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담의 추천사] 극단이 가장 넓다 -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안담의 추천사 3화
하마를 통해 우리는 이 극단이 얼마나 넓은지를 본다. 이 영역은 다양성의 영역이다. 정치적 이념의 도식을 통해서만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극도로 정치적인 모든 개인을 위한 영역이다. (2024.02.21)
여시, 디씨, 펨코, 82쿡, X(트위터) 등지의 사람들을 한 테이블에 모아 놓으면 무슨 얘기를 할까? 웬만큼 싸움 구경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발상이지만, 이 발상을 실제로 구현한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얘기다. <더 커뮤니티>는 정치, 젠더, 계급, 소수자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단기간 함께 살게 하며 한국 사회의 초소형 모형을 구현한다. 한국 사회를 재현하는 여러 관점 중에서도 이 모형이 가장 강하게 의식하는 그림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표상되는 이 사회의 지형도다. 쇼의 이름으로 쓰일 수 있었던 다른 단어들, 이를테면 ‘폴리스’, ‘소사이어티’ 등의 단어를 제치고 ‘커뮤니티’가 선택된 것만 봐도 그렇다.
극과 극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영역을 두고 토론하게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여타의 서바이벌보다도 강한 수위의 갈등이 그려질 거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더 커뮤니티>의 초반부에서는 오히려 공존과 화합을 위한 분투가 도드라진다. 주민들은 매일의 게임을 국가의 형성 과정에 유비하며 공동체의 규칙을 만들어 나간다. 모두의 생활비가 되는 공금을 어떻게 쓸까? 공금을 걷을 때 몇 퍼센트의 세율을 부과할까? 이 규칙을 어기고 공동체를 배신하는 사람을 어떻게 그리고 얼만큼 처벌하거나 용서할까? 가장 중요하게는, 어떻게 해야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주민들의 질문은 <더 커뮤니티>의 생존 조건이 조금 특이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보통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룰이 플레이어의 욕망을 부추긴다. 다른 사람은 제거하고 나는 생존하여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욕망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게임의 룰도 짜여있다. <더 커뮤니티>에서는 룰이 플레이어의 욕망을 억제한다. 첫째로 게임 규칙이 전부 다 주어져 있지 않다. 자신의 생존과 최대 이익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다른 주민을 희생시키는 게 목표 달성에 더 불리할 가능성이 계속 남아있다. 둘째로 주민들이 수립한 공동체의 규칙이 플레이어를 압박한다. 이 공동체가 그리는 이상에 의심을 품고 개인 활동을 하려는 주민은 도덕적인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주민들은 심지어 게임의 허점을 발견하여 서로에 대한 공격권을 일시에 소멸시키면서 전원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쇼에서 주민들의 사상은 각각 정치, 젠더, 계급, 소수자 이슈를 상징하는 알파벳으로 코드화된다. 그러나 누구와 갈등하고 화합할 것인지가 이념 간의 상성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마이클과 슈퍼맨은 사상코드상에서 우파 이념, 소위 ‘이퀄리즘’적 젠더관, 부유층의 시각, 소수자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공유하는 이념적 닮은꼴임에도 상대의 존재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백곰은 자신과 똑같이 ‘좌파 페미’로 분류되는 하마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쇼에서 가장 돈독한 연합은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이었던 슈퍼맨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백곰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두 사람은 토론이 필요한 안건마다 매섭게 충돌하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서 서로를 찾는다. 주민들을 따라서 시청자는 절대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인물을 좋아하게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한다.
