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삐져나오는 '어설픔'에 대한 기록, 『허술하면 좀 어때』
『허술하면 좀 어때』 띠로리 저자 인터뷰
나는 왜 이렇게 어설픈가? 이 책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속절없이 튀어나오고야 마는 '어설픔'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하고, 끝내 그런 빈틈을 긍정해보기로 한 저자의 매콤하고 귀여운 분투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2023.08.11)
『허술하면 좀 어때』는 인형 브랜드 '띠로리소프트(tirorisoft)'를 운영하는 띠로리 작가의 빈틈 예찬 에세이다. 어딘가 엉성해 보이지만, 묘하게 끌리는 띠로리 작가의 인형들은 띠로리소프트 홈페이지에 업로드되는 족족 품절 사태를 빚으며 팬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다. 이뿐 아니라, 여러 미술관에서 주최한 크고 작은 전시부터 대세 뮤지션들과의 협업까지 띠로리만의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중이다. 어엿한 브랜드의 대표이자 창작자로 당차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저자는 의외의 인생 고민을 털어놓는다.
나는 왜 이렇게 어설픈가?
이 책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속절없이 튀어나오고야 마는 '어설픔'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하고, 끝내 그런 빈틈을 긍정해보기로 한 저자의 매콤하고 귀여운 분투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흡사 명랑 시트콤을 보듯 피식피식 웃음이 비어지는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어느덧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당신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남들은 몰라도 누구보다 고군분투하고 있었을 당신, 이 책은 바로 그런 당신에게 용기를 줄 책이다.
『허술하면 좀 어때』는 작가님의 첫 책이죠? 첫 책을 펴내신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랫동안 준비하던 책이 비로소 세상에 나와서 떨리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기도 해요. 평소에 인형을 통해서만 제 모습을 보여드렸기에 글로써 다가가는 건 새로운 느낌이에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 책이 앞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며 어떤 일을 벌일지 기대가 됩니다.
프롤로그의 제목인 '허술하게 허슬(hustle)하기'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어요. '허술하다'의 어근인 '허술'과 영어 단어 '허슬'은 발음은 비슷해도 언어의 뉘앙스는 전혀 다른데요. 이 알 듯 말 듯 한 표현의 의미가 뭔지 좀 더 알려주세요.
'허술하게 허슬하기'라는 건 제 책을 가로지르는 중심 모토라고 볼 수 있어요. 겉으로 보여지는 제 삶의 모습, 혹은 제가 만들어내는 인형과 작업물은 언뜻 보기에 허술해요. 가끔은 완벽을 기하려고 해도 미끄러지기 일쑤죠. 그렇다면야 나는 허술하게 뻗대며 부단히 살겠다. 이게 나인데 어쩔 테냐, 나는 허술한 게 아니라 허술한 허슬러다! 이런 다소 황당한 포부를 담은 캐치프레이즈라고나 할까요.
'띠로리소프트'라는 브랜드의 대표이면서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창작자이기도 하세요. 언뜻 생각했을 때 두 자아의 균형을 이뤄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두 자아를 조율할 때 중점적으로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이때는 이렇게, 저 때는 저렇게' 모드를 스위치를 끄고 켜듯이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죠. '나는 브랜드의 대표이니 최대한 이익을 많이 창출해내야 해' 같은 생각에 매몰되면 결국엔 초심을 잃게 되는 일 아닌가 싶고, 제가 원하는 바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100퍼센트 작가적으로만 행동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브랜드 대표와 창작자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스스로를 여기는 것. 그게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저는 판매할 인형을 구상할 때 독창적인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반대로 개인 작업을 할 때도 상품적으로 풀어나갈 부분을 열어두는 편이에요.
책에서 엿볼 수 있는 전반적인 삶의 태도를 살펴볼 때, 작가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나 자신의 행복'인 듯해요. 특히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한 몸 웃겨줄 인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82쪽)와 같은 구절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고 봐요. 다른 무엇보다 '나 자신'을 건강하게 우선할 수 있는 작가님만의 비법이 궁금해요.
딴짓하기. 당장 해야 할 일 안 한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요. 가끔은 할 일이 밀렸을 때 맛있는 우동집에도 가고, 주변 사람들 만나서 시시한 농담 따먹기도 하고, 딱히 생산성 없는 활동을 하는 게 마음에는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인생은 소풍이니까요.
2장 「딱 하루치 귀여움」에는 작가님이 주변에서 포착한 온갖 귀여움의 순간들이 총집결합니다. 알감자나 문어빵 같은 '한 입 거리 음식'부터 지자체 마스코트, 빈티지 의류를 사랑하는 친구들, 우연히 마주친 중년들의 엉뚱한 언어 생활 속에서까지 나름의 귀여움이 있다고 주장하고 계시는데요. 혹시 최근에 새로이 발견한 귀여움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한 달 전쯤인가 동네에 러브버그가 창궐을 한 거예요. 마침 놀이터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아기들이 엄마 품에 울면서 달려드는 모습을 봤어요. "엄마! 러브버그야!" 하면서요. 그 말을 곰곰이 곱씹는데, 아기들이야말로 엄마만 보면 달려드는 언제나 사랑 가득 러브버그들이네(너무나도 귀여운 의미로)... 같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답니다.
마음속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은 문장들이 많아요. 작가님이 뽑은 이 책의 최애 문장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도요!
내가 상상한 어떤 디스토피아적 세상이 언젠가 찾아온다고 해도, 한날한시에 모두 죽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결국 그때도 나름의 사랑과 모험을 펼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 망할 듯 천둥 치는 창밖을 바라보며 카페에 갇혀 시시하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실없이 웃으며.
휴가지에서 가져온 엽서처럼, 이 문장을 읽으면 그 시시하게 웃는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절로 그려져요. 창밖으로는 우르르 쾅쾅 비가 내리든 어떻든, 제가 원하고 혹은 사람들도 진실로 원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그 별것 아닌 연대와 미소 아닌가 싶어요.
앞으로의 작가님의 행보가 더욱더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일들을 바라고 계획하고 계신가요. 이에 더해, 책을 계속 써볼 마음이 있는지도 슬며시 얘기해주세요.
올해 말까지는 이런저런 전시나 협업 행사 등이 잡혀 있어서 아마 그 일들을 하며 지내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에 <방앗간의 넙떡이들>이라는 인형 시리즈를 만들면서 고대하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도 간단히 찍어보았는데, 내년부터는 이런 애니메이션을 좀 더 개인 작업으로 심화해서 많이 해보고 싶어요. 책은 에너지의 쿨타임이 차오르는 날이 온다면 언제든지 오케이입니다.(웃음)
*띠로리 유머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코미디 조각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하루하루 귀엽고도 가여운 인형을 만들고 있으며, 오리지널 굿즈 숍 띠로리소프트를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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