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작가의 글을 읽을 때는 무언가 해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어 새로운 것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비유와 상징’이 온통 현실이 되는 장면을 보고는 어딘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굴러떨어진 듯한 충격을 받습니다. 니체의 ‘절름발이’라는 말이 발화된 곳이 노들장애인야학이고, ‘철창’에 갇혔다고 상상해보자는 말이 발화된 곳이 교도소였던 순간에요. 그것은 마치 “죽을 것 같은”에서 ‘같은’이 사라진 세계입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착각해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장소에 이끌려 따라가서는 자꾸만 눈을 비비게 되고야마는 책, 그것이 『사람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이 인터뷰는 책 소개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를 작가와 서면으로 진행한 이야기입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선생님께서는 이 책은 ‘산문집’이라고 말하셨어요. 그것을 잠시 잊고서 저는 작업 막바지에 도서관 책장 어디에 꽂힐까 ‘철학’인가, ‘사회과학’인가, 하다 역시 ‘문학’이지, 하고 돌아왔지만요. 투쟁 현장에서 “시간을 버세요, 스스로 버세요!”라고 비장애 시민이 외치는 장면에는 연필로 ‘문학이구나……,’라는 말을 써놓았고, 문장에서 단어 하나를 바꾸거나 수정할 때도 소리 내어 읽어보며 조심스럽게 진행했습니다. 기술적 부분, 예컨대 대화 장면이라든가 배경 묘사, 문장 리듬 등을 꼽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것들은 선생님의 글을 문학으로 생각게 하는 요소는 되어도 전체는 아닌 것 같아요. 왜였을까요? 무엇이 문학인 걸까요?
몇몇 사람이 제 글에 대해 ‘문학적’이라고 말해준 적은 있지만, 제 스스로 진지하게 ‘문학’을 생각하며 쓴 적은 없습니다. 이 책을 ‘산문집’이라고 말한 것도, 적극적으로 이 글을 ‘무엇’이라고 규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라고 규정하고 싶지 않아서 쓴 말입니다. ‘산문’이라는 뜻 그대로 어떤 체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또 어떤 규범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것입니다.
그런데 제 글에서 ‘문학’을 느낀다면, 그리고 ‘문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로서는 이 글들을 왜 썼는지를 말하는 식으로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여기 글들은 대부분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썼습니다. 저는 용기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잘 따지지도 못하고, 투쟁 현장에서 몸싸움 같은 게 일어날 때도 몸을 슬슬 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현장을 떠나지도 못합니다. 어정쩡하죠. 마음이 거기 남아, 아니 거기 붙들려 집에 와서도 시달립니다.
글을 왜 쓰는가. 견딜 수가 없어서 씁니다. 보고 말았고, 듣고 말았고, 떠올리고 말았기 때문에 씁니다. 사회과학자처럼 사회나 역사의 법칙을 찾는 것도 아니고 무슨 정책을 제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철학자처럼 하나의 개념으로 현실을 움켜쥐지도 못합니다. 다만 바깥에서 들어와 제 안에서 웅웅대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일을 보고 들은 뒤 제 마음에서 일어난 요동에 대해서 쓸 뿐입니다. 그런 글들이 이 책을 이루고 있습니다. 실용적이지도 못하고, 현실 제도를 바꿀 힘도 없으며, 기껏해야 발만 동동 구를 뿐이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체험에 대해서 쓴 글들, 그런 글들을 묶어서 문학이라고 부른다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문학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글을 문학이라고 불러도 좋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만드는 동안 밀도가 굉장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그게 2018년 이후 지금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켜켜이 쌓였기 때문이고, 지금 사람들의 목소리가 또한 그 이전의 이전의 이전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한 사람이 지금까지 무엇을 보고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변곡점을 맞이하며 생애의 궤적을 그려왔는지를 보게 된 덕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끌려가던 맥스 앞에 고개를 떨군 고병권, 대학 로고가 부끄러워서 티셔츠를 뒤집어 입은 고병권, “네가 노동자를 알아!” 하는 소리와 함께 뺨을 맞은 고병권, 신문에 「최옥란을 기억하며」라는 첫 칼럼을 쓰던 고병권, 태어나서 처음 쓴 선언문을 갯벌에서 읽고 서울까지 걸어 올라온 고병권, 잡혀가는 미누 앞에 발만 동동 구르던 고병권, ‘사람 살려’라는 말 앞에 할 말을 찾지 못한 고병권……. 그런 고병권들이요.
