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철학, 예술이 교차하는 생명과학 이야기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전주홍 교수 인터뷰
남들이 닦아 놓은 경로를 추격하는 연구가 아니라, 새로운 경로를 창출하는 연구를 하려면 준비된 우연, 전환적 사고, 훈련된 직관 등의 요소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2023.08.21)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는 '인간이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나아가 '출산, 유전, 질병, 장기, 감염, 통증, 소화, 노화, 실험' 등 열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인류의 생로병사가 과학적 현상을 넘어 사회문화적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천변만화해왔는지 살펴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 전통부터 현대 분자생물학의 정밀의학까지 다양한 발견과 실험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이 책을 과학에 관심 많은 일반 독자뿐 아니라, 의생명과학 분야 지망생이나 종사자가 많이 읽어주길 바라며 썼다. 이질적 아이디어를 색다르게 결합하는 창의력이 절실한 시대, 과학적 소양과 인문적 소양을 균형 있게 쌓아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데 보탬이 되고픈 마음에서다.
교수님을 처음 만난 독자들을 위해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실 수 있나요?
실험실이라는 연구 현장에서 분자 신호 네트워크를 탐색하여 암세포의 아킬레스건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는 전주홍입니다. 독자로서 다른 과학자의 논문을 검토하고, 실험자로서 가설을 세우며 실험하고, 예술가로서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토론자로서 자료와 해석을 두고 열띤 토론을 펼치고, 저자로서 논문을 써서 지금까지 1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를 출간하신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후련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심정입니다. 원고를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에서는 벗어났으나 저의 부족함을 더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도 갈매나무 대표님, 편집부장님, 편집자님 덕분에 제 원고를 의미 있는 책으로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 역사와 생명과학이 교차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얼핏 생각했을 때는 생명과학과 역사는 굉장히 다른 분야인 것만 같은데, 어떻게 두 학문을 연결하여 이야기하게 되셨나요?
생명과학과 역사는 원래 연결되어 있으므로 제가 연결하여 이야기했다기보단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연결고리를 소개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특히나 진화를 생각해 보면 생명과학은 분과과학 중에서도 그 자체로 역사적 속성이 듬뿍 담긴 학문이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다만, 이런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아 한번 강조해 보고 싶었습니다. 또, 세련되고 우아하게 두 학문이 연결된 이야기를 소개해, 화려하지만 금방 휘발되는 글이 아니라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마음, 장기, 감염, 노화, 출산 등 열 가지 키워드를 통해 경이롭고도 논쟁적인 생명과학 이야기를 다루셨는데요. 이런 키워드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우선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주제를 선택하려고 했습니다. 조금 더 전문적인 키워드와 내용을 소개하는 일은 제게 남은 숙제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훌륭한 저자님들의 몫일 수도 있겠지요. 키워드를 선정한 또 하나의 기준은 기밀 사항인데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쓰기 편한 주제를 고른 것입니다. 제가 지닌 소양과 역량을 뛰어넘을 수 없는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최근 노화 방지 연구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도 노화 역전이나 인공 장기 이식 같은 획기적인 연구들이 몇몇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이처럼 놀라운 발견이 빠르게 일어나는 사회에서 갖춰야 하는 마음의 자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한편 과학적 비판을 아끼지 않는 소양 혹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발견은 우리 대부분의 의지와 관계없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지만, 그 놀라운 발견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면서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일은 누구나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세를 갖추어야 이 사회의 일원이자 주체로서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를 특히 의학, 생명과학 분야로 진로를 선택하려는 학생들에게 추천한다고 하셨어요. 이런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나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왜 그런지도 알려주세요.
남들이 닦아 놓은 경로를 추격하는 연구가 아니라, 새로운 경로를 창출하는 연구를 하려면 준비된 우연, 전환적 사고, 훈련된 직관 등의 요소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려면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하는데, 그 힘의 핵심은 이질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하는 자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나 다른 분과 과학과 달리, 보편성보다는 개별성과 역사성에 주목하는 의학과 생명과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경우 더욱 이런 자질이 필요하지요.
책의 마지막에서 강조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대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기술 주권 확보, 공급망 위기, 사회경제적 뉴노멀, 초불확실성, 인구 절벽, 디지털 전환 등의 키워드가 언론 매체를 매일 뒤덮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추격 시대의 패러다임으로는 이러한 전환적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성과보다 불확실성의 관리가, 문제 해결보다 문제 규정이, 실행보다 기획 및 설계 능력이, 효율적이거나 지향적이라기보다 차별적이거나 교차적인 아이디어를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고 대전환의 시대가 요구하는 소양을 쌓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가 어떤 책으로 기억되었으면 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물망초 같은 책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전주홍 분자생리학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로 분자생리학 연구실을 운영한다. 호기심과 교차적 아이디어가 혁신적 과학연구의 밑거름이며, 패러다임을 전환하거나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과학자를 양성하는 일이라 믿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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