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김연수 소설가 "괴로울 때 하는 일? 시급하게 나무를 본다" (G. 김연수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51회) 『너무 많은 여름이』
지금은 이야기가 목적지가 아니고요. 말하자면 운송 수단 같은 방편으로 생각을 해요. 제 이야기를 타고 가서 각자가 봐야 되는 풍경을 보게 하는 수단으로써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2023.07.27)
잘 지내시는지요? 너무나 환한 여름에 안부를 묻습니다. 하얀 구름과 쏟아지는 비, 지나가는 바람과 뜨거운 햇살, 지금 여기에 우리의 모든 게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잘못된 선택은 없습니다. 잘못 일어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하시길.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 더 먼 미래까지 술술 나아가시길. _2023년 하지 무렵의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펴낸 김연수 작가의 안부 인사를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고 말하는 작가를 모셨습니다. 소설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로 돌아온 김연수 소설가입니다.
황정은 :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6월에 내셨어요. 한 달쯤 지났는데, 책을 내고 뭘 하며 지내셨나요?
김연수 : 그 전에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펴내고 나서 낭독회를 좀 많이 했어요. 새 책을 내면 전국의 작은 서점과 도서관에서 행사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강연 요청이 있을 때마다 제가 낭독회로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보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낭독회로 바꾸고 무조건 다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내기 전에도 계속 낭독회가 있었고요. 이 책을 내고 나서도 이전에 잡혀 있던 낭독회가 있어서 낭독회에서 읽을 원고를 쓰고 또 읽고, 그런 식의 일들을 하고 지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지금도 이런 원고들이 쌓이고 있는 거네요.
김연수 : 왜 낭독회를 했는지 말씀드리면, 주로 강연 제의를 받게 되는데요. 예전부터 강연을 하면서도 약간 어색한 점이 있었어요. 제가 강연자로서의 정체성이 없는데, 일단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은 있죠.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에 말을 걸고 어떤 지점까지 같이 갑시다, 제의도 하고 그런 정체성은 있는데요. 그렇게 해서 책을 펴내고 나면 일반적으로 독자들을 직접 대면할 때는 강연의 형식으로 대면을 하게 되어서 그게 저한테는 좀 어색하고 불편하더라고요.
황정은 : 맞아요, 저도 그래요.
김연수 : 그래서 강연을 하고 돌아올 때면 기분이 굉장히 씁쓸합니다. '그 말을 한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이런 생각이 좀 들고. 그래서 강연 제의가 오면 좀 거절하는 식으로 하다가 '왜 소설가 정체성으로 독자를 만날 수가 없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능하면 새로 쓴 소설을 독자들한테 처음 읽어드리는 형태로 만나보면 어떨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죠. 그러고 나니까 어떤 놀라운 게 있냐 하면, 그분들은 어쨌든 저한테서 출판되지 않은 신작 소설을 듣게 되고 저는 새로 그분들 덕분에 새 소설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황정은 : 오늘 방송을 준비하면서 제가 세 권의 책을 읽고 왔어요. 2019년에 출간된 『시절일기』, 2022년에 출간된 『이토록 평범한 미래』,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한 번에 읽었는데요. 글 사이에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같이 읽었을 때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일단 작년에 출간된 단편집 이야기부터 하고 싶습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첫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평범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어요. 우리가 흔히 '평범함'이란 그냥 우리가 가지게 되는 어떤 상태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그런데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 작가님도 많은 생각을 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범함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연수 : 이 소설들은 팬데믹의 소산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2020년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이 되고 독서 모임이나 행사들이 많이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저도 잡혀 있던 행사들이 2020년 여름부터 취소되기 시작하고 했는데, 그런 일이 한 번 있었어요. 