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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2018년부터 2024년까지, 기억에 남는 책들”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400회) <어떤,책임> 마지막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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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4.07.01)


불현듯(오은): 마지막 녹음이라고 생각하니 아스라했어요. 어떤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스튜디오에 오는 이 길을 걸을 일이 별로 없겠구나, 싶어서 괜히 주변을 살피게도 됐어요. 캘리님은 녹음 오는 길 어땠어요? 

캘리: 스튜디오에 오려면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리는 방법도 있고, 여의도역에 내려서 여의도 공원을 가로질러 오는 방법도 있잖아요. 저는 공원 걸어오는 길을 좋아해요. 그 길목 신호등 앞에 은행나무가 하나 있는데요. 매번 보면서 계절을 느꼈어요. 겨울에는 앙상하고, 봄이 되니까 연둣빛 작은 이파리가 나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내 친구 은행나무라고 정했거든요. 지금 걔가 되게 우람해요. 보기에 참 좋은데요. 내가 얘를 또 언제 보러 오려나, 이런 생각을 했네요. 

불현듯(오은): 하지만 언제고 오면 그 은행나무는 캘리님을 반길 거라고 확신합니다. <어떤,책임>을 한 것도 6년이 넘는 시간이더라고요. 오늘 방송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어떤 책들을 소개해 왔는지 살펴보는데요. 캘리님과 프랑소와 엄님이 책을 소개하던 표정이 떠오르더라고요. 한 사람이라도 더 읽게 만들겠다고 정말 핏대를 세워가면서 이야기했던 그 순간들이 다 떠올랐어요. 

캘리: 그렇죠, <어떤,책임>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그에 맞는 책을 골라왔잖아요. 왜 골랐을까 궁금해지는 책도 있었고, 주제에 꼭 맞는다 싶은 책도 있었는데요. 그걸 서로에게 설득했던, 열렬했던 시간들이 저도 많이 생각났어요. 

불현듯(오은): 오늘은 <어떤,책임> 마지막 방송을 기념하여 2018년부터 올해 2024년까지 소개한 책들 중에서 기억에 남은 책들을 연도별로 한 권씩 일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캘리: 다시 얘기하고 싶은 책들이 정말 많은데요. 그 중, 지금 많이들 좋아하시는 책도 있어서요. 이 시간에는 다시 살려보고 싶은 책 위주로 골라봤어요. 2018년에 소개한 책 중에서는 『활자잔혹극』을 꼽아봤습니다. 절판이었다가 최근에 복간이 됐거든요. 이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어요. 아직도 첫 문장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는데요.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가 첫 문장이에요. 결론을 첫 문장에 다 해버리고 소설을 진행시키는 힘도 정말 대단하고요. 여름이니까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불현듯(오은): 저는 김성라 작가님의 『고사리 가방』이 생각나요. ‘조꼬띠’ 기억나세요? 되게 예쁜 말이잖아요. ‘가까이’라는 뜻이고요. 책에 너무 확확 걷지 말고, 발 가까이도 잘 살펴야 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많이들 멀리 가야 된다, 높이 봐야 된다고 말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가까이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에요. 

2019년은 저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정원 작가님의 『올해의 미숙』이에요. 사실 저한테는 올타임 베스트예요.(웃음) 이번에 다시 보니까 미숙한 것을 능숙하게 만드는 게 삶인 것도 같지만 어떻게 보면 미숙한 것을 미숙한 채로 놔두는 것, 미숙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1990년대부터 2000년대를 관통하는 문화를 다시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으니까요.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캘리: 저는 『푸른 눈, 갈색 눈』이라는 책을 꼽았어요. ‘뼈 때리는 책’이라는 주제 때 소개를 했더라고요. 이 책은 읽은 지 정말 오래됐는데 정말로 구체적인 내용들이 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책이에요. 늘 관심을 두는 것이 차별의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요. 미국의 한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급의 학생들을 푸른 눈을 가진 학생과 갈색 눈을 가진 학생으로 나누는 내용이에요. 어느 날은 갈색 눈, 어느 날은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 더 우월하다는 전제로 하루를 지내는데요. 놀랍게도 짧은 시간 안에 엄청 폭력적인 상황이 펼쳐지죠. 지금까지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실험 같아요.

불현듯(오은): 2020년으로 갑니다. 2020년은 캘리님부터 소개를 할게요.

캘리: 『인간 없는 세상』을 얘기하고 싶어요. 이 책은 지금 읽어도 너무 좋아요.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차근차근 다룬 논픽션인데요. 소개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너무나 현재적이에요. 오히려 점점 더 책에서 보여주는 풍경들이 피부에 와 닿는 면이 있습니다. 

