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함께’를 가꾸고 돌보고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 덕분에 산다” (G. 고병권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74회)
“보고 말았고, 듣고 말았고, 떠올리고 말았기 때문에” 쓴다고 말씀하시는, 책 『사람을 목격한 사람』을 쓰신 고병권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4.01.04)
니체의 말처럼, 우리 안에는 우리를 넘어선 존재가 있다. 반대로 말해도 좋다. 우리 안에 우리 아닌 존재를 품고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이상이다. 한국이기만 한 한국인은 없다. 만약 그런 인간이 있다면 그는 법조문의 주어나 목적어로만 존재하는 인간이고, 그의 세계는 한 권의 법전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고병권 작가님의 책 『사람을 목격한 사람』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이 한 권의 책을 덮으며 저는 이 책이 하나의 커다란 “억압받는 자들의 약력”(286쪽)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억압받는 자들. 조명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인 이들의 위대한 약력을 읽어내려가면서 기꺼이 이들 곁에 서서 ‘싸구려 앰프’가 되기로 한 고병권 작가님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었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사람을 목격한 사람』을 쓰신 고병권 작가님을 모시고,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또는 네 번째 사람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일의 고귀함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오은: 오늘은 <책읽아웃> 2023년의 마지막 녹음입니다. 방송이 실제로 나가는 것은 2024년이고, 새해 첫 방송을 고병권 작가님과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작가님께 먼저 2024년에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여쭙고 싶어요.
고병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약 20년째 똑같이 한 것 같아요. 읽고 있고, 쓰고 있고, 말할 일 있을 때 말하고 살 것 같다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기대하는 게 있기는 해요. 제가 그동안 주로 글을 쓴 건 요청을 받아 한 것이 많았는데요. 이번에는 제가 저한테 요청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한 7년 전에 중국 작가 루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무언가가 되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저의 이야기를, 그러니까 나는 왜 쓰는지, 어떻게 살 건지를 루쉰의 어떤 대목을 가지고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출간이 되든 안 되든 제 개인적으로 써야겠다고요. 상반기는 행복한 시간 보낼 것 같아요. 실패하든 성공하든 말이에요.
오은: 결국 읽고 쓰기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군요.
고병권: 언제부터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농사를 한참 짓는 농사꾼한테 언제까지 농사 지을 건지 질문하면 좀 이상하듯이, 거창하게 말하면 읽고 쓰는 건 제 삶이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어떤 작물을 심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
오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철학을 함께 공부하고 계시는 야학 교사이기도 하시잖아요. 2010년부터 현재까지, 꽤 긴 시간이에요. 13년이 넘었으니까요. 이 시간이 왠지 고병권이라는 사람에게 아주 밀도 높은 시간이었을 것 같거든요.
고병권: 노들이 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지금의 저는 노들의 산물인 건 맞는 것 같아요. 철학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노들에 강사로 갔지만 여기서 제가 배웠다고 말하는 게 맞고요. 그래서 최근에 어디 칼럼을 쓸 때도 “나는 노들 야학의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라고 썼죠.
아마 노들이 배출한 학생 수보다 노들이 배출한 선생님의 수가 더 많을 거거든요. 순수한 봉사의 마음으로 왔다가 무언가가 변화된 사람들, 인생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요.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도 굉장히 많이 배출됐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중에는 홍은전 작가님도 계시고요. 저도 거기서 배출된 사람이라고 생각돼요.
오은: 고병권 작가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 철학 교사. 읽기의 집 집사. 생의 최소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임을 잊지 않으며 아픈 사람, 싸우는 사람의 삶의 의지를 지켜보고 세상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더 멀리 전달되도록 작은 앰프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람을 주저앉히는 글이 아니라 작은 힘, 작은 기쁨이라도 건넬 수 있는 춤과 같은 글을 쓰고자 한다. 니체에 이르는 길이자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섬세히 펼쳐낸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철저하고 깊이 있게 읽어낸 〈북클럽 『자본』〉 시리즈(전 12권), 우리 사회의 현재를 그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묵묵』, 현장의 운동과 사건과 사람을 담아낸 『“살아가겠다”』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추방과 탈주』 등을 썼다.”
