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오리지널 특집 인터뷰] 김수연 작가와 사랑에 빠지는 25가지 질문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김수연 작가 인터뷰
'그냥 쓰고 싶은 마음'이 '망설임'을 이겼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초고를 완성했을 때, 마침내 나만의 작은 세계를 완성했다는 감격과 뿌듯함이 생생해요. 그 마음을 원동력 삼아 계속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제게는 마치 첫사랑처럼 애틋한 작품입니다. (2023.08.24)
탄탄한 내공을 갖춘 준비된 작가 김수연의 첫 소설집. 타로, 최애, 소개팅 등을 소재로, 자신만의 색깔이 선명하면서도 공감의 폭이 넓은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은 '조용한 유려함'이다. 바로 우리 곁에서 끌어온 듯 친근감이 드는 사랑 이야기들을 높지 않은 데시벨로 조곤조곤 들려주는데, 듣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고, 자신도 모르게 그 편안한 목소리가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이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는 스토리도 문장도 대중적인 감성에 맞닿아 있지만 쉽게 휘발되지 않는 여운을 남기고, 사랑이라는 흔한 감정의 가장 사소하다 싶은 곳을 들여다보지만, 그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작가님은 사랑을 믿나요? 그 이유는요?
물론이죠. 사는 동안 내내 사랑을 느끼고, 말하고, 궁리해온 제게 그 질문은 "삶의 유한함을 믿나요?"처럼 당연한 문장으로 느껴집니다.
사랑에 금세 빠지는 편인가요, 아니면 오래 지켜보고 결정하나요?
오래 지켜보고 결정하는 편이에요. 제 남편은 저와 연애하기까지의 난이도가 '젖은 장작에 불붙이는 수준'이었다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전화를 걸기 전, 말할 내용을 연습해본 적이 있나요? 이유는요?
자주 그렇게 합니다. 똑 부러지는 척해야 할 때, 예를 들어 중요한 비즈니스 통화를 할 때요. 안 그러면 염소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저의 소심함을 들켜버리거든요.
혼자 노래해본 적이 언제인가요? 다른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준 적은 언제인가요?
한국인답게 혼자 있을 땐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친구의 생일에 우쿨렐레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준 적도 있어요.
내 전 재산이 담긴 집이 불타고 있어요. 사랑하는 가족과 반려동물은 모두 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가지고 나올 수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요?
제 결혼식에서 썼던 화관이요. 그날의 기쁨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요.(그걸 들고 제 돈을 안전하게 맡아주고 있는 은행에 갑니다!)
작가님에게 완벽한 날은 어떤 날인가요?
충분히 푹 잤고, 한 끼는 흡족한 식사를 했으며, 한 번은 배를 잡고 웃었고, 자기 전에 떠오르는 근심이 없는 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입니까?
이십 대 초반 배낭여행 중에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서 나랑 전혀 안 닮은 초상화를 그렸을 때, 캐나다 옐로우나이프에서 오로라를 보았을 때, 사랑하는 할머니가 병상에서 집으로 건강히 돌아오셨을 때.
가장 부끄러운 기억은요?
혈기왕성하게 술을 마시고 다니던 이십 대 초반, 심야 버스에 타자마자 술기운에 다리가 풀려 승객들을 향해 사죄하듯 무릎을 꿇은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운 적은 언제입니까? 혼자 운 적은요?
출간 직전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책을 받아들고 남편과 언박싱하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혼자서는 유튜브에서 판다 동영상만 봐도 울어서 일일이 꼽을 수가 없네요.
다음 문장을 완성해주세요. "나는___를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밤 아무와도 연락하지 못하고 갑자기 죽게 된다면, 누구와 어떤 말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될까요?
