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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한국어 화자가 일본어로 영어를 가르친다면” (G. 김미소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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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문화의 관계를 ‘덕질’하는 사람으로서, 외국어 세계가 점점 커지고 뚜렷해지는 감각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씀하시는, 책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을 쓰신 김미소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4.03.14)


언어를 더 잘 쓰게 된다는 건 언어1, 언어2, 언어3을 각각 100점으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었다. 언어 학습이 사지선다 문제에서 하나의 답을 고르는 것만이 아닌 것처럼. 언어 학습은 언어1, 언어2, 언어3 사이를 가로지르며 내 능력을 확장하는 거였다. 영어만 하는 원어민이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면, 언어 학습자의 고충을 공감하며 수업할 수는 없었을 거다. 일본어와 영어만 하는 일본인이 영어를 가르친다면, 정서가 비슷하지만 동시에 많이 다른 동아시아의 예를 들어가며 영어 수업을 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다언어자가 된다는 건 언어의 수를 계속 더해가는 게 아니라, 의미의 도구를 하나하나 곱해가는 거였다. 어떤 상황에 누구와 남겨지든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나의 말을 건넬 수 있도록.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미소 작가님의 책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김미소 작가님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두 번째 언어인 영어를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요. 이어 일본으로 이주해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자로 재직하게 되면서 세 번째 언어인 일본어를 정확히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면서 깨닫죠. 언어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라고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을 쓰신 김미소 작가님을 모시고, 새로운 언어가 가져다주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김미소 편

오은: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계시죠. 영어와 한국어, 일본어를 다 구사하는 삼중언어 사용자이기도 하시고요. 그 어떤 언어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으실 것 같아요.

김미소: 그렇긴 한데요. 사물을 언제 처음 접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사물을 생활에서 어떤 언어로 자주 접하는지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이제 거의 열쇠를 안 쓰잖아요. 거의 다 도어락이고요. 근데 일본이나 다른 외국에서는 열쇠가 없으면 어디도 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열쇠’라는 말 자체가 낯설어요. 그보다는 일본어로 ‘鍵(かぎ, 가기)’라고 먼저 떠오르는 식이에요.

오은: 영어 단어가 먼저 떠오를 때도 있겠죠?

김미소: 영어에서 처음으로 개념을 배웠을 때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다 막상 이 개념을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일본어로 뭐라고 하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요. 워드 작업을 하다 자주 겪는 일이에요. 밑줄, 굵기 이런 것들은 당연히 어렸을 때 한국어로 배웠으니까 익숙한데요. 중간선 있잖아요. 문득 중간선을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영어로 처음 ‘strikethrough’라고 배웠거든요. 그래서 한국어로 말할 때는 그 단어를 말할 수가 없어서 “그 선 있잖아, 줄 어디 있어?”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웃음)


오은: 김미소 작가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응용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애니메이션으로 배운 일본어만 믿고 도쿄 다마가와대학 '공통어로서의 영어 센터'에 부임했다. 현지에 떨어져 보니 초밥 한 팩조차 제대로 살 수 없는 현실에 충격을 받고 생존을 위해 일본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강의실 안에서는 일본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자지만 강의실을 나서면 초보 일본어 학습자로 변하는 낙차와, 애니메이션 일본어와 현지 일본어 사이의 격차를 온몸으로 느끼며 언어와 문화의 관계를 '덕질'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세 언어의 조각을 맞추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동안, 언어 공부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라는 걸 깨달았다. 여러 언어와 문화의 틈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즐거움을 많은 이들이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지은 책으로 『언어가 삶이 될 때』 『지금 시작하는 평등한 교실(공저)』, 『벨 훅스 같이 읽기(공저)』가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갈구를 너머 실제로 현장에 뛰어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애니메이션으로 배운 일본어만 믿고 일본에 가는 일이 사실 조금 무모할 수도 있는 일 같거든요.

김미소: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요. 일본에 가기 전, 아직 미국에 있을 때예요. 어드바이저께서 저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정말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 혼자 가서 영어를 가르치게 될 건데 괜찮느냐고요. 저는 그때 “당연히 괜찮지!”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와보니까 안 괜찮더라고요.(웃음) 가기 전에는 일본도 다 사람 사는 데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막상 와 보니까 제가 정말 초밥 한 팩조차 제대로 살 수 없더라고요.

