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신작 장편소설 『파견자들』 출간 비하인드
장편소설 『파견자들』 김초엽 작가 서면 인터뷰
인간도 인간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니, 인간과 인간 바깥의 경계를 지워보는 작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그 생각이 『파견자들』로 이어졌습니다.
소설가 김초엽의 신작 장편소설 『파견자들』이 콘텐츠 서비스 '예스24 오리지널'에서 최초 공개됐다. 예스24 단독 종이책 예약판매와 전자책 선출간을 진행하고 있는 이 작품은 『지구 끝의 온실』 이후 2년 만의 장편이다. 인간에게 광증을 퍼뜨리는 아포(芽胞)로 가득한 세계, 인간들은 두려움에 떨며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태린은 파견자가 되어 지상을 탐사하기를 꿈꾼다. 곰팡이와 버섯을 포함하는 '균류'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탐구하기 위해, 작가는 많은 자료를 탐독했고 어느 때보다 치열한 집필 기간을 보냈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기까지 어떤 고민의 과정이 있었는지 작가에게 서면으로 물었다.
이번 장편소설은 전작 『행성어 서점』의 짧은 소설 「늪지의 소년」, 「오염구역」, 「가장자리 너머」을 씨앗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구상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행성어 서점』의 짧은 소설 연작은 한 미술 전시에 참여하면서 구상한 작품입니다. 전시 주제와도 관련이 있었는데, 이 짧은 소설들을 쓰는 동안 인간의 몸과 자연의 물질들이 어떻게 얽히고 또 섞이는지, 몸의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것 혹은 개별적인 개체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불분명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를테면 하나의 몸을 이루는 물질들은 전부 외부의 환경에서 온 것이고, 또 한 인간의 몸에는 세포만큼 많은 수의 미생물이 살고 있잖아요. 그렇게 인간도 인간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니, 인간과 인간 바깥의 경계를 지워보는 작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그 생각이 『파견자들』로 이어졌습니다.
장편으로 이야기를 확장할 때 먼저 고려했던 건, ‘인간이 외계행성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외계행성으로 변한 이야기를 써보자’라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변해버린 외계행성 같은 지구를 탐사하는 파견자들, 그리고 그들의 증오와 사랑과 헤어짐, 복잡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장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제목을 ‘파견자들’로 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목은 계속 고민했던 것인데요. 사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태린’이라는 확고한 주인공 한 명, 혹은 투톱이 이끄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파견자들’이라는 제목을 처음에 붙이긴 했지만 다 쓰고 나니 고민이 되더라고요. 여러 인물들이 주인공일 거라고 짐작될 수도 있는 제목이어서요. 그렇지만 계속 고민을 해보아도 ‘파견자들’만큼 어울리는 제목은 없어서 결국 이 제목이 되었습니다. 미지의 장소로 변해버린 지구를 탐사하고, 놀라운 진실을 대면하는 파견자들이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으니까요.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식물’이라는 비인간 존재가 지구를 뒤덮었다면, 이번 『파견자들』에는 ‘범람체’가 등장합니다. 균사체와 같은 네트워크를 이루며 집단 지능을 갖고 움직이는 존재인데요. 인간과 다른 이 비인간 존재를 소설로 쓰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했나요? 참고하신 문헌들도 궁금합니다.
곰팡이, 균류를 다룬 책을 읽으며 범람체라는 존재를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라는 두꺼운 책인데, 수백 페이지 내내 곰팡이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렵고 이상한 존재인지를 다양한 근거를 들어 서술하거든요. 우리 인간은 개별적인 몸, 즉 개체중심적인 존재이고 몸이 외부 환경과 확고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느끼잖아요. 그래서 곰팡이, 점균류처럼 개체의 구분이 모호하고 심지어 외부 환경과의 구분조차 모호하게 뒤얽혀 있는, 그래서 ‘개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생물을 더욱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너무 재미있는 책이었고 그래서 이 복잡한 질문을 소설로도 꼭 옮겨보고 싶었어요.