불현듯(오은): 저는 프랑소와 엄님이 추천하셨던 『여름의 잠수』를 꼽아봤어요. 이 그림책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림책은 왠지 해피 엔딩일 것 같고, 어떤 갈등이나 문제가 있어도 어떻게든 해결해내서 어린이에게 성취감을 주면서 아름답게 끝나야 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다르거든요. 『여름의 잠수』는 빛이 있으면 어둠도, 그림자도 있는 것처럼 삶도 그렇다는 것을 말해요. 그러니까 삶 안의 어두움과 슬픔을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할 때 가장 적절한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2021년 책은 캘리님께서 추천해 주셨고 저도 비슷한 시기에 읽고 너무 좋았던 『마이너 필링스』입니다. ‘마이너 필링스’는 작은 감정들이라고 해석을 할 수도 있겠으나 더 깊숙이 들어가면 소수자의 마음일 수도 있잖아요. 저는 <어떤,책임>의 6년 이상 진행되어 온 시간들이 어쩌면 마이너를 헤아리는 마음들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떤,책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책이 『마이너 필링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캘리: 저는 『막두』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림책이고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막두’라는 중년 여성이 주인공이고요. 막두는 10살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전쟁을 피해 북에서 남으로 온 피난민이었어요. 당시 새해 계획 세우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했는데요. 매일 성실하게 하루를 사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 책이었기 때문이에요. 

불현듯(오은): 제가 꼽은 2022년의 책은 이혜미 시인이 쓴 『식탁 위의 고백들』이라는 책이고요. 제가 최근에 신문에 발표한 칼럼 제목이 ‘요리와 글쓰기’였어요. 종일 글을 쓰려고 앉아 있었는데 안 풀린 거예요. 그 날, 작은 기쁨이라도 있어야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괜히 밤에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잔 거죠. 그러면서 글쓰기와 요리가 닮아 있으면서도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쓴 칼럼인데요. 『식탁 위의 고백들』을 다시 읽으면서 그 마음을 많이 되새기게 되었어요. 

캘리: 저는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라는 책을 2022년에 소개한 책으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전영애 선생님을 결국 <책읽아웃>이 끝날 때까지 게스트로 못 모셨어요. 정말 원통합니다.(웃음) 선생님은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말이 너무 싫다고 하시면서 괴테가 노년에 쓴 이 말을 함께 인용하시죠. ‘그대 일에 있어서 다만 바른 일만 행하라. 다른 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언제나 제가 취하고 싶은 태도이고요. 늘 잃고 싶지 않은 태도예요. 

불현듯(오은): 2023년의 책을 제일 빨리 골랐습니다. 얀 그루에의 작가님의 『우리의 사이와 차이』라는 책인데요. 이 책은 읽자마자 지평이 넓어지는 게 느껴지는 책이에요. 이런 식으로 나의 삶을 기록할 수 있구나,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끄는 방식도 있구나,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런 것이 책을 읽는 궁극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더 많은 상상력. 옵션이 많을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도 있고, 거기서 오는 자유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캘리: 제가 2023년의 책으로 소개하려고 한 책이 『짐승일기』인데요. 이 책을 소개하면서 하고 싶었던 얘기를 지금 불현듯님이 다 해주셨어요. 『짐승일기』를 읽으면서 저 역시 그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이런 기록을 볼 수 있다니, 너무 귀하다고요. 불현듯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은 작가님이 기록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이야기거든요. 제가 그 어떤 순간에도 읽고 쓰는 일을 이어나가야겠다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에요. 

2024년의 책은, 최근에 소개된 책이기도 하고요. 저의 현재를 많이 지배하고 있는 이슈인데요.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꼽아봤어요. 지금도 매일 말도 안 되는 뉴스들이 올라오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을 비롯해,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제노사이드 이슈에 관심을 갖는 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시민에게 중요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어요. 덧붙여서 마지막 방송이니까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을 같이 얘기하고 싶은데요. 『사소한 일』이라는 소설이에요.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과 같이 보는데 제 안에서 크게 공명이 되었어요. 

불현듯(오은): 저는 마지막으로, 희정 작가님의 『뒷자리』 소개를 하겠습니다. 포도밭 출판사 대표님이신 최진규 선생님께서 출연하셨었죠. 이 책은 사건들의 지난 흔적을 되짚는 기록인 동시에 세상의 뒷자리에서 삶의 뒷자리를 더듬어 보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묵은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으면 그 사건은 늘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준 책이였고요. 생각해보면 글 쓰는 사람의 위치는 앞자리는 아닌 것 같아요. 뒷자리인 것 같거든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보는 그 장면에서  글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요. 스스로를 뭔가 북돋아 주기 위해서라도 뒷자리라는 책을 늘 눈에 보이는 곳에 꽂아 두고 있어요. 

캘리: 그동안 <책읽아웃>에서 소개한 책의 목록 자체가 엄청난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들만 꼼꼼하게 읽어도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무엇보다 매번 책임감을 느끼면서 녹음했지만 그 무게가 온전히 나만의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는 것, 듣는 분들이 함께 이 무게를 나눠 지고 걸어왔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하고요. 방송이 끝나도 읽고 말하고 쓰는 일을 멈추지는 않겠지만요. 그래도 <책읽아웃>에서 읽고 쓰고 말하는 일을 경험했다는 것이 정말 제 개인의 인생에도 엄청나게 영광이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불현듯(오은):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의 시기를 함께 했는데요. 읽는 것이 나를 구성하는구나, 지금 읽고 있는 것과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 나가는구나를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떤,책임>은 오늘로 막을 내리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것을 읽을지 결정하고, 그것들을 읽는 동안 자신이 변화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어요.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이것을 소화시키고 곱 씹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시면 뭔가 다음 날 눈 떴을 때 내가 약간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 순간들이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보고 싶어요.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책임>은 오늘로 책임을 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계속 읽다가 어디선가 만날 자리가 있으면 또 한바탕 책 수다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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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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