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X김겨울 인터뷰]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관하여
테드 창 내한 기념 인터뷰
철학자들이 사고 실험을 이야기할 때, 철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다소 추상적이고 생소하게 느끼는 용어와 설명을 사용하는데요. 이에 반해 SF는 독자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몰두해서 굉장히 내면적인, 그리고 본능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합니다. (2024.06.25)
6월 13일, 한겨레가 주최한 제3회 사람과디지털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테드 창을 김겨울 작가가 만났다. 한국에 머물러 있던 짧은 기간 동안 그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쉬운 독자라면 이 인터뷰를 주목해 보자. 김겨울 작가는 평소에도 책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테드 창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터. 두 작가의 신, 자유의지, 언어, 인공지능 등을 주제로 한 종횡무진한 이야기가 인터뷰에 담겼다.
김겨울 한 편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끝까지 완성한 뒤에야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집필하나요?
테드 창 늘 그렇게 써왔고 아직 동일한 방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종종 글부터 먼저 쓰기 시작했는데요. 처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이야기의 끝까지 가지 못하고 다소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있었어요. 먼저 오랫동안 이야기를 생각한 후 펜을 들어서 글을 쓰는 게, 제가 작가로서 스스로 설립한 하나의 패턴입니다. 종종 이야기의 결말 부분을 제일 먼저 써요. 굳이 이야기의 가장 마지막 문단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어떤 목적지 역할을 해주는 부분이요. 이 부분이 명료해지면 나머지 이야기를 써요. 늘 지금 쓰는 글이 목적지로 가는 토대를 어떻게 닦을지를 자문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김겨울 쓰는 동안 불가항력적으로 이야기가 내가 정해둔 결말과 벗어나려고 하는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테드 창 아직 그런 경험은 없었어요. 많은 작가가 종종 인물이 이야기를 통제하기 시작하고, 이야기를 좌지우지하고, 때로는 작가의 의도대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하는데요. 사실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저는 늘 작가 입장에서 인물이 원해야 하는 것들을 원하게 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김겨울 끝을 정해놓고 쓰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각각의 작품이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읽힙니다. 각각의 세계를 만들어내도록 처음에 촉발하는 동기, 작품의 시작점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걸까요?
테드 창 작가마다 각자의 다양한 집필 방식이 있기 마련인데요. 미리 이야기를 구성하고 글을 쓴다고 해서 우리가 그 작품을 읽었을 때 미리 구성되고 계획된 이야기인지, 또는 즉흥적으로 써 나간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결말을 미리 염두에 두었다고 해서 결론이 정해진 상태라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늘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지만, 대부분 아이디어는 금방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디어는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서 계속 반복적으로 떠오르는데요. 이런 아이디어에 더 많이 주의를 기울이고 의도적으로 사유하면서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해 낼 수 있는지를요. 특히 그중에서 제게 흡족한 결말로 이끄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죠.
김겨울 구체적인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 보려고 하는데요. 「바빌론의 탑」,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그리고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세계가 공간적으로 순환하기도 하고 시간상으로 전후를 오가기도 합니다. 「바벨론의 탑」은 공간적으로 순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말을 띠고 있고,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시간상으로 앞뒤를 오가는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도 미래와 현재, 혹은 과거로 보이는 이야기가 교차하는데, 선형적 세계관, 순환적 세계관, 나선형적 세계관 등 여러 가지 세계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테드 창 저의 관점 또는 해석에 관해 먼저 설명을 해드리자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과 「네 인생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시간여행을 하는 세계관이고, 굉장히 결정론적인 세상을 보여줘요. 아인슈타인의 상태성 이론이나 블록 우주(block universe) 개념, 철학에서의 영원주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영원주의는 방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순환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바빌론의 탑」은 앞서 언급한 두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김겨울 작품에서 언어가 소재가 되는 작품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72글자」는 명명학이라는 소재가 등장하고,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도 언어학이 중요한 소재입니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기록,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언어 중에서도 구술 문화가 아닌 문자를 통한 전승이 중요하게 다뤄지는데요. 언어에 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테드 창 움베르토 에코의 『완벽한 언어를 찾아서(The Search for the perfect language)』라는 책에서는 이상화된, 이상적인 언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사용하던, 또는 천사가 사용하던 언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어떤 아이디어를 혼란의 여지 없이 명료하게 표현하는 언어라는 개념은, 하나의 사고와 그것을 묘사하는 단어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요. 