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고라니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본 적이 있나요?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58회) 『이름보다 오래된』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불현듯(오은): 오늘의 특별한 게스트는요, 가망서사 출판사의 박우진 편집자님입니다. 안녕하세요.
박우진: 안녕하세요. 가망사사 박우진입니다.
불현듯(오은): 목소리 톤이나 말씀하시는 게 오디오 콘텐츠에 많이 출연하셨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박우진: 처음입니다. 지금 엄청 떨고 있습니다. 밤에 잠도 못 잤어요.(웃음)
문선희 저 | 가망서사
불현듯(오은): 출판사 이름이 생소하기도 했는데요. 이름과 더불어 출판사 소개를 먼저 부탁드려요.
박우진: 가망서사는 제가 하고 있는 1인 출판사이고요. 말 그대로 ‘가망 있는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절망이 너무 쉽고, 또 희망하기에도 너무 어려운 시대잖아요. 이런 시대에 그렇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한 걸음 정도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 그 정도 온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온도의 단어를 찾다 보니까 ‘가망’이라는 단어를 찾게 되었고요. 그래서 저희 슬로건은 ‘한 걸음의 용기가 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입니다.
불현듯(오은): 말씀 들어보니까 정말 희망과 절망 사이에 가망이 있는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가망을 가능성이라고 바꿔서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인 출판사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러면 책을 편집하시고, 기획하시고, 마케팅하는 일까지 다 도맡아서 하고 계시는 건지요?
박우진: 네, 모든 일을 하고 있고요. 디자인과 제작만 외주를 하고 나머지 일들은 제가 다 하고 있습니다.
불현듯(오은): 힘에 부치거나 하진 않으세요?
박우진: 힘에 부쳐서요. 책을 자주 못 내고, 가능한 속도로 내고 있습니다.(웃음)
불현듯(오은): 출판사를 처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마음이셨어요?
박우진: 제가 여러 가지 일들을 했었어요. 기자도 했었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도 했었고, 문화 기획자로도 오래 일을 했는데요.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중년 이후에는 내가 책임을 질 수 있는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떤 일을 노후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출판사를 떠올렸죠. 출판사 편집자 일이 되게 좋았거든요. 이 일이 저는 세 번째 사람의 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현장에 당사자가 있고, 그 당사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런 이야기들을 지지하고 그것을 잘 살려내서 다른 사람들한테 전하는 역할 말이에요. 그런 세 번째 사람의 역할이 저한테는 잘 맞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출판사를 만들었습니다.
불현듯(오은): 가망서사 출판사의 첫 책을 캘리 님께서 <어떤,책임> 시간에 소개하지 않았습니까? 『사로잡는 얼굴들』이라는 책이었죠.
박우진: 저도 들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캘리: 저도 가망서사는 처음 알게 된 출판사였는데 너무나 멋진 책이 나와서 그 책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소개할 이 책도 계속 그때의 책이 생각나는 작품이었어요.
불현듯(오은): 오늘 얘기 나눌 책 『이름보다 오래된』은 고라니의 초상을 모은 사진집이자 저자인 문선희 작가님의 에세이가 같이 곁들여진 책이기도 하죠. 이 책이 처음 어떻게 기획되었는지부터 이야기 들을 수 있을까요?
박우진: 사실 출발은 작가님과 인연이 닿아서였어요. 방금 캘리 님 말씀하셨던 『사로잡는 얼굴들』을 문선희 작가님이 보셨고, 그 작가가 하는 작업이 너무나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이랑 비슷하다면서 저한테 연락을 주셨죠. 문선희 작가님 역시 동물의 초상을 찍기 위해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 나름대로의 표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라포를 형성하고, 최소한의 장비만을 사용하시거든요. 이런 모든 작업 방식이 본인이 하고 있는 고라니 작업이랑 너무 닮았다는 거예요. 미국의 작가인데 어쩜 자신과 이렇게 똑같이 하느냐면서(웃음) 너무 잘 봤다고 연락을 주셨죠.