제주도의 한림도서관이었는데, 당연히 (다른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취소될 줄 알고 비행기 표도 안 끊고 있었는데, 뜻밖의 메일이 왔어요. '이 상황이 쉽게 안 끝날 것 같으니 작가님의 강연을 기회로 우리가 한번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해주세요'라고 메일이 왔어요. '그러면 해보겠습니다' 하고 가서 마스크를 쓰고 강연을 했는데, 하고 있는데 약간 뭉클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이게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라에서 문학을 못 읽게 강압을 하는 거죠. 그래서 몰래 숨어서 읽어야 되는 상황. 그런 약간 비밀 회합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비밀 회합을 하는 이유는 뭘까?'라고 생각하면, 이게 너무 가치 있는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게 탄압받으면서 끝이 나면 안 되고 물려줘야 된다고 믿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뭘까?'라고 하면 '이렇게 작가 만나는 거 혹은 책 읽고 독서 모임 하는 거 그런 것들이구나' 싶은 거예요. 그게 쉽고 그냥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없어질 수도 있는 일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려운데도 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뭉클해지고 약간 동지를 만난 것 같았고,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한 이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팬데믹 상황이 되고 나서 보니까 대단한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런 식으로 독자를 만난다든지, 서로 얘기를 자유롭게 한다든지, 혹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람들하고 북적대는데 책을 읽는다든지, 전시장에서 전시를 본다든지, 그런 사소하고 그냥 평범한 일들이었지 대단한 어떤 걸 원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범한 게 가장 놀랍고 소중한 것인데 우리는 지금까지 뭘 좇고 살았지? 어떻게 하다가 이런 세상이 됐지?' 그런 회의가 들면서 평범함에 대한 가치가 저한테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황정은 : 작가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평범함에 대해서 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지금도 여전한 것 같아요. 갈수록 평범함이라는 게 왜 이렇게 어렵고 아득하게 여겨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평범함을 추구하고 바란다는 게 약간 좀 뻔뻔한 일인가?'라는 죄책감마저 느껴지는 상황이기도 해서 참 마음이 복잡하네요.
김연수 : 네. 제가 나무 보는 걸 되게 좋아해요. 힘들 때, 머리가 복잡하고 괴로울 때 시급하게 나무를 봐야 됩니다.(웃음) 나무를 이렇게 보고 있으면, 바람이 없는 날은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있고 바람이 부는 날은 흔들리는데, (바람이) 안 불 때는 (나무를) 보면서 흔들리는 부분을 계속 찾아요. 분명히 흔들리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보면 어딘가 흔들립니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면 막 흔들리는데, 나무들 전체가 똑같은 방향으로 흔들리거든요. 뭐랄까, 너무 조직적이고 규칙적이고 잘못된 게 하나도 없이 바람에 따라서 흔들려요. 수초가 바닷물에 흔들리듯이 바람을 타고 흐름을 타고 있어요. 그걸 보면 좀 안정이 되면서 '잘못된 건 없어'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람도 잘못된 게 아니고 모든 게 잘못된 게 없이 안정적이야'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더해서 요즘 하나를 더 봐요. 나뭇잎 사이의 빛들 있잖아요. 일본말로 '코모레비(こもれび)'라고 하는데요. '코모레비'라는 게 뭐냐 하면, 그늘과 빛이 같이 공존하는 거잖아요. 나뭇잎 그늘을 보고 우리가 그 그늘의 윤곽만 보고 있으면 빛은 여백이 되는 것이니까. 빛은 안 본다고 볼 수 있는 거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늘의 이야기, 그늘의 윤곽의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그냥 빛의 이야기와 똑같은 거예요.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서 빛이 되는 거고 그늘이 되는 거니까요. 사람들은 어두운 이야기를 되게 좋아해요.
황정은 : 그렇습니까?
김연수 : 네, 어두운 이야기를 만들 때는 에너지가 거의 안 듭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파국적 결과를 상상하는 거는 너무 쉬운 거예요. 그게 아니라 더 좋아지는 이야기 '이대로 오늘 같은 날이 반복될 거야, 괜찮아 곧 나아질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는 좀 쉽지가 않아요.
황정은 : 맞아요.
