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아파하는 귀한 마음이 담긴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30회)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 『우리의 사이와 차이』,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3.03.02)
불현듯(오은) : 이번 주제는 '아파하는 귀한 마음이 담긴 책'입니다.
프랑소와 엄 : 얼마 전에 저희 청취자 분 중 한 분께서 아프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희가 이벤트하거나 제가 뭔가 요청드릴 때 정말 긴 메일을 많이 써주셨던 분인데요. 그분 생각이 너무 많이 났어요. 방송을 들으실 수 있는 환경인지 잘 모르지만 그분께 위로가 되는 책, 필요한 책을 소개해 드리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안한 주제입니다.
이주혜 저 | 에트르
책은 2부로 나뉘어 있어요. 1부는 작가님의 산문이고요. 2부는 작가님께서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고 쓴 서평론이에요. 그중 일부는 작년에 종간한 잡지 <우먼카인드>에 발표한 글이기도 합니다. 뜻밖에도 2부에 영업이 많이 됐어요. 작가님이 소개하신 책을 장바구니 담고, 절판된 것을 중고 매장에서 구매하고 그랬거든요. <황정은의 야심한책>에 출연하셨을 때도 읽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서, 이주혜 작가님의 읽고 쓰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정신 차리고(웃음) 1부를 중심으로 소개를 할게요.
작가님은 '사람이란 다면체라고 믿는다'고 쓰시더라고요. 몇 개의 면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전체적인 모양새는 어떤지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사람은 다면체라고요. 다면체는 조명을 어디서 어떻게 어느 정도로 쏘느냐에 따라서 아주 다르게 보이잖아요. 사람을 다면체라고 믿는 작가님은 더 나아가서 조명의 책무를 생각해요. 내 눈 앞에 있는 다면체의 어떤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조명을 쏠지, 어디서 조명을 쏠지는 사실 내가 결정하는 것인 거예요. 그러니까 작가님은 조명을 비추는 나의 역할에 대해서 의식을 해요.
그악스럽게 지하철에서 자리 잡는 아줌마, 폐지 줍는 노인, 지하철 지연에도 휠체어를 타고 시위를 하는 지체 장애인, 이런 라벨링들이 있을 텐데요. 다면체일 것이 분명한 이런 존재들에 대해서 어떻게 간단히 한 가지 라벨을 붙여 얘기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그 얘기를 하는 화자가 조명을 어떻게 쏘았느냐에 따른 것이죠.
아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대의 아픔을 떠올릴 때 당연히 그 아픔에 집중해서 같이 아파할 수도 있겠지만, 또 전체적으로 내가 조명을 쏜다면 아픔 이면에 있는 그 사람의 기쁜 사정이라든지 여러 가지 다양한 사정들을 헤아려 볼 수 있겠죠. 저는 이 태도가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되는 태도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 깨진 거울을 겁내는 우리에게 나는 오늘 화환처럼 무지개를 걸어주고 싶다. 산다는 게 다 그렇다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내느라 오늘도 모진 애를 쓰고 있으므로. 어린 날의 낙하는 크느라 그런 거라지만 오늘 우리는 끝내 추락하지 않기 위해 기어이 생존자가 되기 위해 낚싯바늘 몇 개를 아래턱에 매달고도 숨을 쉬고 있지 않은가.
기어이 우리 모두가 생존자가 되어서 같이 아픔을 가진 사람들, 아파하는 그 귀한 마음 가진 사람들과 손잡고 걸어갔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얀 그루에 저 / 손화수 역 | arte(아르테)
작가님은 1981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오슬로 대학교 언어학 교수로 재직하고 계세요. 제가 알기로는 국내에 첫 번째로 번역된 작가님의 책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 책은 실제로 작가님이 11번째로 낸 책이라고 합니다. 굉장히 열정적으로 책을 쓰시는 것 같고요. 이 책이 노르웨이 논픽션 부문으로는 최초로 '북유럽이사회문학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고 해요. 저도 이 책을 읽는데 르포 같기도 하고, 사회적인 통찰이 가득해서 철학과 문학과 영화를 가로지르면서 자기만의 영토를 구축하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아까 캘리 님께서 수식이라는 게 일종의 제약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 부분이 이 책에서도 아주 잘 드러납니다. 작가님은 세 살 때 선천성 근육질환인 척수근육위축증 진단을 받게 돼요. 이것은 신체의 근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수축해가는 진행성 질환인데요. 임상 사례를 보면 이 질환이 있는 사람은 점점 근육이 소실되어서 스무 살이 되면 두 발로 걸을 수 없고, 서른 살이 되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이 진단을 어릴 때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임상적인 시선으로 본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런 기록으로 보고요.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기억을 같이 병치하면서 글쓰기를 진행해 나가는 거예요.
작가님은 스무 살 때는 더 이상 걸을 수 없고 서른 살 이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이 시작이 됐잖아요. 그때 제가 떠올린 키워드가 '몸과 운명'이었는데요. 어쩌면 이 책은 몸이 변하지는 않지만, 그 몸을 가지고 운명을 바꾸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운명이라는 단어 앞에 나의 뜻, 내 의지 이런 것들을 놓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겠고요.
사실 애초에 진단과는 다르게 작가님은 지금 살아계시죠. 그리고 실제로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오진일 수도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대목도 등장해요. 그런데 작가님에게는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내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너무 용기가 느껴지는 대목이었고요. 그 장면에서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게 찾아오더라고요.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해야 된다, 임상적인 언어나 관료적인 언어가 아니라 나의 언어로 나의 상황을 이해하게 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정미진 저 / 김고둥 그림 | 엣눈북스(atnoon books)
2주 동안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정말 아플 때 내가 책을 읽을 수 있었나, 책을 읽게 되나, 이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요. 그러다 투병 중인 한 작가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아프실 때 어떤 책이 도움이 됐는지 추천을 부탁했죠. 그랬더니 작가님은 아팠을 때 책은 못 봤다고, 수사물 드라마만 계속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세 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요. 수술 전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을 할 때 큰 도움을 받았던 책이 『바디 : 우리 몸 안내서』라는 책이랑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라는 책이었고요. 『우리가 사는 방식』이라는 작은 책도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이런 책을 소개하는 게 어떨까 생각을 하다가요. 솔직히 병원에서 책이 눈에 들어올까 싶은 거죠. 결국 그냥 마음을 위로하는 책을 가지고 오자고 생각했어요.
제목이 '불행이 나만 피해 갈 리 없어'가 아니고 '없지'라는 게 되게 특별하게 다가왔거든요. 그러니까 불행해 나만 피해 갈 리 없어, 라고 하면 약간 누구한테 하는 말 같은데요. 없지, 라는 표현은 그냥 스스로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주인공이 불길한 꿈을 꾸고 집을 나서는데요. 신발에 껌이 묻기도 하고요. 지나가는데 어떤 꾸러미에서 책이 떨어져서 상처가 나기도 해요. 그래서 주인공은 이 불행이 언제쯤 끝나는 것일까 생각하죠. 그러면서도 하루의 삶을 살아요. 또다시 용기를 갖고 어딘가를 찾아가는데 또 문이 닫혀 있죠.
하지만 주인공은 이 불행을 천천히 마주하다가 문득 깨닫게 돼요. 행운도 나만 피해 갈 리 없지,라고요. 사실 저도 작년에 힘든 일이 많아서,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진짜 너무하네, 하면서요. 하지만 작은 불행, 큰 불행도 있을 거고, 힘듦이 있어도 행복도 나만 피해갈 리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청취자 분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골라온 건데요. 너무나 가족 같은 마음이 들어서 그분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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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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