선생님께서는 ‘이곳을 보아달라’고 어딘가로 독자를 데려가지만 그곳에서는 동시에 애타고 염려하고 부끄러워하고 힘을 불어넣는 선생님도 보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고개를 숙일 때 같이 고개 숙이게 되고야마는 마음이랄까요. 선생님의 눈이 있어 “고맙고 다행”이라는 말씀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을 그 장소들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요. “글을 쓰는 사람, 사유하는 사람의 책무”를 떠올리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요?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책에서 제 과거 이야기를 많이 꺼내놓은 것 같습니다. 제가 과거로 돌아갔다기보다 과거가 제게 돌아왔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겁니다. 제가 꺼내놓은 게 아니라 그것들이 뛰쳐나옵니다. 당시에는 감당할 수 없었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야 자신의 때를 만난 듯, 기억의 다락 어디선가 뛰쳐나옵니다. 개장수에게 끌려가던 맥스 앞에서 눈을 떨구던 아이, 노동자에게 뺨을 맞고 얼굴보다 마음에 더 큰 멍이 들었던 청년에게 이제야 말을 건넬 준비가 된 느낌입니다.
저를 이 책의 ‘그 장소들’로 이끈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요. 맞습니다. 저는 찾아간 게 아니라 이끌려간 겁니다. 노들장애인야학만 하더라도 거기 선생님들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수업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누군가가, 무언가가 옵니다. 이 책에 소개한 장애해방열사들에 대한 강의 때도 그걸 느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유서에 “미안하네, 용서하게”라고 썼습니다. 허락을 받지 않고 우리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찾아와서 우리를 붙듭니다.
니체는 사유란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원할 때 찾아온다고 했는데요. 정말이지 우리가 부르지 않아도 우리에게 닥치는 것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 장소들’은 곳곳에 있습니다. 누군가가, 무언가가 아무 때나 찾아오고 아무 곳에서나 말을 걸고 소매를 잡습니다. 그걸 뿌리치는 사람과 뿌리치지 않는 사람,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안 듣는 사람, 못 듣는 사람, 못 들은 척하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듣고 응답하는 사람이 있는 것뿐입니다.
책임이란, 『묵묵』이라는 책에도 썼지만, ‘응답’의 문제입니다. 책임을 영어로 ‘responsibility’라고 하는데요, 글자 그대로 ‘응답(response) 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응답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들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또한 누군가 말하고 있다는 뜻이고요. 책임의 시작은 그것입니다. 누군가 말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귀를 기울이는 것, 주의를 기울이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이것에 대한 책임 내지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목이 되기까지 몇 번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후보로는 호소, 두 번째 사람, 싸구려 앰프, 공부하는 심정 등이 올랐었지요. 이 말들은 ‘사람을 목격한 사람’이라는 제목 안에 모두 담겼습니다. 이 제목은 어떻게 탄생한 건가요? 어떠한 사람, 어떠한 목격인가요?
