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장이 치킨을 받아 먹고 숙제를 대신 시킨다고?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 주애령 작가 서면 인터뷰
집필 전 대략 취재한 바에 따르면 실제 어린이회 선거도 순수하게만은 돌아가지 않더군요. 어른들의 개입도 알게 모르게 이루어져요. 어린이들 사이에도 엄연히 역학 관계가 작동하고요, 이 모든 것을 어린이들도 다 알거든요. (2024.04.02)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는 『승리의 비밀』 후속작으로, 학생회 선거가 치러지고 몇 개월 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록 몇 표 차이로 패배했지만 선거를 통해 많은 걸 배우고 정치에 대해 부쩍 관심이 생긴 정민이. 이제 6학년이 되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민이 앞에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진다. 웬 5학년짜리 여자아이가 나타나 학생회를 똑바로 하라고 소리치더니 왈칵 울어버린 것.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는 전작의 문제 의식을 이어받아 정치가 어린이의 생활과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정치적 무관심이 어떻게 정치 시스템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누군가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행동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지도. 여기에서 학생회의 운영과 더불어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다시 돌아온 선거철, 우리가 이 흥미로운 동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어린이는 어떻게 정치를 하는가. 가장 좋은 대답이 여기 있다.
학생회는 실제 선거권이 없는 어린이들이 참여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정치 기구이자 정치 교육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반장 선거나 학생회장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을 보면 아주 진지하고 적극적이기도 하고요. 본격적인 정치 동화를 구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 이 책들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나요?
『승리의 비밀』은 작가의 말에도 적었지만 정치에 대해 어린이들을 가르치려고 쓴 작품이 아니에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정치적 본능을 지닌 존재라는 차원에서 아동, 청소년, 성인은 근본적인 차이가 거의 없다고 봐요. 정치란 특정 계층이나 혹은 ‘여의도’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2인 이상의 인간 집단 내부에서는 여지없이 발생합니다. 국가권력을 다투는 것만이 정치가 아닌 것이죠. 그렇기에 학교와 가정 내에서도 정치가 생기게 되어 있어요. 두 작품 모두 학교를 배경으로,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정치의 본질적인 원리를 다루고 있어요. 그렇기에 『승리의 비밀』은 동화지만 정치에 관심 있는 성인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도 아동과 성인을 막론하고 읽힐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승리의 비밀』에서는 전문적인 컨설턴트가 등장해 학생회장 선거에 나선 정민이를 뒤에서 돕습니다. 어른들의 정치판에서 일하는 전문가답게 권력욕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지키지 못할 공약도 괜찮다는 뜻밖의 조언들을 합니다. 보통은 어린이들의 학생회가 어른들의 정치와 구분되는 순수한 영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텐데 이렇게 구상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치 자체가 순수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집필 전 대략 취재한 바에 따르면 실제 어린이회 선거도 순수하게만은 돌아가지 않더군요. 어른들의 개입도 알게 모르게 이루어져요. 어린이들 사이에도 엄연히 역학 관계가 작동하고요, 이 모든 것을 어린이들도 다 알거든요. 그러한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가 어린이 독자의 공감을 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정치를 다룬 아동 도서들도 살펴보았는데, 대개 국회의원이 하는 역할을 교양서처럼 다루거나 ‘기존 정치와 다른 순수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후자를 살펴보면 정치와 운동(Activism)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두 가지는 명백히 달라요. 운동은 당장 비현실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장기적인 지향점을 제시해요. 그런데 정치는 그렇게 하면 의미 없는 싸움에 에너지를 낭비하기 십상이거든요. 그래서 타협을 계속 하고 단기적 성과를 보여주면서 정치인의 소신과 철학으로 여론을 살살 끌고 가야 해요. 그 와중에서 욕을 먹는 건 당연한 거고요. 결국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치워준 대가로 지저분한 일 한다고 손가락질 받는 게 정치예요. 순수한 게 아니죠.
이번에 출간된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를 『승리의 비밀』의 후속작입니다. 『승리의 비밀』이 선거 과정을 이야기했다면,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에서는 선거 이후 학생회 운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후속작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실제로 선거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선거는 공개된 과정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좋은 큰 이벤트로 여겨지지만 본 게임은 선거 이후부터 시작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진짜 재미있고 황당한 일은 그때부터 벌어집니다.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해요. 그리고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는 학생회가 실제 운영되는 일들을 많이 그리지는 못했어요. 학생회장의 자격 여부를 둘러싼 이야기가 중심이지요.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가 독자의 공감을 얻는다면, 실제 학생회를 운영하면서 일도 하고, 유권자인 아이들과 이런저런 일들을 겪는 이야기를 한 편 더 써보고 싶어요. 아마 수정이와 영준이가 회장단을 구성하겠죠?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에는 학생회장 탄핵을 위해 시위하는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교문 앞으로 동네 개들이 죄다 몰려나오는 등 어떤 면에서 보면 우스꽝스럽게 전개되지만 제법 진지하게 논리를 가지고 탄핵 운동을 벌여 나가지요. 탄핵이란 실제 정치에서도 그렇지만 어린이 학생회장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절차입니다. 현실 정치의 풍자가 아니라면 구용진 학생회장에게 너무 가혹한 상황이 아닐까 싶은데 이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나요?