그러고 몇 달 후에 고라니 사진과 함께 그동안 써 놓으셨던 원고, 그리고 야생동물구조센터에 다닐 때 쓰셨던 일지 같은 것들을 보내주셨어요. 혹시 사진집으로 출간이 가능할지 검토해 달라고요. 그렇게 해서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불현듯(오은): 제목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름보다 오래된』, 잊을 수가 없는 제목 같고요. 독자 분들도 이름보다 오래 되었다는 게 대체 뭘까를 계속해서 상상하면서 책을 펼치시게 될 것 같은데요. 이 제목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말씀해 주세요.
박우진: 문선희 작가님이 고라니 작업을 하실 때 그 작업에 붙였던 이름은 ‘널 사랑하지 않아’였어요. 인간 사회가 고라니 너희들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모두 도망쳐, 이런 메시지를 담은 제목이었는데요. 저는 문선희 작가님이 이미 고라니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계셔서 이 제목과 불협화음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른 제목을 고민했죠.
원고를 계속 꼼꼼히 읽다가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있는 ‘산이’라는 베이비시터 수컷의 이야기를 봤어요. 구조센터에는 가끔 방사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고라니들이 있거든요. 사람 손을 너무 탔거나 농민들이 방사되는 걸 너무 반대하는 등 방사의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남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산이도 그런 경우였어요. 그런데 그 수컷 고라니가 구조센터에 있음으로 해서 구조된 어린 고라니들이 한결 스트레스를 덜 받고, 나아가서는 돌봄을 받게 되는 거예요.
문성희 작가님이 산이를 관찰하다가 산이가 어린 고라니들을 핥아주는 모습을 목격하시게 됩니다. 그에 대해서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오래된 근원적인 몸짓이었다”라고 묘사를 하셨는데요. 그 문구가 너무 좋았고요. ‘단어보다 더 오래된’이라는 말에 되게 많은 의미를 함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정한 제목입니다.
캘리: 이런 문장도 있잖아요.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신비를 하나의 단어로 덮어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문장 보면서 이름이라는 게 한편으로는 어떤 신비를 덮어버리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걸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책을 열자마자 어린 고라니들의 초상이 나와요. 근데 보면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고라니의 얼굴이 다 다르게 생긴 거예요.
박우진: 저도 도시에 살면서 고라니를 마주칠 일이 없잖아요. 사실 우리가 쉽게 보는 고라니 사진은 로드킬 당한 고라니의 사진 정도이기 때문에 고라니가 이렇게 다른 얼굴들과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죠. 저도 그랬고요. 그 사진들을 보고 일단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고요.
보면 볼수록 그리고 원고를 또 읽으면 읽을수록 이 고라니들의 얼굴에 고라니만 담겨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우리가 이야기를 할 때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 그 이야기가 잘 되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고라니들이 다름 아닌 이 얼굴로 포착되기 위해서는 그 앞에 있는 문선희 작가님이 어떤 방식과 어떤 시간을 들여서, 어떤 정성과 주의를 기울여서 이 존재랑 관계를 맺었겠어요. 이런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바로 그 순간의 얼굴이기 때문에 사진을 볼수록 좀 더 깊이 있게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불현듯(오은): 저도 로드킬 당한 고라니를 마주한 적이 있어요. 물론 차로 지나쳤고, 저는 차에 탑승한 승객이었기 때문에 길게 보지는 못했으나 굉장히 짠했죠. 그런데 쟤는 왜 여기까지 내려왔을까,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 그 생각이 얼마나 단순했던 것인지를 알게 돼요. 도로 같은 것, 인간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여러 시설들이 사실상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들이 사는 데 방해가 되고, 살지 못하게 막는 구실을 한다는 것도 알았거든요.
박우진: 문제는 고라니가 살기 좋아하는 서식지가 인간이랑 겹친다는 거예요. 배산임수 지형에 산다고 하거든요. 물도 좋아하고 그러니까요. 문선희 작가님도 원래는 야생 상태에 있는 고라니를 찍기 위해서 자연을 돌아다니셨는데요. 막상 찾아보니까 고라니가 살 데가 진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셨대요. 고라니가 살만한 지역마다 다 개발이 되거나 혹은 리조트, 골프장, 요양시설 같은 것들이 다 들어가 있으니까요. 고라니 입장에서는 정말 살 데가 없어서 쫓겨 다니는 상태라는 걸 체험하게 되셨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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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