이 책의 제목 후보들은 서로 자리를 양보해도 좋을 친구들입니다. 처음 책 제목으로 제안했던 ‘호소’는 한자 뜻이 좋았습니다. ‘호(呼)’는 ‘부른다’는 뜻인데요. 본래는 도끼 찍는 소리가 산에 울리는 것을 표현한 말이라고 합니다. ‘소(訴)’는 ‘말로써 물리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억울한 일을 알리는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일을 물리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제목으로 떠올렸습니다. ‘싸구려 앰프’도 비슷한 맥락에서 떠올렸던 제목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소리가 너무나 작게 들릴 때 저는 글쓰기 욕망을 느낍니다. 이 책의 글들은 제가 들은 소리를 증폭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쓴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으로 ‘앰프’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다만 ‘싸구려’라는 말을 붙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하도 아니고 겸손도 아닙니다. 그냥 현장에서 쉽게 가져다 쓸 수 있고 쓰고 나면 그냥 잊어버려도 되는 그런 앰프가 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제목 후보였던 ‘두 번째 사람’도 그 자리가 ‘싸구려 앰프’와 다르지 않습니다. 두 번째 사람의 자리는 슬픔에 빠진 첫 번째 사람이 목소리를 낼 때 옮겨오는 자리이고, 세 번째 사람이 첫 번째 사람의 소리를 듣고 다가오는 자리입니다. 좋은 수신 장치와 발신 장치가 있어야 할 곳이지요. 또 하나의 유력한 제목이었던 ‘공부하는 심정’도 이 두 번째 사람의 심정입니다. 단순한 흥미가 아니라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절박함에서, 더 나아가 해방에 대한 열망에서 공부를 해가는 사람의 마음이죠.
그런데 결국에 책 제목은 ‘사람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글들을 모아놓고 쭉 읽어보니 모두가 ‘사람’이야기더군요. 특히 사람의 지위가 위태롭거나 아예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책 제목의 후보였던 ‘호소’, ‘두 번째 사람’, ‘싸구려 앰프’ 등을 나열해보니 제 글은 ‘사람을 본 사람’에 해당하겠구나 싶더군요. 그런데 ‘사람을 본 사람’이라고 써놓고 보니 뭔가 부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았다’는 말만으로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냥 ‘보았다’가 아니라 ‘보고 말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보고 말았고, 본 것을 보지 않은 것으로 할 수 없다, 이 ‘봄’은 ‘구경’이 아니다, 여기에는 ‘증언’의 책무가 따른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격’ 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증언의 책무를 강조하려고요.
이 책에 담긴 가장 최근은 2023년 9월이고, “다시, 겨울이 오고 있어요”. 출간 시점을 논의할 때 아무래도 겨울, 그것도 어쩐지 1월보다는 12월이 어울릴 듯하다고 말하고서 서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왜 겨울, 또한 어째서 1월보다는 12월이었을까요? 그 정서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어떤 정서와 호응했던 걸까요?
글쎄요, 겨울을 염두에 두고 글을 모은 것은 아닌데요. 여름보다는 겨울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밤이 길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년 전에 펴낸 책 『묵묵』은 ‘밤길을 걷는 자’가 모티브였는데요. 『묵묵』과 비교한다면 저는 이번 책에서 ‘걷는 밤’보다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밤’, 더 나아가 ‘무언가를 모의하는 밤’을 떠올립니다. 무엇보다 겨울은 난로를 필요로 하는 때잖아요. 이 책 어느 글에도 썼지만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우리 삶의 여러 문제들을 꺼내놓고, 함께 살아나갈 방도, 함께 싸워나갈 방도를 이야기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겨울이 오고 있어요”라는 말을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는 난로가 필요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는 호소이자, 첫 번째 사람을 향한 응원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참회의 글로 다가옵니다. 선생님께서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라고 호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라고 말할 때 ‘이 사람은 우리라고 하는구나’ 하고 자주 멈추었지요. 특히 ‘제7부 연대하는 사람’에 다다르면 “우리가 살 곳은 어디인가요?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시간은 언제인가요? 바로 지금입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이곳에 실린 글을 쓸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우리’ 그리고 어떤 ‘당신’을 생각하셨나요. 그리고 독자로서는 어떤 얼굴 혹은 형상을 떠올리셨나요?
