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대중문화 > 김윤하의 전설이 될 거야
케이팝의 필살기 : 전소미 'Fast Forward'
심장을 다시 뛰게 해준 곡
영상이 시작되고 고작 30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건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후 이어진 3분여의 영상과 음악은 실로 대단했다. 딥 하우스를 바탕으로 전형적인 EDM 드롭을 팝 스타일로 적절히 풀어낸 노래는 테크토닉이라는 날개를 달고 무한히 뻗어 올랐다. (2023.08.16)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고백하겠다. 케이팝과 관련한 글을 처음 쓴 그때부터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케이팝을 듣고 봐왔다. 가끔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양에 질리면서도 대체로 즐겁게 들어왔다. 최근까지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듣고 즐기는 와중, 어딘가 자꾸만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배가 불러도 너무 부른 소리였다. 케이팝은 지금,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른 어떤 장르에서도 만날 수 없는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와 주류 팝 시장 한가운데 내놔도 손색없는 악곡이 날마다 쏟아졌지만, 심장이 반응하지 않았다. 우습게도 정말 그랬다. 그리고 2023년 여름, 그렇게 얼어붙었던 케이팝 고인물의 심장을 기적처럼 다시 뛰게 해준 곡이 등장했다. 전소미의 'Fast Forward'다.
케이팝에 관심을 가진 사람 가운데 소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소미가 대중 앞에 선 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그는 솔로 데뷔 전 'SIXTEEN(2015)'과 '프로듀스 101(2016)' 등 출연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마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SIXTEEN'에서는 만 14세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종 후보까지 이름을 올렸고, 여러 의미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새 역사를 연 '프로듀스 101'에서는 무려 최종 순위 1위를 차지하며 그룹 아이오아이(I.O.I.)의 센터로 1년 여간 활발히 활동했다.
이보다 잘 닦일 수 없어 보이던 전소미의 미래는 그러나 생각보다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아이오아이 데뷔와 함께 JYP엔터테인먼트와 정식 전속 계약을 맺었지만, 2018년 8월 계약 해지 사실이 알려졌다. 곧바로 YG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인 더블랙레이블과의 계약 소식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지만, 안타깝게도 시작은 생각보다 더뎠다. 2019년 싱글 'BIRTHDAY'를 발표하고 1년에 한 곡 정도씩 잊지 말라는 듯 싱글이 나왔다. 2021년 챌린지로 인기를 끈 'DUMB DUMB'으로 1위를 차지하고 첫 정규 앨범 <XOXO>도 발표되었다. 안타까운 건 앨범 수록곡 절반이 기발표 곡으로 전소미의 새로운 음악에 목말랐던 이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이건 순전히 양의 문제였다. 가뭄도 이런 가뭄이 없었다.
그 후로 1년 10개월, 소미가 돌아왔다. 앨범을 전체적으로 듣기 전 타이틀 곡 'Fast Forward'의 뮤직비디오를 먼저 재생했다. 금발의 소미가 교복을 입고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습에 요즘 한창 친숙해진 영미권 하이틴물을 의식한 내용이려나 생각했다. 그 순간, 헬멧을 쓴 남자가 유리창을 깨고 창밖으로 날아간다. 소미가 날린 한 방이었다. 그 뒤로 은은히 깔리기 시작하는 익숙한 딥 하우스 리듬. 영상이 시작되고 고작 30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건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후 이어진 3분여의 영상과 음악은 실로 대단했다. 딥 하우스를 바탕으로 전형적인 EDM 드롭을 팝 스타일로 적절히 풀어낸 노래는 테크토닉이라는 날개를 달고 무한히 뻗어 올랐다. 황보의 '뜨거워져'(2008)에서 수명을 다한 줄 알았던 테크토닉은 시대에 맞는 매무새로 깔끔하게 뽑힌 노래와 영상의 면면에 기가 막히게 녹아들며 새 생명을 얻는다. 초능력 학원물의 아웃사이더에서 고쟁이 바지를 입고 잠자리 뿔테를 쓴 너드, 가죽 재킷을 입은 반항아는 물론 흑백을 완벽히 소화하는 사이버펑크 디바까지 수시로 오가며 매력을 발산하는 소미는 누가 뭐래도 'Fast Forward World'의 끝내주는 주인공이었다. 온 영상을 통틀어 가장 뜬금없는 동시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태권도 군무 파트가 태권도를 사랑하는 소미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가상과 현실, 세련과 복고 등 우리가 케이팝이라는 큰 틀 안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온갖 극단이 'Fast Worward'에 총망라되어 있다. 이건 전소미의 필살기이자 케이팝의 필살기다. 아마 그 박력이 내 심장을 치고 지나간 걸 테다. 더욱 기쁜 건 이 곡이 실린 앨범 <GAME PLAN>이 전반적으로 아주 잘 빠졌다는 사실이다. 전소미는 수록된 다섯 곡 가운데 네 곡의 작사와 세 곡의 작곡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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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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