일단 동네 강아지들 이야기부터 하자면 현재 유권자들은 정치인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자연과 동식물의 권리도 법적으로 인정받는 게 세계적인 추세인데 한국은 뒤떨어진다는 게 제 생각이예요. 그리고 지금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린이와 동식물은 선거권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그런데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사회의 보호와 통제 하에 놓여 있으니까요. 저는 선거 유세장에서 어린이들이 강아지들과 함께 나와서 “우리를 위한 정책은 뭐죠?”라고 당당히 질문하는 광경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탄핵’이라는 말은 초고에 썼다가 수정 과정에서 모두 없앴어요. ‘물러나라’라는 표현 정도로 고쳤지요. 초등학생 대상 동화로는 수위가 높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작가 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지도자가 잘못할 때 탄핵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인가라는 의문이 있거든요. 사실 탄핵이란 정치가 실패했을 때 이루어지는 결과예요. 지도자는 늘 잘못을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해요. 그럼 반대파와 협력을 해서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규명하고 사과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장치를 만드는 게 정치거든요. 탄핵은 그 과정이 안 되니까 이루어지는 거고요. 사실 내각제야말로 탄핵이 일상적인 정치체제기도 해요. 내각 지지율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면 무조건 해산이잖아요. 그래서 영국의 트러스 내각은 50일 만에 해산되기도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있어요. 좋은 지도자는 잘못을 안 하는 지도자가 아니에요.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는 조선 왕조의 세종이나 정조처럼 완벽하지 않아요. 그러기란 불가능해요. 좋은 지도자란 잘못을 하면 인정하고 사과하고 고치는 사람이에요. 탄핵 과정에 저도 관심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밀착된 위치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탄핵이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지도자에게 계속 기회를 줘요. 사과하고 고칠 기회를요. 그걸 다 놓치면 물러나게 되는 것이죠.
작품으로 돌아가서,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탄핵이 꼭 바람직하고 가장 가까운 길이 아니라는 거예요. 반대파와 평소에 소통하거나, 잘못을 사과하고 인정하고 고치려는 자세만 보여도 대부분의 문제가 쉽게 풀려나간다는 것이지요. 언제나 해답은 간단해요. 지도자가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메르켈은 대국민 사과를 아주 많이 했다고 해요. 그런데 4선이나 하면서 유럽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이름을 남겼잖아요.
제가 만든 인물이지만 용진이는 좋은 지도자의 자질이 있어요. 아이든 어른이든 잘못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아요. 용진이가 정민이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이 옳다고 우겼다면 정말 물러나야 했을 거예요.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에서 정민이는 학생회장 구용진에게 아깝게 졌다는 이유로 학생회장 탄핵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이 구용진이 탄핵된다면 당연히 정민이가 학생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도 있고요. 정민이도 잠시 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통 선거라면 당선자가 임기를 다 채울 수 없다고 해서 차점자가 그 뒤를 잇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 부분이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고 작품에서도 별도로 이를 바로잡는 상황은 나오지 않아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대개 학생회장 임기는 1년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보궐 선거는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그래서 학생회장이 물러난다면 대개 공석이 되면서 부회장 등이 학생회를 이끌어가지요. 이런 경우 회장의 상징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학생회의 동력이 떨어져요. 즉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게 되지요. 그리고 국회의원 등의 경우 남은 임기가 1년 이하라면 보궐 선거 없이 그냥 공석으로 남겨둡니다.
문제는 공석이 된다는 건 유권자 잘못이 아니거든요. 유권자들은 공석으로 두지 말고, 우리를 대표할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어요. 정당한 권리죠. 그러면 방법은 두 가지예요. 일반 선거를 앞당겨서 실시하거나 아니면 차점자를 대표로 세우는 것이죠. 전자의 경우는 우리가 실제 해 봤고, 후자로는 정당 내 경선을 보면 차점자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규정들이 있어요. 그렇기에 차점자에게 자리 넘기기가 이례적이거나 반민주적인 게 결코 아니에요. 차점자도 엄연히 표를 받았고 그 표에는 유권자 한 명 한 명의 의지가 담겨있거든요.
