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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의 살다보니 SF] 고양이 이름을 짓는 두 가지 방법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나의 집에, 삶에 침입하는 고양이를 만나고 말았다면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편이 나은 듯하다. 고양이의 천성은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좋은 이름은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2024.02.20)
심완선 SF 칼럼니스트가 일상에서 벗어난 딴생각을 풀어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 |
남의 집 고양이에게 환영받으면 다소 우쭐한 마음이 든다. 모종의 시험을 통과한 기분이다. 고양이가 개보다 사람을 까다롭게 가리곤 하는 탓이다. 그들은 내킬 때만 모습을 드러내고 곁에 다가온다. 그게 고양이의 천성이라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고양이의 까다로움은 어쩌면 인간의 마음을 손쉽게 움직이려는 술책일지도 모른다. 폴 갈리코의 『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은 어른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들을 위해 작성한 지침서인데, 인간이 알아서 좋은 먹이를 바치도록 만드는 방법이 쓰여 있다. 먹는 데 아주 까다롭게 굴라는 것이다. 부작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인간은 내심 기뻐하며 밖에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테니까. ‘아니 글쎄, 우리 집 고양이는 손수 다져 만든 소고기 요리가 아니면 입에도 안 댄다니까요.’ 하긴, 까다로운 고양이가 손님맞이를 하면 집주인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얘가 아무나 좋아하는 애가 아닌데!’
애호가들은 어느 정도 사랑에 눈이 멀어 있게 마련이다. 앤 패디먼은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고양이에 관한 책을 찾아본 경험을 썼다. “이런 책을 쓴 사람들은 독자들에 대해 오직 한 가지 가정만 했다. 독자들도 고양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손보미 작가를 만났을 때 대뜸 들은 말도 “저희 집 고양이 사진 보여드릴까요?”였다.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나는 SNS를 귀여운 동물 보는 맛으로 한다. 그 집 고양이들 이름도 귀담아두었다. ‘고로’와 ‘칸트’. 나중에 고양이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관광지에 놀러 가면 그네들 이름도 적기로 약속했다.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여러분, 늦기 전에 말씀 주시길!)
고양이를 사랑하는 방법, 다시 말해 고양이 이름을 짓는 데는 보통 두 가지 방식이 동원된다. 하나는 인간이 자신에게 중요한 단어를 고양이에게 붙이는 방법이다. 익히 알려진 바에 따르면 『광기의 역사』를 쓴 미셸 푸코의 고양이 이름은 프랑스어로 ‘광기’이고, 『존재와 무』를 쓴 장 폴 사르트르의 고양이 이름은 ‘무’다. 자크 데리다는 자신의 철학의 주요 개념인 ‘로고스’를 고양이에게 선사했다. 아마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알레프』를 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알레프’를 사용했다. 그리고 애연가였던 알베르 카뮈는 ‘담배’를 고양이 이름으로 붙였다.
작가들의 고양이 이름을 찾다 보니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데리고 있던 고양이 하나는 이름이 ‘엑스터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엑스터시는 황홀경 혹은 어느 유명한 마약의 속칭인데, 한편으로는 영국의 시인 존 던이 사용한 제목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제목을 존 던의 시에서 따왔다. 헤밍웨이에게 중요한 것은 마약보다는 시인의 말이 아니었을까. 덧붙여 마크 트웨인은 함께 산 고양이들에게 ‘베엘제붑’, ‘역병’, ‘악마’, ‘죄악’, ‘허풍선이’ 같은 이름도 사용했다. 그에게 무엇이 중요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트웨인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점, 오히려 그가 일평생 고양이를 깊이 사랑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는 이런 말도 남겼으니까. “고양이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더 설명이 없어도 나는 그의 친구이자 동지다.”
고양이 이름을 짓는 다른 방식은 고양이의 특성에 맞추는 것이다. 고양이를 데려온 장소, 처음 만났을 때 모습, 해당 고양이의 외모와 성격과 품위 등. 정소연 작가의 고양이들 이름은 ‘커크’와 ‘스팍’이다. (사실 커크의 이름은 과거형으로 써야 한다. 커크가 고양이별에서 잘 지내기를. 나는 아직 네가 손바닥만 하던 시절을 기억한단다.) 둘은 유서 깊은 SF 드라마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선장과 부선장 이름이다. 설정상 커크는 금발이고 스팍은 흑발인데, 고양이 커크는 치즈이고(노란색 줄무늬다) 스팍은 턱시도다(검은색과 하얀색이 섞였다). 나중에 보니 성격보다는 외모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다만 세 번째 고양이 이름은 레너드가 아니라(세 번째로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빽빽이’가 되었다. 성격에도 외모에도 어울리는 이름인 듯하다.
〈스타 트렉〉을 참고한 이름으로는 ‘시스코’와 ‘키라’도 있다. 김성일 작가는 원래 뉴 제너레이션 시리즈에서 선장으로 등장한 피카드의 이름을 쓰려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시스코 뒷다리에 얻어맞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작중에 나오는 피카드는 절대 남을 때릴 성격이 아니라서……. 그래서 남을 때릴 만한 선장이자 사령관인 시스코의 이름이 새로이 채택되었다. 그는 딥 스페이스 나인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고양이 시스코만큼 든든하게 생겼다. 그리고 고양이 시스코만큼 진취적이다. 부관인 키라 역시 고양이 키라만큼 차분하고 우아하다.