여동생에게 "언니가 많이 사랑한다"고, 남편에게 "당신과 함께해서 멋진 삶이었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후회될 것 같아요.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 이야기를 해볼까요? 「전지적 처녀귀신 시점」은 피아니스트 민계우의 팬인 스물세 살 '나'가 교통사고로 귀신이 되면서 전개되는 '후생 덕질'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인데요. 이 소설을 처음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길티 플레저' 중 하나는 각종 방식으로 운세를 점치는 것인데요, 어느 날 점집에 갔는데 저더러 "조상 할머니가 지켜주고 계신다"는 거예요. '누군가를 사랑해서 맴도는 귀신이 꼭 조상이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잠깐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어느 날 밤 자려고 누워 있는데 갑자기 「전지적 처녀귀신 시점」이라는 제목이 떠오르더라고요. 평소에 '가장 궁극적인 형태의 사랑은 덕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덕질하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떠올리며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소설 속에 클래식이 많이 등장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을 고른다면 무엇이고, 이유는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클래식은 모두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곡들이어서 하나만 고르자니 괴롭지만, 그래도 드뷔시의 '달빛'을 꼽겠습니다. 소설에 썼듯이 모호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곡이지요. 수백 년 전 달빛을 바라보던 누군가가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했고, 그 선율이 지금도 듣는 이의 가슴속에 울림을 주며, 그사이 하늘의 달빛은 변치 않았다는 사실은 제게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내 덕질의 대상이었던 장국영 배우에게, 대책 없는 사랑에 빠진 모든 덕후에게, 나아가 모든 형태의 짝사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고 하셨는데요. 장국영 배우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열네 살 겨울방학 때 영화 <패왕별희>를 보고 충격을 받았었어요.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니!" 마치 소설 속 '나'가 처음 연주하는 민계우를 보았을 때처럼요. 그렇지만 봄이 오자마자 장국영 배우는 세상을 떠났고, 저는 또래들은 이해 못 할 비통하고 아련한 덕질을 시작했죠. 그가 출연한 영화를 섭렵하다가 왕가위 감독을 좋아하게 되고, 엄마를 졸라 중국어 학원에 다니기도 하고, 커서 꼭 홍콩을 가보리라 결심하기도 했어요. 제게 장국영 배우는 소설 속 문장처럼 '이 광활한 우주에서 사랑해야 할 것들'을 많이 알려준, 저라는 사람의 취향과 감수성의 밑바탕을 만들어준 존재입니다.
덕질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박정민 진기주 배우를 흠모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의 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은 어떤 작품이고 두 배우를 특별히 캐스팅(?)한 이유가 있나요?
이 책의 표제작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는 헤어진 연인의 몸이 뒤바뀌면서 서로의 처지를 살아보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에요. 제가 워낙 옛날부터 박정민 배우님의 팬이었던지라, 그의 정통 로맨스 연기를 보고 싶은 소망을 은밀히 표현한 것이고요. 또,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진기주 배우님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정말 좋아해요. 진기주 배우님도 실제로 회사원, 기자 등 다양한 직업군을 거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배우님에게서 보이는, 소설 속 '기주'처럼 씩씩하게 커리어를 꾸려가는 또래 여성의 얼굴이 좋아서 제 소설에 캐스팅(?)하게 되었습니다.
「소도시의 사랑」의 첫 문장이 담백하고 좋았어요. "고향이 태백인 여자와 남해인 남자가 서울에서 만나 사랑을 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나중에 이렇게 고백하죠. "태백산맥 할 때 그 태백이요?"라고 묻지 않아서, "동해, 서해, 남해 할 때 그 남해요?"라고 묻지 않아서 좋았다. 상황이 구체적인데 주인공의 고향을 태백과 남해로 설정한 배경이 있나요?
'한국에서 가장 추운 도시'와 '가장 따뜻한 도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시'와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의 대비를 주고 싶었어요. 태백의 산릉선과 남해의 바다처럼 대조적인 풍경의 아름다움도 흥미로웠고요. 무엇보다도 특유의 소박함과 위안이 되는 분위기 덕분에, 태백과 남해 둘 다 여행자로서 무척 사랑하는 도시입니다.
이 소설에 대해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주민 등록되어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가 덜 외롭기를 바라며 썼다"고 했는데, 작가님의 고향도 김해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도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셨나요?
저는 재택근무를 하며 부산과 서울을 오간 지 꽤 되었기에, 사실 외로움을 아주 많이 느끼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오래전부터 서울살이를 겪은 친구들과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울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죠. 그 외로움에는 공통적으로 좁은 방, 불안한 미래, 서울을 사랑하지만 한 몸이 될 수는 없는 '겉돎'의 정서가 있었고, 그게 마치 내 일처럼 사무치게 와닿을 때가 있었어요. 서울에서 지낼 때는 종종 '아, 그들이 느낀 외로움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공감하기도 했고요. 그 모든 외로움들을 뭉쳐, 서울에서 외로워본 모든 이를 위로하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습니다.