이 책의 제7부에 묶은 연대 발언들에는 ‘나’, ‘당신’, ‘우리’라는 말이 섞여 있습니다. 엄정한 기준을 갖고서 쓴 것은 아닙니다만, 조금은 의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말에서 ‘우리’라는 말로 넘어가면 나를 누군가와 동일시하는 효과가 나고, 누군가를 ‘당신’이라고 부르면 그를 ‘나’와 다른 ‘타자’로 만드는 효과가 생겨나지요. 그래서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우리’라는 말을 쓸 때, 내가 하는 말이 이를테면 지하철 행동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말과 같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고, ‘당신’이라는 말을 쓸 때 그 사람을 ‘우리’가 될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이 말들을 쓸 때 떠올리는 구절이 있습니다. 노들야학 입구에 걸려 있던 것인데요.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이 했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저는 이 구절이 ‘나’와 ‘당신’, ‘우리’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나’는 ‘당신’에게 ‘우리’가 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야학에 왔을 저는 ‘당신’이었습니다. 야학에 처음 왔을 때 어떤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 부끄러움은 이 사람들의 문제, 이 사람들의 고통을 몰랐다는 것에서 생긴 게 아닙니다. 저의 부끄러움은 내가 속한 사회,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폭력성, 내가 이루고 있는 관계가 만들어낸 부자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부끄러움은 무엇보다 나에 대한 감정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로서 ‘당신’과 함께 ‘우리’로서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연대 발언을 할 때, 나는 나였던 ‘당신’ 그리고 우리일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당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 이전에 ‘말하기’(『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2007)와 ‘침묵’(『묵묵』, 2018)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소리를 나르는 몸, ‘앰프’가 되셨지요. 『묵묵』에서 저는 ‘빈자리’라는 단어가 눈에 많이 띄었는데요. 빈자리는 누군가의 있음을 아주 아프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그것을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이번 책에도 글이 탄생한 시간의 앞쪽엔 ‘빈자리’가 있지만, 점차 지날수록 ‘삶의 의지’ ‘의존’ ‘함께’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눈과 춤은 여전히 그곳에 있고요). 사람을 주저앉히는 글 대신 작은 힘, 작은 기쁨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매우 직접적인 위로도 있었지요. 이 단어들의 변화를 느끼셨는지요? 어디서 온 걸까요? 코로나19도 영향을 준 이유 중 하나일까 상상해보지만요.
말씀하신 것처럼 『묵묵』에는 빈자리와 침묵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어 있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르며,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누군가 말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요. 내가 듣지 못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말하지 않았다고, 더 나아가 상대방이 말하지 못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책 『묵묵』이 듣기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 책은 말하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들은 말을 제 목소리로 다시 표현해보는 것,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응답해보는 시도라고 할까요. 하지만 여기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대부분이 말을 찾는 데 실패한 글들이었습니다. 이 책은 용산참사 때 자신이 목격한 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의 몸짓으로 시작해서, ‘사람 살려’라는 푯말 앞에서 말을 찾는 데 실패한 제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그럼에도 왜인지 저는 이 실패에서 희망을 말하고 싶습니다. 『묵묵』에서는 희망도 절망도 없는, 묵묵함에 대해 말했습니다만, 그래도 무언가 작은 희망이라도 말해야 한다면 저는 ‘말의 실패’에서 그것을 봅니다. 실패한 말은 말하지 않는 것과 다릅니다. 말을 찾는 데 실패한 것은, 그럼에도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파농은 「흑인의 실제 경험」이라는 글에서 흑인의 경험을 설명할 말을 찾다가 마지막에 가서 엉엉 울고 맙니다. 적절한 말이 없다는 것, 그러나 그 울음이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무언가가 도래하려면 지금의 우리가 실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말들, 기존의 생각들의 한계를 자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말로서는 응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실패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전히 희망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희망에는 미덥지 못한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말을 써본 것은 어떤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를 언급해주셨습니다만, 이를테면 그때 바이러스에 감염된 중증 장애인과의 공동 격리를 자원한 사람들이 그렇고요. 누군가 옮겨주지 않으면 한 뼘도 움직일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이자 탈시설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인 이종강 선생님이, 시설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을 지켜보는 눈이자 말하는 입으로서 시설에 함께 남겠다고 말하는 대목 같은 곳에서 그런 걸 느낍니다. 제가 ‘함께’라는 말을 꺼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분들을 알게 된 덕분입니다.
