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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의 살다보니 SF] 친구들아 내게 글을 줘 힘을 줘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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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는 (아쉽게도 직접 보진 못했지만) 트위터에 이런 현명한 트윗을 썼다. “작가를 위한 최고의 팁: 작가를 위한 어떤 어리석은 팁도 듣지 마라.” (2024.04.23)


심완선 SF 칼럼니스트가 일상에서 벗어난 딴생각을 풀어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


pexels


‘바디 더블링’이라는 말을 배웠다. 물리적으로 혹은 가상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ADHD를 비롯해 쉽게 산만해지는 사람에게 권장되는 요법으로, 집중력이 향상되고 작업 효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심지어 별다른 상호작용 없이 같이 있기만 해도 효과를 본다고 들었다.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타인의 신체가 일종의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그게 아니라도 타인이 나를 보고 있다고 의식하면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타인을 향한 감각이 나의 책임감을 자극하고 의욕을 부채질하는 듯하다.

같이 일하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새롭진 않다. 많은 사람이 공동 작업실을 구하거나, 함께 스터디를 하거나, 온라인으로 화상 채팅을 켜놓은 상태로 집중하곤 한다. 그러고 보니 내 학교 동기들은 자습실에서 공부할 때 각자 자리에 앉아 다같이 화상통화를 켜기도 했다. 그럼 1) 휴대폰으로 딴짓하기가 어렵고 2) 서로 제대로 공부하는지 감시할 수 있으며 3)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며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혹은 ‘공부 영상’처럼 자신이 집중하는 모습을 온라인에 공유하고, 그걸 지켜보며 함께 집중하는 경우도 바디 더블링 아닐까. 생각해보면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운영하는 김겨울 님도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책을 읽어보았다”나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만 하는 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 나는 후자엔 욕심이 없지만 ‘12시간 책읽기’에는 눈물나게 공감한다.

내 경우엔 트위터를 하는 동안 도움을 받았다. 마감이 코앞이면 새벽에도 일하게 된다. 그럼 살짝 외롭고 서럽고 피곤하다. 왜 잠도 못 자고 일하나 싶지만 자업자득이라 어디 하소연하기는 머쓱하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누구에게 연락하기도 어렵다. 괜히 트위터나 새로고침한다. 그럼 나와 똑같이 새벽까지 마감에 시달리는 동료들이 온라인에 있다. 벼락치기라는 진흙탕을 (심정적으로) 뒹구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어찌나 힘이 되는지……. 은은한 반가움과 함께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 자리를 빌어 금정연 님께 감사를 전한다. 님은 모르셨겠지만 님의 고통이 저의 위안이었어요. 종종, 어쩌면 상당히 빈번하게…….)

동료들, 친구들은 글쓰기에도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다. 연재를 지속하며 깨달았는데, 에세이를 꾸준히 쓰는 요령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거였다. 만남은 글감을 준다(예전 연재글 “게임 친구를 소중히” 참조). 주의하시길. 글 쓰는 인간들은 대뜸 “이거 어떻게 생각해?”나 “이거 글에 써도 돼?”라고 물을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대화하면서 생각을 구체화하거나, 의기투합해서 무언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화르륵 타올라 팟캐스트 ‘크로스 카운터’를 2년쯤 방송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지금은 소영현 님과 ‘이인삼각 SF’라는 비평 대담을 문학웹진 <림>에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만나는 상대를 친밀한 관계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커트 보니것은 『바곰보 스너프 박스 Bagombo Snuff Box』라는 단편집 서문에 8개의 글쓰기 지침을 적었다. 그중 1번은: “완전히 낯선 사람의 시간을 활용하라. 그 사람이 시간 낭비라고 느끼지 않을 방식으로.”