나는 고양이와 직접 살아본 적은 없지만 남의 집 고양이들로부터 위안을 얻고 있다. 고양이의 살랑거리는 걸음걸이를 보고 있으면 약간은 외경심까지 든다. 게다가 고양이는 소리 없이 뛰어오르고, 스스로 털을 가다듬고, 꼬리로 말을 한다! 물론 털을 엄청나게 흩뿌리고, 곧잘 작업을 방해하고, 마음에 안 들면 애옹애옹 잔소리를 한다……. 멋대로 물건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고양이를 사랑했던 작가 어슐러 K. 르 귄은 ‘파드’를 “나쁜 발을 가진 착한 고양이”라고 불렀다. 파드는 잘못이 없다. 자기 발에 곤란을 겪을 뿐이다. 애묘인이었던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인간 쪽에서 고양이를 세심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라는 헌사가 붙은 소설 『여름으로 가는 문』에는 이런 서술이 나온다.
“고양이를 대하는 법은 외교보다 더 까다롭다. / 고양이의 태도란 자존과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 고양이는 유머 감각이 없고, 자존심이 어마어마하고, 아주 예민하다. 왜 그런 자존심을 만족시키느라 애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논리적인 이유 같은 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톡 쏘는 치즈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에게 림버거 치즈를 좋아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기 고양이가 깔고 자는 바람에 최고급 자수가 수 놓인 옷소매를 잘라버렸다는 어떤 고위 관료에게 진심으로 공감한다.”
같은 책에서 하인라인은 이렇게도 썼다. “고양이와 사는 인간이 선택할 길은 결국 그렇게 요약된다. 한번 고양이를 맡으면 끝까지 책임지든지, 아니면 그 불쌍한 동물을 포기하고, 야생으로 내몰고, 영원한 진심을 향한 신뢰를 파괴하든지.” 그는 『프라이데이』에서도 비슷한 말을 반복한다. “고양이를 버리는 자에게는 가장 차갑고 깊은 지옥이 준비되어 있다.” 주인공 ‘프라이데이’는 인간은 죽여도 고양이는 죽이지 않는다. 작중에는 그녀를 배신하거나 공격하는 인간들이 나오는데, 고양이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영화 〈에일리언〉의 에일리언도 고양이는 죽이지 않는다. 그야 고양이는 외계 괴물이 봐도 귀여우니까!
정말이지 사랑스러우면 다냐고 따지고 싶은 소설로 데이비드 웨버의 『바실리스크 스테이션』 생각이 난다. 이 시리즈에는 아무리 봐도 고양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반려동물이 등장한다. ‘스핑크스’라는 행성에서 태어나는 종족 ‘트리캣’이다. 그들은 팔다리가 6개에, 까다로운 기준으로 인간 반려자를 선택하고, 지능이 상당히 높고 초능력을 쓸 줄 안다. 그런데 ‘냐앙’ 하고 운다. 반려인의 어깨에 올라앉기를 좋아한다. 그 외에 별 역할은 없다. 하, 이런 애를 보여주면 내가 좋아할 줄 알고? 너무 노골적으로 고양이 애호가를 노리는 거 아니야? 나는 읽으면서 트리캣이 나올 때마다 실실 웃었다.
다만 고양이에게 눈먼 이들의 고백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코드웨이너 스미스의 단편 「쥐와 용의 게임」에서 ‘정신감응자’ 인간들은 우주에 서식하는 ‘용’과 싸우기 위해 고양이와 정신을 연결한다. 인간을 뛰어넘는 고양이의 사냥 본능과 반사신경에 의존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과 종종 ‘파트너’가 되는 ‘메이 부인’이라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어떤 인간 여성보다도 더 사랑한다. 그녀만큼 우아하고 아름답고 영민하며 재빠르고 조용하고 요구 없는 여성이 없기 때문이다. 흠, 필요한 것을 말로 요구하는 인간 여성인 나는 그 대목에서 흥미가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H. P. 러브크래프트의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도 떨떠름한 구석이 나온다. 주인공 ‘랜돌프 카터’는 고양이를 아주 사랑하며 그들의 울음소리에서 위안을 얻는다. 고양이들 역시 카터를 좋게 기억한다. 그들은 이후 용맹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몇 번이나 카터를 돕는다. 하지만 카터는 고양이는 아낄 줄 알아도 흑인 노예들이 팔려가는 모습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20세기 초 백인 남성의 감각이다.
물론 고양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소설 속 고양이들은 재량껏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구한다. 박애진의 「소켓 꽂은 고양이」의 고양이(의 몸에 들어간 사람)는 거대 기업의 범죄를 폭로하는 데 성공한다. 르 귄과 닐 게이먼의 단편을 골라 엮은 『두 고양이』 속 고양이들은 각각 인간의 곁을 지킨다. 현실의 규칙에 갇히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반려인의 삶을 어느 순간 바꿔놓는 이들답게. 아주 까다로운 만큼 분명하게 자기 길을 걷는 존재들답게. 고양이는 ‘안 된다’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인라인의 『벽을 통과하는 고양이』에 등장하는 고양이 ‘픽셀’은 정말로 벽을 통과한다. 어린 고양이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의 집에, 삶에 침입하는 고양이를 만나고 말았다면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편이 나은 듯하다. 고양이의 천성은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좋은 이름은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손보미의 단편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 생각에 그건 아주 폭신폭신하고 말랑하고 부드러운 종류의 침입이다. (…) 어쩌면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이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모든 고양이는 언제나 무단 침입하는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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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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