‘철학자’라는 이름과 거리를 두고 싶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어요. 그리고 만약 쓴다면 ‘작가’일 텐데 그것은 ‘저자’와는 다른 것이라고도 하셨지요. 그 후로 제가 선생님 이름 앞과 뒤에 무언가를 붙여야 할 때(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붙이고 싶지 않지만), ‘인문학자’라고 썼다가 어쩐지 이 말 또한 선생님께서는 받고 싶지 않은 단어 같다고 생각해 ‘인문학 연구자’라고 고쳐 썼습니다. 철학자, 저자, 인문학자 등과 분별되는 ‘작가’는 무엇일까요?
사실 제가 ‘철학자’를 자처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책을 펴낼 때 편집자가 저를 ‘철학자’라고 소개할 때 빼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처하지 않지만 빼달라고도 하지 않다니, 뭐 이런 게 있나 싶지만, 제게 철학자라는 말은 이처럼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저는 철학과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철학자로 알려진 스피노자나 니체 같은 사람들의 글을 좋아하고 그들의 생각과 삶을 존경합니다. 그들의 개념을 통해 세상을 새로 보게 된 것도 많고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철학자라고 불리고 또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리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제가 어떤 철학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박식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눈길, 삶을 걸어가는 그의 독특한 발길을 사랑하는 거지, 철학사에 대한 그의 지식을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이를테면 니체가 플라톤을 잘 알고, 칸트를 잘 알기에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철학에 종사하는 것과 철학자로 살아가는 것은 좀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장애인 야학의 교사입니다만 여기서 새로 배운 것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 철학자들, 특히 강단의 철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유가 아니라 더 많은 경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철학자는 자신이 떠올린 인간의 이미지가 매우 협소한 경험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유는 자기의 제한된 경험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것밖에 되질 않을 겁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언제부턴가 ‘철학자’라는 이름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철학자는 예전의 제게는 감히 받을 수 없는 이름이었지만, 언제부턴가는 그다지 받고 싶지 않은 이름입니다. 굳이 지금의 제 작업을 철학과 관련짓는다면, 철학비판가 내지 철학비평가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라는 말에 거리를 두는 이유는 ‘철학자’의 경우와 조금 다른데요. 영어에서 저자를 뜻하는 ‘author’는 권위 내지 당국을 뜻하는 ‘authority’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제게 ‘저자’라는 말은 책과 관련된 어떤 ‘권위’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권위를 갖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에 영화감독 켄 로치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그는 ‘누구누구의 필름’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더군요. 감독은 영화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영화의 특정 일을 맡은 일원이라고 했습니다. 배우가 연기를 맡았듯이 감독은 ‘디렉션’을 맡았을 뿐이라는 거죠. 영화는 모두가 함께 만든 것이고요.
그 말에 빗대어 보자면 저는 글을 쓴 사람일 뿐입니다. 제가 손에 쥔 책, 그러니까 사물로서의 책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책의 모양새, 인쇄 종이, 표지, 본문 서체 등은 모두 디자이너의 작품입니다. 글의 편집은 편집자가 한 것이고요. 제가 생산한 것을 읽을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의 내용을 생산한 사람일 뿐 책의 소유자는 아닙니다(사실은 제가 생산했다는 내용도 다른 이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책을 쓴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작가’, 영어로는 ‘writer’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저는 이 책의 ‘작가’입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