미스터리 장르에서 유명한 ‘녹스의 10계명’도 동료 작가들의 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로널드 녹스는 영국의 카톨릭 신부이자 작가로, 미스터리 작가가 모인 ‘탐정 클럽(Detection Club)’ 회원으로 활동했다. 녹스 외에도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L. 세이어즈, G. K. 체스터턴 등이 회원이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저녁을 함께하며 작품과 작법에 관해 논했다. 때때로 하나의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연재하는 공동 창작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녹스는 클럽에서 오간 논의를 토대로 「좋은 탐정 이야기를 위한 10가지 규칙」을 정리했다. 작가로서, 또 미스터리 독자로서는 그저 부러운 일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SF 소설을 비롯해 온갖 분야의 책을 쓴 그는 미스터리에도 손을 댔다. 또한 그는 ‘베이커가 특공대(BSI, Baker Street Irregulars)’ 클럽 회원이었다. 바로 ‘셜록 홈즈’ 팬클럽이다.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탐정 셜록 홈즈의 시리즈에 열광한 팬들(=셜로키언)은 작중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모임 이름을 따서 클럽을 만들었다. 클럽의 회원이 되려면 먼저 셜로키언다운 애정을 증명해야 했다. 자격 요건은 홈즈 시리즈에 관한 에세이나 논문을 발표했을 것. 아시모프는 처음에는 면제를 받아 자격을 충족하지 못한 채로 가입했다. 그러나 BSI 클럽에서 회원의 글을 모아 출간하기로 하면서, 아시모프에게도 이참에 하나 쓰라는 제안이 들어갔다. 작중 등장인물인 ‘모리어티 교수’의 논문을 다루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참고로 모리어티는 홈즈와 반대되는 악당이자 치명적인 호적수로 묘사되는 인물이다. 세간에는 수학자로 알려진 모리어티는 21살에 이항정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수학 교수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소행성의 역학 The Dynamics of an Asteroid」이라는 난해하고 뛰어난 논문을 낸다. 물론 이는 모리어티라는 인물을 보여주려고 적당히 붙인 제목이었을 것이다. 원작인 『공포의 계곡』에는 논문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시모프는 코난 도일이 빈칸으로 둔 부분을 기꺼이 채워 「소행성의 역학」을 집필했다. 논문 제목을 토대로 모리어티의 속내를 추측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아시모프는 모리어티가 ‘소행성(an asteroid)’을 단수로 표현한 점에 주목한다. 소행성 일반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소행성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필시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일 터였다. 그리고 197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존재하는 소행성대는 ‘행성 파괴’ 때문에 생겼다는 가설이 유효했다. 원래 그 자리에 다른 행성이 있었는데 어떠한 이유로 파괴되어 소행성대로 변했다는 설명이었다. 따라서 모리어티가 내심 정말로 관심을 기울였던 지점은 행성을 파괴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시모프는 위의 추론을 발전시켜 곧바로 단편소설을 썼다. 그의 미스터리 시리즈인 ‘흑거미 클럽’ 단편집에 수록된 「궁극의 범죄 The Ultimate Crime」다. 이 시리즈에서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클럽 회원들이 모여 수수께끼를 놓고 번갈아 추리하고 논박한다. 「궁극의 범죄」에서도 회원들은 토론을 거듭하다 무서운 가설에 도달한다. 파괴된 행성에도 모리어티 같은 악당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슈퍼 모리어티’가 행성을 파괴한 주축 아닐까. 지구의 모리어티는 ‘슈퍼 모리어티’가 사용한 방법을 알아내 지구를 파괴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구 파괴야말로 모리어티가 구상한 궁극의 범죄일 것이다.