김연수 : 제가 소설가로서 정체성이 생긴 게 2020년부터예요. 그전에는 소설가의 정체성이 없었는데요. 소설가로서 정체성이 생기고 나서 '소설가가 과연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라고 봤을 때는, 어쨌든 이야기를 만들려고 에너지를 쏟아 붓는 사람이거든요. '그렇다면 모아놓은 에너지를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데 쓰느냐'라고 봤을 때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늘의 이야기를 에너지를 투여해가지고 '빛의 이야기로도 볼 수가 있어'라고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소설가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평범해지는 건 반복적으로 에너지를 계속 투여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지 않으면 금방 나빠집니다. 평범하다는 것에 대해서 (황정은 작가님도) 계속 말씀을 하시지만 저도 동의하듯이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고, 어려워도 우리가 가야 될 방향이라고 생각을 하죠.
황정은 : 그렇지만 정말 오래 침묵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랜 침묵 끝에 두 개의 단편으로 소설 쓰기를 다시 시작을 하셨어요. 그것이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실린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하고 「사랑의 단상 2014」입니다. 두 단편 모두 사랑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 두 개의 단편을 읽는 동안에 '사랑과 기억 정말 중요한데,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고 또 기억만으로도 부족해서 이 두 가지가 반드시 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들을 쓸 때 작가님 도대체 어떠셨을까, 그리고 어떻게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까 궁금했어요.
김연수 : 그때가 2014년이고,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다들 사회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잖아요. 근데 공교롭게도 저는 그때 40대 중반을 지나고 있었고 저의 부모님 세대들이 돌아가시고 있을 때였어요. 그전까지 죽음이라는 게 TV나 영화나 소설에서만 보던 약간 추상적인 것이었죠. 그러다가 죽음을 너무 실감을 하게 됐고.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써 그렇게 사람이 죽는다는 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좀 느끼게 됐고요. 그러면서 거기에 압도되었던 것 같아요. 이게 인간의 어떤 운명인가, 라는 비관도 있었고요. 그렇게 어리석은 게 인간이니까 저런 식의 참사도 일어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어지는 거고요. 세상에 대한 어떤 안정감도 많이 사라지게 되고 불안 자체가 시작이 되는 거죠. 그 상태가 되니까 세상이 막 꼴도 보기 싫어지는 거예요. 사람들도 다 싫어지고.
그런데 제가 잡을 수 있는 게 말씀하셨던 사랑과 기억이라는 거였어요. 그때는 확신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고요. 어려서부터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였던 거죠.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는 않아' 혹은 '기억을 하는 그 사람은 존재를 하고 있는 거야'라는 거는. 그걸 저는 믿을 수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으니까, 성현도 얘기하고 선생님도 얘기하고 작가들도 얘기했으니까, 그렇게 제가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했으니 그 말이 틀리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 시기를 지나오기 위해서 저한테 있었던 두 개의 구명조끼 같은 거였다고 할까요. 그걸 의지하고 지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 소설들은 어떻게 생각하면 저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한 소설에 가깝습니다. 물론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이걸 기억해야 된다, 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도도 있었습니다만 제가 그걸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한 건 아니고요. '우리가 배운 게 맞다면 분명히 이게 맞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내가 지금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이해될 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이걸 믿도록 하자, 안 그러면 내가 이 시기를 지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라고 해서 쓴 소설이고요. 지금 와서는 이해가 좀 돼요.
황정은 :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얘기가 너무 가깝게 다가오네요. '믿을 수는 없지만 믿기로 하자'는 마음인 거잖아요.
김연수 : 맞아요.
황정은 :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믿는 마음이 분명히 있거든요.
김연수 : 그러니까요. 지금의 저는 모르더라도 혹시 나중의 저는 믿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나중의 저를 생각하면서 쓰는 거죠.
황정은 : 이번 소설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단 이 소설집에 대한 이야기는 '모슬포의 어느 저녁'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1년에 거기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가 열렸는데요. 그날에 대해서 좀 자세히 듣고 싶어요. 물론 책에 간략하게 언급을 하셨습니다만, 어떤 얼굴들을 만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분들이 오셨나요?
