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력 특집] 연필로 울리고 웃깁니다
<월간 채널예스> 2023년 8월호
연필로 그린 짧은 가족 이야기가 올라오면 사람들은 댓글을 단다. "아침부터 '눈물 버튼' 눌려서 울었다." 하고, "배꼽 빠지게 웃었다."고도 한다. 팔로워 15만, 어느 인스타툰 작가의 해시태그는 #펀자이씨툰 #인스타툰 #일상툰이지만 독자들에겐 이미 '가족사랑장려툰'이다. (2023.08.08)
우리들은 자랐다. 책장을 넘기고 스크롤을 내리며 울고 웃었다. 도망갈 이야기가 있었고 꿈꾸던 이름들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아프리카의 바람을 느끼는, 골목길에 앉아 에베레스트산의 공기를 호흡하는 신기도 키웠다. "선달아, 꺼벙아, 까치야, 백호야, 슬비와 푸르매야, 우리들의 장그래 씨 그리고 새로이야..." 덕분에 추억이 넘쳤다. 덕분에 여전히 즐겁다! 컨테이너 가득 만화책을 쌓아놓은 덕후도, 만화 얘기라면 지칠 줄 모르는 평론가도, 할 말이 있고 연필만 쥘 수 있다면 멈추지 않겠다는 만화 작가도, 인생 만화를 곱씹는 만화 편집자와 마케터도, 그리고 숱한 독자들까지. 우리들의 만화력은 계속 연재 중이다. |
연필로 그린 짧은 가족 이야기가 올라오면 사람들은 댓글을 단다. "아침부터 '눈물 버튼' 눌려서 울었다." 하고, "배꼽 빠지게 웃었다."고도 한다. 팔로워 15만, 어느 인스타툰 작가의 해시태그는 #펀자이씨툰 #인스타툰 #일상툰이지만 독자들에겐 이미 '가족사랑장려툰'이다.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올리겠다는 결심, 어떻게 하게 됐나요?
일러스트레이터로 경력을 쌓았지만 '자기 그림의 주인이 되지 못한 작가'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육아를 위해 일도 그만둔 상태였죠. 그림의 주인이 되려면 나만의 이야기와 정체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제 주변에 있는 가장 특이한 소리로 필명을 만들었어요. 남편의 성이었죠. 그리고 익숙한 도구를 사용해 잘 아는 이야기를 그려보자 했어요. 아무에게도 의뢰받지 않은 그림 <펀자이씨툰>을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회를 올린 날, 독자의 반응은 어땠나요?
첫 에피소드는 네 살 난 아이 '짠이'가 선보인 어설픈 액션 히어로 동작들이었어요. "날 좀 바바"라며 엄마의 시선을 주목시킨 후 재롱을 부리는 장면이죠. 제가 독자들 앞에서 일기를 쓰려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과 사람들을 친철하고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다정한 세상을 그리는 이유가 있을까요?
다정함이 지구를 살리니까요.(웃음) 살면서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큰 힘이 되었던 건 넘어졌던 순간에 누군가 내밀어준 손이었어요. 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섰죠. 그래서인지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족과 주변 인물과의 에피소드를 담아내면서 지키려고 한 원칙이 있을까요?
특정 테마를 전달하기 위해 가족과 나눴던 대화나 일화를 사용하는 편이에요. 즉흥적으로 누군가의 허술하고 귀여웠던 행동들을 그리거나, 기발하고 고마웠던 일들을 다루기도 하고요. 철학자와 소설가, 태국인과 어린이가 다양한 조합으로 펼치는 밥상머리 대화도 좋아하는데, 어디까지나 제가 보는 것들을 제 관점에서 기록하는 것이라 등장인물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표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솔직한 일상이 담겨 있다 보니 독자들의 공감과 응원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이야기를 쓰고 그릴 땐 눈물을 흘린 적이 없는데, 댓글 또는 편지를 받아 읽으면서 뭉클했던 적이 많아요.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인 걸 알았으니, 환자들의 아픔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들이 가진 기쁨을 조금이라도 증폭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해주신 간호사님의 댓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펀자이씨툰>이 마치 마데카솔 같다."고 해주신 119 대원님의 비유, 웹툰 속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짧은 조언으로 자식과의 관계가 달라졌다며 찾아와 주셨던 한 어머니의 눈물이 떠오르네요. 보이지 않는 이들의 애정이 굉장히 깊고 진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그 캐릭터를 좋아해 주는 분들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감사한 마음이 커요.
매일 흘러가는 일상을 기록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을까요?
현재는 <펀자이씨툰>을 그리는 것이 제가 일상을 기록하는 방식이에요. 간단한 이야기는 즉흥적으로 그리고, 기억하기 어려울 것 같은 대화는 녹취하거나 메모합니다. 다소 복잡한 내용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인스타그램 열 컷 단위의 페이지 수에 맞추어 대사들을 정리하고, 떠올렸던 이미지들과 교차시키고 있어요.
연필로 작업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지금까지 사용한 연필을 세어본다면?
질문 : 일을 많이 할수록 자신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답 : 연필. 얼마 전 짠이의 친구가 제게 낸 수수께끼예요.
제가 지난달에 물을 몇 잔 마셨나 헤아리기 어려운 것처럼, <펀자이씨툰>을 그리는 동안 몇 자루의 연필들이 사라졌는가는 죽을 때까지 알기 힘든 것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네요!
자신의 재능과 이야기를 인스타툰으로 펼쳐보고 싶은 이들에게 나름의 비결과 노하우를 공개해 주신다면?
우선 하나의 테마를 정해 꾸준히 관찰하고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 것을 추천해요. 이야기의 정체성보다 유행의 공식이 먼저 보인다면, 유행이 지나가 버리는 순간부터 방향을 잡기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요. 초보자의 경우에는 '과정'의 시행착오를 '결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어떤 미숙함도 내가 원하는 길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하는 여유를 갖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내가 계속 그리는 이유, 나를 계속 그리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사람들 간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것도 따뜻한 온도로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든 슬픈 에피소드든,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다고 느껴지는 날은 종일 좋은 에너지가 솟습니다. 제 기록의 흔적들을 돌아보는 것도 흥미롭고, 새로이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반복되는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요. 당연한 것들 속에서 낯선 것들을 발견하는 기록은 제가 글씨를 쓸 수 있을 때부터 해왔던, 아마 연필을 잡을 수 있는 한 계속될 저의 놀이입니다.
*엄유진 인스타툰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연필 한 자루를 들고 틈틈이 종이 위에 이야기를 담는다. 영국에서 『Peepo Fairies』, 『Peepo Pirates』 등의 그림책을 출간했으며, 『행복한 철학자』, 『숲으로 가는 사람들』 등에 삽화를 그렸다. 유학 시절에 만난 태국인 남편과 가족들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연재해 호응을 얻었으며, 이를 묶어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를 펴냈다. ▶인스타그램 : @punj_t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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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