곰팡이나 점균류와 비슷한 존재들이 세계를 어떻게 감지할지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데에는 『이토록 굉장한 세계』라는 책이 좋았어요. 동물들의 감각을 다루는 책인데, 인간에게는 없는 감각으로 세상을 감지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게 만들어요. 『탈인지』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인간 외의 다른 존재들이 세상을 느끼는 방식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고요. 『내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적 경험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말하는 책인데, 인간의 의식을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볼 수 있어서 비인간 존재의 의식을 상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어요.
다른 감각의 타자가 만나는 사건은 작가님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 중 하나인데요. 이번 소설에서는 ‘나’라는 자아 감각이 강한 개체(인간)와 집단적인 감각과 기억을 공유하는 ‘범람체’가 만납니다. 혐오와 두려움, 매혹이 뒤섞인 이 상호작용을 어떻게 그리고 싶으셨나요?
주인공 태린은 범람체들을 마주하며 당혹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것들에게 매료되기도 하는데요. 소설을 읽는 분들이 태린의 마음에 동화되며 이야기를 따라가기를 바랐어요. 물론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와 매혹을 동시에 갖도록 텍스트로 설득하는 일이니까, 정말 어려운 일이고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제가 쓴 이야기 중에 가장 긴 분량의 소설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복잡한 마음을 풀어 깊이 들어가 보려고 하다 보니 짧은 분량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도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태린과 미처 연결되지 못한 뉴로브릭으로 등장하는 쏠의 공존도 흥미로웠습니다. 한 명의 신체에 두 자아를 가진 존재가 다른 언어로 상호작용을 하는데요. 쏠을 구상한 과정도 궁금했습니다.
예전에 「양면의 조개껍데기」라는 단편을 쓰며 처음으로 한 몸에 깃든 두 개의 자아라는 소재를 다뤄보았는데요. 다양한 이야기 매체에서 ‘다중인격’ 소재가 등장하긴 하지만, 소설로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재미있었거든요. ‘쏠’을 구상하면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아예 확고한 목소리를 가진 존재로 설정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린과 늘 대립하고 티격태격하는 자아가 있다 보니, 집필할 때도 그 대립하는 리듬을 살리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채널예스에 연재된 <김초엽의 창작과 독서>(『책과 우연들』로 출간)에서 ‘소설 쓰기’를 낯선 여행지의 가이드가 되는 일로 비유하셨죠. 이번 여행지를 먼저 탐사하는 기분은 어땠나요? 유독 쓰기 어려웠거나 가장 오래 고민했던 대목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단편도 그렇지만 장편을 쓸 때는 특히나 그런 것 같은데, 저는 도입부와 중반부까지가 늘 가장 힘들어요. 아무리 설정과 구상을 하고 시작해도 실제로 본문을 쓰기 전에는 그 세계를 아는 게 아니니까요. 초반에는 아직 이 세계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고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안개 속을 더듬으며 나아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태린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서 태린으로서 경험하는 지하 도시와 지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려고 했습니다. 태린이 범람체로 뒤덮인 세계를 처음 목격하는 장면이나, 지상을 탐사할 때의 감각 묘사 같은 것도 많이 고민하면서 쓴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태린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과 감각을 읽는 분들에게도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다양한 감각 묘사를 특히 신경 썼던 것 같아요.
팬데믹과 기후 위기로 세계에 대한 감각이 이전과는 같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와 비인간 존재는 공생할 수 있을지,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일지 작가님의 현재 답변이 궁금합니다.
어려운 질문인데요. 이 소설을 쓰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공생에 대해서도 고민했지만 인간과 인간의 공생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게 되었어요. 지금의 잠정적인 생각은, 공생은 아주 어렵고, 서로 침투하는 것이고, 서로 오염되고 얽히며 원래의 모습을 잃게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변화와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자신을 전혀 잃지 않고 깨끗함을 유지하는 공생 같은 것은 사실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초엽 소설가. 1993년생.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이 있고, 함께 지은 책 『사이보그가 되다』가 있고,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우주에 대해 상상하는 걸 좋아하지만 우주에 직접 가고 싶지는 않은 SF 작가. 환상적인 시공간을 여행하고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취미는 두 달마다 바뀌는데, 가장 오래가는 건 게임. 언젠가 집에 모든 종류의 게임 콘솔과 커다란 스크린이 구비된 게임방을 만들고, 스스로를 완전 격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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