승자가 아니라고 해서 패자가 받은 표의 의미가 모두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소선거구제를 너무 오래 해서, 패한 후보의 표는 문자 그대로 죽은 표로 간주해요. 그리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실제 선거가 끝나고 보면, 그 표는 결코 죽은 표가 아니네요. 승자를 견제하고 비토하는 힘으로 계속 작동을 해요. 그러면서 승자가 잘못할 때마다 현실에서 그 표들의 힘이 움직이는 거거든요.
극중에서 보면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의 정민이는 혼자 활동하지 않아요. 3등을 한 유림이와 같이 움직여요. 그런데 둘의 표를 합치면 1등 용진이 표보다 많거든요. 그럼 그 표들의 힘은 개표가 끝난 순간 모두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아요. 계속 정민이와 유림이 주변을 돌면서 지지해줘요. 유권자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한 번 표를 던져봤다는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일반 선거를 앞당겨 하기 어렵다면, 차점자에게 자리를 넘기는 것은 충분히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어요.
좀더 하고 싶은 말을 덧붙이자면 지금 대한민국의 정당법이나 선거법 등은 독재정권 시절에 정해진 것들이 꽤 많아요. 2019년 총선에 이르러서야 겨우 바뀐 병립형 비례대표가 그렇지요. 민주화를 통해 보통 선거가 확립된 역사적인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그 외의 부분이 여전히 우리 머릿속에 굳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많아요. 가령 승자독식을 유도하는 소선거구제라든지, 조직정치의 폐해를 발생시키는 정당의 의무 당원 숫자라든지,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는 무조건 15만 명이어야 하는 것 등등요. 사회는 빠르게 달려가는데 이러한 규정들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작아진 옷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자꾸 질문을 해야 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 선출법 말고도 무수하게 많은 방법들이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대표를 뽑기 위해서 무슨 방법이 필요한지 계속 상상해야 해요. 그걸 가로막는 시스템이나 장치는 이미 뜻있는 연구자 분들이 다 지적해왔어요. 저는 그걸 이야기로 만든 것에 불과하죠.
많은 동화에서 어린이들이 시끄러운 소동을 일으키면 어른들이 나서서 말리거나 방해합니다. 그런데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에서는 교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서명을 받는 등 학교 안팎에서 여러 일들이 진행되는데도 교사들의 반응이 나오지 않아요. 반대로 저학년 학생들 엄마들이 옆에 있다가 쿠키를 ‘협찬’하는 등 소극적인 지지를 표현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하고요. 특별한 의도를 갖고 어른들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혹은 어떤 행동을 그리지 않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쿠키가 아니라 마들렌이고요 ㅎㅎㅎ. 저는 늘 동화를 쓸 때 먹을 것을 등장시키는 버릇이 있답니다. 음식은 어린이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상상 이상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줄거리를 짜는 과정에서 가정했던 것이 있는데요, 만약 교사들이 개입해서 그런 시위나 서명운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정민이네가 어떻게 반응했을까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아이들은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이라고 착하게 포기하는 캐릭터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왜 안 되는데요? 선생님이 뽑은 회장도 아니고 우리가 뽑았는데요?”라고 반문하겠죠. 그리고 따져보면 교사들이 그런 거 하지 말라고 금지할 권리가 없어요. 기껏해야 학교 앞에서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있겠는데, 그것도 따지자면 교내도 아니고 바깥인데 왜 개입하느냐고 반문하면 대답이 안 나오죠. 현실적으로는 “그냥 하지 마!”라고 하거나, 숙제를 왕창 내줘서 정신없게 하는 등 힘이나 권위로 눌러버리면 그만이겠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끌고 가면 너무 꼬이거나 서사의 초점이 달라지게 됩니다.
사례를 찾아보면 실제로 어린이들이 시위를 직접 조직하는 경우들이 제법 있어요. 얼마 전 청담동에서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반 친구를 위해 항의 시위가 개최된 적이 있어요. 3.15 부정선거에서도 초등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적도 있고요. 시위야말로 젊은이들이 에너지를 떨치는 공간이고, 아랍의 봄도 청년층 인구 증가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는 분석도 있어요. 거기에 연장자들이 제한을 가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지요.
마들렌 만들어주는 엄마들의 모습은 이렇게 구상했어요. 제가 만약 제 주변 아이들이 학교 앞에서 뭔가 일을 벌인다면 어떻게 할까, 라고요. 일단 따라가 보겠죠. 하지만 막지는 않을 거예요. 저도 살아오면서 정말 필요하다 싶으면 집회 참여를 해 왔는데 아이들에게 못 하게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집회의 명분이 정당하다면, 안전하게 치를 수 있도록 과정을 알려주고 집까지 데려다줄 것 같아요. 그 생각이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에 나온 엄마들 모습에 녹아 있지요. 하지만 모두 저처럼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그렇기에 안 좋게 보는 인물도 만들어서 넣은 것이지요. 그리고 말이지요, 아이들도 평범한 생활 영위하는 어른들도 광화문 나갔다 온 거 다 알아요. 아이들도 뉴스 다 보거든요.
