으로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광장에서, 법원 앞에서, 기업의 사옥 앞에서, 대사관 앞에서, 갯벌에서 함께 모여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들고 있던 현수막과 피켓의 구호를 떠올린다. 기후위기의 시대, 로르 누알라가 말했듯 “우리는 그토록 염원하는 변화가 정말로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잠재력을 끌어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우리 자신을 성심껏 돌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를 돌볼 힘은 어디서 나올까? 나는 대체로 재난을 알리고 해결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활동에서 나를 더 세심히 돌봐야겠다는 동기를 찾는다. 저들과 오래 함께 무언가를 하려면 나 자신도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로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겨울이 지속되고 있지만, 유난히 추운 날이면 꼭 찾아 듣는 노래가 있다.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일 수도,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재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항상 그래왔듯 혼자가 아니라 함께 연대하며 서로를 돌보고 싸울 것이다. 새와 바다와 지구와 사람과 고향과 마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마음에 다시 새기고 내일은 조금 나은 세상이기를 바라며 잠을 청해본다.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검정치마. 2008. Antifreeze. <201>.


지금까지 ‘박진영의 재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연재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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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진영(환경사회학 연구자)

환경사회학 연구자.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같은 대학 환경대학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지식 정치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환경과 보건의 교차점에서 과학기술, 사회운동, 정치를 주제로 연구한다. 저서로 『재난에 맞서는 과학』, 『대한민국 재난의 탄생』(공저), 『재난공동체의 사회적 연대와 실천』(공저)이 있고, 《한편 13호 집》에 글을 실었다.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공해와 지역 환경재난을 사례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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