오은: 응용언어학을 공부하셨잖아요. 응용언어학이란 어떤 분야인지를 설명을 부탁드려야 할 것 같아요.

김미소: 언어학을 활용해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푸는 분야라고 저희는 설명하고 있어요. 교육도 어떻게 보면 문제일 수 있죠. 그래서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인가, 라는 문제도 응용언어학에서 다루거든요. 언어교육 분야도 응용언어학 안에 들어가는 거고요. 언어정책을 어떻게 짤 것인가도 이 학문에서 다룰 수 있어요. 공용어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같은 정책도 고민하죠. 사회학 쪽으로도 있는데요. 언어에 대한 차별이 있을 수 있잖아요.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있다면 이것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응용언어학에서 하고 있습니다. 정말 분야가 넓어요.

오은: 이제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이 어떤 책인지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김미소: 저는 이 책이 시험이 아닌 이유로 언어를 공부해 보고 싶으신 분, 그리고 해외 생활을 계획하고 계시는 분들께 정말 재미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책 초반부터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응용언어학 박사라는 사람은 사실 언어의 전문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잖아요. 하지만 박사라는 사람도 낯선 언어 문화권에 던져 놓으면 여기로 구르고 저기로 구르면서(웃음) 우당탕탕 실수를 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체험하면서 언어를 배우거든요. 그런 식으로 공감하실 내용들이 많고요.

2부와 3부로 넘어가면 학습자로서 공부해 왔던 경험을 다시 영어 학습자들을 가르칠 때 쓴다거나, 한국어와 영어를 비교해 가면서 일본어를 배운다거나 하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문화 비교 분야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도 재미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은: 책이 일단 아주 재미있습니다. 작가님의 성정이 그대로 담긴 부분이 많은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어떤 긴박한 상황에서도 결코 유머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신조가 있는 사람이 쓴 글 같더라고요. 책을 쓸 때 어떤 마음가짐이 있었을까요?

김미소: 출판사로부터 처음 기획안을 받았을 때가 2022년 여름이더라고요. 지금이 2024년 3월이니까 2년이 약간 안 되었죠. 그 당시는 제가 일본에 온 지 2년이 조금 지나고 있을 때였어요. 메일을 받고, 저는 일본어를 전공한 것이 아니라 고민이 됐지만 지금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쓰기로 결정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일본에 대해 알게 되고, 일본어를 잘하게 되면 안 보일 것들이 너무 많을 것 같더라고요.

전문가는 저 말고도 너무 많으니까, 그 대신 정말 2년 반밖에 안 된 사람의 눈으로, 아직은 일본어를 그렇게 잘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일본에 대해 너무 모르지도 않고 너무 잘 알지도 않는, 이 중간에 서 있는 시선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김미소: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과 시리즈로 나오는 책을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제가 쓴 것은 ‘일어’인데요.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이 함께 나왔습니다. 이 책이 같은 시리즈로 묶여서 나왔지만 제 책과 정반대예요. 제 책은 표지도 빨간색인데요.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은 파란색이고요. 비슷하게 언어를 배우는 이야기를 하는데도 느낌이 정반대예요.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은 일단 감정 과잉입니다.(웃음) 열탕처럼 끌어올라요. 하려고 하는 게 안 돼서 엉엉 울고, 전단지 하나 못 읽어서 답답해하고요. 무시당하면 화를 내는 식으로 감정 과잉의 면모가 있는데요.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은 정말 쿨 뷰티에요. 냉탕이고요. 모든 산을 다 넘고 마지막에 남는 종류의 담담함이 담겨 있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를 하실 수 있는지 감탄했어요. 자기가 정말로 해야 되는 것만 하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거의 신경을 안 쓰시고요. 되게 잠잠하게 얘기를 하세요. 이 두 책을 나란히 놓고 보시면 대조가 많이 되어서요. 웃기기도 할 것이고, 또 독자 분들은 자신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확인해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그래제본소]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
[그래제본소]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
김미소 저
동양북스(동양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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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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