오랫동안 인류에게 굉장히 매혹적인 개념이었죠.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완벽한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언어를 정의 내릴 때 하나의 단어와 해당 단어가 묘사하는 개념 사이에는 직접적이고 내면적인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언어는 매력적인 아이디어이자 인간의 숙제이고, 언급해 주신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완벽한 언어로 다가가고자 하는 다양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김겨울 「지옥은 신의 부재」와 「옴팔로스」는 신이 실존하는 세계를 가정하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런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신이라는 소재를 쓰는 즐거움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테드 창 특정한 즐거움을 얻는 것 같지는 않고요.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라지 않아 신앙이나 믿음을 갖고 있지 않고, 독실한 신자였다가 믿음을 상실하는 경험도 개인적으로는 없어요. 하지만 신이라는 아이디어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추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신이라는 아이디어 또는 존재는 세상 또는 우주를 이해하는 걸 도와줘요. 여기서 대두되는 질문은, ‘그러면 신은 우리의 삶을 쉽게 만들까? 또는 더 어렵게 만들까?’라는 것인데요. 제 머릿속에 계속 있는 질문이에요. 많은 사람이 신이나 믿음이 자신을 위로한다고 하지만, 저는 어떻게 보면 신이 우리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도 생각합니다. 차라리 무신론자가 되는 게 더 쉽다고도 생각하는데요. 궁극적으로는 신이라는 개념으로 과학과는 굉장히 다르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많이 관심이 가요.
김겨울 다음 질문은 자유 의지에 대한 것인데요. 「우리가 해야 할 일」에서는 예측기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등장합니다. 「네 인생의 이야기」나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서도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요. 자유의지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나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 등이 결정주의 또는 결정론 대 자유의지라는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상대성 이론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블록 우주와 영원주의를 함의하더라도 실제 세계에서는 이런 블록 우주가 발견될 수 없고, 미래 정보는 미래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 상대성 이론의 중심축 중 하나죠. 만약 시간 여행이 실제로 가능해진다면 어려운 문제가 많이 나타날 거예요. 실제 삶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진짜 문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아도요. 「네 인생의 이야기」나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우리가 해야 할 일」에서 미래에 대한 정보를 좇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러한 여정이 야기하는 모순 또한 볼 수 있어요. 저는 철학에서 양립 가능론이라고 말하는 개념에 더 이끌리는 편인데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이러한 철학적 아이디어로 뒷받침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겨울 이제까지 말한 요소들을 SF 장르로 풀어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SF 장르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경이감을 꼽고는 하는데,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SF의 어떤 점이 작가님께 재미를 주나요?
테드 창 재미는 사실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잖아요. SF를 쓸 때 저는 사고 실험을 이야기로 옮기고 서사화하는 과정에서 큰 재미를 느끼는데, <스타워즈> 같은 영화와는 또 다른 방식의 재미예요. 철학자들이 사고 실험을 이야기할 때, 철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다소 추상적이고 생소하게 느끼는 용어와 설명을 사용하는데요. 이에 반해 SF는 독자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몰두해서 굉장히 내면적인, 그리고 본능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독자들은 사고 실험이 왜 이렇게 흥미로운지를 이해할 수 있고요.
김겨울 사고 실험의 아이디어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철학 책을 읽기도 하시나요?
테드 창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철학 책을 읽는다기보다 제게 떠오르는 어떤 생각, 아이디어가 있을 때 기존 저서들을 읽어서 철학자들이 그동안 어떻게 말해왔는가를 알아보고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겨울 동시대 sf 작품을 읽으시는지도 궁금한데요. 켄 리우는 자신의 작품 「사랑의 알고리즘」이 작가님의 「영으로 나누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을 직접적으로 했더라고요.
테드 창 즐겨 읽는 편이고요. 켄 리우에게도 제가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게 매우 기쁩니다. 다른 동양계 미국인 SF 작가들도 제 작품을 읽고 과학 소설계에 그들이 설 자리가 있다는 것을 또 깨달았다고 전해왔는데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죠.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양계 작가들이 예술을 하도록 장려받지는 못하는 상황이에요 (편집자 주 : 미국 동양계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의사나 변호사 등이 되기를 원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언급). 하지만 또 따지고 보면 그 어떤 작가도 SF를 쓰라고 장려받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SF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의 예시가 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아요.
