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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의 추천사] 문학의 밤

안담의 추천사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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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뼛거리는 문상훈과 그런 그를 다독이는 유병재를 본다. 일찍이 서로의 고독을 알아본 친구들의 장기자랑에 내가 가진 밤을 다 쓴다. (2024.01.24)

유튜브 채널 ‘유병재’ <제1회 제목학원 그랑프리>의 한 장면


꼭 밤이 아닐 때도 <문학의 밤> 시리즈를 돌려본다.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 1번이 흐르는 가운데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삼행시를 짓고, 프리스타일 랩을 뱉고, 유행어와 줄임말을 발표하는 세 친구가 있다. 이 유튜브 채널의 주인장이자 진행자인 유병재,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매니저인 유규선, 그리고 두 사람의 아는 동생 문상훈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의 작품을 행 단위로 외우는 수준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문학의 밤>을 틀어놓고 많은 일을 한다. 유독 문학 앞에 주눅이 드는 날엔 바흐의 첼로곡이 문학의 고고한 인상에 대한 훌륭한 캐리커처로 들려 마음이 즐겁다.

첫 에피소드인 N행시 교실을 기준으로 <문학의 밤>은 벌써 6년 전의 작품이다. 코미디언 유병재와 문상훈에게 하나의 기점이 되었을 만큼 인기를 누린 시리즈이지만, <문학의 밤>이 좋다는 말은 조금 조심스럽게 쓰게 된다. 혹시 서운할까 봐. 자기 갱신을 게을리한 적이 없는데도 초기작이 제일이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 영화감독처럼. 노파심에 말해두지만, 나는 유병재와 문상훈의 이후 작품도 좋아한다. 다만 미래에서 건너간 시청자로서 감상하는 <문학의 밤>에는 한결 애틋한 재미가 있다. 틀릴 가능성이 전무한 응원을 속삭여보는 재미. 당신은 머지않아 큰 사랑을 받게 된다고.

문상훈의 빠더너스가 120만 구독자를 지닌 채널로 성장하는 미래가 오기 한참 전, 유병재의 코미디를 깊이 흠모하던 스물여섯 살의 문상훈은 어느 날 유병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한글 파일 하나를 첨부했다고 한다. 훗날 유병재는 문상훈이라는 친구를 알게 되던 그 순간을 인생의 주요한 사건으로 언급한다. 문상훈이 빼곡히 적어 내려간 코미디 철학이 너무도 좋아서 그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예술과 우정을 시작하게 하는 글. 나는 종종 그 글이 읽고 싶다.

뛰어난 코미디언들은 무엇이 우스운가보다 무엇이 우습지 않은가를 더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다. 가장 우습지 않은 상황, 또는 절대 웃어서는 안 되는 상황을 찾고 거기서 출발해 보자. 아마도 이런 탐구를 바탕으로 유병재는 웃으면 안 되는 생일 파티를 열고, 문상훈은 군대에서 감성 브이로그를 찍는 군인을 창조했을 것이다. 만약 내게 묻는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우습지 않은 건 어떤 사람이 혼자라는 사실이라고 대답하겠다. 멋대로 짐작하건대 두 사람의 코미디 철학 또한 혼자라는 감각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다만 유병재가 혼자인 방식과 문상훈이 혼자인 방식은 좀 다르다.

유병재 채널의 또 다른 인기 콘텐츠인 제목학원 그랑프리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만약에 웃기게 될 시’라든가 ‘유병재 씨 먼저 각오를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어색한 표현을 남발하는 심사위원 유규선을 참지 못하고 유병재는 계속 웃음을 터뜨린다. 자기도 모르게 유규선의 말을 고쳐줬다가 이내 조그맣게 죄송하다고 덧붙인다. 진지함과 중요함을 흉내 내는 인물들의 헛소리를 참아내는 게 유병재가 만든 코미디 세계의 일상이다. 다독가와 시네필들이 ‘오사이 다자무’의 책이나 쿠엔틴 타란티노의 ‘칼발’에 대해 떠든다. 입법 권력을 지닌 국회의원들은 김밥에 오이가 들어갔다는 표시를 의무화할 것인지를 두고 다툰다. 인기와 성적 매력이 넘치는 ‘인싸’들은 존재하지 않는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과장된 리액션을 한다. 세상은 안 읽은 책을 리뷰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유병재는 자주 그걸 폭로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이상하고 나는 그걸 안다. 이것은 유병재가 잘 그리는 고독이다.

그런가 하면 문상훈도 빠더너스의 많은 창작물 속에서 대개 혼자다. 문상훈 한 명만 출연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이 외톨이에 가깝다는 뜻이기도 하다. 곁에 두기 싫을 정도로 실수가 잦고 상식 밖의 행동을 하면서 그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조차 전무한 서툰 인물들. 일차적으로 문상훈 유니버스의 부캐들이 이끌어내는 재미는 인물을 비난하는 재미다. 그의 영상에는 저런 사람이 근처에 있다고 상상하면 삶이 얼마나 끔찍할지를 호소하며 즐거워하는 댓글이 가득하다. 그러나 다종의 문상훈을 연기하는 문상훈만은 그들을 못내 사랑한다. 좋아할 구석이 없는 인물에게 기어이 신경 쓰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재능과 사랑이 하는 일이다. 사회에서 제 자리를 찾은 친구들은 더 이상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내일이 없다는 듯이 사는 건 나뿐이다. 그걸 알게 된 문이병의 얼굴에 똑바로 바라보기가 속상할 만큼 짙은 외로움이 드리운다. 좀처럼 잊히지 않는 표정이다. 나는 이상하고 사람들은 그걸 안다. 이것은 문상훈이 잘 그리는 고독이다.

문상훈과 그의 크루가 운영하는 채널의 이름인 ‘빠더너스’는 야구 용어인 ‘빠던’(빠따 던지기, bat flip)로부터 왔다고 한다. 야구 문외한인 나의 입장에서 이해한 빠던은 이런 일이다. 비난과 논란, 조롱을 감수하면서도 안 할 수가 없는 짜릿하고 멋진 일. 외톨이의 마음에도 누군가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장기가 있다. 그걸 생각하면서 <문학의 밤>을 다시 본다. 쭈뼛거리는 문상훈과 그런 그를 다독이는 유병재를 본다. 일찍이 서로의 고독을 알아본 친구들의 장기자랑에 내가 가진 밤을 다 쓴다.


:: 안담의 추천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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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담(작가)

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났다.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미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에는 예술의 언저리에서만 서성였다. 2021년부터 ‘무늬글방’을 열어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2023년에 활동가들을 초대해 식탁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첫 책 《엄살원》을 함께 썼다. 가끔 연극을 한다. 우스운 것은 무대에서, 슬픈 것은 글에서 다룬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대개 슬프다고 생각한다. 정상성의 틈새, 제도의 사각지대로 숨어드는 섹슈얼리티 이야기에 이끌린다. 존재보다는 존재 아닌 것들의, 주체보다는 비체의, 말보다는 소리를 내는 것들의 연대를 독학하는 데 시간을 쓴다. 주력 상품은 우정과 관점. 얼룩개 무늬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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