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력 특집] 인생 요정이 업로드되었습니다
<월간 채널예스> 2023년 8월호
네 컷 만화에도 캐릭터는 살아 있고 썰렁하지만 곱씹게 되는 유머가 녹아 있다. 픽셀로 한 땀 한 땀 자신만의 만화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OOO 작가를 만났다. (2023.08.08)
우리들은 자랐다. 책장을 넘기고 스크롤을 내리며 울고 웃었다. 도망갈 이야기가 있었고 꿈꾸던 이름들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아프리카의 바람을 느끼는, 골목길에 앉아 에베레스트산의 공기를 호흡하는 신기도 키웠다. "선달아, 꺼벙아, 까치야, 백호야, 슬비와 푸르매야, 우리들의 장그래 씨 그리고 새로이야..." 덕분에 추억이 넘쳤다. 덕분에 여전히 즐겁다! 컨테이너 가득 만화책을 쌓아놓은 덕후도, 만화 얘기라면 지칠 줄 모르는 평론가도, 할 말이 있고 연필만 쥘 수 있다면 멈추지 않겠다는 만화 작가도, 인생 만화를 곱씹는 만화 편집자와 마케터도, 그리고 숱한 독자들까지. 우리들의 만화력은 계속 연재 중이다. |
네 컷 만화에도 캐릭터는 살아 있고 썰렁하지만 곱씹게 되는 유머가 녹아 있다. 픽셀로 한 땀 한 땀 자신만의 만화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OOO 작가를 만났다.
픽셀로 네 컷 만화 그리기, 어떻게 시작했나요?
2016년도 무렵 가느다란 픽셀 선을 매체로 작업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2~3일에 한 개씩 SNS 계정에 일러스트를 그려 올리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느 날 같은 그림체로 만화를 그려서 올려봤더니 바이럴이 되면서 팔로워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대로 만화를 그려 올리는 계정이 돼버렸어요.
생소한 장르라 구체적인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줄곧, 인터넷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픽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어요. 최종 작업물이 원본의 몇 배가 되어야 할지를 가늠해서 대지 크기를 정하고, 밑그림 없이 바로 마구 그리는 편입니다. 채색도 동시에 해가면서 완성하고요. 작업을 시작하던 때는 서툰 그림체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해서 손 가는 대로 그리려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못 그린 그림일수록 매력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네 컷 안에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꾸준히 의외성을 주려고 하고 있어요. 네 컷 만화라는 것이 특별한 기술이나 원칙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네 컷 안에 나열하기만 해도 만화가 완성될 수 있는 포맷인 것 같다가도, 단편 에피소드 형식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지키는 원칙이라면 욕이나 유행어를 사용하지 말자 정도?
최근작 『인생의 요정』에는 다양한 상상의 요정들이 나옵니다. 본격 '요정 만화(?)'를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인생의 요정』은 원래 독립 출판으로 만든 작은 책이었는데요. 사실 그 이후로 요정 이야기를 추가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SNS에 비정기 네 컷 연재를 할 때 요정이 등장하는 만화가 호응이 좋기도 했고, 책자를 마음에 들어 하셨던 편집자님으로부터 몇 년간의 강력한 제안이 있었습니다. 편집자님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어떤 만화』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2023년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독자들이 느끼는 웃음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평소 제가 농담을 습관적으로 하는데, 하나도 웃기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너무 썰렁해서 차마 말로 못 꺼내는 농담들도 있고요. 그래서 일부러 그 농담들이 재미있을 수 있는 가상의 상황을 연출해서 만화로 그리기 시작한 게 『무슨 만화』, 『어떤 만화』예요. 밑도 끝도 없이, 억지라고 할 수도 있는 상황 전개를 좋아해 주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도시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과 만화로 담아낸 『골목 방랑기』를 보면 걷고 관찰하기를 즐기는 것 같아요.
평소 밖에 나가는 일이 드물다 보니 걷는 걸 좋아한다고 할 수 없는 편인데...(웃음) 그래서인지 오히려 한 번 외출했을 때 곳곳을 관찰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걸을 때마다 항상 사진을 찍고요. 오래전 입시를 준비하는 내내 '대상을 안 보고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꽤 깊게 각인되어 있었어요. 시험에서 어떤 대상을 묘사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대상을 주의 깊게 보는 습관은 그래서 생긴 것 같아요. 기껏 관찰한 대상을 부정하기, 관찰하다가 다른 길로 새기 등이 아이디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요.
어느 인터뷰에서 픽셀이 아닌 '손 그림 네 컷 시리즈'를 그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픽셀은 결국 표현의 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픽셀 그림을 좋아하고 편안하게 생각하지만 결국, 저도 어릴 때부터 거의 모든 시간을 손 그림만 그려왔고 픽셀 그림을 그린 지는 겨우 8년 정도 되었거든요. 더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이다 보니 언젠가는 다시 손 그림 쪽으로 작업 지평을 넓혀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어요. 하지만 한쪽을 선택하더라도 다른 한쪽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 같아요. 픽셀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제 적성에 맞다는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만화가 OOO의 요즈음 일상을 들려주신다면?
책을 연달아 내다 보니 조금 과로했던 면도 있어서 올해는 조금 쉬자고 생각했는데,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자니 너무 불안하고 초조하더라고요. 그래서 외주 작업이 있으면 작업하고, 없으면 위탁 판매용 굿즈라도 포장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쉴 때는 게임을 하거나 OTT를 보고, 인터넷 서핑을 합니다. 필명 OOO은 어떤 이름이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럼에도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을까요? 정말 어떻게 불려도 좋습니다. '쓰리오'라고 몇 번 더 불려보고 싶기는 합니다. 시리얼 이름 같기도 하고요.
*OOO(정세원) 픽셀 만화가. 주로 도트를 이용한 만화를 그린다. 네 컷 만화집 『무슨 만화』, 『어떤 만화』, 『인생의 요정』을 펴냈고, 만화가들의 지역 탐방 만화 프로젝트 『지역의 사생활99 시즌3 전주』와 네 컷 만화와 에세이가 어우러진 『골목 방랑기』를 썼다. 인스타그램 계정 @3_ooos에서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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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