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의 잃어버린 편집을 찾아서] 출판계 취업교육의 명암
그가 끝내 “정나미”를 털고 퇴사를 결심하게 만든 계기는,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이 “배움의 과정”이라는 상사의 한마디였다.
글ㆍ사진 김영훈(출판 편집자)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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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7일 방영한 KBS <추적 60분>은 취업 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들의 모습과 그들의 고민을 카메라에 담았다. 화면에 처음 등장한 이는 전직 출판 노동자였다. “적게 벌더라도 즐겁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들어간 출판사였으나, 그가 23개월을 일하며 얻은 건 “죽을 것 같”은 공포였다. 야근과 폭언이 빈번했던 일터. 그가 끝내 “정나미”를 털고 퇴사를 결심하게 만든 계기는,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이 “배움의 과정”이라는 상사의 한마디였다.1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내가 들었던 건 어느 면접에서였다. 모 출판사 대표는 편집자란 직업이 얼마나 좋냐고 묻더니, ‘평생 공부할 수 있는데 회사가 돈까지 주니 정말 좋은 직업’이 아니냐며 허허 웃었다. 배움, 공부, 교육. 출판사는 그런 단어를 참 좋아한다. 책 제목 이야기가 아니다. 저임금, 고강도, 장시간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배움, 공부, 교육이라는 말로 퉁치는 일이 출판계에선 부지기수다. 심지어 요즘 적잖은 출판사들은 입사 후 곧바로 실무를 담당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직무 관련 교육까지 마친 지원자를 선호하는 실정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출판사로의 취업 문화는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회사에 들어가서’ 선배로부터 직무와 소양을 어깨너머로 배웠다면, 지금은 ‘회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지원자가 직접 별도의 시간과 비용을 내고 그것들을 배운다. 예비 출판인 대상의 교육은 보통 ‘출판학교’에서 진행한다. 시작은 2005년 서울북인스티튜드(SBI)의 설립이었다. SBI는 “체계적이고 실무적인 교육을 바탕으로 출판계의 든든한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기수마다 6개월에 걸쳐 798시간의 교육을 진행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SBI 이외의 ‘출판학교’도 점차 늘었다. 시간이나 비용, 강사와 내용 등에 다소 차이는 있으나, 실무 기반의 교육으로 취업을 지원한다는 목표는 대동소이하다.


출판학교의 취업 교육은 출판사와 지원자 모두의 니즈를 충족하려는 명분에서 출발했다. 신입 출판 노동자는 “매뉴얼이 없어 답답”했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업무량이 많아 어쩔 수 없었”던 환경에 대한 나름의 개선책이었던 셈이다.2 하지만 현재의 출판학교가 본래의 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출판학교가 신입을 교육할 여력이 부족했던 출판사의 곤란함은 일정 부분 해소했을지 몰라도, 매뉴얼이 없어 답답했던 신입의 곤란까지 개선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출판학교들의 1차적인 교육 대상은 ‘신입’ 출판 노동자가 아니라 ‘예비’ 출판 노동자이다. 출판학교의 등장으로 출판사는 신입 채용에 더욱 보수적이다. 신입을 채용해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기보단, 적어도 하나하고 둘은 아는 교육 이수자를 선호하는 것이다(물론 아닌 경우도 존재하고 그 나름의 이유는 있다). 출판학교들의 모집 요강을 보면, 출판사 입사를 희망하는 지원자에게 유사 실무에 가까운 직무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입사 후 빠르게 실무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이 어쩌면 출판사가 담당했던 신입 대상의 직무 교육을 외부 교육기관에 외주화하고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때 교육 서비스의 품질은 문제가 아니다. 치열한 출판시장에서 ‘베테랑’으로 입지를 다진 경력자들이 열의와 애정을 가지고 참여하는 수업을 누가 마다할까. 문제는 교육 과정이 아니라 교육 이후에 발생하고, 교육의 품질이 아니라 교육과 현장 사이의 괴리에서 기인한다. 가령, 많은 출판학교의 취업 교육이 채용 연계성을 특히 강조한다. 그렇다면 출판학교들은 출판사를 어떻게 검증하고 있을까. 그 검증은 구체적이고 실효적일까. 이런 의문은 2010년 전후부터 제기되었으나, 여전히 충분히 해소되었다고 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교육을 이수하고 출판사에 입사해도 만족하기란 어렵다. 오늘날 편집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베스트셀러를 척척 뽑아내는 기획력, 원고를 천의무봉으로 만드는 교정력, 작가와 외주자와 협력 업체와 신뢰와 믿음을 주고받는 의사소통력? 아니, 지금의 시대정신은 유체이탈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든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며 회사의 방침을 새롭게 학습해야 하고, 창작자와 노동자에게 고루 불합리한 보상 체계에 자족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설득할 줄 알아야 하는 것 등이 오늘날 출판사에서 일하기 위한 주요 덕목이다.


매년 속도를 높이며 폭주하는 출판이라는 지옥행 열차는 이미 발 디딜 틈 없는 만원이다. 어쩌면 산업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예비 출판인의 지속적인 양성은 고통의 총량을 늘리는 비극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열차에 탄 사람들만으로도 고통의 총량은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하다. 출판산업의 불황과 불안은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 허투루 쓰고 가볍게 여기는 데서 기인한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볼모로 잡아 열정과 노동력을 요구하기 이전에, 출판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1  “‘쉬었음’ 청년 70만, 저는 낙오자인가요”, KBS 추적60분, 2024.06.07. https://www.youtube.com/watch?v=3tZYhQqm1vM

2  “[출판인 양성 현장을 가다] 서울북인스티튜트”, 『내일신문』, 2011.09.05.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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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woo93

2024.07.06

출판학교 외에도 사설 강의를 통해 '예비' 출판인을 교육하는 일들을 보면, 이런 절차가 입사 장벽을 넘어 하나의 사업으로 여겨집니다. 출판계가 날이 갈수록 산업 규모가 작아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기존의 출판사와 편집자, 마케터 들이 책 판매 외에 이런 시스템으로 신규 '유입자'에게서 어떻게든 돈을 더 뽑아내려고 하는 것 같아 참 답답합니다. 신입 채용은 날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는 면에서도 아이러니하고 속이 쓰립니다. 어떤 산업이나 사교육 환경이 있겠지만, 기대 수익이 낮은 출판계에서 날이 갈수록 사설 강의와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건...참 각자의 잇속을 챙기려는 속셈이 보여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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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사과

2024.06.26

그 어느 편보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출판사의 ‘신입’사원들 중 출판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역시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힘든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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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다구리전사

2024.06.19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은 예비 출판인들에게는 하나의 큰 벽이 더 세워졌다는 인식이 큽니다. SBI를 통해서 기본적인 실무 역량을 길러서 출판업에 뛰는 순환적인 구조면 좋겠지만, 출판사에서 일하기 위해서 출판 학교에 지원해야 하고, 출판 학교를 이수하지 못한 예비 출판인은 다시 출판 학교가 지원자를 받을 때까지 맨땅에 헤딩하는 꼴입니다. 운 좋게 면접까지 가더라도, 그래서 다른 출판 학교에서 실무를 배우거나, 일한 경험은 없는지 묻곤 하죠. 이러다가 출판사에 들어가기 위한 출판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예비 출판 학교까지 생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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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출판 편집자)

편집자. 서너 곳의 출판사에서 책을 편집했다. 만들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한결같이 타이완과 홍콩을 사랑한다. X(트위터였던 것) @bookeditor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