평소 친구들의 연애 상담과 타로 운세를 즐겨 봐주신다고 들었어요. 「타로마녀 스텔라」를 쓸 때 타로 지식을 활용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배우게 되신 걸까요?
소설 속 스텔라가 그랬듯이,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전 백수 시절에 취미 삼아 배우기 시작했어요. 타로 해설서와 블로그 포스팅을 보며 독학했죠. 생각보다 타로 그림에 담긴 상징이 심오하고 철학적이어서 운세 이상의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타로마녀 스텔라」에 녹여보고 싶었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반응도 궁금한데, 신통력이 좀 있다는 평가일까요?
다들 무릎을 탁 치며 용하다고 말해주긴 했어요. 그들에 대한 저의 관심과 배경지식 덕분에 상세한 점괘를 말해줄 수 있었던 것은 비밀입니다.
'내 연애운 봐주는 사람의 연애운은 누가 봐주나'하는 궁금증에서 「타로마녀 스텔라」를 쓰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도 타로 연애점을 보신 적이 있나요? 결과는 어땠나요?
20대 초중반에 친구들과 함께 한창 용하다는 타로 천막을 찾아다니며 "도대체 남자친구는 언제 생기나요?" 묻고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틀린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네요. 「타로마녀 스텔라」 초반에 등장하는 '앳된 얼굴의 여자 손님들'은 딱 과거의 제 모습이에요.
내 인생이나 미래를 비롯해 무엇이든 알려주는 '타로마녀'가 질문 세 가지만 들어주겠다고 한다면 무엇을 알고 싶으세요?
점 보는 게 취미이긴 하지만, 너무 영험한 '타로마녀'에게는 질문을 하기가 좀 무섭네요. 인생을 스포당하는 거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만 묻는다면...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잘될까요?"
「블라인드, 데이트」는 다정하고 세심한, 그야말로 완벽한 연인이 눈앞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사랑이란 감정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을 '좋은 연인의 자질을 충분히 갖췄으나 딱 맞는 상대를 찾지 못한 나의 벗들을 위해 쓰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제겐 매력적이고 사려 깊은 솔로 친구들이 많아요. 그들의 소개팅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상대가 특이하거나 느낌이 쎄하거나 제 친구들과 상극인 부분이 한가지씩은 있는 거예요. "맞는 사람 만나기 참 힘들다"며 한탄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들에게 맞춤 제작한 듯 완벽한 연인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라는 건 없으니까 그에게도 뭔가 비밀은 있을 텐데...'로 생각이 나아갔고,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분들이라면 궁금하실 것 같아요. 유진이가 서준이를 만나러 미국행 티켓을 끊었을까요?
유진이는 이미 서준이를 만나러 가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한 상태로 언니에게 마지막 메일을 썼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소설의 결말을 쓸 당시 저의 마음이 '흑흑, 너희 얼른 만나'였기 때문에... 유진이는 미국행 티켓을 끊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느 꿈의 겨울, 아로루아에게 생긴 일」을 완성하지 못했다면 끝내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하셨는데, 이 작품에 남다른 애정이 느껴집니다. 어떤 의미인지 조금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이 짧은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2년이 걸렸어요. 제가 쓰는 글을 감히 '소설'이라고도 부르지 못하는, 이 이야기를 쓰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스스로 확신이 없는 시절이었죠. 그렇게 쓰다 말다를 반복하다가도 사는 동안 문득 아로루아의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고요. 결국은 '그냥 쓰고 싶은 마음'이 '망설임'을 이겼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초고를 완성했을 때, 마침내 나만의 작은 세계를 완성했다는 감격과 뿌듯함이 생생해요. 그 마음을 원동력 삼아 계속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제게는 마치 첫사랑처럼 애틋한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사랑이라는 자기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의 삶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요?
참 신기하지 않나요? 심지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사랑을 고민하고, 상상하고, 소망하니까요. 살아있는 한 우리는 모두 사랑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러한 사랑의 불가항력을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제게는 '누군가를 아끼고 원하는 그 마음'만큼 흥미로운 것이 없거든요. 살아가는 동안 듬뿍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실컷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김수연 영상 만드는 공무원이었다가 지금은 IT 회사에서 마케터 겸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다. 창작하는 일로 10년간 먹고살았지만 결국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연애 상담 해주는 것과 사랑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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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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