김겨울 작품 관련해서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작가님의 장편을 만나볼 기회가 있을까요?
테드 창 현재 장편 집필 계획은 없습니다. 장편을 일부러 피하는 것은 아니고요. 만약 장편 형식에 어울리는 소재를 발견하면 시도하겠지만, 지금은 아이디어들을 단편 형식으로 풀어내는 데 만족하고 있어요.
김겨울 인공지능을 지능으로 부를 수는 없다는 게 작가님 입장이라고 알고 있고, 참여한 한겨레 포럼에서도 인공지능을 지능이라고 부르기보다 통계의 일종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테드 창 지능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다양한 의미로 사용돼요. 사람의 지능, 동물의 지능, 기계의 지능을 얘기할 때 각각의 상황에서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프랑스와 숄레(편집자 주 : 가장 널리 사용되는 딥러닝 프레임워크 ‘케라스’의 창시자)는 ‘기술은 주어진 과제 또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 ‘지능은 이러한 기술을 습득하는 속도’라고 정의 내린 바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은 새로운 기술을 굉장히 빠르게 습득하지만, 컴퓨터는 새로운 기술을 빨리 습득하지 못하죠. 반면에 컴퓨터는 임무를 수행하고 과제를 완수하는 걸 사람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지능에 관한 다양한 정의가 있기 마련인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지능의 정의 안에 그들이 만들어낸 것들을 포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그들이 만든 정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김겨울 만약 어떤 컴퓨터가 새로운 기술을 - 말하자면 학습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 쉽게 배울 수 있다면,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지능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기준이 있을까요?
테드 창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컴퓨터가 출연한 뒤에야 우리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김겨울 소설가이자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에 관해 판단하는 데 직업이 영향이 있었나요?
테드 창 AI라는 용어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SF에서는 의식 체계를 갖춘 것처럼 보이는 기계를 뜻하고, 실제 현실 속에서의 AI는 응용통계 프로그램을 뜻합니다.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용어의 혼용과 혼란을 이용하곤 하는데요. 이런 프로그램에 걸맞은 다른 이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1956년 다트머스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어떤 학자가 복잡 정보 처리(complex information processing)라는 용어를 제안한 바 있는데, 더 적합한 용어지만 AI처럼 섹시하지는 않아요. (웃음)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엄청 혼란스러운 용어를 쓰고 있나 봅니다.
김겨울 소위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이런 것들을 지능이라고 보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은 이미 이를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 작가님은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 하드디스크 보존이 인간의 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을 다루었는데요. 지능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실제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인지 과정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테드 창 우리에게 흔히 AI라고 판매되는 것 또는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인지 과정에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지를 확장하는 기술인 글쓰기와는 달리, AI는 유의미한 인지 과정을 확장할 수 없어요.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나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등의 컴퓨터 기술들은 우리의 인지를 확장해 줄 수 있겠지만, 이것들은 AI와는 다른 영역이에요. 저는 AI는 인간 인지 과정의 확장에 영향을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겨울 언어 모델이 집필한 sf 소설이 있다면 - 물론 그것을 예술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 작가님의 입장인데 - 만약에 제법 그럴듯한 작품이 나왔다고 하면 읽어보실 의향이 있나요?
테드 창 “작품이 좋다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이미 결론이 나온 질문인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은 “그러면 정말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김겨울 그렇다면 인간이 쓴 작품에 있어서 ‘좋은 작품’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테드 창 좋은 예술(art)인가요, 아니면 좋은 소설(story)인가요? 어렵네요. 좋은 예술이 아니라 좋은 소설로 매체를 국한지어도, 사실 쉬운 정답을 찾을 수가 없어요. 회화가 됐건, 영화가 됐건, 사진이 됐건, 또 음악이 됐건 난이도는 똑같습니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쉬운 답이 없습니다.
*테드 창(Ted Chiang)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과학도이자 ‘전 세계 과학소설계의 보물’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소설가. 동시대 과학소설 작가들의 인정과 동시대 과학소설 독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작가로 휴고상을 4번, 로커스상을 4번, 네뷸러상을 4번 받았다. 1990년 발표한 첫 단편 「바빌론의 탑」으로 역대 최연소 네뷸러상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았으며,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스터전상, 휴고상, 네뷸러상을 휩쓸며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과 지지를 받았다. 「인류 과학의 진화」, 「우리가 해야 할 일」 두 작품이 <네이처>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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