저는 아동문학이란 어른과 아동이 같이 보는 문학작품이라고 봐요. 전래동화도 깊이 분석하면 어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만만치 않거든요. 어린이 성장에 이 정도는 개입해야 한다든가, 적당히 비켜주고 모른 척 해주라는 메시지들이 있어요. 현대 아동문학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지요. 가끔 아동문학 배우는 학생들에게 제가 해주는 말인데요, “어린이에게 시도하고, 실수하고, 좌절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어린이들에게도 기회가 있으면 “시도하고, 실패하고, 재도전을 마음껏 하세요. 지금 아니면 못 해요. 어른이 되면 못 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라고 말해줍니다. 그런 기회를 보장하려면 어른들이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해요. 마음껏 하도록 내버려두고, 무슨 일이 생길 때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채비를 갖추는 것이죠. 그게 어른의 역할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승리의 비밀』과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는 학생회를 둘러싼 학내 정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언론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열혈 기자인 선중이가 그 중심에 있지요. 정치와 언론 문제를 함께 다룬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이 명언을 남겼어요. 현대 정치의 절반은 대중을 상대로 한 의사소통이라고요. 오바마가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친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현대 정치와 언론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언론인은 정치인에 준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봐요. 언론은 앞으로 변화를 거치겠지만, 진실을 발굴한다는 소명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인공지능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한국의 정치 뉴스에 매우 불만이 많습니다. 정치인이 하는 말의 받아쓰기에 가깝죠.
『승리의 비밀』의 선중이는 그저 선거가 즐거워서 참여하는 아이였어요. 분위기가 심각해질 때쯤 등장하면서 작품의 긴장도를 조절해주는 것이죠. 그렇지만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에서는 중요한 인물이 돼요. 선중이는 작품이 시작될 무렵에 자신의 적성이 사람들을 만나고 새 소식을 알리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거기에 집중하면서 가벼웠던 성품이 자연스럽게 진중하게 변화해요.
이러한 변화는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를 쓸 때부터 의도한 거예요. 속편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의 성격이 변한다는 집필 원칙을 세웠어요. 왜냐하면 어린이라는 존재의 변화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정민이, 유림이, 민서, 용진이도 변해요. 정민이와 유림이는 성격이 서로 주고받다시피 바뀌고, 민서도 수줍음을 벗어던져요. 용진이도 잘못의 인정과 사과를 통해 성숙해지지요. 그 변화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언론 이야기로 돌아가면요.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에도 잠깐 가짜뉴스라고 알려진 허위거짓정보 문제라든지, 정파에 따른 대체현실을 제공하는 소셜 미디어, 쓰레기 정보가 점점 많아지는 영상 플랫폼, 독성 컨텐츠를 방어하지 못하는 기존 언론의 무력함 등등도 아동문학에서 충분히 다룰 만한 문제라고 봐요. 다른 작품에서 다시 다뤄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아동문학작품을 쓰면서 제가 세운 것은 옳은 건 이거라고 어린이들에게 제시하지 말자는 것이예요. 계속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정답이에요. 그리고 내가 결정하고 믿는 바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책임을 진다는 것, 그리고 상대가 고민 끝에 결정한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면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이지요. 소셜 미디어 시대에 생긴 악습이 있다면 타인과 자신에게 집요하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승리의 비밀』 이후 4년 만에 속편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로 독자 여러분 다시 뵙게 되어 무척 기뻐요. 의도하지 않게 총선마다 정치 소재 동화를 출간하게 되었답니다. 모두 어린이 독자 여러분 덕분이지요. 여러분이 내색하진 않지만 뉴스에 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거 알고 있어요. 여러분에게 딱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대신 나의 지혜를 키우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거예요. 부디 여러 모로 생각하고 주위를 배려하면서 어리석은 어른들이 고개를 숙일 만한 현명함을 갖추길 바랍니다. 선생님도 열심히 할 거예요. 아무것도 늦지 않았어요. 어린이 여러분과 같이할게요.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주애령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며 열다섯 살 난 샴고양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장편동화 《승리의 비밀》과 고전 아동문학 교양서 《동화, 영혼의 성장》이 있습니다. “홀로 보냈던 외롭고 고독한 시간들이 글과 책으로 빚어질 때마다 사랑하는 내 주위의 존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세상에 나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펴는 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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