고병권 작가님은 “나는 읽기 속에 있다”고 말씀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읽고 쓰고 말하는 일이 주요한 정체성인 것도 같은데요. 그 중에서 읽기가 주는 특별한 힘이 있다면 뭘까요?
고병권: 저는 읽기 전, 그러니까 어떤 예비적 조건 속에서 읽기가 힘을 내는가, 어떨 때 책을 만나야 되는가, 그것이 읽기에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제가 흔하게 말하는 게 전태일 열사 같은 분인데요. 근로기준법 책이 왜 그렇게 그에게 대단한 각성을 불러왔을까 하는 거죠. 그 예비 과정을 생각해보는 거예요. 엄청나게 고통을 받으면서 겪고, 축적했던 것에 마침 책이라는 게 나타난 거잖아요. 책은 마치 성냥개비처럼 누군가의 머리를 확 그어주는 것 같고요. 그게 큰 불이 될지 그냥 피식하고 꺼질지는 그게 얼마나 말라 있었는가와 관계 있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읽기에 이르는 과정이 아주 중요할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는 ‘읽는다’보다 ‘읽어낸다’는 말을 좋아해요. 읽어낸다는 건 읽어서 내온다는 뜻처럼 보이거든요. 읽어냈다는 이야기는 보이는 것 말고 뭐가 보였다는 뜻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읽어내는 힘이 커져야 하고요. 읽어내는 힘은 별 수 없이 읽기 너머의 어떤 삶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것들이 준비됐을 때, 그 절실함이 있을 때 읽기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은: 『사람을 목격한 사람』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책 어떤 책이죠?
고병권: 형식적으로는 제가 지난 5년간 신문과 잡지에 써온 글들을 묶은 것이고요. 일부는 제가 현장, 특히 장애인들의 투쟁 현장에서 행했던 발언들이에요. 이 자리에 편집자님이 와 계시는데요. 사실 책 제안을 일찍 받긴 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이게 책이 될 수 있을까 반문했어요. 워낙 긴 시간이고, 5년 동안 사건들도 많았고, 그 사건들에 대응해서 쓴 글들이니까요. 이게 한 권의 책이 될까 싶었는데요. 모아서 쭉 읽어봤더니 이게 사람 이야기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말하자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들, 사람의 지위가 문제인 사람들, 그래서 종종 나도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는 거죠.
‘사람’이라는 말 자체가 ‘살다’라는 말에서 왔다고해요. 거기서 삶이라는 명사도 왔고요. 이 책은 결국 사람을 통해서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같아요. 장애인 분들이 휠체어를 막 밀면서 몸싸움을 하고, 이동권을 요구하고, 바닥을 기고, 하는 게 저한테는 고귀해 보였거든요. 삶이란 그만큼 고귀한 것이고, 사는 것은 중요한 것이고, 살고자 하는 건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그래서 이 책 내용을 보면 너무 괴롭다고 할 것도 같아요. 물론 죽음과 고통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많지만요. 이것은 죽음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삶에 대한 책이고요. 무엇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충만한 책이고, 살려고 분투한 이야기들이에요.
그래서 이 책이 저한테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고, 삶에 관한 이야기고, 생명에 관한 이야기고요. 무엇보다 죽음의 설교에 맞서서 삶을 지켜내고 살려고 했던 의지가 가득한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고병권: 『노들바람』이라는 책이에요. 정말 보석처럼 아끼는 책이고요. 봄날의책에서 2023년에 나왔고, 노들장애인야학 30주년을 기념한 책이에요. 노들에서 소식지를 내요. 1993년 노들야학이 만들어졌을 때는 ‘부싯돌’이라는 이름으로 냈고요. 그 이후 ‘노들바람’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냈죠. 거기에 글이 2천여 편 실려 있는데요. 그 중 73편만 선별해서 책으로 묶어낸 거예요. 그러니까 글이 얼마나 좋겠어요. 심지어 2천 편도 그냥 막 내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면서 썼겠어요. 그 중 73편이니까요.
왜 노들에 가면 사람들이 바뀌게 되나, 혹은 뭔가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되나, 궁금해하시는 분들께 어느 정도 답을 해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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