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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정의 옛 담 너머] 부처가 못 돼
현호정 칼럼 - 6화
부처가 되기 위해 여러 차례 벗어야 하는 껍질 중에는 부처님 껍질도 있다고. 언젠가는 붓다를 찢고 붓다 밖으로 나와야 붓다가 될 수 있다고. 붓다를 거기 남겨둔 채 당신에게 옳고 좋은 길로 날아가기를 붓다도 원한다고. 정말이다. (2024.06.11)
현호정 소설가가 신화, 설화, 전설, 역사 등 다양한 옛이야기를 색다른 관점에서 읽으며, 현대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을 전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나는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당시 곤충에 푹 빠져 있어서였을까. 여자가 부처가 되려면 먼저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내게 이렇게 해석되었다. ‘남자란 여자가 부처가 되기 위해 거치는 번데기다.’
그런데 최근에 번데기 단계를 거치지 않고 탈피하여 성충이 되는 곤충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촌역에서 경의중앙선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신발 끈이 풀려서 구석으로 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옆에서 어색한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동양하루살이 두 마리가 보였고 살펴보니 두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였다. 아성충에서 성충으로 막 탈피한 뒤라 비슷한 크기의 허물이 짝처럼 곁에 있던 거였다.
날개 달린 곤충은 탈피 후 젖어 있는 동안에 날개가 조금이라도 구겨지거나 찢어지면 그 상태로 말라붙어 평생 평행으로 날지 못한다. 구석이긴 해도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북적였으므로 열차가 올 때까지 그를 지키며 문득 이런 게 궁금해졌다. ‘어차피 하루밖에 못 사는데 왜 굳이 힘들게 탈피까지 할까.’ 기사들을 찾아보던 중 사실상 이 탈피가 하루살이의 수명을 줄이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충으로의 탈피 단계에서 하루살이는 입이 퇴화한다. 더이상 먹이를 먹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내게 이러한 하루살이의 일생은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가 설명하는 시간관을 상기시킨다.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1 에 수록된 이 소설은 물리 법칙을 인과적 맥락이 아닌 변분 원리로 기술할 수 있음을 밝힌다. “어떤 순간이 다음 순간을 낳고, 원인과 결과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을 만들어내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고방식과 반대로, 가장 처음과 마지막 상태를 아는 채로 “사건을 일정 기간에 걸쳐 바라봄으로써 목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지적 생명체가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시간에 걸친 탈피와 그 이후에 쓸 에너지를 위해 매일 필요한 양보다 많은 먹이를 먹는 아성체 하루살이는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미래’랄지 ‘결과’ 혹은 ‘결론’을 이미 알고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들도 잉여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왜 번데기를 만들어 입 달린 성체로 완전변태할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인문대에 다니는 동안 들었던 “왜 로스쿨 준비 안 해?” 류의 질문을 상기시킨다. 테드 창의 문장을 빌리면 이는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인에 의해 결과가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알 수 있는 미래’는 존재 불가함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아는 사람들은 미래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미래가 적힌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행위가 역사와 일치하는 것처럼 “그들의 동기 또한 역사의 목적과 일치”한다.
“여자들은 흰가루병이 논을 망치듯이 교단을 망칠 터”2 라고 붓다는 이야기했다.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다.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특히 집단을 망치는 경향이 있다. 그 가운데는 망쳐지는 게 나은 집단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테드 창 식으로 얘기하면 어떤가. 미래에 논은 망쳐지도록 결정되어 있다. 흰 가루들은 그냥 흰 가루들이 원하기 때문에 흰 포자를 펑펑 뿜는다. 자신들이 언젠가는 논을 망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 부인하면서, 논 전체를 하나의 누에고치로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이 균사를 뻗어 가능한 모든 것을 감싸 덮는다.
불교는 붓다라는 완벽한 개인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내 이마를 어루만진다. 붓다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말했다.3 가르침을 다 믿지 말라고도 몇 번씩이나 이야기했다. “자, 칼라만인들이여, 들은 이야기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남의 말만 믿고 진리라고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 어떤 스승에게도 의지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4 붓다는 그 대신 스스로를 믿으라고 말했다. “여러분 자신 속에서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고(쿠살라)’ 저런 것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아쿠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누가 뭐라 하든 간에 도움이 되는 것을 실행에 옮기고 그것을 고수하십시오.”5
나는 이와 같이 말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여러 차례 벗어야 하는 껍질 중에는 부처님 껍질도 있다고. 언젠가는 붓다를 찢고 붓다 밖으로 나와야 붓다가 될 수 있다고. 붓다를 거기 남겨둔 채 당신에게 옳고 좋은 길로 날아가기를 붓다도 원한다고. 정말이다.
“붓다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나그네가 뗏목을 어찌해야 합니까? 큰 도움이 되었으니 어디를 가든 질질 끌고 다녀야 합니까? 아니면 그것을 강변에 그냥 묶어두고 자기 갈 길을 계속 가야 합니까?’ (…) ‘내 가르침 역시 뗏목과 같습니다. 강을 건널 때만 쓰면 되지, 늘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6
나의 경우 언제든 이촌역에서 4호선을 타고 강을 건널 수도, 경의중앙선을 타고 강과 나란히 달릴 수도 있다. 그래서 굳이 뗏목을 탈 필요가 없다는 판단 하에 뗏목을 전격 해체, 목재의 일부로 연필과 종이를 만들어 이 글을 쓴다.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2016.
2 Vinaya: Cullavagga, 10: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푸른숲, 2003, 재인용.
3 Anguttara Nikaya, 4:36, 같은 책 재인용.
4 Anguttara Nikaya, 3:65, 같은 책 재인용.
5 같은 책, 같은 곳.
6 Majjhima Nikaya, 22, 같은 책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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