김연수 : 2021년에 제가 제주도 모슬포 남쪽에 있는 가파도라는 섬의 레지던스에 들어가서 생활한 적이 있는데요. 지역에서 북토크 같은 것들을 한다는 조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모슬포'라는 지역의 작은 서점에 행사가 잡힌 거죠. 뭘 해야 되는지 고민을 했는데 새 책이 나온 것도 아니니까 북토크를 하기도 그렇고, 또 어떤 분들이 오시는지를 모르겠고요. 그래서 그때 『청춘의 문장들』 하고 여기(『너무나 많은 여름이』)에 실린 「보일러」라는 소설을 읽고 얘기를 나누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나갔죠. 궁금해서 서점의 주인 분한테 물어봤어요. "어떤 분들이 오십니까?"라고 했더니 모슬포 지역은 농사와 어업이 잘 되는 곳이라고 해요. 그래서 귀농하신 분들이 많으시대요.
그분들이 저녁마다 인문서를 읽는 독서 모임이 있는데 거기 독서 모임 분들도 오시고, 또 여행 오신 분들 중에 소식을 듣고 오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귀농하셔서 저녁마다 인문서를 읽는 그분들이 너무 궁금한 거죠.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스름이 내리고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중년 여성들이었어요. 진짜 주경야독하시는 선생님인 거죠. 『청춘의 문장들』의 한 구절을 읽는데 약간 걱정이 되긴 했어요. '재밌을까?' 걱정이 되고 '일부러 시간 내서 오셨는데 재미없어서 그냥 가시면 어떡하지?' 생각했는데, 그러다가 그분들의 낮을 상상을 하게 됐던 거죠. 낮 동안에 계속 일을 하셨겠구나, 모슬포 장에 가면 온갖 채소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키우시는 분들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더니 '이분들은 정말 생산적인 걸 만드시는구나' 싶어가지고 저도 그런 뭔가를 드리고 싶은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그때 이후부터 '오신 분들한테 뭔가 드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죠. 할 수 있는 게 뭐 소설밖에 없으니까 그게 소설이면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황정은 : 모슬포 낭독회에서 일종의 첫 경험을 그렇게 하시고, 여태 가지고 있던 이야기 쓰기에 대한 생각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경험을 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이 소설집의 「작가의 말」에서 선언을 하셨더라고요. '여태까지 내가 이런 소설을 쓰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쓸 것이다'라고도 쓰셨는데, 말하자면 그게 알게 된 거잖아요. 내 소설을 읽고 있는 얼굴을 보고 표정을 보고, 그 얼굴의 피로도 알아보고, 그런 거잖아요. 두렵기도 했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이 자리에 당도하기 전까지 해온 이야기들의 쓸모 같은 것을 스스로 묻는 일이기도 했을 것 같아서.
김연수 : 저는 과거를 부정하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써왔던 소설들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 소설들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애착이랄까, '이건 꼭 지켜야 돼'라는 생각은 많이 없어졌어요. 그 차이가 뭐냐 하면, (비유하자면) 제가 잘 꾸며놓은 집이 하나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문학성과 훌륭한 걸로 정말 잘 꾸며놨죠. 사람들한테 "와서 좀 봐 보세요" 해서 사람들이 와가지고 막 구경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뭐야, 이게? 꼴 보기 싫어!" 이런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막 화가 나요. 왜냐하면 제가 바로 집이기 때문에. 저를 욕하는 것 같고. 그런데 누가 와가지고 "와, 예쁘네요" 그러면 기쁘고 좋고.(웃음) 그렇게 화도 냈다가 기뻤다가 이런 식인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뭐냐 하면, 이야기가 목적지가 아니고요. 말하자면 운송 수단 같은 방편으로 생각을 해요. 책을 출판하거나 혹은 낭독을 할 때 같이 읽어봅시다 라고 하는데, 한 20명 정도가 앉아 있으면 각자가 버스를 타고 가는 거죠. 그런데 목적지는 다 다르더라고요. 본인이 원하는 지점에 가서 다 내리세요. 거기에서 보게 되는 풍경, 그건 제가 글로 쓸 수는 없는 거죠. 다만, 제 이야기를 타고 가서 각자가 봐야 되는 풍경을 보게 하는 수단으로써 이야기라고, 지금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소설을 쓸 수도 있겠죠. 일단 제일 큰 변화는 제 이야기가 목적지가 아니게 됐고, 각자인 독자들과 이동하는 데 사용되는 수단이 됐다는 점인 것 같아요.
*김연수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 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 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 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단편 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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