사회적 가면의 종류와 두께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이 관건인 쇼에서, 하마는 혼자 투명한 가면을 실험하는 인물로 보인다. 하마는 다만 자기 자신이기 위해 노력한다. 하마는 게임의 현황을 안내하는 숙소 모니터를 불투명한 천으로 덮어둔다. 아침마다 모두에게 보이차를 내려준다. 요가를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한다. 혼자서 낮잠을 자고 메인홀에 합류해 나른한 표정으로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 살고 싶으면 살고 싶다고 한다. 꿍꿍이가 따로 없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하마의 행적은 의심을 산다. 생존이 간절한 사람의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는가?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말하는 사람의 속내만큼 알기 어려운 게 있을까? 나의 안녕과 우리의 안녕을 대립 관계로 이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제작진이 심어놓은 ‘불순분자’가 아닐까? 결국 하마는 8화 만에 커뮤니티의 최초 탈락자가 된다.
그러나 하마의 싸움은 오래 남을 것이다. 주민들의 저녁 일과로 주어졌던 익명채팅의 주제들은 전혀 섬세하지 않다는 점에서 도리어 정밀하게 설계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쉽게 말해 일부러 화가 나게 만든 것 같다는 뜻이다. “데이트 비용을 더 내는 남자가 섹시한 것은 자연스럽다.”, “국가 발전에는 유능한 독재자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빈곤의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대중매체 속 조선족 범죄자 묘사는 사라져야 한다.”. 하나같이 격렬하게는 싸울 수 있으나 예리하게 싸울 수는 없는 질문들이다. 질문의 영점 자체가 달라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질문들이다. 왜 ‘백분 토론’이 아니라 ‘키보드 배틀’을 재현하는가? 키보드 배틀을 진지한 토론으로 여길 사람은 적다. 누군가는 현생은 인터넷 바깥에 있다며 컴퓨터를 끄고 산책하길 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어렵사리 끈 뒤에도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가치 없고 수준 낮다는 그 전투에도 누군가는 있다. 기울어진 진창 속에서, 단순하고 과격한 질문들의 포화 속에서, 우아하지 않을수록 더 좋다는 분위기 속에서 어떤 사람은 사활을 걸고 싸운다. 그에게 이건 옵션이 아닐 수도 있다. 싸움을 고를 수 있는 특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마는 채팅에 성실히 임한다. 이 채팅은 단순히 익명의 상대편에게 승리를 거둔다고 끝나지 않는다. 토론을 관전하는 다른 주민들, 더 나아가서는 이 쇼를 보고있을 시청자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빈곤의 책임에 대한 논의가 알맹이 없이 끝난 후, 하마는 주민들의 SNS인 ‘오이코스’에 들어가 찬반 양측을 막론하고 빈곤 토론이 아쉬웠던 이유를 장문의 글로 남긴다. 그 글을 읽고 주민들의 생각은 두 가지 이상으로 분화한다. 피하고 싶은 싸움을 도리어 연장하는 방식으로 하마는 사안을 원하던 만큼 복잡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마가 받은 사상코드 점수는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높다. 12점 만점에 11점을 받은 유일한 인물로서 하마의 사상은 ‘극단적’이라고 채점된다. 표준 정규 분포를 그린다면 왼쪽 끄트머리의 좁은 영역에 하마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마를 통해 우리는 이 극단이 얼마나 넓은지를 본다. 이 영역은 다양성의 영역이다. 정치적 이념의 도식을 통해서만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극도로 정치적인 모든 개인을 위한 영역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11점이라는 극단적인 점수를 수치화될 수 없는 모든 사람의 수치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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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났다.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미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에는 예술의 언저리에서만 서성였다. 2021년부터 ‘무늬글방’을 열어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2023년에 활동가들을 초대해 식탁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첫 책 《엄살원》을 함께 썼다. 가끔 연극을 한다. 우스운 것은 무대에서, 슬픈 것은 글에서 다룬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대개 슬프다고 생각한다. 정상성의 틈새, 제도의 사각지대로 숨어드는 섹슈얼리티 이야기에 이끌린다. 존재보다는 존재 아닌 것들의, 주체보다는 비체의, 말보다는 소리를 내는 것들의 연대를 독학하는 데 시간을 쓴다. 주력 상품은 우정과 관점. 얼룩개 무늬와 함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