같은 분야에 같이 몰두하는 동료들의 영향. 이건 내가 좋아하는 주제다. 미국의 SF는 팬진 등 팬덤 활동이 중요한 동력이었다. 수많은 규범, 지침, 조언, 자료, 평가가 팬덤을 매개로 발전했다. 한국도 1990년대에 PC통신으로 온라인 동호회가 만들어지면서 장르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듯하다. ‘한국형 판타지’가 유행할 때엔 온갖 자료가 게시판에 돌아다녔다. D&D나 겁스 같은 TRPG 룰북을 무단으로 번역하고 짜깁기한 내용이 대표적이었다. PC통신 시절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게시판 시절엔 홍정훈의 『더 로그』 등 정말로 여러 판타지 소설이 그런 설정을 차용했다. 팬덤과 작가는 거리가 멀지 않았고, 다 같이 ‘9서클 마법’이나 ‘메모라이즈’ ‘파이어 볼’ ‘매직 애로우’에 관한 지식을 공유했다. 지금보다 저작권 인식이 희미했던 한편으로 한국어로 된 자료를 구하기가 비교적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예시는 얼마든지 있다. E. L. 제임스가 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스태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의 팬픽으로 시작했다. 팬이 창작물을 올리는 게시판에 글을 연재하다가 내용이 너무 고수위라 다른 곳으로 옮겨 완성한 거라고 들었다. 또한 옥타비아 버틀러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시리즈를 보고 뱀파이어 로맨스를 쓰겠다는 생각으로 『쇼리』를 집필했다. 조지 루카스가 만든 ‘스타워즈’는 프랭크 허버트가 원작을 쓴 ‘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보르코시건 시리즈’를 쓴 SF 작가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는 ‘스타 트렉’ 팬덤 출신이다. 어슐러 K. 르 귄의 엽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SF 안에서 거듭 활용되었는데, N. K. 제미신의 경우 오멜라스와 유사한 ‘움-헬라트’ 이야기로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을 썼다. “여긴 빌어먹을 오멜라스가 아니니까”라는 구절이 나오는 소설이다.

한국의 경우 전삼혜는 김보영의 단편 「0과 1사이」를 보고 SF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고, 심너울은 곽재식의 작법서로 배웠다고 했다. 나아가 인터뷰집 『우리는 SF를 좋아해』를 보면 김초엽은 한국에서 SF를 쓸 때 고민되는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앞선 한국 SF 작가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답했다. 정세랑은 어떻게 SF를 쓰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SF 작가 동료가 많아서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발을 들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환상문학웹진 거울을 생각한다. 2003년에 시작해 현재도 꾸준히 창작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공간이다. 장르소설을 게재하거나 출간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기부터, 알음알음 모인 사람들이 아무 대가를 받지 않고도 소설을 올렸다. 서로 살피고 감상을 주고받고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을 공유했다. (물론 이외에도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판타지, SF 등 여러 장르에 다양한 모임 및 공간이 있다!)

나도 다른 작가들을 보며 글쓰기를 배웠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세계 너머: SF 쓰기의 과학 Of Worlds Beyond: The Science of Science Fiction Writing』에서 글쓰기 5단계를 제시했다. 몹시 유용하고도 중요한 지침이라 여기에 옮긴다.


  1. 반드시 써라.
  2. 반드시 끝까지 써라.
  3. 반드시 고쳐 쓰지 말아라. 편집자의 교정을 제외하고.
  4. 반드시 글을 시장에 내놓아라.
  5. 반드시 위를 반복해라. 글이 팔릴 때까지.


장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그런 추상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나는 위래 님을 붙잡고 글쓰기 지침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그가 1) 자주 장르소설의 작법을 궁리하고 2) 작법서를 잘 쓸 듯하고 3) 트위터를 보아하니 내가 괴로워하고 있는 새벽에 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위래 님은 12번까지 번호를 붙여 ‘위래의 글쓰기 11가지 법칙’을 보내주었다. 나중에 그가 작법서에 쓸 내용을 아껴두기 위해 일부만 인용한다.


  1. 장르소설은 규칙으로 성립한다.
  2. 규칙은 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3. 하지만 규칙을 깨려면 규칙이 뭔지 알아야 한다.


글을 쓰면서 간혹 떠올리는 궁극의 가르침은 조지 오웰의 글이다. 오웰은 「정치와 영어」에서 못 쓴 글의 못난 표현을 자근자근 비난한 다음, 문장을 다듬기 위한 6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그는 비록 죽은 사람이고,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글을 썼고, 나와는 다른 시대 다른 환경에 속하지만, 작가로서 글쓰기로 괴로워하긴 매한가지였다. 오웰의 마지막 원칙은 이런 말로 끝난다. “원칙을 깬다.” 자기 확신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자세다. 동료들에게 때때로 기댈 순 있더라도 글쓰기는 결국 스스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덧붙여 조이스 캐럴 오츠는 (아쉽게도 직접 보진 못했지만) 트위터에 이런 현명한 트윗을 썼다. “작가를 위한 최고의 팁: 작가를 위한 어떤 어리석은 팁도 듣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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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심완선

SF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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